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뻥입니다. 귀 막으세요

 

어릴 적 마을 안에 있는 장거리나, 시골의 5일 장 등을 찾아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뻥튀기이다. 옥수수알이나 쌀, 보리, 혹은 누룽지 같은 것을 기계 안에 넣고 열을 가하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압력으로 인해 튀겨낸다. 튀기는 소리가 마치 대포가 터지는 듯 하고 소리가 나기 때문에 뻥튀기라고 했는가 보다.

 

뻥튀기는 과거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뻥튀기를 해오면 다락에 놓고 잠가 놓는 일이 허다했다. 중독성이 있는 것 같은 이 뻥튀기가 곁에 있으면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손이 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럴진 데 마땅히 먹을 것이 없던 옛날이야 오죽했을까?

 

 

5일장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뻥튀기

 

경기도의 한 지자체에서 5일장 책을 써 달라는 주문을 받고 어느 군의 5일장을 돌아본 적이 있다. 5일장은 5일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장으로 한 달이면 6번이 열린다. 1일과 6, 혹은 2일과 7. 3일과 8, 4일과 9일 등으로 5일 간격으로 장이 서는 것이다. 장이 크거나 작거나 이것은 관계없이 정해진 날짜에 장이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장마다 시간이 가면 한 번씩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이 지나가다 보면 놀라기도 한다. ‘하고 터지는 소리 때문이다. 그렇게 10분마다 한 번씩 터지는 뻥튀기는 하루 종일 이어진다. 뻥을 튀기는 기계 앞에는 줄을 지어 그릇에 쌀이면 옥수수 등이 들어 있다.

 

이런 뻥튀기를 좋아하는 것은 먹을 것이 도시만큼 없는 시골이기 때문은 아니다. 요즈음은 웬만한 시골에는 대형마트들이 자리를 하고 있어, 아이들의 먹거리는 도심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뻥튀기가 인기가 좋은 이유는 손쉽게 집안에 저장을 해놓고 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소리에 깜짝 놀랐네.

 

15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못골시장에 들렸다. 필요한 것이 있어서 구입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복잡한 차도가 싫어서 일부러 미나리광으로 통하는 뒷길을 택했다. 조금 비좁기는 하지만 차와 사람에 부대끼지 않으니 늘 이 길을 이용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하는 소리와 김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그리고 보니 그동안 지나면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집이 있다. 바로 남문 뻥튀기 집이다. 이 집은 날마다 문전성시다. 넓지 않은 골목길에는 항상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뻥튀기 기계가 3대인가를 놓고 쉴 새 없이 튀겨낸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고 바쁘기도 하지만, 뻥을 튀기러 온 사람들이니 일부러 주의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조심을 한다.

 

그런데 그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던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고 웃는다. 하지만 그렇게 예고도 없이 뻥을 튀겼다고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그저 멋쩍게 함께 웃을 수밖에. 그렇다고 그런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은가?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뻥을 튀길 테고, 좋은 기사거리가 하나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믿을 수 있는 간식거리인 뻥튀기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시진촬영을 하니, 뻥을 튀기러 오신 분이 한 마디 하신다. ‘별 것을 다 찍는다.’. 하지만 이 추억의 장면이 어디 별것이겠는가? 이왕 사진까지 찍었으니 그 중 가장 젊은 분한테 질문을 한다.

 

뻥튀기 자주 튀겨가세요?”

,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와요

집에서 누가 뻥튀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 우리 아이들이 잘 먹어요

아이들은 이런 것 잘 안 먹지 않나요?”

아뇨 우리 아이들은 정말 잘 먹어요. 그리고 전 아이들에게 과자를 잘 안 먹어요. 요즈음은 과자도 믿을 수 없다고 하잖아요. 세상이 하도 어지럽다보니 수입용 밀가루를 긎고 과자를 만든다고 하잖아요. 심지어는 유전자 변형이 된 것도 있다고 하고요. 뻥튀기는 제가 직접 우리땅에서 키운 쌀을 사서 갖고 오니까 믿을 수도 있고요. 주문을 하면 화학 첨가무로 섞지 않고요. 아침에 우유나 콩음료 등과 함께 아이들에게 먹이면 건강에도 좋고요

 

맛있고 비싼 과자를 먹이는 것조차 안심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세상에 우리 전래의 뻥튀기는 얼마나 믿을 만한 식품인가? 무심코 지나다가 놀란 뻥튀기 소리. 그 소리가 오늘 유난히 정감이 있게 들린다.

 

팔달문 시장 안에 자리하고 있는 방송센터. 팔달문 상인방송국은 지난 해 1월에 개국을 했다. 아직은 미비한 편이지만 2014년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상인들과 팔달문 시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는 월, , 금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씩 3명의 DJ가 교대로 방송을 담당한다.

 

방송실안은 나름대로 최신장비를 갖추고 있다. 15일 오전에 찾아간 팔달문 시장 내 상인방송국. 안에는 한창 방송을 시작하기 위해 분주하다. DJ들의 별명도 재미있다. 불패DJ(. 이준재), 친절DJ(. 김수철), 생각하는DJ(, 한창석) 등의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음악과 함께 각종 시장소식 등을 전해주는 팔달문 시장을 위한 방송국이다.

 

 

DJ마다 특징 있는 레퍼토리로 만나

 

월요일을 담당하는 불패DJ 이준재씨는 방송국장이다. 시장정보와 함께 중소기업청 소식과 수원시의 공지사항 등을 전달한다. 수요일의 친절DJ 김수철씨는 상인들과 외부 인사들을 초청해 대담을 하기도 한다. 또한 시장과 관계된 인터뷰 등을 음악과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금요일을 담당하고 있는 생각하는DJ 한창석씨는 70~80 음악소개, 향수를 불러 오는 음악방송을 담당한다.

 

이들은 모두 전통시장인 팔달문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 노력한다. 각종 시장 정보는 물론, 수원시의 공지사항 등까지 세세하게 방송을 통해 상인들과 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한다. 장은 일찍 문을 연다. 하기에 자칫 무료해지는 시간대에 맞추어 방송을 시작한다. 음악과 함께 다양한 내용으로 청취자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상인들의 화합을 위한 방송

 

방송실에서 만난 팔달문 상인방송국장 이준재씨. 후덕한 인상에 맘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겼다. 불패DJ를 맡고 있는 이준재 국장은 시장 내에서 엘레강스스포츠 대표이기도 하다. 이곳 DJ들 모두는 현재 시장 안에서 사업장을 갖고 있는 대표들이다.

 

 

저희 상인방송국은 상인들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서 마련했습니다. 처음에는 상인들에게 핀잔도 듣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방송이 나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합니다. 더구나 상인들이 마음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전하면서, 상인들도 남을 이해하기 시작한 듯도 하고요

 

이준재 국장은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는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본인도 사업을 하기 때문에 방송을 하기 위해 전날부터 준비를 하고, 방송을 하는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인회와 상인들, 그리고 팔달문 시장을 찾는 고개들까지 아우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마음이 뿌듯하다는 것.

 

초창기에는 외부로 소리가 나가면서 심한 반발도 있었습니다. 장사가 잘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장사가 안 되면 방송에 대해 짜증을 내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방송을 늘려달라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문화 DJ도 방송을 맡길 터

 

그동안 인천 등지에서 팔달문 시장 상인방송국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단다. 한 달이면 서너 차례 전국적으로 벤치마킹을 온다는 것이다. 그런 점만 보아도 이제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겠느냐며 웃는다.

 

“2014년에는 DJ를 더 확보하려고 합니다. 벌써 상인들 중에서 두 명은 신청을 받아 앞으로 시간을 두고 투입할 작정이고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한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DJ를 확보하려고 합니다. 저희 팔달문 시장의 경우 매출의 30% 정도가 다문화 가족들이 올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방송도 마련하려고 합니다. 올 해 저희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 방송을 하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또한 올해 설날을 전후로 해서 릴레이인터뷰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지사를 비롯하여 수원시장, 도의원, 시의원, 각종 사업체 대표들을 초청해 시장과 상인들이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올 추석을 전후 해 수원역에 대형 쇼핑몰이 개점을 하면 저희 팔달문 시장은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그 전에 충분히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준비해야죠. 이번에 저희가 릴레이인터뷰를 갖고자 하는 것도 그런 점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보자는 것입니다. 벌써 몇 번이나 그런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가를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상인들과 고개들을 위한 팔달문 시장 상인방송국. 앞으로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그리고 수원 화성과 연계해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요즈음은 전통시장마다 나름대로의 활로를 찾기에 바쁘다. 단순히 어떤 물건을 팔고 사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무엇인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시장을 기억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주변에 많은 시장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그런 것에 뒤처지면 살아남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정조대왕이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왕이 만든 시장’. 수원 화성 팔달문 앞에 있는 팔달문시장 상인회(회장 조정호)는 나름대로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에게 무엇인가 남다른 것을 남겨주어, 그들이 팔달문 시장을 기억하고 발길을 이어지게 만들고자 함이다.

 

 

시장 3층에 문화교실 열어

 

팔달문에서 팔달문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건물 3층으로 올라가면 팔달문시장 문화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수원시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스포츠댄스, 경기민요, 난타, 노래부르기, 고전무용, 요가를 가르친다.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을 하면 배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교실은 모두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15일 오전 문화센터를 찾았다. 마침 고전무용을 배우는 분들이 한삼을 손에 들고 열심히 강사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고 있다. 연령층은 거의 50대 들인 듯하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 조금 여유로워진 시간을 활용한다고 한 회원은 이야기를 한다.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다 좋아졌다는 것이다. 가정도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한다. 한 마디로 춤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인생이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

 

 

노래교실 회원들 절로 어깨가 들썩

 

오후 4시 다시 이곳 문화센터를 찾았다. 그동안 강의 종목이 바뀌었다. 이번 종목은 노래교실이다. 70여 명의 회원들이 남, 여 두 명의 강사(박상민, 이혜숙)의 지도에 따라 신바람 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래교실의 회원은 원래 90여 명 정도가 가입이 되어있지만, 날이 춥다보니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모른다. 나이가 모두 50세 이상이라고 하는 여인들. 아이들을 키워놓고 이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나보다. 그 회원들의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열심히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이 노래교실의 회장인 송계순(, 58)씨이다.

 

 

노래를 하면 가사의 주인공이 되죠.”

 

잠시 자리를 옮겨 송계순 회장과 대담을 가졌다. 노래를 부르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기가 무섭게 대답이 술술 나온다. 그만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즐겁다는 뜻이다.

 

저는 노래부르기를 시작한 지가 20년 정도 되었어요. 우선은 노래를 부르면 엔도르핀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사라지죠.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 감수성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노래 속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어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생기죠.”

 

대담을 하면서도 연신 발장단을 맞춘다. 송계순 회장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가정적으로도 더 안정되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사회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수요일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것.

 

집에서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더 잘하게 되요. 노래를 부르는 날이 되면 집안일을 다 치우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 부지런해졌고요. 또 노래봉사나 노력봉사를 하면서 생활의 활력이 생겼어요.”

 

송계순 회장은 병원이나 양노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노래 봉사를 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장애인 복지센터 등을 찾아가 노력봉사도 한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을 찾아가 노래봉사를 하고나면 손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고.

 

정말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서 부르는 노래지만, 그 분들은 손을 곡 잡고 놓아주지를 않아요. 그리고 언제 또 오느냐고 묻고는 하죠. 그런 분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 아니겠어요?”

 

노래를 부르면서 가정에 더 충실해졌고, 많은 봉사를 통해 행복하다는 송계순 회장. 그녀의 바람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노래교실에 찾아와 인생의 활력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래를 부르세요. 답답하던 세상이 밝아집니다. 노래를 부르세요. 건강을 지켜갈 수 있어요.” 헤어지는 자리에서 송계순 회장이 하는 말이다.

 

떡집이 한창 전성기인 90년대엔 지동 순대타운 안에 떡집이 열 한곳이나 있었죠. 그때는 마을마다 떡 방앗간 하나씩은 다 있었습니다. 지금도 수원 전체에는 350개 정도의 떡집이 있어요. 떡은 잔치 집에서는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잔칫집에서 떡을 하면 보통 100명분이 다섯 말은 했어요.”

 

팔달구 지동 순대타운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 수인떡집. 이 집은 지동시장에서 가장 눈에 잘 띠는 떡집이다. 수인떡집 이태영 대표는 현재 우만 주민자치위원장이면서 지동상인회 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이곳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벌써 27년 째라고 한다. 그동안 지동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건어물 등을 팔아

 

이태영 대표가 고향인 군산을 떠나 지동에 자리를 잡은 것이 1979년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금의 지동 시장에서 건어물과 식품 등을 납품하는 점포를 지동 순대타운 안에 두었다는 것이다.

 

저희 가게 양편에 서울떡집과 신라떡집이 있었는데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거예요. 1985년에 지동시장을 새로 지었는데 순대타운 안에 입주를 했더니 점포 양 옆에 있는 떡집들이 그렇게 장사가 잘되는 거예요.”

 

식품을 납품하는 점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바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형마트들이 역저기 들어오면서 매출이 줄어버렸다. 마침 서울떡집이 장사가 어려워지자 문을 닫기 전에 서울 떡집을 인수를 했단다. 그렇게 해서 떡과의 인연을 맺은 지가 벌써 27. 떡을 팔아 딸과 아들을 모두 대학을 가르쳤단다.

 

 

맛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손님 끊겨

 

잠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도 연신 전화가 걸려온다. 이태영 대표가 운영하는 수인떡집은 나름 단골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날마다 바쁘다고. 아마도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하면 이렇게 많은 단골들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단골을 지키는 일은 좋은 배료를 엄선해 사용하고, 맛이 있어야 한다고.

 

저희는 재료를 가장 상품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맛이 있어야죠. 또한 지역 사람들과 교분을 쌓아야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교분이 두텁다고 해서 다 단골이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떡이 맛이 있어야죠. 안면이 있다고 안심한다면 한 번은 사가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딴 곳으로 단골들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태영 대표는 또 한 가지 빠트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지역을 위한 봉사가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많은 봉사를 하면서 사람들과 교분을 쌓아야 비로소 단골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장사들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봉사를 하면서 사람들과의 교분을 쌓았다고 하면 그 다음은 맛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뷔페의 주음식이 지금은 장식용으로 변해

 

한창 결혼축하연 자리의 주음식이 떡일 때인 90년대에는 지금 저희 집 뒤편에 순대타운 안에 모두 11곳의 떡집이 몰려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떡집은 길가로 나오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죠. 저는 이곳 지동시장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지동시장을 새로 짓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떡집을 차린 후에 이 자리에서만 27년을 보냈으니까요

 

 

그렇게 한 바리에서 오래도록 떡집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지역봉사와 함께 맛으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단골들이 수인떡집을 찾아온다고. 이태영 대표는 상인들이 의식구조가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한다. 봉사와 신의는 장사를 하면서 곡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저희 집은 이바지 떡으로 유명한데, 주로 단골들이 찾아오시죠. 그 덕분에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밖으로 과감하게 나온 것이 주효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고 순대타운 안에 있었으면 이렇게 장사가 잘 되지는 않았겠죠.”

 

지동시장 수인떡집. 상인회 상무이사를 맡아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떡을 팔고 있다. 떡은 좋은 재료와 맛,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원만한 인과관계라고 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유리 떡을 개발하겠다는 이태영 대표. 주문을 받아 준비를 하는 손길이 바쁘다.

 

히스토리움’,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 공간이다. 영동시장 2층 영동아트포라 공간 한 벽에 영동히스토리움이 조성됐다. 영동시장은 20121025일 영동시장의 상인들과 작가들이 함께 아트상품을 디자인하고, 지역주민들과 영동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예술 창작공간을 조성했다.

 

이 아트포라는 각 분야의 작가들과 함께 아라라는 전시공간이 마련이 되어있으며, 영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아트포라의 작가들은 영동시장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기회전 등을 주관하고 있으며, 4월부터 11월까지는 매주 토요일 오후 지동교 위에서 작가들이 참여하는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영동시장의 역사 한 눈에

 

영동히스토리움은 벽면에 영동시장의 개장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역대 상인회장부터 영동시장의 발전 등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가 있어, 영동시장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영동시장은 정조대왕이 1974년부터 1975년까지 화성의 축성을 마친 후 상업 진흥책을 펼치면서 시작이 되었다.

 

1800년대 초 당시의 상권은 북수동 일대에 성안시장과 성밖시장으로 구분이 되었으며, 성내시장은 9, 19, 29일에 장이서고, 성외시장은 4, 14, 24일에 장이 서는 10일장의 형태였다. 이 성외시장이 오늘 날의 영동시장,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못골종합시장, 미나리광 시장등으로 분화된 것이다.

 

 

축성 때 이미 시장이 있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영동시장은 이미 217년이란 장구한 세월의 시장이 된다. 화성을 축성한 뒤에 그 역사를 적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이미 이곳 팔달문 밖에는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성을 축성할 당시부터 이곳에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동시장 안에 있는 거북산당이라는 당집이 있어 시장 상인들이 일 년에 한 번 도당굿을 열었는데, 전하는 말로는 이미 축성을 시작하면서 굿을 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영동시장도 여타 시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팔달문 앞의 모든 상권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1920년대의 수원 상권의 중심지는 팔달문 인근이었으며, 일본인들이 거의 모든 상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인 1919117일 영동시장이 설립이 되었다.

 

 

양키골목으로 불린 영동시장

 

한국전쟁 이후 인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상품들. 양담배, C레이션, 커피, 초콜릿, 군화, 반합, 옷가지 등이 수원으로 흘러들었고, 그런 상품들을 영동시장의 상점들이 팔기시작하면서 영동시장은 양키골목으로 불렀다. 그리고 1969929일 영동시장 주식회사가 설립이 되었다.

 

1970년대는 팔달문 앞의 상권에 시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경기남부 상권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은 팔달문 앞의 상가들을 겨냥한 많은 은행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자본금을 유치하기 위헤 노력을 했다. 1978년에는 영동시장이 증축공사를 하여,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2001년부터 한복 특화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영동시장은 제1회 한복미인 선발대회를 가졌으며, 2013생태교통 수원2013’에는 이클레이 임원들이 한복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한 눈에 시장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히스토리움. 영동시장에서 가장 먼저 시작을 했지만, 이제 수원시의 22개 전통시장도 이러한 히스토리움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저가형 대형 할인점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찾아들도록 만드는 일이다. 영동시장은 이제 그 경쟁력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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