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장날이 되면 사람들은 장터로 향한다. 오죽하면 장날이 되면 마을사람은 장으로 가고, 도둑놈들은 마을로 간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이는 장날이 되면 사람들이 장을 보기 위해 다 나가기 때문에 마을이 텅 빈다는 것이다. 그런 틈을 내려 도둑놈들이 마을로 숨어든다는 것. 웃지 못 할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난다.

 

시장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역에 있는 장이야 늘 만나는 사람들인지라 안면이 있다. 전통시장은 그 특성상 주변 사람들이 모이다가 보니,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이다. 그러다가 보니 자연 모이면 선술집에 들려 막걸리 한 잔을 나누게 된다.

 

 

처녀총각들의 신상정보도 교환

 

서로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보면, 자연 어느 마을에 어느 아들이 혹은 어느 집 딸이 헌기가 찼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잘 못하면 뺨이 세 대라 했던가?’ 이렇게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마당발로 불리는 사람들은 바쁘게 머리를 굴리게 된다. 어느 집에 아들은 대학을 나오고 인물이 장 생겼다는 둥, 혹은 어느 집 딸이 혼기가 꽉 찼는데, 미인인데다가 심성도 착하다는 둥. 이런 이야기가 술안주가 된다.

 

당사자들이나 그 아들딸을 둔 부모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자기네들끼리 한참 맞춰보다가 배필이 될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중매를 서기로 약속을 해버린다. 장터가 중매 장소로 변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터에서 사돈이 되는 경우 허다해

 

장터에는 먹을 것들이 지천에 깔렸다. 요즈음도 장에 가면 많은 먹거리들이 있다. 허름한 선술집에 앉아 술 한 잔을 기울이다 보면, 이웃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모두 지기가 된다. 꼭 술 때문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장이라는 특정지역이 사람들의 심성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술 한 잔을 함께 나누다가 보면 서로 집안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보면 팔불출이 되기 십상. 자식자랑에 서로 열을 올리다가 보면 그 자리에서 사돈이 될 것을 약속을 한다. 상대방의 자녀도 보지 않고 술자리에서 한 약속이지만 항상 유효하다. 하기에 옛날 장터에서 주로 아버지들에 의해 많은 남녀가 부부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끔 웃지 못 할 이야기들도 들린다. 술김에 타지에 있는 사람과 자녀들을 결혼을 시키기로 약속을 했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술이 깨고 보니 아무래도 상대방이 미심쩍었다는 것. 딸을 둔 아버지가 사위를 슬쩍 보기위해 장래 사돈이 될 사람의 집을 찾아갔단다.

 

 

절름발이 사위를 보아야 하나?

 

얼마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집 대문을 열고 한 사람이 나왔다. 생김새나 나이로 보아 자신의 딸을 신랑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젊은이가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외모는 준수한데 발을 절다니, 색시의 아버지는 고민을 하다 못 해 집에 와서 부인과 딸에게 털어놓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난 사윗감이 절름발이인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부인은 펄펄 뛰었다. 헌데 당사자인 딸은 다소곳이 앉아 있다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끼리 맺어주신 혼사인데 그것도 제 팔자인가 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날을 잡으세요.”

 

아버지는 착하게 잘 자라준 딸을 절름발이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 못내 안타깝지만 딸을 그리로 시집을 보냈다. 그런데 결혼식장으로 들어오는 새신랑의 다리가 멀쩡한 것이다. 색시의 아버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해 넌지시 사위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오래 앉아서 책을 읽느라 발에 쥐가 나서 절름거렸다는 것. 착한 딸이 아니었다면 좋은 사윗감을 놓칠 뻔 했다는 것이다. 장바닥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전통시장에만 있는 에누리

 

덤 좀 주세요.”

아따 그 양반 많이 드렸구먼.”

그래도 조금 더 주세요.”

자 옛수

 

시장바닥에 나가면 늘 듣는 소리이다. 장사꾼과 물건을 사는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실랑이다. 늘 그렇게 더 달라고 하고, 한편은 마지못해 주는 듯 더 집어준다. 하기에 됫박 등으로 담아 파는 물건이야 덤을 달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야 하는 것이 물건을 사는 소비자의 마음이다.

 

조금만 깎아주세요

안돼요.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닌데

그래도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어요. 조금만 깎아주세요

거 참 그 양반 알았우. 그럼 9000원만 내슈

 

10000원짜리 물건을 10%나 깎아준다. 대형할인마트나 백화점 등에서는 감히 들어볼 수도 없는 말들이다. 이런 대화는 전통시장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통시장은 덤으로 인해 정을 키운다.

 

이란 물건을 팔고 살 때, 제 값어치의 물건 외에 물건을 조금 더 얹어 주고받음을 말한다. ‘에누리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실제 가격보다 값을 더 높여 부르는 일이나, 물건을 사는 사람이 물건 값을 깎는 일을 말한다. 전통시장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행태는 역시 덤과 에누리이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일부러 먼 길을 찾아다닌다. 왜 주변에 대형 할인점들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협소하고 대형마트보다 환경이 좋지 않은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정 때문이다. 투박한 손으로 크게 한줌을 더 집어주는 덤과, 큰 인심 쓰듯 조금 깎아주는 에누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우린 남는 것이 없어요.”

 

그 말이 정말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역시 전통시장이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대물림 고객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의 손을 잡고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장에서 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 떨이 판매합니다. 지금부터 딱 5분간만 반값에 드립니다.”

대형 할인점에서 잘 찾는 말이다. 갑자기 시작하는 이런 판매방법도, 알고 보면 전통시장에서 배운 방법이다. 하지만 ‘5분간만 반값남는 것이 없어요.’는 전혀 다르다. 5분간만 판매가격의 반값으로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는 것이 없어요.’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남는 것이 없다는 말에 더 친근감을 느낀다. 바로 전통시장에 있는 정 때문이다.

 

 

왜 전통시장에는 정이 있을까?

 

대형마트나 백화점에는 정이 없다. 모든 것은 정찰제 판매라고 해서 가격표를 붙여놓고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어 가격을 산출한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다르다. 덤이 있고 에누리가 있다. 물론 전통시장도 정찰제를 한다. 가격표가 붙어있는 상품들도 있다. 물건을 흥정하다가 그냥 돌아서면, 대개는 깎아줄게 오세요.’라거나, ‘더 드릴께 이리와요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이것이 바로 덤과 에누리의 미학이다.

 

전통시장은 숨을 쉴 수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누구하나 무엇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장바닥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둘러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언제 찾아가도 반갑게 맞이하면서 무엇을 사러 왔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단골이 찾는 물건을 미리 알아서 듬뿍 담아주는 곳. 그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다. 전통시장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갑오년 설날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대목장보기가 시작이 되었다. 가까운 전통시장을 찾아가 덤도 듬뿍 받아오고, 에누리도 많이하면서 전통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까지 한 아름 받아오기 바란다. 

 

전통시장은 조선 시대의 상업 형태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이전 고려시대에도 장의 기능이 있었다. 다만 서울의 시전과 난전을 비롯해, 중기 이후 각 지방에 개설된 장시로 인해 전통시장이 조선조에 시작이 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통시장은 장에 서는 상설 점포 외에도 보상과 부상 등의 행상과, 후기에 등장한 도고와 명, , 일본과의 국제 무역 등의 다양한 장시가 있다.

 

우리나라에 시전이 처음 설치가 된 것은 조선조 태종 때부터이다. 서울의 종로통에 행랑이라는 관에서 주도하는 상가를 만든 것이 시전의 효시로 본다. 관에서는 이러한 점포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대여해 주고, 그들에게서 점포세와 상세를 징수하였는데, 점포세는 행랑세, 상세는 좌고세라고 불렀다. 이 시전은 궁중과 관부의 중요한 자금 조달원이었는데, 주로 독점적인 상점이었다.

 

 

지방에서 발달한 장시는 15세기 후반에는 전라도에서 시작하여, 16세기 중반에는 충청도와 경상도에까지 전파되었다. 17세기 말에는 정부에서도 일반적인 장시를 승인하였으며, 18세기 전국의 장시는 약 1,000개소에 달하였다. 당시의 장시는 5일마다 정기적으로 서는 5일장이 일반적 형태였고, 지역에 따라서는 10일장과 3일장 등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당시의 기록을 보면 성종실록 권 27에는 성종 42월에 상설 상점의 설립은 백성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경인년(1470)에 흉년이 들었을 때 전라도의 백성들이 서로 모여 상점을 열었는데, 그 이름을 장문(場門)이라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것에 의존하였으니, 이는 바로 지방에 상점이 만들어질 기미였다. 호조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지방 수령들에게 물었다.

 

 

그때 수령들이 그 이해관계를 잘 살피지 않고 전에 없었던 것이라는 이유로 모두 이를 막고자 했다. 나주목사 혼자만이 이를 금지시키지 말 것을 청하였으나 호조에서 금지시키고 말았다.라고 적고 있다. 곧 전라도에서 흉년이 들어 처음으로 장시가 열렸다는 것이다.

 

명종실록 권 6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명종 29월에 이황이 상소문을 올렸는데 전에도 흉년이 든 해에는 장시를 금지하지 않고 백성들이 그곳을 토대로 하여 생활하게 함으로써 위급을 면하게 하였다. 지금 흉년을 당하여 장시를 모두 금지시키면 백성들이 입는 피해가 클 것이니 금지령을 철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고 적어 흉년에 백성들이 서로 장시를 열어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백성들 간에 자유롭게 이루어지던 장시의 형태는, 임진왜란 이후에는 지역마다 정해진 장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주) 앞으로 20여 회에 이어서 전통시장에 대한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물론 글을 쓸 때마다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요. 여러가지 기사 중에 숫자를 붙여 연재임을 표시하겠습니다

 

전통시장 이용하면 9~10만원 저렴

 


131일 갑오년 설을 맞이해 차례상을 준비해야 하는 주부들은 또 한 번 겁나는 장보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올 설 대목장은 지난해보다 안정된 가격으로 대목장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전국 14개 지역 전통시장과, 대형유통업체 2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 차례상에 필요한 26개 품목의 식재료 값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통시장은 206000, 대형마트에서는 295000원 정도가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설 대목장을 보았을 때보다 각각 0.8%1.7% 하락한 수준이다.

 

 

명절 때만 되면 으레 대목 심리에 편승해 물가가 들썩이던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 설에는 이러한 물가 편승 현상이 사라질 전망이다. 설 명절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뚜렷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물가 안정세 보여

 

팔달문 앞에 모여 있는 전통시장의 경우 과일 등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었다. 또한 농축산물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수산물 중에서 고등어나 명태 등의 가격은 지난해와 별반 다름이 없었으나, 참조기와 갈치는 각각 지난해보다 25%40% 정도가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일의 경우에도 지난해보다 가격이 소폭 하락했으며, 배추의 경우에는 50% 정도 하락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24일 팔달문 앞에 소재한 전통시장의 물가를 보면 사과와 배 등은 1월 첫째 주보다는 많은 상승이 있어 사과는 부사 10개들이 상품이 23000~25000원에 거래가 형성되고 있었으며, 배의 경우에도 첫째 주보다 10개들이 최상품 한 상자에 28000~34000원에 거래가 형성되고 있었다. 10개 들이가 지난해보다 16% 정도 떨어진 15000원 선이었고, 배도 지난해보다 7000원 정도가 떨어진 2만 원 선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도 지난해보다 하락한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농산물 태풍피해 적어 가격 안정세

 

전통시장의 관계자에 따르면 설 대목장 물가의 형성이 과일과 채소류 등 농산물의 가격은 올 여름 태풍 피해가 적은데다 작황까지 좋아 설 대목장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세가 예산된다고 했다. 축산물의 경우는 제수에 사용되는 특성 어종에 경우 가격이 상승할 때는 정부 비축물량을 방출할 것으로 보여, 대목장에는 공급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여 지난해와 같이 보합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이와 같이 전체적인 제수용품의 구입가격은 지난해보다 조금 하락할 것으로 보이며, 상인들은 제수용품의 구입시기가 27~29일이 적격일 것이라고 한다. 제수용품을 준비하는 막바지인 29~30일에 일기가 고르지 못하면, 미처 산지에서 올라오는 제수용품의 물량이 달릴 수도 있거니와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상대적으로 상승을 할 수 있을 것이라도 한다.

 

 

갑오년의 첫날이라는 31일 설날. 전통시장을 이용하여 질 좋은 먹거리로 준비를 한 제상을 차려 조상님들께 제를 올리는 아름다운 우리의 세시풍속을 지켜가기를 바란다.

 

수원시에서 주관하는 수원의 전통시장 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원의 22개 전통시장을 필진들이 찾아 나섰다. 넘어오는 원고를 보면서 수원의 전통시장들이 안녕한가에 대해 묻고 싶은 생각이다. 한 마디로 수원의 일부 전통시장들은 초비상이 걸린 상태라고 해야 할까? 전혀 안녕하지 못한 전통시장들이다.

 

그 안녕치 못한 이유는 바로 수원역 뒤편에 7만여 평이나 되는 대형매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L그룹에서 쇼핑몰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올 추석을 전후해 개장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몇 년 전인가 수원역에 A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도, 수원의 전통시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일부 전통시장은 초비상사태

 

아무래도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그곳과 경쟁을 해야 하는 전통시장들로서는 안녕할 수가 없다. 넓은 주차장에 좋은 환경을 갖고 있고, 거기다가 개점 특별할인 행사 등을 하면서 손님들을 끌어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차례 쇼핑몰 측과 수원시 상인연합회 측이 회동을 가졌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답은 없는 상태인 듯하다.

 

한 대학에 연구조사를 의뢰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전통시장이 닥칠 위기가 살아지지는 않는다. 어차피 대기업에 맞서서 싸움을 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통시장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한다. 쇼핑몰과는 취급하는 물품이 다르다는 이유란다. 또는 거리가 멀어 직접적인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어느 시장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은 쇼핑몰이라는 곳이 어차피 모든 상품들을 골고루 판매를 할 것이다. 농축산품은 물론, 의류, 전자기기, 문구, 화장품 등에서부터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취급을 할 것이다. 그래야 쇼핑몰로서의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거리가 조금 떨어졌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은 장을 보러갈 때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차를 이용하는데, 전통시장들은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자연 주차시설이 좋은 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상생의 해결방법 찾아야

 

전통시장의 상인회를 이끌고 있는 상인회장들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한 상인회는 A백화점이 개관을 한 후 200여개에 가까운 점포 중에 40개 정도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백화점 입점업체와 동일한 메이커를 파는 점포들이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백화점 입점 업체들이 메이커 본사 측에 주문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동네 구멍가게를 노리고 빵집이며 심지어는 순대까지 손을 댔다가 여론의 질타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난 적이 있다. 그런 양상으로 볼 때 상도덕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 아닐까도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수원의 22개 전통시장은 어려운 가운데도 살아남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전통시장은 민초들의 삶의 근원이다. 이러한 전통시장이 또 다시 피해를 본다면, 그러한 아픔은 그대로 민초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서로가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녹녹치가 않은 모양이다. 풍문에는 자신들의 상가가 더 많은 피해를 입기 때문에 보상을 더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태로 과연 온전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이제는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정조대왕의 정신 잊지 말아야

 

수원은 딴 지역과는 다르다. 수원의 상권은 화성을 축성한 후 정조대왕이 직접 내탕금을 주어 마련한 장시이다. 하기에 이 전통시장들은 정조대왕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장시이다. 일찍 정조는 팔달산 아래로 읍치를 이전하였고, 이에 따라 수원장도 함께 이전되어 왔다. 정조는 화성을 축성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새로운 개혁도시 수원을 꿈꾸었다.

 

 

정조는 서울 도성의 육의전을 본떠 화성 안에 시전을 열도록 하였다. 수원의 경우 포목전과 미곡전, 어물전 등 시전을 화성행궁 십자대로 주변에 개설되었다. 그리고 성 밖에 또 다른 장시를 개설했는데, 북문 밖 영화동과 남문 밖 구천동이었다. 북문 밖 장시는 오래지 않아 소멸하여 남문 밖 구천동의 성밖 장이 수원을 대표하는 장시가 되었다. 바로 지금의 팔달문 밖 전통시장들이다.

 

한 마디로 이 전통시장들은 정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장시이다. 장사는 상도덕이 있어야 한다. 상도덕이란 상부상조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이런 상도덕을 무시한다면 정조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수원의 전통시장. “오늘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라는 대답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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