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라는 기능이 있다. 장황하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간단하게 보내는 방법이다. 생전 열어보지도 않던 것을 열었더니 쪽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개의 쪽지 중 하나는 맛있는 고기 집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화번호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문화재청 영상팀이라는 곳에서 나를 촬영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문화재 답사를 하는 모습과 문화재 글을 쓰는 것 등을. 그래서 전화번호를 남겼다, 다음 날 목소리가 예쁜 작가 분이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참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나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리고 보니 벌써 문화재 답사를 한답시고 전국을 내 집 안반처럼 돌아다닌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다. 남들 같으면 지겨워서 하라고 해도 안 할 그런 세월이다. 그런대도 아직 난 여기 길 위에 서 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리 길 위로 내 몰고 있는 것일까?

‘잘 되면 내 탓이고, 잘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듯, 이런 역마살도 다 조상 탓이려나. 요즈음은 점점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며칠 씩 걷고(길), 오르고(산) 하면서도 다음 날 새벽 같이 다시 길을 나서고는 했는데, 이젠 그렇게 다닐 수가 없다. 현저하게 체력이 고갈되어 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격려를 보낸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아직 ‘청춘’이라고 고함을 치는 나이기에, 이런 쪽지나 댓글이 나에게 힘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른 길을 나서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생각해보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다. 아마도 ‘운명’이란 말을 쓰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문화재 답사를 해야 하는 일이.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백점인 나라로 만들고 싶어

‘빵점’. 내가 늘 우리 국민의 수준을 물으면 주는 문화재에 대한 점수이다. 물론 전 국민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아래 점수를 주고도 싶다.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 눈에 빠지면, 더위에 지치며, 왜 그 짓을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 짓’이란 단어를 쓸 만큼 내가 한심해 보였기 때문인가 보다.

난 다시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 짓 한 번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아직 한 번도 같이 해보겠다고 대답을 한 사람은 없다. 아니 딱 한 분 계셨다. 단 하루 만에 소리 없이 사라지셨지만. 그만큼 이 일이 힘들었나 보다. 하기야 돈 버리고, 시간 뺐기고, 힘든 일인데, 누기 이런 일을 좋아할까?

이 무더위에도,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물 폭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도, 난 길에 서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모든 국민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100점’짜리를 만들고 싶어서이다. 혼자 다니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모든 국민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된다면, 아마 그 때는 나도 길거리로 나가는 일을 접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 정말 말로만 소중하다고 하실 건가요?

문화재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를 해도 부족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치욕적이지만 외국에 강탈당한 문화재 하나가 돌아오면 생난리를 친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다. 이런 것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수준이다.

‘이제는 솔직히 쉬고 싶다. 하지만 내가 쉬는 동안, 누군가 우리 문화재를 발로 걷어차고 갈지도 모르다’라는 생각이다. 며칠 전 들린 통도사에서 부모에게 투정을 버리던 한 아이가 당간을 발로 차듯. 그 옆에 부모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고. 그래서 ‘오늘도 안녕’한가를 돌아보고 싶은 것이다.

아무튼 20년간 줄기차게 돌아다녔더니, 이런 날도 있다. 하게 될지는 몰라도 자주 연락이 오는 것을 보면 하긴 하나보다. 또 글거리 하나 늘어 좋겠다고 하실 벗님들. 나 이러고 산다우.


‘전문블로거’라는 용어가 생소한 듯하기도 하다. 사실 블로거들이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그 전문성을 인정하기도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이 블로그의 추세가 일상다반사나 연예 쪽으로 많이 치중을 하다보면,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그 방향으로 글의 소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포스팅을 하는 분야는 문화 쪽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문화가 아닌 전통문화 부분이고, 그 중에서도 문화재에 많은 양을 할애한다. 아무래도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답사를 하다가보니, 그 방향으로 설정이 된 것만 같다. 답사를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이런 일 저런 일도 올릴 경우가 있다 보니, 나 역시 가끔은 일상다반사 부분으로 분류가 되는 날도 있다. 하지만 난 고집스럽게 문화블로거임을 강조하고 싶다.

삼성궁으로 오르는 길. 단풍이 물든 암벽 길을 걷는다.
 
좋은 만남으로 이어지는 여행

티스토리에서 <김천령의 바람흔적>을 운영하는 천령님과는 꽤 오랫동안 만남을 가졌다. 이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그만큼 자주 만나기도 한다. 가끔은 함께 답사를 하는 일도 있는 터라, 이런저런 취향을 서로가 알게 된 듯하다. 천령님은 다 알고 있듯 여행블로거이다. 아우지만 늘 그 사진들을 보면서 부럽게만 느껴진다.

10월 22일 전주한옥마을에서 열리는 ‘술잔전’에서 만난 또 한 사람의 지기인 ‘지우재 김원주’님은 블로그를 운영하시지만, 자주 글을 올리지는 않는다. 이 셋이 언제부터인가 의형제가 되어버렸다.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만나기만 하면 술로 날을 새우기 일쑤이니, 주변에서는 정말 부러운 형제라고 까지 할 정도이다.

굴을 지나며. 좌측이 여행블로가 김천령님. 우측이 도예가인 김원주님이다.
 
셋이서 하루를 보낸 뒤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을 들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우재는 이 삼성궁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한 탓에, 천제를 지내니 꼭 참석을 해보자고 권유로 인해서다. 전날 지리산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난 뒤, 아침에 지리산으로 향했다. 전날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지를 않는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오른 삼성궁이다.

여행블로거는 무엇을 담나?

비옷을 하나씩 구해 입고 빗길을 걸어 삼성궁으로 향한다. 비속에서 만나는 단풍이 그 빛깔이 더욱 붉은 듯하다. 작은 폭포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와 천령님의 사진을 찍는 곳이 영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필요로 찍는 곳은 천령님은 거의 찍지를 않는다. 천령님이 열심히 찍고 있는 곳을 보면 나에게는 그렇게 열심히 찍고 들여다보고를 반복할 만한 곳이 아니다.

솟대인 돌탑.

전날 구례 연곡사에 가서도 느낀 바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진 촬영을 한다. 나는 문화재 하나를 보면 그 조각 부분까지 세세하게 촬영을 한다. 부도탑 하나를 찍는데 거의 70~80장 가까운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 그러나 천령님은 두 세장 찍을 뿐이다. 딴 것으로 이동을 하면서 천령님이 그렇게 많은 양을 찍어대는데 나는 한 장도 찍지를 않는다.

바로 전문블로거의 모습이다.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을 강조하다가 보니, 서로가 사진을 찍는 포인트가 전혀 다르다.

“형님은 오늘 공쳤네요. 천제 하나만 겨우 건졌네요, 여기까지 힘들에 올라와서”
“그러게 말이다. 그 시간에 문화재를 찍었으면 글 10개는 쓸 수 있었을 텐데”
“저는 오늘 많이 건졌습니다. 오늘의 답사는 나를 위한 것 같네요”

돌길을 걷고 있는 김원주님. 빗길을 걸어 삼성궁으로 올랐다. 단풍이 타는 듯하다.

웃고는 있지만 내심 속이 상하다. 좀 더 많은 글 소재를 갖고 내려갔으면 좋았을 것을. 현장답사는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비용이 상당히 들어간다는 것이다. 1박이나 2박 정도를 하면, 몇 십 만원이 훌쩍 날아간다. 그렇다 보니 한번 나가면 하나라도 더 찍어야하는 것이 문화블로거의 욕심이다.

여행전문블로거인 김천령님과 함께 떠난 답사길.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 찍어 온 자료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뿌듯하다. 좋은 형제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녀 온 여행이기 때문이다. 서로 알려주고 기다려주면서 다녀 온 이번 답사길에서, 어느 분야나 현장을 다니는 블로거들의 쉽지 않은 내력을 본다.

“아우님, 담부터는 글 하나하나 더 열심히 보아 주마”


동헌은 고을의 수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다. ‘전주부’라고 하면, 지금의 전주시청을 말하는 것이고, 동헌인 풍락헌은 현재 전주시장의 집무실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전주부 안에는 ‘내아’라고 하는 살림집인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내아는 동헌에서 서쪽에 자리를 한다고 하여 ‘서헌’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전주부영에는 형방청(현재의 법원이나 검찰청과 같은 곳), 장방청(현재의 감옥), 군기고, 장청, 작청(6방의 청사로 지금의 각 실과에 해당), 사령청, 통인청, 관노청, 관청(지금의 식당) 등의 수많은 관아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전북도청에 해당하는 전라감영과 전주부영의 관아 건물 가운데 남아있는 것은 유일하게 이 동헌뿐이다.


수많은 환란을 겪은 전주동헌

전주 동헌의 명칭은 풍락헌, 또는 음순당이라고 불렀다. 이는 전라도 관찰사가 집무를 맡아보던 전라감영의 선화청과 상응하는 관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전주부의 임무를 관찰사가 겸임을 했기 때문이다. 전주부의 실무는 중앙에서 파견한 판관이 맡아했다. 이럴 정도로 전주부의 임무가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전주부는 조선조 초에 청사를 마련한 것으로 『완산지』에 기록하고 있다. 건물이 오래되어 낡고 퇴락해 무너진 것을, 판관 서노수가 개건을 했다. 그 후 고종 27년인 1890년에는 화재로 소실이 되기도 했다. 다음 해 판관 민치준이 중창을 한 것을, 1934년에 일제가 강제로 철거하여 매각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자칫 사라지게 될 전주 동헌을 전주 유림인 유창근 선생이 구입하여,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로 옮겨 전주 유씨의 제각으로 사용을 했다. 영원히 그 흔적조차 없어질 뻔한 전주동헌은 이렇게 그 명맥을 보존하게 되었으며, 2007년 전주시의 노력으로 유인수 선생이 제각의 건물을 전주시에 쾌척을 하게 되었다.

파란만장한 환란을 겪은 전주동헌은 전주시의 개청 60년인 2009년에 전주로 다시 돌아왔으며, 이는 전주를 떠난 지 75년 만이다. 당초 정면 7칸이던 전주 동헌은 한 칸이 줄어든 6칸의 제각을 지었으나, 철저한 고증작업을 거쳐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현재 새롭게 조성이 된 전주동헌은, 전주시 완산구 교동 28번지 전주향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부속 건물로는 동헌인 풍락헌을 비롯하여, 내삼문, 안채, 중간채, 사랑채로 꾸며져 있다.




당당한 전주 동헌 풍락헌

아직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지 않은 풍락헌이다. 마침 KBS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촬영 때문에 잠시 열려있는 풍락헌을 돌아보았다. 풍락헌은 여느 동헌보다도 그 규모가 당당하다.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지어진 건물은 장대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주추는 원형의 밑이 넓고 위가 좁은 돌을 사용했으며, 그리 높지 않게 두었다.

기둥은 보수를 한 자욱이 여기저기 보인다. 풍락헌을 바라보면서 좌측 3칸은 방을 드렸는데, 맨 끝의 방은 누정과 같이 툇마루에서 돌출을 시켜 꾸몄다. 누마루를 깐 대청은 모두 4칸으로 창호는 들어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뒤편의 문도 창호로 내어 멋을 더했다. 방의 뒤편에는 깊게 아궁이를 내었으며, 굴뚝은 건물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당당하게 복원이 된 풍락헌. 아마 이렇게 당당한 건물이 전주 유씨들의 제각으로나마 남아있었다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 여겨진다. 일제에 의해 강제철거가 되어 매각이 될 뻔한 전주 동헌. 다시는 이런 아픔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마터면 소중한 우리의 역사의 현장이 영영 우리 곁을 떠날 뻔했다.



그리고 보니 한참 잊고 있었다. 연꽃을 찍는다고 찾아간 곳에서, 어린 소녀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번씩 더 쳐다보고는 한다. 마침 카메라를 갖고 갔으니 어찌 그냥 지나칠까? 차를 마시는 모습을 몇 장 담았다.

사진을 잘 찍는 분이었다면 이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조금은 아쉽다. 얼굴에는 이쁘게 페이스페인팅으로 꽃을 그려넣고, 소롯히 앉아서 찻잔을 입에대고 마시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조금은 긴장이 되었나보다. 연꽃을 찍으러가서 찍어야 할 연꽃은 안찍고, 예쁜 소녀만 찍고 돌오면서도 기분이 좋은 것은 차를 마시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너무 예쁘기 때문인가보다.



찻잔을 손에들고 어른들 틈에 끼어 차를 마시는 소녀.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찻잔을 손에들고 포즈까지 취해 준다.




세상에는 예쁜 아이들이 참 많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차 맛인들 제대로 알았을까? 그런데도 어른들 틈에 끼어서 차를 마시는 모습이 어찌 그리도 귀엽던지. 아이의 모습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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