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오랜만에 참으로 자유로운 여행을 즐겼습니다. 전주를 떠나 진해, 마산, 창원(그리고 보니 창원과 마산 등은 이미 통합이 되어 있더군요)을 지나 고성으로, 그리고 다음날은 울산을 거쳐 포항, 울진까지 쉬엄쉬엄 떠난 여정이었나 봅니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아마 3일간 차를 탄 것만 해도 40시간이 넘었으니까요.

양산 홍륭사, 울산 반구대 암각화, 그리고 정자와 고택 등을 주로 답사일정을 잡았습니다. 지나는 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된 은행나무 두 그루까지, 소득이 꽤나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답사는 늘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렙니다. 그러면서도 발길을 재촉하는 것은 한 가지라도 더 보겠다는 욕심 때문이란 생각입니다.


해지는 남해의 작은 포구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다.

차를 타고 이동을 하다가 보면, 갈아타는 시간이 항상 아깝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주변의 볼거리를 하나씩 살피다가 보면, 그 또한 즐거움일 수가 있습니다. 이번 답사 길에서는 남해의 일몰을 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것마저 마음대로 되지가 않아 조금은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나름대로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철 지난 포구는 왜 그리도 한가한지. 저녁의 햇볕이 비치는 포구에서 한참이나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네요. 작은 배 한척이 물살이 이는대로 일렁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나그네의 피곤한 발길을 쉬게 한 한가로움이기도 합니다.



2박 3일의 여정. 그렇게 그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음을 기약하지만, 이번처럼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빈집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전문블로거’라는 용어가 생소한 듯하기도 하다. 사실 블로거들이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그 전문성을 인정하기도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이 블로그의 추세가 일상다반사나 연예 쪽으로 많이 치중을 하다보면,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그 방향으로 글의 소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포스팅을 하는 분야는 문화 쪽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문화가 아닌 전통문화 부분이고, 그 중에서도 문화재에 많은 양을 할애한다. 아무래도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답사를 하다가보니, 그 방향으로 설정이 된 것만 같다. 답사를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이런 일 저런 일도 올릴 경우가 있다 보니, 나 역시 가끔은 일상다반사 부분으로 분류가 되는 날도 있다. 하지만 난 고집스럽게 문화블로거임을 강조하고 싶다.

삼성궁으로 오르는 길. 단풍이 물든 암벽 길을 걷는다.
 
좋은 만남으로 이어지는 여행

티스토리에서 <김천령의 바람흔적>을 운영하는 천령님과는 꽤 오랫동안 만남을 가졌다. 이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그만큼 자주 만나기도 한다. 가끔은 함께 답사를 하는 일도 있는 터라, 이런저런 취향을 서로가 알게 된 듯하다. 천령님은 다 알고 있듯 여행블로거이다. 아우지만 늘 그 사진들을 보면서 부럽게만 느껴진다.

10월 22일 전주한옥마을에서 열리는 ‘술잔전’에서 만난 또 한 사람의 지기인 ‘지우재 김원주’님은 블로그를 운영하시지만, 자주 글을 올리지는 않는다. 이 셋이 언제부터인가 의형제가 되어버렸다.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만나기만 하면 술로 날을 새우기 일쑤이니, 주변에서는 정말 부러운 형제라고 까지 할 정도이다.

굴을 지나며. 좌측이 여행블로가 김천령님. 우측이 도예가인 김원주님이다.
 
셋이서 하루를 보낸 뒤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을 들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우재는 이 삼성궁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한 탓에, 천제를 지내니 꼭 참석을 해보자고 권유로 인해서다. 전날 지리산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난 뒤, 아침에 지리산으로 향했다. 전날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지를 않는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오른 삼성궁이다.

여행블로거는 무엇을 담나?

비옷을 하나씩 구해 입고 빗길을 걸어 삼성궁으로 향한다. 비속에서 만나는 단풍이 그 빛깔이 더욱 붉은 듯하다. 작은 폭포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와 천령님의 사진을 찍는 곳이 영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필요로 찍는 곳은 천령님은 거의 찍지를 않는다. 천령님이 열심히 찍고 있는 곳을 보면 나에게는 그렇게 열심히 찍고 들여다보고를 반복할 만한 곳이 아니다.

솟대인 돌탑.

전날 구례 연곡사에 가서도 느낀 바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진 촬영을 한다. 나는 문화재 하나를 보면 그 조각 부분까지 세세하게 촬영을 한다. 부도탑 하나를 찍는데 거의 70~80장 가까운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 그러나 천령님은 두 세장 찍을 뿐이다. 딴 것으로 이동을 하면서 천령님이 그렇게 많은 양을 찍어대는데 나는 한 장도 찍지를 않는다.

바로 전문블로거의 모습이다.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을 강조하다가 보니, 서로가 사진을 찍는 포인트가 전혀 다르다.

“형님은 오늘 공쳤네요. 천제 하나만 겨우 건졌네요, 여기까지 힘들에 올라와서”
“그러게 말이다. 그 시간에 문화재를 찍었으면 글 10개는 쓸 수 있었을 텐데”
“저는 오늘 많이 건졌습니다. 오늘의 답사는 나를 위한 것 같네요”

돌길을 걷고 있는 김원주님. 빗길을 걸어 삼성궁으로 올랐다. 단풍이 타는 듯하다.

웃고는 있지만 내심 속이 상하다. 좀 더 많은 글 소재를 갖고 내려갔으면 좋았을 것을. 현장답사는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비용이 상당히 들어간다는 것이다. 1박이나 2박 정도를 하면, 몇 십 만원이 훌쩍 날아간다. 그렇다 보니 한번 나가면 하나라도 더 찍어야하는 것이 문화블로거의 욕심이다.

여행전문블로거인 김천령님과 함께 떠난 답사길.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 찍어 온 자료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뿌듯하다. 좋은 형제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녀 온 여행이기 때문이다. 서로 알려주고 기다려주면서 다녀 온 이번 답사길에서, 어느 분야나 현장을 다니는 블로거들의 쉽지 않은 내력을 본다.

“아우님, 담부터는 글 하나하나 더 열심히 보아 주마”

 

석탄정. 남들은 석탄정이라고 하면 먼저 옛 노랫말을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석탄정을 본다면 그런 노랫말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입부터 벌릴 것이다. 마을을 들어가는 길 한편에 보이는 거목들이 우거진 숲.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작은 정자 하나. 그것이 바로 석탄정이 운치있게 자리한 모습이다.


석탄정을 찾아가 제일먼저 느낀 것은 쉬고 싶다는 생각이다. 아주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고, 그저 세월을 막아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정자 안에 걸린 수많은 편액들. 이 석탄정이 왜 그토록 발을 쉬고 싶었는지, 바로 이해가 간다.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들려 편안하게 발을 뻗고 세월의 흐름을 잊은 것일까?




석탄 류운선생이 건립한 정자 


석탄정은 고창군 고창읍 율계리에 자리한다. 답사를 하다가 보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문화재를 만날 수가 있다. 바로 석탄정이 그런 곳 중 하나이다. 주소를 잘못 찾는 바람에 만나게 된 정자. 석탄정을 찾아들어 슬그머니 남모르는 미소를 짓는다. 열심히 답사를 하다가보니, 이렇게 좋은 곳으로 안내를 했는가 보다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소득이기 때문이다.


선조 14년인 1581년에 지은 정자이니, 벌써 43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자이다. 류운 선생은 성격이 고매하고 학식이 높아, 청암찰방이라는 직책을 제수받았다. 그러나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이곳에 이 정자를 지었다. 동서로는 상풍루와 영월헌을 세우고, 정자 앞에는 조대를 세웠다고 한다. 주변에는 나무를 심어 풍취를 돋우었다고 하니, 주변에 있는 나무들의 수명이 그러하단 것을 말한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뿌리가 드러나 보일 정도이다. 다 드러난 맨살을 보이고 있는 고목에서, 석탄정의 역사를 알수 있다. 이렇게 멋진 정자를 만나기도 쉽지가 않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자는 가운데 방을 들였다. 그래서 주변을 마음대로 돌아볼 수 있도록 꾸몄다. 정자의 앞으로는 높임마루를 놓고 그 밑에 아궁이를 들였다.


풍취를 자아내게 하는 정자


그 높임마루 하나가 정자의 모습을 바꾼다. 이 높임마루가 아니더라도 방을 둘러쌓고 있는 마루에 앉으면 세상 시름을 잊을 것만 같다. 덤벙 주초위에 원형의 기둥을 놓고, 팔작지붕으로 꾸민 정자는 그렇게 옛 풍취를 자랑이라도 하는 것일까? 사방을 둘러 걸린 편액들이 편안한 다리를 뻗은 나그네를 긴장케한다.





무엇인가 이 석탄정에서는 글 하나라도 짓지 않는다면, 댓돌 밑으로 내려가지 못할 것만 같은 분위기다. 한바퀴 빙 둘러 걸린 수많은 편액들이 이곳을 자랑하고 있다. 석탄 류운선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교분을 쌓은 것일까? 이곳을 둘러보면서 스스로를 나무란다. 과연 난 선생과 같은 그런 마음을 간직할 수는 있는 것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좋아할 수는 있는 것일까? 


마음을 읽을줄 모르는 새 한 마리가 고목의 가지에 앉아 요란하게 울어댄다. 아마 저 새도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아끼지 못한 나를 탓하는가 보다. 오늘 이 석탄정에 올라 시름 하나를 내려놓고 간다. 그리고 숱한 답사길에 쌓인 피로도 내려놓고 가련다. 그것이 석탄 선생이 기다리는 바가 아닐런지. 석탄정에는 수많은 나그네들의 피로가 놓여있다.



2년 동안 발이 되어 준 등산화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했다. 메이커를 신으라는 사람들의 말을 그저 흘려들은 것이 화근이었다. 정품이 아닌 신발을 신으면서, 신발이라는 것이 내발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긴 등산화 한 켤레 값도 만만치가 않으니, 서민들이 좋은 제품의 신발을 신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는 지인 한 분이 신발은 좋은 것을 신어야 한다면서 운동복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를 데리고 가 등산화를 한 켤레 사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껴 신는다고 신지도 않고 보관을 하다가, 동생 녀석에게 빼앗겨 버렸다. 신발 하나도 주인은 따로 있는가 보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등산화 한 켤레를 갖고 온산을 다 뒤집고 다녔다.


다 닮은 신발을 꼬매기도 했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산을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화가 된다.

나에게 신발이 중한 것은 바로 답사 때문이다. 한 달이면 4~5회씩 나가는 현장답사. 그 답사를 하려면 발이 보통 아픈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산 날망까지도 올라야 하는 것이 현장답사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돌아 다녔으니, 등산화의 창이 많이도 닮았을 것이다. 그런 신발을 이번에는 더덕을 캐러 다닌다고 혹사를 시켰다.

아마 정품 신발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통 산으로 들로 돌아다닌 2년. 그동안 얼마나 많은 힘이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비를 만나 온통 젖기도 하고, 눈이 쌓인 길을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2년간 충실히 나의 발이 되어 준 등산화다. 이 등산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신발을 고치는 분에게 수선을 부탁한 것도, 알고 보면 그 동안 정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아마 이 등산화를 신고 수백리는 더 걸었을 것이다. 하루에 십리를 걸었다고 해도, 2년이면 그 거리가 얼마인가?


수백리를 걸었을 등산화. 안에는 검불이 차 있고, 여기저기가 낡아 물이 스며든다.

그러던 신발인데 이제는 헤어져야만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수선을 한 곳이 쉽게 떨어져 나가고, 이 신발로 인해 화를 입게 되자 신발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차에 좋은 정품 등산화를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인간이 그만큼 간사한 것인가 보다. 좋은 신발을 새로 신고 보니 날아갈 듯 가볍고 좋다.

그런데 저 한편에 있는 낡은 등산화가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 버려야 할 텐데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생각하면 2년간이나 날 위해 얼마나 힘든 길을 걸었던가? 내가 글이라도 잘 쓰는 사람 같으면 예전 분들과 같이 신발예찬론에, 신발을 떠나보내는 작별의 글이라도 썼을 테지만 그도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새신발. 이 신발을 신어보니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모른체 하기에는 낡고 떨어진 등산화가 너무나 많은 정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고별을 알리는 글을 쓰자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등산화 한 켤레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감이 들기 때문이다. 낡은 등산화를 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참 많이도 신었다.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 등산화는 나를 위해 2년이란 세월을 함께했다.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오늘 이 낡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떠나보내면서 서운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 적는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런 것을 보면 나도 조금은 괜찮은 남자인 듯하다. 남들이야, 얼빠진 사람이라고 웃겠지만.

문화블로거. 이름만으로는 참 듣기가 좋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광역적으로 보면 문화안에 모든 것이 다 포함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행동이나 말, 생활 등 모두가 다 이 시대의 문화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굳이 그것을 나누어 말하자면 <풍속>이라고 표현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한 문화는 일반적으로 동서양을 가르고, 대중적인 요소를 가미한 대중문화로 구분을 짓기도 한다. 대중문화를 세분하면 그 종류를 다 나열하기가 힘들정도로 많겠지만, 쉽게는 문화와 연예를 구분하기도 한다.

문화는 시대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하기에 그 문화적 내용을 파악하면 어느때의 문화인지 구별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갖고 전통문화, 근대문화, 현대문화 식으로 구분을 하기도 한다. 사실 전통문화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적이고 순차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정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화를 어느 선까지가 전통문화인가를 구별하기란 쉽지가 않다.


난 문화블로거인가?

전화를 한통 받았다. 반가운 목소리다. 사무실에서 아침부터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보면, 짬을 내어 블로그에 글을 읽기도 버거운 것이 요즘 내생활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 일찍 시간과 밤 늦은 시간 밖에는 여유가 없다. 조금 시간적 여유라도 생기면 보따리를 챙겨들고 답사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받은 전화는 반갑기도 하다. 잠시라도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까.

"잘 계셨어요?"
"그래 덕분에 잘 있다. 너는 어떠냐 요즈음"
"예, 저도 잘 있습니다. 요즘 형님 블로그에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다 그렇게 글까지 읽어주고"
"그런데 말이죠. 형님도 이제 그 힘든 답사를 해야하는 전통문화 블로거 그만하시고, 남들처럼 편하게 하시지 그러세요. 그렇게 힘들여 다녀도 보는 사람도 별로 없든데요"
"알았다. 생각해 보자"

아우녀석은 힘들여 답사를 다니고, 그것을 글로 올리는 작업의 어려움을 안다. 하기에 이젠 좀 편하게 작업을 하라는 이야기다. 그 말은 사실 무척이나 고마워해야 할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언짢을까? 저녀석이 이젠 내가 나이가 먹어 걷기도 힘들겠단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바쁜 사람이 틈이나면 바로 뛰쳐나가느라,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니 그런 것이 안타까워서일까? 별 생각이 다 든다.



난 끝까지 전통문화 블로거이고 싶다

힘들다. 답사를 나가기도 힘이 버겁고, 밤 늦은 시간에 글을 쓴다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전부다. 아니다, 아는것이 아니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접고 편안히 앉아서 글이나 쓰라니. 그럼 도대체 무슨 글을 쓰라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쓸 것이 없다. 남들처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내전공이다'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전통문화일 수 밖에 없다. 전통문화도 그 종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수많은 문화 중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만난 문화재에 느낌을 적어 올리는 것이다.

가끔은 사람사는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그것도 역시 답사를 다니면서 얻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구분을 하기위해 사람사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것도 풍속이 아니든가? 그래서 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티스토리를 개설할 때도 마음속으로 작정을 했다. 누가 들어오거나 말거나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 문화재에 대해 이해를 해줄 사람만 있다면, 난 그를 위해 글을 쓰겠다고 말이다.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만큼 행복은 없다. 땀을 흘리고 몇 시간씩 산을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만나게 되는 마애불. 그러나 글 하나로 그 노력은 끝이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길을 맥없이 몇 시간을 터벅이면서 찾아 낸 정자 하나. 그것도 글 하나면 끝이다. 눈길에 미끌어지면서 겨우 만나본 석탑 한 기. 눈이 여기저기 가리고있는 모습을 찍어 올리고나면 끝이다.

그런 쉽지 않은 답사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전통문화, 특히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블로거이다. 다행히 몇 분 되지는 않지만 그 수고를 함께하는 이웃블로거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것만으로도 답사를 하는 길이 수월해지니 말이다. 오늘 낮 아우녀석의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난 글을 쓸수 있는 한, 답사를 다닐 수 있는 한은, 영원한 문화블로거로 남고 싶다. 비록 단 한 사람이 찾아들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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