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발이 되어 준 등산화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했다. 메이커를 신으라는 사람들의 말을 그저 흘려들은 것이 화근이었다. 정품이 아닌 신발을 신으면서, 신발이라는 것이 내발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긴 등산화 한 켤레 값도 만만치가 않으니, 서민들이 좋은 제품의 신발을 신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는 지인 한 분이 신발은 좋은 것을 신어야 한다면서 운동복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를 데리고 가 등산화를 한 켤레 사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껴 신는다고 신지도 않고 보관을 하다가, 동생 녀석에게 빼앗겨 버렸다. 신발 하나도 주인은 따로 있는가 보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등산화 한 켤레를 갖고 온산을 다 뒤집고 다녔다.


다 닮은 신발을 꼬매기도 했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산을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화가 된다.

나에게 신발이 중한 것은 바로 답사 때문이다. 한 달이면 4~5회씩 나가는 현장답사. 그 답사를 하려면 발이 보통 아픈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산 날망까지도 올라야 하는 것이 현장답사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돌아 다녔으니, 등산화의 창이 많이도 닮았을 것이다. 그런 신발을 이번에는 더덕을 캐러 다닌다고 혹사를 시켰다.

아마 정품 신발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통 산으로 들로 돌아다닌 2년. 그동안 얼마나 많은 힘이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비를 만나 온통 젖기도 하고, 눈이 쌓인 길을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2년간 충실히 나의 발이 되어 준 등산화다. 이 등산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신발을 고치는 분에게 수선을 부탁한 것도, 알고 보면 그 동안 정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아마 이 등산화를 신고 수백리는 더 걸었을 것이다. 하루에 십리를 걸었다고 해도, 2년이면 그 거리가 얼마인가?


수백리를 걸었을 등산화. 안에는 검불이 차 있고, 여기저기가 낡아 물이 스며든다.

그러던 신발인데 이제는 헤어져야만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수선을 한 곳이 쉽게 떨어져 나가고, 이 신발로 인해 화를 입게 되자 신발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차에 좋은 정품 등산화를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인간이 그만큼 간사한 것인가 보다. 좋은 신발을 새로 신고 보니 날아갈 듯 가볍고 좋다.

그런데 저 한편에 있는 낡은 등산화가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 버려야 할 텐데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생각하면 2년간이나 날 위해 얼마나 힘든 길을 걸었던가? 내가 글이라도 잘 쓰는 사람 같으면 예전 분들과 같이 신발예찬론에, 신발을 떠나보내는 작별의 글이라도 썼을 테지만 그도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새신발. 이 신발을 신어보니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모른체 하기에는 낡고 떨어진 등산화가 너무나 많은 정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고별을 알리는 글을 쓰자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등산화 한 켤레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감이 들기 때문이다. 낡은 등산화를 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참 많이도 신었다.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 등산화는 나를 위해 2년이란 세월을 함께했다.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오늘 이 낡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떠나보내면서 서운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 적는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런 것을 보면 나도 조금은 괜찮은 남자인 듯하다. 남들이야, 얼빠진 사람이라고 웃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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