우리 고사에 보면
'모사재인 성사재천(
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일을 만드는 것은 사람에 달렸고,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다.

왜 갑자기 이 말이 생각이 난 것일까?
며칠간 쏟아진 비로 온 나라가 난리다.
순식간에 쏟아진 비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감당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손쓸 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감당하기란 녹녹치가 않다.


어제 저녁 지인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강남에 있는 연습실에 물이 차 악기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참 운도 없는 분이란 생각이 든다.

하필이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그것도 어렵게 마련한 연습실이다. 거기다가 최근에 비싼 돈을 들여 악기까지 새로 구입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모두 물에 젖어 하나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것은  그 안에 자신이 피땀흘려 쌓아 놓은, 그동안의 노력을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다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보니 하늘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하늘인들 그러고 싶었을까? 난 그 하늘을 보고 원망을 할 수가 없다. 바로 위에 적은 말이 생각이 나서이다. 일은 인간이 벌린다. 그러나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바로 하늘이 그 일을 허락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하늘에, 그리고 자연에 우리가 할 도리를 다 한 것일까? 사람은 언제나 겸손해야만 한다. 그 겸손함이 자연이 우리에게 준 많은 것들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은 강한 동물이 아니다. 단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지, 자연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인간들이 만든 인위적인 믾은 것들. 결국 그런 것들이 이번 참사에 일조를 하지는 않았을까? 일은 인간이 할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는 선조들의 가르침. 우리는 무지하게도 이런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음을, 자연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저 위 산성이 지금은 비록 보수를 했지만, 몇 백년을 저렇게 버티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쌓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선조들의 지혜였다. 인간이 일을 벌리기 전에 먼저 하늘의 뜻을 알아보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자연이 이리 노한 것인지, 반성을 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은 장식장에 가득한 CD뿐이다

햇수로는 9년이 되고, 제대로 생활을 한 것은 7년 정도가 되었나보다. 그동안 플래닛에서 블로그로 넘어오고, 또 다시 티스토리를 했다가, 피치못 할 사정으로 인해 티스토리를 접었다가 다시 시작한 것이. 벌써 강산이 한 번 정도가 변할만 한 시간이었다. 아마도 구불거리며 잘 흐르던 4대강이 직강으로 변한 것이, 그 중 가장 큰 인위적인 자연의 변화였다는 생각이다.  

그 4대강 때문에 여강 길을 참 많이도 걸었다.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기 전에 눈도장이라도 찍어 두겠다고. 이젠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강길이 되어버렸지만. 지금 강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시 시작한 티스토리의 첫 번째 글을 송고한 것이 2010년 8월 2일이었다. 공주 공산성 안에 있는 '만하루와 연지' 이야기를 송고한 날짜가.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동안 463개의 글을 써 갈겼으니, 참 주인 잘못 만난 팔이 엄청 고생했다는 생각이다.

2010년 8월 2일에 송고한 공산성 안 만하루와 연지의 모습이다. 앞으로는 금강이 한창 파헤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1년. 그동안 늘어난 것이라고는 장식장에 가득한 CD뿐이다. 아마도 어림잡아 300여장 정도는 더 늘어났는가 보다. 이제 자리가 부족해 또 하나의 장을 사야할 지경이니 말이다. 1년 동안 현장을 돌아다니며, 문화재 답사를 한 것이 40여회. 날로치면 일 년 365일 중에 거의 80일 정도를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그 발품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허름한 장식장. 그 장식장을 보면서 배를 두드릴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배를 두드릴 때가, 아마 이 짓거리를 하면서 가장 좋은 세월이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 그 잠시의 좋은 세상은 물 건너 가버렸다. 지금은 온통 역한 땀 냄새에 주린 배를 움켜쥔, 허름한 인간 하나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답사들 한 번 나가보시려우?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나섰다. 청도에 있는 운문사를 찾아가기 위해서이다. '스님짜장'을 봉사한다고 가는 길이지만 , 그 곳에 있는 많은 문화재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화재 하나를 더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은 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아침에 길을 나설 때는 그 좋던 날씨가, 청도에 다다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참 날씨마져 날 도와주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이미 땀인지 빗물인지 구별도 안된다. 물신 땀 냄새가 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관광을 온 듯한 젊은 여인네들이 옆으로 지나가면서,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린다. 몸이 뜨겁다보니 땀 냄새가 역했나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도 그렇지, 은근히 화가 치민다. 한 마디 불거진 소리를 뱉어낸다.

"당신들도 이 복중에 문화재 답사 한 번 나가보시려우. 땀 내 안나나"

도대체 무엇하려고 이 고생을 사서할까? 그동안 모아 놓은 자료만 해도, 앞으로 10년 넘게 편안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될 것을. 시간버리고 돈 버리면서, 거기다가 몸까지 축내가면서 이 짓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돌아오는 내내 생각을 해본다.

'나는 왜 이 짓을 하는 것일까?'
'이것으로 인해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속에서 과연 글은 써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그저 지나가면서 코를 잡고 고개를 돌려버린, 어느 여인의 눈초리만 자꾸 생각이 날 뿐이다. 이제 이 짓도 그만두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 이 무더운 복중에 날 괴롭힌다.  하기야 그 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비와 땀이 함께 범벅이 된 내 몰골이 이상했을 뿐이지. 그래도 찜찜한 기분은 영 가시지를 않는다.

문화재 답사, 남들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이니,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보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는 공감이 된다. 하지만 보람 이전에 어떤 사명감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자 하는 사명감. 그리고 우리 문화재의 온전한 보존을 위한, 두 눈 부릅뜨고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아마 이런 것이 그 안에 함께 할 것이다.

우선 문화재답사라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은 것은, 시간과 경비의 조달일 것이다. 시간은 틈을 내어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경비는 늘 발길을 무겁게 만든다. 답사지에 가서도 숙소에 컴퓨터가 있는 방을 들어가려면, 웃돈을 더 내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하고, 먹고, 자고, 거기다가 음료라도 마시는 날에는 두둑하던 주머니가 곧잘 비어버린다.

답사를 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산행도 감수를 해야한다. 카메라의 무게만 해도 버거울 때가 있다.

날씨가 발길을 무겁게 해

답사를 하다가보면 가끔은 헛수고를 하는 일이 있다. 이번 답사에서도 지리산 천년송을 촬영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정작 그곳으로 오르는 길은 얼음이 얼어 차량이 통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곳과 마애불을 찍기 위해 참으로 벼르고 또 별러 찾아간 길인데, 맥이 다 빠져버린다.

일기가 사람을 참으로 난감하게 만드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여름과 겨울에는 사전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서기는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 할 수없이 발길을 돌리기도 하지만, 마음은 내내 씁쓸하다. 거기다가 산 길을 접어들었는데, 갑자기 비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인근에 커다란 바위라도 있으면, 조금이라도 비를 피할 수가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도 받아

카메라가 비에 젖으면 낭패이기 때문에 비가 뿌리거나 눈이 내리면, 카메라를 옷 안으로 넣고 다녀야만 한다. 그러면 불룩 나온 배가 이상하게도 보일 것이다. 몇 번인가는 불심검문을 받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가가 없는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배에 무엇인가 불룩하니 넣어갖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우리나라 주민들의 신고정신은 가히 일품이다. 그런 날은 십중팔구는 신분을 확인시켜주어야만 한다. 그래도 요즈음은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많이 좋아진 셈이다. 그래도 중단을 할 수 없이 계속하는 것을 보면, 아마 천성적인 역마살이 맞는구나 싶기도 하다. 일기도 사람들의 시선도, 온 산과 들판을 누비고 다니는 나를 어쩌지를 못하는 것을 보면.


물 한 모금과 건강한 발은 답사의 생명이다. 이렇게 힘들게 다녀도 오해를 받는 일이 있어 맥이 풀린다.

“사진 찍고 간 후에 도둑을 맞았어요.”

어제와 오늘 답사를 하면서 정말로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날씨는 바람이 불고 손도 시릴 정도였지만,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소개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보던 보지를 않던 그런 것은 나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제목만 보고 간다고 해도, 언제가 그곳을 들리면 ‘아! 옛날에 누가 이런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라는 생각만 해도, 난 성공을 했다고 자부를 한다.

오늘 고택답사를 하는데, 어떤 분이 밖에서 쫒아 들어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시면서 유심히 살펴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에 사시는 분이란다.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겠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난번에는 누군가가 조사를 한다고 와서 사진을 찍고 갔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다음에 도둑을 맞았어요. 집안에 있던 고서들을 잊어버렸죠.”

말씀을 들어보니, 사진을 찍겠다고 해서 보여주었는데, 그 다음에 그것을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도 다 그렇게 보일 수밖에. 명함을 드리고 나서, 마저 사진촬영을 마쳤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에 제일 조심하는 것이, 바로 안채의 집안 촬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히 집안을 찍고 나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집안의 귀중품을 찍겠다고 부탁을 하지도 않는다. 집안에 잇는 것을 찍으면, 좀 더 세세한 글을 쓸 수가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내가 작고 소중한 것들을 촬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답사를 하는 것은 문화재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칫 남들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날 추운 날 다녀 온 답사 길. 그래도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들고 왔으니, 당분간은 추운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래서 추위에 얼고, 오해를 받아도 답사는 늘 즐겁다.


삼성궁은 지리산 청학동에 소재한다. 삼성궁에는 배달민족의 국조인 환웅, 환인, 단군을 모셨다.(삼성궁에서는 환웅과 환인과 한웅과 한인이라고 한다)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는 청학동은 신라의 최치원이나 도선국사를 비롯한 역대의 선사들이, 최고 명당 중에 명당이라고 알려준 곳이다.

이 삼성궁은 한풀선사가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면서 오랜 시간 준비를 해 온 곳이다. 이곳에 배달민족의 혼을 일으키고, 민족적 구심점을 형성하기 위해 돌탑(솟대)을 쌓고 삼성궁을 건립하였다. 매년 10월 4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삼성궁의 천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고대 조선 문화로의 회귀에 동참을 한다.


비가 오는 날 오른 삼성궁

10월 24일(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청학동을 지나 삼성궁으로 올랐다. 전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아침이 되어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다. 삼성궁 앞 주차장에는 이미 만차가 되어있다. 날이 좋으면 묵계까지 차가 늘어선다고 한다. 문을 지나 오르다가 보니 작은 폭포가 보인다. 주변에는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해, 폭포 주변이 아름답다. 이곳을 ‘청학폭포’라고 부른다고 한다.

양편으로 돌로 담을 쌓은 길을 따라 걷는다. 굴도 지나고, 연못을 건너 올라가는 곳. 마지막으로 석문을 들어서니 삼성궁이 시야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모여들었다. 시간이 늦어 마고성에서 하는 행사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 풍물을 앞세운 사람들이 삼성궁으로 모여든다.


삼성궁 입구에 있는 청학폭포와(위) 삼성궁 전경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하고 앉았다. 주악에 맞추어 차를 올리고 천부신경 등을 구송한다. 밖에서도 합장을 하고 사람들이 제에 동참을 한다. 안에서는 한참 의식이 베풀어지고 있는데, 시끄럽게 사진을 찍는다고 떠드는 사람들. 어디를 가나 이런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망쳐진다.


특이한 돌담과(위) 태극모양의 연못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지리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 삼성궁.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기도 만만치가 않을 듯하다. 비는 계속 오는데도 삼성궁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단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삼성궁의 근본이 되는 배달민족의 혼을 찾기 위해서일까?


천제를 지내는 사람들

제를 마치고 삼성궁을 떠나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왜 이곳을 찾았느냐고. 사람들은 그저 단풍도 볼겸, 이곳이 아름답다고 해서 들렸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이렇게 신성한 곳임에도 여자 친구를 무릎에 앉혀놓은 사람도 있다. 요즈음 신세대의 애정행각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가보다. 그런 것을 무엇이라고 탓하는 것이 아니지만, 장소와 때는 조금 가릴 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붉게 물이 들기 시작하는 지리산,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산허리에 걸린 비구름, 삼성궁은 또 다른 이상의 세계로 사람을 인도한다. 질퍽이는 길을 따라 오르기가 버겁기도 했지만, 모처럼 좋은 의식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문화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 오랜 시간을 이렇게 쌓아놓은 돌탑과 돌담을 따라 내려오면서, 내년에는 미리 이곳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한 삼성궁

문화블로거. 이름만으로는 참 듣기가 좋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광역적으로 보면 문화안에 모든 것이 다 포함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행동이나 말, 생활 등 모두가 다 이 시대의 문화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굳이 그것을 나누어 말하자면 <풍속>이라고 표현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한 문화는 일반적으로 동서양을 가르고, 대중적인 요소를 가미한 대중문화로 구분을 짓기도 한다. 대중문화를 세분하면 그 종류를 다 나열하기가 힘들정도로 많겠지만, 쉽게는 문화와 연예를 구분하기도 한다.

문화는 시대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하기에 그 문화적 내용을 파악하면 어느때의 문화인지 구별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갖고 전통문화, 근대문화, 현대문화 식으로 구분을 하기도 한다. 사실 전통문화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적이고 순차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정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화를 어느 선까지가 전통문화인가를 구별하기란 쉽지가 않다.


난 문화블로거인가?

전화를 한통 받았다. 반가운 목소리다. 사무실에서 아침부터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보면, 짬을 내어 블로그에 글을 읽기도 버거운 것이 요즘 내생활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 일찍 시간과 밤 늦은 시간 밖에는 여유가 없다. 조금 시간적 여유라도 생기면 보따리를 챙겨들고 답사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받은 전화는 반갑기도 하다. 잠시라도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까.

"잘 계셨어요?"
"그래 덕분에 잘 있다. 너는 어떠냐 요즈음"
"예, 저도 잘 있습니다. 요즘 형님 블로그에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다 그렇게 글까지 읽어주고"
"그런데 말이죠. 형님도 이제 그 힘든 답사를 해야하는 전통문화 블로거 그만하시고, 남들처럼 편하게 하시지 그러세요. 그렇게 힘들여 다녀도 보는 사람도 별로 없든데요"
"알았다. 생각해 보자"

아우녀석은 힘들여 답사를 다니고, 그것을 글로 올리는 작업의 어려움을 안다. 하기에 이젠 좀 편하게 작업을 하라는 이야기다. 그 말은 사실 무척이나 고마워해야 할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언짢을까? 저녀석이 이젠 내가 나이가 먹어 걷기도 힘들겠단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바쁜 사람이 틈이나면 바로 뛰쳐나가느라,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니 그런 것이 안타까워서일까? 별 생각이 다 든다.



난 끝까지 전통문화 블로거이고 싶다

힘들다. 답사를 나가기도 힘이 버겁고, 밤 늦은 시간에 글을 쓴다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전부다. 아니다, 아는것이 아니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접고 편안히 앉아서 글이나 쓰라니. 그럼 도대체 무슨 글을 쓰라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쓸 것이 없다. 남들처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내전공이다'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전통문화일 수 밖에 없다. 전통문화도 그 종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수많은 문화 중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만난 문화재에 느낌을 적어 올리는 것이다.

가끔은 사람사는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그것도 역시 답사를 다니면서 얻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구분을 하기위해 사람사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것도 풍속이 아니든가? 그래서 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티스토리를 개설할 때도 마음속으로 작정을 했다. 누가 들어오거나 말거나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 문화재에 대해 이해를 해줄 사람만 있다면, 난 그를 위해 글을 쓰겠다고 말이다.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만큼 행복은 없다. 땀을 흘리고 몇 시간씩 산을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만나게 되는 마애불. 그러나 글 하나로 그 노력은 끝이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길을 맥없이 몇 시간을 터벅이면서 찾아 낸 정자 하나. 그것도 글 하나면 끝이다. 눈길에 미끌어지면서 겨우 만나본 석탑 한 기. 눈이 여기저기 가리고있는 모습을 찍어 올리고나면 끝이다.

그런 쉽지 않은 답사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전통문화, 특히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블로거이다. 다행히 몇 분 되지는 않지만 그 수고를 함께하는 이웃블로거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것만으로도 답사를 하는 길이 수월해지니 말이다. 오늘 낮 아우녀석의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난 글을 쓸수 있는 한, 답사를 다닐 수 있는 한은, 영원한 문화블로거로 남고 싶다. 비록 단 한 사람이 찾아들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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