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갤러리

 

남문 로데오 거리. 수원 화성 팔달문 옆 팔달산으로 오르는 곳부터, 수원 향교를 지나 도청으로 올라가는 길까지를 말한다. 이곳이 한 때는 젊은이들이 하루 종일 거리를 활보했던 곳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이 거리에서 자신의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거리를 젊게 만들었다. 그랬던 거리에 젊은이들이 떠나버렸다.

 

90년대 초만 해도 이 거리에는 극장이 6곳이나 있었다. 그 극장 앞에는 늘 젊은이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사람들은 이곳을 로데오거리라고 불렀다. 그만큼 활발하던 거리였다. 31일 찾아간 수원시 팔달구 남문 로데오거리. 이 젊은이들이 떠났던 로데오거리에 젊은이들이 찾아들고 있다.

 

주차장 외벽에 갤러리를 조상공사를 하고 있다. 지역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할 곳이다

 

애경백화점, 롯데쇼핑몰 이겨낼 수 있어야

 

로데오거리는 1990년대 초만 해도 젊은이들로 하루 종일 북적였던 곳이다. 하지만 수원역에 애경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젊은이들이 수원역 앞으로 옮겨갔다. 6개의 극장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는 마치 커다한 동공이 뚫린 듯 허전하기만 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로데오거리에 또 하나의 악재가 겹쳤다. 바로 수원역사 뒤편에 대형매장인 롯데쇼핑몰이 들어오기로 한 것이다. 롯데쇼핑몰이 들어오면 더 어려운 난관이 닥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상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 이런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기 위한 자구책을 상인들과 지역예술가들이 마련하기 시작했다.

 

로데오거리에 있는 작가들과 지역 예술가들이 2012년부터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아름다운 테마거리 가꾸기를 추진하고 있다. 장기간 경기침체로 폐업중인 상당수의 빈 가게를 활용하여 야간조명을 설치하고, 그곳에 작품을 전시함으로서 우범지대로 전락하고 있는 거리를 아름다운 테마거리로 변화시키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로데오 갤러리 1관. 앞으로 이런 작은 전시 공간을 더 마련한단다 

 

거리자체가 갤러리로 변해

 

31일 오후에 돌아 본 로데오거리. 거리 곳곳에 젊은이들이 보인다. 그동안 떠났던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눈에 띠게 많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거리가 젊게 변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커피숍들이 문을 열고, 나름대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지금이 오히려 우리 로데오거리가 살아날 수 있는 호기인 줄도 모르죠. 상인들이 모두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단합이 잘 될 수도 있으니까요. 더구나 교동창작촌을 중심으로 화가들이 로데오거리를 거대한 갤러리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교동에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은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이야기를 한다. 로데오거리 여기저기에는 많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가로등에도 작가들의 그림이 걸려있어, 무심코 지나는 사람들도 위를 쳐다보고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남문 로데오상인회(회장 김한중)에서는 주차장 외벽에 야외 갤러리를 마련하느라 바쁘다.

 

그동안 문을 닫았단 영화 사영관들도 다시 시작한다 

 

이 갤러리에도 지역의 화가들이 작품을 그린다고 한다. 로데오거리 한편에는 로데오 갤러리 1이라는 작은 전시 공간이 생겼다. 지역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앞으로 자투리땅을 이용해 이런 갤러리를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과거의 젊음의 거리를 되찾기 위한 지역주민들의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지금은 아무도 그 물음에 대답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역주민들과 상가번영회, 지역의 작가들이 하나로 힘을 합칠 때, 곧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더구나 그동안 굳게 문을 걸었던 중앙극장이, 12월 초에 개관을 하려고 준비 중이기 때문에.

 

4회 이주영 개인전을 찾아가다

 

해움미술관’, 수원시 팔달구 교동 91-1 지하에 자리한 미술관이다. 컴컴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전시관이 나온다. 새로 미술관을 개장해 첫 전시인 4회 이주영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1010일부터 시작한 전시는 116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작가 이주영은 중앙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전시실 안에는 벽에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을 보다가 낯익은 모습들이 보인다. 한계령과 골목길들. 그 골목길들이 왠지 낯이 익다. 한계령이야 헤아릴 수도 없이 넘은 곳이다. 그런데 이 골목들이 왜 눈에 익을까? “지동 골목입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골목이니까요.” 작가의 설명에 ~ 그랬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골목을 그리는 이주영 화백

 

이젠 작가라는 말보다는 화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 세월을 보냈다. 벌써 54세라는 나이를 먹었지만, 그는 아직도 소년과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그림을 그린 햇수에 비해서 많은 개인전을 갖지는 않았다. 3회의 개인전을 수원미술관에서 가졌다.(2003, 2009, 2011) 그리고 이번에 4회째 개인전을 연 것이다.

 

단체전은 미술동인 새벽전, 환경미술전, 나눔회전, DMZ, 우리가 서야 할 이 땅에서 전, JAALA, 아시아는 지금 전, 수원민미협전, 인권미술전, 백만송이 실루전, 동인전 등 많은 단체전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현재 민족미술협회, 나눔회, 교동창작촌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그림엔 아픔이 실려 있었다.

 

29일 오후 해움미술관을 찾았다. 작가 이주영은 수원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죠. 사실은 어릴 때 지독한 소아마비를 앓았어요. 1년 정도 일어설 수가 없으니 앉아서 즐길 수 있는 것이 그리기와 만들기 증 앉아서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없었죠. 그림에는 어릴 적부터 소질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랬기에 지금은 자신의 화실을 갖고 사람들을 가르칠 수가 있다고 한다. 수원시 팔달구 교동 86-1번지 이층에 이주영 화실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림이 남다르다. 어릴 때의 아픔이 있어서인가? 그의 그림 속에는 진한 아픔이 있다. 이리저리 비뚤어진 골목길, 그리고 그 골목길에서 집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의 쓸쓸한 뒷모습. 가을이 서리서리 내린 한계령. 그가 즐겨 그리는 그림들 속에는 아픔이 실려 있었다.

 

격동의 세월을 그림으로 표현 해

 

그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왜 그림을 그립니까?”라고 물었다.

그려야 하니까요. 저에게 그림은 운명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죠. 좋아하는 것들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잘 맞는 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물론 그림을 그리면서 아픔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80년대부터 90년 초까지 격동의 세월에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 진한 슬픔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0년 그림을 떠나 있었어요. 안성, 평택 등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림에서 손을 땠죠. 그런데 그림이 도난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수원으로 올라왔어요. 선배의 화실 한 귀퉁이에 공간을 만들어 그림을 그렸죠. 그러다가 지난해에 화실을 마련했어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을 가르치는데, 수입은 영 시원찮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 행복이 바로 그림에 있다고 한다. 이주영 작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그림들이 돈으로 따지면 엄청날 것 이라고 하며 웃는다. 시간이 지나면 더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웃는 그의 미소을 보면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깊은 아픔 속에서 스스로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최승일이 그려내는 작가의 속마음

 

“사람이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노력을 하는 사람은 성공을 합니다. 하지만 노력보다 더 자기의 성취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일 자체를 즐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7월 8일(목) 오후, 비가 뿌리는 날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131-2에 소재한 임 아트갤러리에서 전시 개막준비를 하고 있는 회화작가 최승일이 한 말이다. 7월 8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최승일전은 개막을 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눈길을 끈다. 비가 오는 날 개막이라니 사람들이 찾아올까 걱정을 하지만, 정작 작가는 그러 것에는 걱정이 없다는 말투이다.

 

 

“제 작품은 볼트와 전구입니다”

 

갤러리 벽에 걸린 작품들. 작품을 일일이 짚어가면서 설명을 하지만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미술에는 워낙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작업은 예술가에게 있어서 자아실현의 통로이며,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려는 또 다른 삶의 표현방식이라고 생각 됩니다. 판화라는 간접적인 매체가 지니고 있는 함축적인 표현과 독특한 재질감, 그로 인한 절제된 형상 등은 일상의 다양한 요소들을 형상화하고 이를 통하여 작가의 행위가 간접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작가 최승일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그림을 그려오면서 자신만의 내명을 표현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작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림을 손에서 떼어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새벽 시간과 낮 시간을 이용해 주로 작업을 하죠. 저는 작업을 매체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면이 아닌 내면에 잠재된 조형적 언어를 표출하고 싶습니다. 하기에 남들은 제 그림을 보고 볼트와 전구라고도 표현을 합니다. 볼트란 조이기도 하지만 풀기도 하죠.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는 물질입니다. 즉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바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갈망입니다”

 

1년에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열기도

 

현재는 수원시 팔달구 교동 등 세 곳에서 ‘호우와 자명’이라는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작가 최승일도 한 때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단다.

 

 

“졸업을 하고나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했죠. 그 때는 정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2004년에는 한 해에 개인전을 3회나 열기도 했습니다.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린 것이죠. 남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나 스스로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것은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노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한다. 외국을 다니면서 만나는 선배나 동료, 혹은 후배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외국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다가 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갤러리마다 찾아다니면서 스스로를 일깨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저 먹고 놀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성이 예민해 자신만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외국에서도 성공을 할 수 있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결국 그런 것들이 작품 활동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는 것.

 

 

해외에도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작가

 

“저는 일상적인 재료에서 찾아낸 어떠한 특성이 또 다른 공간에서도 나타나는 표현 행위 속에서 스스로 창조되는 환경을 설정하여, 이러한 가변적 재료들은 그 무엇을 초월하면서도 모든 것에 공통되고 모든 것과 연결된 어떤 무엇에 접하고 있다는 일종의 암시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1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런데 그 10회의 개인전 중 9회가 일 년에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4년 3회, 2010년 3회, 2011년 3회이다. 그 중 세 번의 개인전은 해외에서 갖기도 했다. 작가 최승일은 국내보다는 주로 국제전에 더 많은 작품을 냈다. 1995년 동경미술관 임팩트 비엔날레, 2010년 Art by Geneve 2010 아트페어(팔렉스포 제네바), Art Asia 마이애미 국제 아트페어(마이애미, 미국) 등 10여 차례 국제전을 가졌다.

 

 

최승일 작가의 그림은 해외에도 소장이 되어있다. AD갤러리(프랑스 리옹), 스위스 국립의료재단 등 해외에서도 그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나혜석 여성미술대전 심사위원이면서 한국미협, 수원미협 회원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최승일. 14일(일)까지 임 아트갤러리를 찾아가면, 또 다른 작가의 속마음을 만날 수가 있다.

 

문화컨텐츠진흥원 작가, PD들도 24기 무예시범 관람

 

화려하다. 그리고 보는 이들이 연신 환호를 한다. 그저 동작 하나하나가 신기하기만 하다. 11일 오전 11시, 화성 행궁 앞에서는 무예24기의 시범이 펼쳐지고 있다. 평일이라 관람인원은 주말에 미치지 못했지만, 외국인을 비롯하여 특별한 관람객들이 이날 행궁 앞 무예 시범 공연장을 찾았다.

 

이날은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에서 우리 무예에 관한 강의(강사 최형국 박사)를 듣는 작가 및 PD 등 40여명이 관람을 하기 위해 행궁 광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우리 화성과 무예 24기는 좋은 문화컨텐츠로 많이 알려야 할 관광상품입니다. 요즈음은 이렇게 좋은 문화컨텐츠를 잘 활용하여 상품화를 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죠. 이번에 문화컨텐츠진흥원에서 작가들과 PD들이 이곳을 찾은 것도, 알고 보면 화성과 무예24기를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의 하나입니다”

 

이번에 문화컨텐츠진흥원에서 무예24기와 화성 관람을 하러 온 작가와 PD들도, 최형국 박사가 연결을 한 것이다.

 

 

호국무예로 발전시킨 무예 24기

 

무예 24기는 정조임금이 실전에 맞게 집대성한 것으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되어 있는 무예를 말한다. ‘무예24기(武藝二十四技)’는 조선시대 군사무예교범인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가지의 무예로, ‘무예이십사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무예도보통지 속에는 무예이십사기로 기록되어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각종 외침을 겪었던 조선이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무예 중 정수만을 집대성한 실전무예이다. 더욱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의 무기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하던 무기들까지도 그 동작 등을 실어 실전의 교범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서, 가히 당대 최고의 무예지라고 볼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무예 24기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본국검 2. 예도 3. 제독검 4. 쌍수도 5. 쌍검 6. 마상쌍검

7. 등패 8. 왜검 9. 왜검교전 10. 월도 11. 마상월도 12. 협도

13. 장창 14. 기창(騎槍) 15. 죽장창 16. 기창(旗槍) 17. 당파 18. 낭선

19. 권법 20. 곤봉 21. 편곤 22. 마상편곤 23. 격구 24. 마상재 등이다.

 

내년에 개봉될 사극 '역린' 젊은 정조 역에 현빈 

 

이날 행궁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무예 24기를 관람한 조용득(작가)씨는, 시범단의 관람을 마친 후

 

“그동안 우리 무예에 관해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오늘 시범단의 시범을 보고 새롭게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등에서 무사들이 칼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도 제대로 알았고요. 지금까지 잘못 된 동작 같은 것도 제대로 알았습니다.”라면서 “저는 이번 무예 24기 강의를 듣기 전에도 개인적으로 화성 행궁 잎에서 펼쳐지는 무예 24기 시범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 관람으로 제가 글을 쓴다면 정말 제대로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라고 한다.

 

 

화성과 무예 24기가 문화컨테츠로서 좋은 소재가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자원을 갖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내년에 개봉을 하기 위한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사극 ‘역린’은, 현빈이 주인공 역을 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린은 정조시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정치적으로 혼란한 조선 시대를 다룬 작품으로, 현빈은 극중에서 비운의 왕 젊은 정조 역을 맡는다고 합니다. 이 역린에서는 무예 24기도 선보인다고 하니 기대할만 합니다.”

 

 

무예 24기 시범을 마친 최형국 박사는 문화컨텐츠진흥원의 수강생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수원의 자랑인 화성과 무예 24기, 문화컨텐츠 상품으로 최고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화성과 무예 24기가 행궁을 찾은 작가들과 PD들에 의해 재조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수원시 팔달구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 자리한 전통시장인 ‘영동시장’. 수원 화성의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장시를 연 곳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동시장은 여러 장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장으로, 200여 년 전부터 개장된 장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은 2~30리 밖에서도 이용하는 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5일장으로 열리던 시장은,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영동시장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영동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상가와 상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300개 정도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형장이다.

 

 

영동시장 이층 문화공간 아트포라

 

영동시장은 그동안 시장을 살리고, 주변 대형매점들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영동시장 이층에 빈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을 한 것이다. 이곳은 ‘문화예술 종합공간 아트포라’라고 명칭을 붙여, 10여 개의 공방이, 이층으로 올라가면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아트포라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오직 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임대료나 전기세, 수도세 등도 모두 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트포라의 작가들의 공방 맞은편인 좌측에는, 커피숍과 미장원 등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전시공간과 뒤편에 대강당이 자리한다. 워낙 넓은 공간을 이용하다가 보니 전시 공간 앞이 휑하니 비어있어서, 조금은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6월 6일 현충일. 오후에 영동시장 아트포라를 찾았다. 그런데 2층에 비어있던 공간이 무엇인가 가득 채워져 있다. 워낙 넓은 공간이라 다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30%의 공간에 전시를 해 놓은 것들이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쉴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몇 분이 한 공방에 모여 있다. 평소 안면이 있어 더위도 피할 겸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에 전시가 되어있네요. 그동안 휑한 것이 보기가 좋지 않았는데, 저렇게 전시를 해놓으니 보기가 좋습니다.”

“그래요. 그 전시물들이 모두 손님들이 쉴 수 있는 의자랍니다. 그저 아무나 이곳에 오셔서 대화도 나누고, 편히 쉬어갈 수가 있는 곳이죠.”

“그러고 보니 2013화성국제연극제가 열리던 행궁 광장에서 본 것들도 있네요.”

“예, 원래는 이곳 아트포라에 손님들이 찾아오시면 마땅히 쉴 공간이 없어서 마련한 것인데, 국제연극제에 먼저 선을 보인 것이죠. 그곳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도 꽤 있고요. 앞으로 이 빈 공간을 다 채우려고요”

 

 

학생들과 함께 작품제작에 직접 참여를 한 김춘홍 작가의 대답이다. 그러고 보니 행궁 광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스피커 두 개를 연결해 차이가 나게 만든 의자며, 여행용 가방에 여러 가지 무늬를 넣어 만든 의자. 그리고 그저 여기저기 놓인 것들이 다 앉을 수 있도록 재창조가 된 것이다.

 

“어디 아까워서 사람들이 앉을 수나 있겠어요?”

“앞에다가 앉을 수 있는 의자라고 적어 놓아야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분들이 이곳을 좋아할 것 같아요”

 

작가들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다양한 형태의 의자. 한 곳에 앉아본다. 작품 위에 앉았다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아름다운 의자라면 어느 누가 마다할까? 아트포라가 입주를 한 뒤, 달라지고 있는 영동시장이다. 더 많은 작가들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겠다는 영동시장 상인회 이정관 회장의 말마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변화를 해야 할 때인 듯하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