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산을 오르려고 벼르고 있는데, 하늘이 영 반갑지가 않다. 잔뜩 검은 구름이 낀 것이 금방이라도 소나기 한 줄기가 내릴 것만 같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할머니 한 분이 농약통을 지시고 길을 나서신다.

"안녕하세요"
"예"
"밭에 약 치시러 가세요. 비가 올 것 같은데요"
"비가 올까요?"
"예, 금방 쏟아질 것 같아요"
"어제 잠시 해가 들었을 때 칠 것을 그랬네"


팔순 할머니는 아직도 농사일을 하신다.

할머니가 길을 접고 집을 향해 걸어가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심 잘 되었다고 안심을 한다. 돌아가시는 할머니는 하늘이 원망스러우신가 보다. 연신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러실 것이다. 힘들에 나서신 길인데 비가와서 일을 할 수가 없다면, 온 몸이 쑤시는 것이 더욱 힘드실  것 같다.

잠시 쏟아지던 비가 멈추었다. 우산을 손에 든 할머니가 다시 길로 나오셨다. 여주군 북내면의 정말 시골스러운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영감님을 여의신지가 벌써 몇 년째시다. 지금은 혼자 사시면서 밭일을 하고 이런 저런 일로 소일을 하신다. 매일 아침 그 시간이면 집을 나서시고, 같은 시간에 밭에서 돌아오신다. 밭이 먼 곳은 아니지만, 할머니께서 다니시기에는 결코 가까운 거리는 어니다.


할머니는 이 길을 따라 밭으로 가셨다. 

할머니의 길에는 물이 차 있고

뒤를 보이고 가시는 할머니를 몇 장 찍었다. 여주에 올 때마다 뵙는 분이기에 낯설지가 않다. 산 모퉁이를 돌아 할머니께서 사라지셨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할머니의 밭은 어떤 밭일까? 아우에게 할머니의 밭을 묻고 난 뒤, 뒤를 따라 나섰다. 길은 젖어 있고, 바지가랑이가 젖어든다. 그래도 궁금하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좌우로 길이 나온다. 어디인지 알았으니 우측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밭 가까이 가니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길이 끊겼다. 매일 다니시는 길이지만 연세가 드신 분이기에 건너기가 만만치가 않았을 텐데. 할머니가 보이지를 않는다. 여기저기 찾아 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신 것일까?

할머니는 이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으셨다. 할머니의 길을 따라 걸어본다. 발밑에 밟히는 감촉이 좋다. 가끔은 돌뿌리가 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 멀리 할머니가 계시다. 아까 뒷짐을 지고 들고 나가셨던 우산은 아직도 손에 꼭 쥐고 계시다.   

할머니가 밭으로 나가는 길에 도랑이 생겼다
할머니의 밭.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돌아오실 때는 마중이라도 해야겠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시는 할머니는 이제 돌아오실 시간이 가까이 되었다. 시간이 되니 걱정이 앞선다. 돌아오실 때는 개울에 물이 더 불어 있을텐데. 어떻게 건너실 수가 있을까? 할머니에게서, 우리의 어머니가 보인다. 아마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살아오셨을 것이다. 


돌아오실 때 연락이라도 해 주시면 좋을텐데. 그렇게 보아도 말을 놓지 않는 할머니는 아마 남에게 부담이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실 분 같다. 아직은 낯이 익지 않았으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을 눈여겨 보면서, 괜한 비탓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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