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 돛을 바람에 나부끼며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떠다니는 배를 보노라면, 왠지 까마득한 과거 속에 있는 나를 그려보고는 한다. 여주 남한강은 한강의 4대 나루인 마포나루, 광나루, 이포나루, 조포나루 중 두 곳의 나루가 있고, 여주지역에만 크고 작은 17개의 나루가 있었다. 그만큼 조운으로 인한 여주는 중요한 곳이었고, 남한강을 오르내리는 황포돛배들이 늘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옛 정취를 느껴보기 위해서 제작된 황포돛배. 여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남한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제작한 황포돛배는, 남한강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돛배 외에도 황포 2호 등의 유람선이 남한강 물길 위를 떠다니며, 관람객들의 흥을 돋아 주고는 했다. 그러나 이제 황포돛배는 남한강을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다. 보 공사로 인해 무수히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오탁방지막' 때문이다.  

 

  
▲ 황포2호 남한강을 쩌다니는 유람선인 황포2호가 선착장을 떠났다.
ⓒ 하주성
남한강

 

황포 2호는 유람선이다. 조포나루 인근에 마련된 선착장을 떠나 남한강을 한 퀴 돈다. 보를 먹기 전에는 그 활동 영역이 넓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착장 주변 밖에는 다닐 수가 없다. 무수히 강을 가로지르는 오탁방지막 때문이다.

 

  
▲ 유람선 유람선에 승선한 관광객들이 남한강의 장취를 즐기고 있다.
ⓒ 하주성
유람선

  
▲ 오탁방지막 한 옆에 트인 오탁방지막을 넘어 유람선이 지나고 있다.
ⓒ 하주성
오탁방지막

 

선착장 근처에는 오탁방지막의 한편을 트여놓았다. 아마 유람선이 다닐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렇게 트여있으면, 오탁방지막의 구실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결국 그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발상일 뿐이다.

 

  
▲ 오탁방지막 오탁방지막을 넘지 못하고 뱃머리를 돌리고 있다. 뒤로는 파헤쳐지고 있는 여주의 명소인 금모래은모래 밭이다.
ⓒ 하주성
오탁방지막

  
▲ 유람선 결국 선착장 근처에서 한 바퀴 돌 수 밖에 없는 유람선이다.
ⓒ 하주성
선착장

 

유람선이 조금 상류를 향해 가다가 뱃머리를 돌린다. 길게 늘어진 오탁방지막을 넘지 못해서다. 뒤로는 여주의 가장 아름답다는 금모래은모래 모래밭이 송두리채 파헤쳐지고 있다.

 

  
▲ 황포2호 황포2호는 슬프다.
ⓒ 하주성
황포2호

 

황포돛배도, 유람선인 황포 2호도 슬프다. 마음대로 강물 위를 돌아다녔는데. 그리고 그 밑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제 언제 다시 돌아다닌다고 해도, 그 밑에는 생명체들이 살 수 있으려나? 




한강(漢江)은 강원도 태백시의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한반도 중부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한강은 옛 말로는 아리물 또는 아리수, 아리가람이라고도 불렀다. 1300리 514km를 흘러 황해로 흘러드는 한강. 그 발원지 검룡소를 찾아본다.

 

눈이 쌓인 오름길을 걷다

 

  
▲ 선돌비석 검룡소 오름길 입구에 세워진 선돌비
ⓒ 하주성
검룡소
 
아침 일찍 8시에 여주 신륵사 입구 여강선원에서, 서종훈 민예총경기지회장과 김계용 여주민예충 사무국장과 동행하여 태백으로 길을 떠났다.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태백시에 있는 검룡소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11시가 넘어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을 뿐, 3시간을 줄곧 달린 셈이다.

 

입구에 있는 안내소의 직원이 방명록을 펼쳐준다. '담배는 피울 수 없습니다. 지정된 오름 길 이외에는 생태보존을 위해서 딴 곳을 출입하시면 안됩니다. 쓰레기 등 오물을 남겨두시면 안됩니다' 등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안내소 밖까지 따라 나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는 검룡소 관리직원이 고맙기까지 하다.

 

안내소를 지나면 오름길 1.3km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좌측에는 커다란 선돌에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라고 쓰여 있다. 며칠 전 눈이 내려 아직 녹지가 않아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안내원의 말을 뒤로하며 천천히 오름길을 걷기 시작한다.

 

  
▲ 눈이 쌓인 오름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은 검룡소 오름길
ⓒ 하주성

  
▲ 개구리 알 물 속에는 개구리 등의 알이 가득하다. 그만큼 생태계가 살아있다
ⓒ 하주성
개구리

  
▲ 맑은 물 맑은 물이 흐르는 오름길 옆
ⓒ 하주성
검룡소

자연의 물. 그 맑음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오염되지 않은 곳을 흐르는 물길을 따라 검룡소 오름길을 따라 걷노라니, 마음속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잠시 물속을 들여다보니 개구리 알인 듯, 많은 알들이 물속에 보인다. 돌 틈을 흐르는 맑은 물이 경쾌한 소리를 낸다. 세심교를 건너서니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나무들이 양옆으로 서 있다.

 

눈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발자국이 찍혀 있다. 저 멀리 검룡소로 오르는 나무다리가 보인다. 물이 흐르는 주변은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인해 하얗게 되었는데, 숲 속을 작은 짐승 하나가 소리를 내며 뛰어간다. 생태보존지역인 이곳은 이렇게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는가 보다.    

 

  
▲ 눈길 세심교를 건너면 하늘을 찌를 듯 나무들이 솟아있다
ⓒ 하주성
세심교

 

하루 2000톤의 물을 분출하는 검룡소

 

이곳은 한강 발원지로 1억 5천만 년전 백악기에 형성된 석회암동굴 소로써 하루 2000여 톤 가량의 지하수가 용출되고 수온은 사계절 9도C 정도이며, 암반주변 푸른물 이끼는 신비함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 금대봉을 시작으로 정선 영월 충주 양평 김포 등 평야와 산을 가로질러 서울을 비롯한 5개 시도를 지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를 지나 서해로 흘러가는 514.4km의 장강이다. 천년 역사와 함께 흘러 온 한강은 지금도 민족의 산하와 대지를 적시며 5천만 국민의 생명수가 되는 겨레의 수맥이다.(하략)

 

  
▲ 검룡소 검룡소 주변은 말끔히 정리가 되어있다.
ⓒ 하주성
검룡소

 

검룡교를 오르기 전 안내판에 적힌 글을 읽어본다. 맑은 물줄기가 바위틈을 흘러내린다. 얼마나 오랜 세월 그렇게 물을 맞으면서 이 돌들은 이곳에 있었을까? 크지 않은 물줄기가 흘러내리지만, 그 세월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들이 움푹 파여져 매끄럽게 변해 있기 때문이다. 소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주변 정리가 되어있다. 1986년 태백시와 태백문화원이 주변 정리를 했다는 것이다. 목조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검룡소. 그 물의 맑음이 세상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생명의 근원인 물, 그렇게 더럽혀야 할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루 2천 톤이나 되는 물을 용출하는 검룡소의 물이 솟는 곳은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마치 그저 고여 있어 평온한 듯한 느낌이다. 물 흐름이 시작되는 경사진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물이 용출되는 것조차 알 수 없는 정도이다. 이것이 우리 민족일까? 그렇게 나대지 않고 속으로 고요함을 간직한 것이. 이 검룡소의 솟아오르는 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 발원지 1,300리 한강이 시작되는 검룡소.
ⓒ 하주성
검룡소

  
▲ 발자국 눈 위에 찍힌 짐승들의 발자국. 물을 먹으로 왔다.
ⓒ 하주성
발자국

그것은 우리에게 흔들림 없는 세상, 소리 내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라고 일깨우는 것만 같다. 온 나라의 강들이 중장비의 소음으로 시끄러운데, 정작 이 발원지인 검룡소의 솟아나는 물은 소리조차 없다. 그렇게 물은 소리 없이 흐르며 생명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검룡소 주변 바위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그 위에 짐승들이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물을 먹으러 들어간 발자국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이 땅의 생명들이 이 물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검룡소 밑으로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서 한 모금 마셔본다. 목을 타고 흘러드는 물이 머리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이 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시며 살았을까? 오늘 이곳에 와서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저 아래 황해로 흘러들어갈 때까지, 이렇게 맑은 물을 먹었었다고 하는데, 이제 찢기고 파헤쳐진 물길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곳에 서있는 것조차 부끄럽다. 그 아래 물길을 지켜내지 못했음이.



남한강,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산 1-1 금대봉 왼쪽 산기슭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은, 영월읍의 동강과 서강이 합수되는 곳서부터 '남한강'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다.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수되기까지, 216.7km를 흐르는 남한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길을 갖고 있는 강이다.

 

'4대강 정비'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파헤치고 깨치고, 온통 속살을 드러내면서 흙탕물이 군데군데 모여 맑디맑던 남한강을 버려놓고 있다. 아름답던 강 길 곁에 억새와 갈대는 모두 흙더미와 함께 한 곳에 쌓여있고, 강 주변에서 하늘거리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나갔다. 여강선원에서는 이렇게 강을 버려놓고 있으면서 4대강 정비라고 위장을 한 엄청난 환경파괴를, '위장 대운하 공사'라 칭한다.         

 

흥원창서 바위늪구비까지 돌아보다

 

  
▲ 오탁방지막 오탁방지막이 쳐진 그 밑으로는 흙탕물인 듯한 물빛이 보인다.
ⓒ 하주성
흥원창

강원도 부론면 흥원창. 4대강의 절경 가운데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아름다운 곳이다. 지역으로는 충청북도와 강원도, 경기도가 만나는 곳이며, 섬강과 청미천이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다. 세 가닥으로 갈라진 물줄기는 거대한 암벽 밑을 감돈다. 판소리 적벽가라도 한 대목 나올 만한 그러한 절경이다. 이곳 흥원창 일대도 이미 강바닥을 파내는 공사가 시작이 되었다.

 

강을 반으로 가르는 작업을 하는지, 한편은 흙탕물로 벌겋게 변했다. 오탁방지막도 거리를 두어 친 것도 아니고 두 줄을 한꺼번에 붙여놓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저 밑에 또 이중으로 친 오탁방지막이 있는 곳의 물도 붉은 색을 띠고 있다.

 

  
▲ 해돋이 산길 건너편 이 곳 역시 중장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 하주성
해돋이 산길

 

닷둔리에서 해돋이 산길을 걷는 길. 그 중간에 수천마리의 철새들이 물을 박차고 날아간다. 그 강 건너편 속에도 중장비가 분주히 돌아다닌다. 어디 한 곳 놓아두는 곳이 없다. 온통 갈가리 찢고 있는 중이다.

 

바위늪구비 일대, 이곳은 물을 가로질러 길을 내놓았다. 강천리에서 도리까지를 물을 막아 길을 내고, 양편으로 덤프트럭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곳은 멸종위기 2종 보호식물인 단양쑥부쟁이의 집단서식지이다.

 

바위늪구비 습지는 하도내습지, 범람형배후습지, 하중도습지, 합류형습지, 사력퇴초본형습지, 사락퇴차단형습지 등 여러 형태의 습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생태적으로 안정된 곳이기 때문에 수많은 조류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주환경연합에서 몇 번의 싸움 끝에 지켜낸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미 모든 지역에 중장비가 들어차 있다.

 

강천보 현장주변

 

  
▲ 이호대교 부근 강천보 건설현장인 이호대교 부근. 중장비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 하주성
이호대교

 

깅천보가 건설 중인 이호대교 인근은 이미 모래와 자갈의 퇴적이, 이호대교 높이만큼 높이 올라 차 있다. 이호대교 위서부터 여주의 가장 아름답다는 금모래은모래까지 바닥이 송두리째 파헤쳐지고 있다. 여기저기 중장비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강바닥의 암반 발파도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

 

이호대교에서 신륵사 방향으로 가다가보니 강을 건넌 덤프트럭들이 날라다가 쌓은 모래와 자갈더미에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있다. 수석채취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아픔의 산물, 통한의 산물인 저 모래와 자갈의 퇴적더미에서 돈을 벌겠다고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 과연 강의 소중함이나 알고 있는 것일까?

 

  
▲ 금모래은모래 여강선원 뒤에서 바라다 본 금모래은모래. 남한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밭을 갖고 있었다. 모두 다 파헤쳐지고 있다.
ⓒ 하주성
금모래은모래

 

여강선원에서 은모래금모래 쪽을 바라다본다. 중장비들이 흡사 공룡처럼 짐칸부분을 들고 서 있다. 그것이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문득 발아래 모래톱을 들여다보니, 누군가 두꺼비집을 만들다 가버렸다. 채 완성이 안 된 두꺼비집. 모래밭에서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했는데, 이제 그 아이들은 다 가고 없다.

 

여강선원 뒤편 강물에 쳐진 오탁방지막. 그 밑으로 오리들이 유영을 한다. 오리 한 마리가 오탁방지막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또 한 마리가 위로 오른다. 과연 저 부유물들이 생명을 지키는 오탁방지막일까?

 

  
▲ 두꺼비집 누군가 여강선원 뒤 모래에다 두꺼비집을 만들다가 갔다. 이런 놀이를 하던 모래밭이 다 사라지고 있다.
ⓒ 하주성
여강선원

  
▲ 오탁방지막 오리들이 오탁방지막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 하주성
오탁방지막

 

여주보와 이포보 현장주변

 

여주보 현장을 찾았다. 강바닥에 무수히 박힌 철제빔들. 그리고 산처럼 쌓인 모래와 자갈, 저 멀리까지 온통 장비들이 강을 헤집고 있다. 대신면 보통리쪽으로 향하다가 강둑길로 접어들었다. 바로 밑으로는 이미 강바닥을 다 파내고 평탄작업을 하고 있다. 

 

  
▲ 여주보 철제빔이 무수히 강바닥에 박히고, 저 멀리까지 온통 중장비로 강바닥을 도배를 한 듯하다
ⓒ 하주성
철제빔

 

양편을 평평하게 만들고 중앙은 깊이 파 요철을 낼 것이다. 저렇게 평평하게 만들면 물이 과연 깨끗해질까? 헛웃음만 터져나온다. 강바닥은 자연적으로 구비가 있고, 요철이 있어야 수생생물이 살 수가 있다. 그래야 생명 또한 이곳에서 살 수가 있다. 그리고 바닥에 모래와 자갈 등이 있어야 물을 깨끗하게 거르는 자정기능을 할 수 있다. 저렇게 다 퍼내고 평평하게 만든 바닥이 물을 깨끗이 한다니, 요즈음은 이런 개발을 찬성하는 학자들의 되지도 않는 학설도 씨가 먹히나 보다.

 

이포보 옆 높은 곳으로 올랐다. 이포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저편 산 위에는 파사산성이 구불거리고 산을 누비고 있다. 아래서는 연신 굉음을 내며 중장비가 바닥의 돌을 깨어내고 있다. 떨어져 나간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마치 내 살이 뭉텅 잘려나간 느낌이다. 아프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너무 많이 아프다.

 

  
▲ 이포보 이포대교 인근에 세워지는 이포보. 멀리 파사산성이 보인다.
ⓒ 하주성
이포보

  
▲ 채석 중장비가 하루 종일 돌을 깨고 있는 굉음이 시끄럽다. 아름다운 강바닥이 송두리채 찢겨 나가고 있다.
ⓒ 하주성
이포보

 

이렇게 갈가리 찢긴 남한강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만들 수가 있단 말인가? 2010년 3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돌아본 남한강. 흥원창부터 이포교까지 그 아름답던 남한강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통한의 강이 되었다. 하연 속살을 다 내놓고 있는 남한강은, 그렇게 아픔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다.




'조창'이란 국가가 징수한 곡물을 모아 보관하고, 이를 다시 개성에 있는 경창으로 운송하기 위해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했던 창고를 말한다. 조창이 처음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 부터였다. 고려시대인 10세기 말에 지방제도를 확립하면서, 이를 토대로 바닷가 또는 강변에 조창을 설치하고 세곡을 수납했다. 해안에 설치되어 해로를 이용해 세곡을 운송하던 조창은 해운창(海運倉)이라 했으며, 강변에 설치되어 수로를 이용하던 조창은 수운창(水運倉) 또는 강창(江倉)이라고 불렀다.

 

해운창은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에 있었고, 수운창은 한강 유역에 설치되었다. 한강 유역의 수운창 중에는 원주 부근에 흥원창이, 충주 부근에 덕흥창이 있었다. 수운창에는 세곡 200석을 실을 수 있는 작은 선박을 두었으며, 이를 평저선이라고 했다. 한강 유역의 평저선은 흥원창에 20척, 덕흥창에 21척이 있었다.

 

  
▲ 남한강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흥운창이 있었다. 앞으로 보이는 물길이 여주로 흘러가는 남한강이다.
ⓒ 하주성
남한강

  
▲ 그림 1796년에 그려진 정수영의 『한·암강 명승도감』
ⓒ 하주성
명승도감

 

흥원창을 돌아보다

 

이중 흥원창은 고려시대 13개 조창 중의 하나로 원주 은섬포에 있었다. 은섬포는 현 원주시 부론면 흥호 2리 창말지역으로 추정한다. 1796년에 그려진 정수영의 '한·암강 명승도감'에 보면 뒤로는 산이 솟아있고, 강가에 집들이 들어차 있는 그림이다. 우측에는 흥원창(興元倉)이라고 쓰여 있다. 그림 우측에 보이는 기와집이 창고였을 것이고, 남은 초가는 흥원창을 지키는 군사들이 머물던 군막 정도로 여겨진다.

 

흥원창은 원주를 비롯해 평창, 영월, 정선, 횡성,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지역의 세곡을 보관하였으며, 한강의 수로를 이용하여 개경의 경창으로 세곡을 운송했다. 이 흥원창이 있던 흥호리는 바로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한다. 이 물이 횡성읍으로 오면서 금계천과 합류하면서 섬강이 된다. 그리고 원주로 들어오면서 국민광광지가 있는 간현리를 지나 건동, 문막을 거쳐 흥호리에서 남한강과 합류를 한다. 이 합류지점에 흥원창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 흥원창의 돌비가 있는 곳 앞으로는 세 갈래로 갈라진 물줄기가 보인다. 석비 앞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면 좌우로 물길이 있고, 그 물길이 합해져 맞은편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석비 맞은편에는 기암절벽이 서 있고, 여주를 향해 흐르는 물길이 잔잔하다. 이곳은 '남한강 따라가는 역사문화 체험길' 여강 길의 시작점과 끝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시작한 강길 걷기는 제3코스로 '바위늪구비길'이라고 하여, 전체 여강 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을 꼽는다.

 

  
▲ 갈길 표시 이곳에서 남한강의 강길 제2코스인 바위늪구비 길이 시작이 된다.
ⓒ 하주성
남한강

  
▲ 공사현장 흥원창 일대에도 이미 중방비들이 들어와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었다.
ⓒ 하주성
흥원창

 

이곳도 어김없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남한강의 가장 아름답다는 바위늪구비 부터 시작해 흥원창까지 가는 길. 이미 바위늪구비는 파헤쳐지고 있는 지가 오래 되었다. 바위늪구비는 멸종 2종 보호식물인 '단양쑥부쟁이' 집단 군락지로 알려져 잡음이 일었던 곳이다. 그곳도 한창 중장비가 굉음을 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흥원창을 찾아드니, 이곳이라고 다름이 없다. 흥원창 돌비석 건너편 왼편 위쪽에 이미 중장비들이 들어 와 있다. 여주로 흐르는 남한강의 물길에는 오탁방지막이 쳐져 있다.

 

여기까지가 남한강의 정비지역일까? 아니면 이 위로 계속해서 올라 충주지역까지 닿으려는 것일까? 단순히 4대강 정비라는 이야기가 믿음이 가질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얼마 전인 3월 13일 여주'여강선원'의 개원식에 참석을 하고 난 후,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와 시인 신경림 선생 등이 바위늪구비가 건너다보이는, 여주군 점동면 도리 강가에서 강을 지키지 못한 죄스런 마음을 '고수레'를 하면서 달랬다.

 

  
▲ 고수레 지난 3월 13일 여강선원의 개원식을 마치고 도리를 찾은 신경림 시인을 비롯한 사람들이 강에 사죄를 하며 고수레를 하고 있다.
ⓒ 하주성
고수레

  
▲ 중장비 바위늪구비 일대에 들어와 있는 중장비들. 맞은 편 도리에서 바라다보았다.
ⓒ 하주성
바위늪구비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바위늪구비 일대는 골재채취 차량들과 강바닥을 파대는 포클레인 등으로 법석을 피워대는데, 무심한 바람결에 마른갈대만 휘날리고. 이제 흥원창 앞에까지 들어온 중장비로 인해, 남한강 전체는 파헤쳐지고 부서지고 있다. 흥원창 앞 남한강에 그 많던 새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마리도 찾아 볼 수 없고 답답한 마음을 3월의 바람이 헤집고 지나간다. 



어제(2월 8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도 하루 종일 계속된다. 며칠 전인가 강천보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강천보 현장을 돌아보았다. 주민의 이야기는 남한강의 암반층을 폭파하고 밤새도록 그곳을 긁어내는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한강은 4대강 중에서도 강 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강천보 상류인 바위늪구비는, 보호종인 동식물이 서식을 하고 있는 생태보존 지역이기도 하다. 그동안 방송 등에서 여러 번 지적을 하여, 공사 중단이 된 곳이기도 하다.

 

강바닥 돌을 다 깨어내

 

  
▲ 산산조각 쪼개진 바위 강천보 바닥을 쪼아낸 돌이 쌓여있다. 밤새 불을 켜고 공사를 한다고.
ⓒ 하주성
강천보
  
▲ 간판 '생명이 깨어나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한강'이란다. 과연 그럴까?
ⓒ 하주성
광고

남한강에 많은 생명이 사는 것은 적당한 늪지와 바위, 그리고 여울과 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울도 늪지도, 그리고 물길을 조절하는 바위도 다 사라지고 만다면, 과연 남한강은 제몫을 다할지 궁금하다. 한편에 커다랗게 눈에 띄는 글이,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든다. '생명이 깨어나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한강'이라니. 이미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은, 다 헤집고 있는데 저런 문구를 써서 붙이다니.

 

여주는 남한강과 더불어 살아 온 고장이다. 이곳 물줄기를 따라 수많은 배들이 왕래를 하고, 수많은 생명들이 이 강에서 연명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 많은 사람들도 이 물을 생명의 원천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 아름답던 남한강이 모두 뒤집히고 있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흐르던 물길도, 군데군데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던 바위도 사라지고 있다. 자정 능력을 갖고 있던 자갈과 모래는 파서 산을 만들고 있다.

 

이미 공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24시간 공사를 계속하고 있어 잠을 편안히 잘 수 없다는 인근 주민들의 말처럼, 공사는 그렇게 급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렇게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 강물을 맑게 하고 생명이 살게 만든다고 하면, 저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터인데 말이다.

 

마음이 갈라지는 지역주민들

 

  
▲ 현수막 지역민들의 단합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음들이 갈라지고 있다.
ⓒ 하주성
현수막

  
▲ 바위늪구비 공사중단 명령이 내려진 강천리 일대의 바위늪구비. 저 안에 중장비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 하주성
바위늪구비

 

이호대교를 건너면서보니, 다리 옆으로 쌓아놓은 흙더미가 만만치가 않다. 그 흙더미 앞으로 연신 덤프트럭들이 줄을 이어 달린다. 덤프트럭의 짐칸에는 강에서 쪼개 낸 돌들이 실려 있다. 남한강의 암벽이나 바닥의 돌들은 전국에서도 최고라고 한다. 그만큼 바위나 암벽이 아름답다. 그 뿐인가? 그 바위에는 많은 생물이 붙어 자라고, 그것을 먹기 위한 물고기들이 유영을 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철새들도 남한강을 찾아온다. 생명은 생명을 불러 오는 순환을 거듭하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 자연을 지켜왔다.

 

바위늪구비의 강 길 끄트머리인 강천리로 들어갔다. 강가에 붙어있는 현수막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단양 쑥부쟁이보다 지역 주민이 우선이다'

'남한강 살리기 방해하지 마라'

 

언제부터인가? 서로 단합하던 주민들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4대강 살리기는 서로의 사고를 달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패를 이루게 만들었다. 전국의 모든 국민을 하나로 뭉쳐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사람들이, 작은 지역 주민들조차 서로 목소리를 높이게 만든 것이다.  

 

아름다운 남한강, 이제 어떻게 할래?

 

  
▲ 푯말 굴암리 강가에 세운 바위늪구비 푯말. 이곳도 다 파헤쳐질 것인가?
ⓒ 하주성
굴암리

  
▲ 아름다운 남한강 굴암리에서 강천리 쪽을 바라보다. 비안개가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남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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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씁쓸한 마음을 어쩔 수 없어 강천리를 떠나면서 보니, 저 안쪽에서는 아직도 중장비가 공사를 한다. 무슨 공사를 하는 것일까? 공사 중단 명령이 내려졌다고 하는데, 그것과는 관계가 없는 공사인가 보다. 강천리를 떠나 굴암리로 들어섰다. 이곳도 바위늪구비의 한 곳이다.   

   

'바위늪구비는 남한강의 물이 늘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늪이다. 강물이 늘면 남한강이 되고, 강물이 줄어들면 늪이 된다. 단양쑥부쟁이가 서식하는 척박한 땅에, 고라니와 꿩이 나오는 갈대숲이 이어져 있다.'

 

강가에 세운 푯말의 글이다. 강가로 들어가 강천리 쪽을 바라본다. 비가 내려 물안개가 자욱한데, 철새 한 마리가 소리를 내고 날아간다. 이런 모습을 보고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남한강을 글로 표현했다. 굴암리 강 쪽에도 작은 중장비 한 대가 작업을 하고 있다. 남한강의 모든 지역이 이렇게 중장비로 파헤쳐지고 있는 중이다.

 

  
▲ 깃발 굴암리 강가에서 벗어난 둑에 꽂힌 깃발. 저곳까지 공사를 하려나?
ⓒ 하주성
깃발

 

비가 계속 추적거리는데 마음이 아프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팔대장림, 은모래금모래, 마암, 그리고 그 많은 나루터, 이름 모를 암벽들. 그리고 물이 줄면 숱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작은 바위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우리 눈앞에서 망가져 간다. 이 다음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까? 대단한 조상들이라고 후손들이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후손들의 자연재산을 마음대로 훼손한 몹쓸 조상들이라고 할까? 역사가 두려워진다. 후대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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