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전날 저녁에 비가 조금 내리더니 날이 쌀쌀하다. 하지만 아직은 걷기에 좋은 계절이라, 오후에 팔달문을 거쳐 팔달산으로 올랐다. 가을철에 되면 팔달산 단풍도 한 몫을 한다. 그런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 사람들은 이 계절이 되면 멀리 단풍구경을 하기위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멀리 나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수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찾아다니면서 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소개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란 생각이다. 그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 오른 팔달산은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낙엽도 여기저기 쌓여간다.

 

 

단풍이 아름다운 팔달산 회주도로

 

팔달문을 지나 로데오거리에서 팔달산으로 올랐다. 팔달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바로 회주도로이다. 이곳 회주도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는 길이다. 그래서 걷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가을이 내려앉고 있는 팔달산의 가을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다.

 

이곳은 단풍이 아름다운 도로이다. 천천히 길을 걸어 북측으로 난 성벽이 터진 곳을 빠져나가면 억새가 반긴다.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에 한 낮의 햇볕이 떨어져 온통 은색으로 빛을 발한다. 거기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천천히 성벽을 끼고 걸어본다. 저만큼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이 보인다.

 

 

화성을 품고 있는 팔달산은 가을이 아름답다. 왕벚나무와 단풍나무들이 곱게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면 이곳은 온통 걷기를 즐겨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팔달산. 단풍과 푸른 소나무들이 함께 사람을 반기는 곳이다. 도심 한 복판에 팔달산이 있어 즐거운 이유이다.

 

 

수원은 단풍이 아름다운 고장

 

수원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 상당히 많다. 산이 있고 숲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아름답다. 하지만 수원은 산과 물, 그리고 많은 숲길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산길과 숲길, 그리고 물길까지 갖추고 있는 곳은 그리 흔치가 않다. 그것도 한 두 곳이 아니다. 어딜 가나 그런 가을을 느낄 만한 곳이 많다.

 

만석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면 이곳은 또 다른 가을을 만날 수가 있다. 벌써 잎이 져가고 있는 노란 은행잎들과 단풍잎들을 밟으며 몇 마리의 까치들이 가을을 즐기고 있다. 숲은 인간만이 즐기는 곳이 아니다. 모든 생명들은 숲에서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과 짐승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수원의 단풍 이번 주부터 절정

 

수원의 단풍은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이번 주부터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광교산을 비롯해 칠보산과 팔달산, 그리고 광교저수지 목책길과 수변길, 광교호수공원 둘레길, 생태교통길과 네 곳의 하천길. 곳곳에 아름다운 길이 널려있다. 굳이 복잡한 도로를 이용해 멀리가지 않아도 지척에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다.

 

거기다가 곳곳에 많은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 가을에 내 고장에서 즐길거리를 찾아보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겠는가? 남의 고장을 돌아보는 것도 좋지은 일이다. 하지만 내 고장의 아름다움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고장을 사랑하는 방법이란 생각이다.

 

산책로 하나가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좋게 만들 수 있다니. 그저 숲속을 걸어가는 그런 기분이 아니다. 수백 년 된 나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이다. 큰 나무는 둘레가 어림잡아도 5 ~ 6m가 넘을 것만 같다.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무의 조각을 산책로에 깔아놓아 탄력이 있게 조성하였다.

 

수원시 서둔로 168번 길. 옛 서울농대가 있던 곳이다. 예전 서울농대가 이곳에 자리를 하고 있을 때는 일반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곳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서울 농대가 이전을 하고 난 후, 10년 동안 이곳이 폐쇄되어 있던 곳이다. 현재 이 서울농대 자리는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2016년까지 한시적으로 개방

 

이곳은 거의 모든 길이 폐쇄가 되어있다. 건물들이 낡고 위험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해 4월 경기도는 이곳 서울농대 경내의 일부를 주민들에게 한시적으로 개방을 했다. 2016년 경기도 농업기술원이 들어오기 이전까지만 일부 산책로를 주민들에게 개방을 한 것이다.

 

이 산책로는 하절기인 3~ 10월에는 오전 6시부터 18시까지, 동절기인 11~ 2월에는 오전 7시부터 17시까지 개방을 한다. 개방을 하는 산책로는 서둔로 168번 길에 나 있는 엣 문을 통해 들어오면, 중앙에 옛 차도를 중심으로 좌우로 산책로가 나 있다. 산책로는 서로 통하게 되어 있으며, 천천히 전 구간을 걸어보면 한 시간 정도 소요가 된다.

 

 

이곳은 산책로 외에는 모두 통제가 되어 있다. 산책로가 있는 곳의 도로는 일반차량이 통제가 되며, 건물과 휀스설치구역, 수림대 등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개방에서 제외되었다. 주로 인근 주민들이 찾아와 낮 시간의 더위를 식히고, 건강을 위해 걷는 이 길은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 본 산책로 정말 최고였다.

 

예전에 이곳을 몇 번이고 들려 걸어보고는 했던 곳이다. 산책로 한편에는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의자 등이 마련되어 있다. 산책로라는 이정표가 있는 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심호흡을 하면서 걷는 길에 엄청난 나무들이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 팔로 나무를 안아본다. 장정 몇 사람이 안아야 겨우 맞잡을 수 있을 정도의 굵기이다. 밑동의 둘레는 어림잡아도 6m가 넘을 것만 같다.

 

 

이 산책로는 짐승과 사람이 공존하는 길이다. 사람들은 자연적인 이 길을 걸으면서 건강을 생각하고, 짐승들은 이곳이 원래 자신들이 서식지였다. 원래 이곳의 주인은 고라니, 청설모, 도마뱀, 두더지 등이었다. 그들이 오래도록 살고 있던 곳을 사람들이 잠시 한시적으로 빌린 것이다.

 

이렇게 좋은 산책로를 2016년 까지만 개방한다고 하니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기도 농업기술원이 들어오고 나면 또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람들을 위해서 이곳을 개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산책로를 걷다가 만난 한 주민은 아침저녁으로 이곳을 걸으면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 족제비 등 짐승들이 살 수 있도록 쌓아놓은 비오톱 나무더미와, 그 더미를 타고 오르는 넝쿨식물.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 산책로는 최고의 힐링 공간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얼마 전부터 부산스럽게 여행준비를 시작한다. 그렇게 떠난 여행도 물론 재미가 있다. 여행은 늘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쉬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예정도 없이 불쑥 여행을 떠난다면 어떨까?

 

올봄부터 23일 정도 여행을 떠나리라 마음을 먹었다. 누구 말마따나 오리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이 널려있다. 그런 곳을 그저 훌쩍 등에 걸망 하나를 메고 다녀오고 싶었다. 매일 짜인 틀 속에서 쳇바퀴 돌아가 듯 하는 일상과, 새로운 것이 없는 밋밋한 시간보내기가 가슴을 억누르고 있다는 답답함 때문이다.

 

 

여행에서 내가 만날 수 있는 존재감

 

몇 년 전만해도 여행을 떠날 때는 사전에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저 배낭 안에 갈아입을 옷가지와 세면도구, 그리고 카메라 한 대와 필기도구 정도만 갖추면 훌쩍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물론 내가 가는 여행은 남들처럼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는 천년지난 석불과 석탑, 그리고 고택과 천연기념물 등 반기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좋다. 그리고 그것들과 서로 교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행복함이다. 나는 그런 문화재들을 만날 때, 그 속에 숨어있던 장인의 존재를 함께 만난다. 몇 백 년 혹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문화재 안에 숨죽이고 있던 장인의 존재.

 

그러한 장인의 존재를 만나는 순간 가슴은 뛰고 얼굴은 늘 상기가 된다. 그리고 꼼꼼히 그 문화재 안에 숨어있던 장인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바로 천년 세월 숨어있던 존재감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만남이 없다면 문화재 답사란 것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예정에 없는 답사를 즐겨하고는 했다.

 

 

아무생각 없이 떠난 강원도 여행

 

사실 이번에는 강화도나 백제문화권인 공주, 부여, 서천을 다녀오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일기예보에서는 3일간이나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것도 일부지역엔 강풍과 함께 폭우까지 내린다는 것이다. 그저 걸망 하나를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그동안 늘 보지 못하고 생각만 하던 사람 하나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우연히 속초를 들렸다가 그곳에서 수양딸을 한명 삼았다. 그런데 이 딸이 수양딸이 아닌 친딸보다 더 살가운 정을 느끼게 만든다.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난 그 뒤로 그 아이를 그냥 딸이라고만 부른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길을 달려 찾아간 속초. 아직은 휴가철이 끝나지 않아, 딸이 장사를 하고 있는 속초 영랑동 해안 길의 집집마다 사람들로 그득하다.

 

바쁜 아이를 붙들고 있을 수 없어 그저 간단히 음식을 주문하고 바다를 보고 앉았다. 파도소리와 적당히 부는 바람, 그리고 한 방울씩 얼굴을 적시는 빗방울. 그리고 바다 향이 물씬한 해산물, 이런 것들이 그리웠는가 보다. 그저 술 한 잔에도 취흥이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분위기 아니겠는가?

 

 

여행 생각 없이 그저 즐겨라

 

오늘은 어디를 여정으로 삼을까? 그것조차 진정한 여행이 아니란 생각이다. 그저 길을 나섰으면 발길 닿는 곳으로 가면 될 것을. 미리 여정을 정해놓고 그쪽으로 따라간다면 여행의 묘미를 모른다. 아무리 험한 길을 간다고 해도 길을 나섰을 때 생각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니겠는가?

 

비가오고 있지만 구룡령 길을 택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구룡령을 넘어보지 않았거든 백두대간을 논하지 말라. 해발 1,013m의 구룡령은 날만 흐르면 비가 내리는 곳이다. 해발 900m를 넘어서면 안개로 인해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하기에 웬만한 운전자들은 이 길을 피하고는 한다.

 

그 구룡령 위에 올라서 주변을 바라보면 모든 산등성이가 눈 아래 펼쳐진다. 바로 구룡령이 주는 기쁨이다. 예정 없이 떠난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것들. 그런 것들이 바로 삶의 활력소 노릇을 한다. 그런 힘이 바로 걸망 하나만 메면 길을 나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빗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의 소중함

 

강원도. 하늘이 내린 곳이라고 한다. 그만큼 아직은 청정하다는 뜻이다. 매연 등으로 찌들어버린 도심에 살다가 만나게 되는 강원도의 청정함은 남다르다. 그 남다른 길을 빗속에서 걷는다고 하면 그것은 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터벅거리고 길을 걷다가 만나게 되는 많은 것들의 즐거움. 이제는 그런 즐거움조차 사람들은 잊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구룡령을 넘어 홍천군 명개를 거쳐 청천, 그리고 서석면을 지나면 국도 19번 길이다. 이 길을 걷다가 보면 횡성군 청일면을 지나 갑천면으로 나가는 길에 춘당2리를 지난다. 예전에는 장승들이 서 있어 장승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신작로(19번 국도)가 뚫리면서 그 장승골이 사라지게 되어 다시 이곳에 탑을 쌓고 장승을 세웠다.

 

비가 내리는 날 떠난 여행이지만, 오히려 가는 곳마다 더 신선한 듯한 깅원도 길. 강원도 동쪽 속초에서 길을 나서, 구룡령을 넘어 강원도 서편인 횡성에 도착할 때까지의 길은 길고 지루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만나는 이런 쏠쏠한 재미들을 아는 나로서는 이 길을 벗어나고 싶지가 않다.

 

장안구 연무동 주민센터 건너편은 화성의 동북공심돈 맞은편이 된다. 이곳에 작은 동산이 하나 있으니, 이곳을 동공원이라고 부른다. 이 동산 북쪽에는 커다란 바위 한 덩어리가 솟아있다. 이곳과 마주하고 있는 수원 북중학교 뒤편에도 높지 않은 산이 있는데, 그곳에도 연무동의 바위와 마주하고 있는 바위를 볼 수 있다.

 

이 두 곳의 바위를 퉁소바위라고 부른다,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소재한 바위를 할아비바위라 하고, 북중학교 뒷산의 바위를 할머니바위라고 칭한다. 이 바위에는 애틋한 전설이 전하고 있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퉁소바위는 할아버지 바위와 할머니 바위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데는 슬픈 전설이 전한다.

 

 

슬하에 자손이 없는 것이 화근

 

연무동 바위부근에는 금슬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이가 좋은 부부였는데도 불구하고 슬하에 자손이 없어 늘 근심거리였다는 것. 두 부부는 결심을 하고 백일치성을 드리기로 했다. 남편은 현재 할아버지 바위가 있는 동공원 바위에, 아내는 북중학교 뒷산에 있는 바위에 치성을 드리기로 한 것.

 

아내가 북중학교 뒤편에 있는 바위로 치성을 드리러 떠날 때, 남편은 퉁소를 하나 꺼내주었다. 서로 보고 싶으면 참고 이 퉁소를 불어 무사함을 알리자는 것. 그렇게 두 사람은 열심히 치성을 드리면서 퉁소를 불어 서로가 무사함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백일치성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내의 퉁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남편은 열심히 퉁소를 불었지만 끝내 아내의 퉁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남편은 백일치성을 드리는 중이라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백일치성을 다 마치고 북중학교 뒤편 바위로 달려갔으니, 아내는 이미 기력이 다해 숨을 거둔 뒤였다. 아내를 잃은 남편도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뒤로 사람들은 연무동 동공원의 바위를 할아버지 통수바위로, 북중학교 뒤편에 있는 바위를 할머니 퉁소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겨울에 바람이 세차게 불면 이 바위에서 퉁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지금도 득남을 기원하는 사람도 있어

 

7일 오후 천천히 화성 동문을 벗어나 길을 건넜다. 퉁소바위 아래로 가니 퉁소바위공원이라는 돌로 만든 조형물과, 전설을 쓴 벽화로 조성한 조형물이 서 있다. 몇 명의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뛰어놀고, 그 뒤편으로 퉁소바위로 오르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천천히 길을 따라 오르다가 보니 산 정상아래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바위 앞으로 다가선다. 할아버지 퉁소바위다. 양편으로 솟은 바위틈으로 길이 나있다. 그리고 그 뒤로 소로 길이 보인다. 그 길로 심호흡을 하면서 걸어본다. 이 작은 숲 속에 참 잘 꾸며진 길이 이렇게 있다니. 그 길을 벗어나면 시야가 환하게 트인다. 그리고 퉁소바위전망대로 오를 수가 있다. 전망대 위로 오르면 저 건너편에 할머니 퉁소바위가 보인다. 이렇게 마주보고 서로 그리며 퉁소를 불었다는 것이다.

 

 

전망대를 벗어나 동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보라색 꽃을 피운 맥문동이 길 한편에 늘어서있다. 오후에만 꽃을 피운다는 맥문동이다. 잘 정비된 길을 걷고 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운동을 하러 나오셨는지 뒷짐을 지고 계단을 오르신다.

 

어르신 이 퉁소바위에서 정말 소리가 들리나요?”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왜 바람이 부는 날 들린다고 하죠?”

나도 잘 모르지만 아마 바람이 불면서 바위틈에 있는 틈 사이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나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 바위에 가끔 치성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요 어떤 사람들이 와서 치성을 드리는지 아세요?”

아이를 못 낳는 사람들이 와서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갖는다고 하네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갖기 위해 백일치성을 드리다가 세상을 떠난 부부가 아니던가? 그런 정성이 있는 바위이니 아이를 낳기 위해 간절히 빌면 하늘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약수터 방향으로 내려가 물 한잔을 받아 마신다. 시원한 물이 금방 갈증을 풀어준다. 작은 공원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 거기다가 전설까지 곁들였으니 이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다시 한 번 천천히 돌아본 길을 되짚어 본다.

 

벽화를 참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다. 요즈음 전국적으로 유명한 벽화가 어디 한 두 곳이던가? 수 없이 많은 벽화가 전국적으로 조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 벽화를 많은 블로거 등 SNS를 하는 사람들이 찾아다니면서 소개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벽화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그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마을이 있다. 아마 이곳보다 더 좋은 마을은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 수원시 장안구 조원1. ‘대추동이마을이라고 한다, 조원동은 과거와 현대가 함께하는 곳이다. 이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 참 알지 못할 마을이란 생각이 든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저 언젠가 몇 생애 전에 어디서 본 듯한 생각이 든다.

 

 

그 많던 대추나무는 다 어디로 갔소?

 

광교산은 수원의 진산이다. 조원동은 이 광교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옛 명칭이 조원말이나 대추원혹은 주안말이라고 했다. 조원말은 조선조에 이 마을에 살던 한 사람이 벼슬이 이조참의에 올랐는데 그 사람의 호가 <조포>였단다. 호를 조포라고 쓰던 분의 함자는 이동일이다.

 

조원동은 대추나무가 많다고 하여 대추원, 조원말, 또는 조원, 주원말, 주안골, 주원, 주안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한편 조원동은 백제 때 <우성위>라는 인색한 부자의 이야기도 전한다. 이 우성위라는 백제시대의 인물을 이야기 하면서 갑자기 지금의 조원동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조원공원의 땅 부자들 때문은 아닐까?

 

 

백제 때 임금의 부마인 우성위라는 사람이 조원동 갓모봉 아래 살았다. 현재 조원동이 모두 우성위의 땅이었단다. 하지만 그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라에 흉년이 들었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우성위의 집을 찾았다. 시주를 부탁했으나 거절을 당하고 물이라도 한 모금 달라고 했으니 그도 거절당했다

 

전설은 늘 재미있다.

 

그 해는 유난히 가뭄이 들었다. 논밭이 다 타들어가고 있었던 터에 스님은 우성위에게 쫓겨나면서 마장산 너머 광교산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끌어오면 가뭄이 해결될 텐데...”라고 했다. 우성위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해 스님을 잡고 물었다. 스님은 마장산 중간을 파면 절로 광교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이곳으로 모일 것이라고 대답하고 길을 떠났다.

 

 

우성위는 당장 물을 끌어올 수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원동은 광교산에서 흐르는 수원천보다 지대가 높았다. 그리고 조원동의 마장산 일대는 거문고 혈이라고 하는 명당 중의 한 곳인 탄금혈(歎琴穴)이었다. 스님이 복수를 하고 떠난 것이다. 우성위는 명당의 혈을 끊어 가산이 탕진되고 망하고 말았다. 우성위가 팠다는 수로의 흔적이 30여 년 전만 해도 영화동에서 조원동으로 넘어가는 작은 길가에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기와와 벽돌로 이렇게 벽화를 그리다니

 

조원시장에서 장안구청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좌측에 숲이 우거진 곳이 있다. 바로 맹꽁이 서식지라는 조원공원이다. 그 공원 산자락 밑에 도로를 따라 축대가 있다. 높이는 1m 안팎이다. 그런데 그 축대가 바로 요즈음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벽화길이다. 2014 마을르네상스 사업으로 완성한 대추동이 문화마을의 사업으로 완성을 했단다.

 

3월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다는 벽화길. 그저 바라다보면 그 멋을 느끼기에 조금은 부족하다. 천천히 벽화를 둘러본다. 세상에, 붉은 적벽돌과 기와조각을 갖고 이런 벽화를 조성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 안에는 별별 것이 다 있다. 화성도 있고 수원도 있다. 당연히 조원동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마돈나도 있다.

 

이 벽화조성은 조원초등학교, 영화초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체험학습으로 참여를 했다고 한다. 이런 벽화를 조성하다가 보면 지역이나 세대 간의 갈등은 소통과 나눔으로 해소하고 지역 공동체를 창출하게 된다. 그야말로 우리민족의 정서가 깊이 뿌리내린 이름다운 벽화길이 조성된 것이다.

 

한참이나 벽화길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데 지나던 한 분이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이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어머니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그 기와와 벽돌을 깨고 붙이면서 정말 재미있어 했어요. 우리 조원동 좋은 마을예요. 많이 자랑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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