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말을 들을 때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그릇에 원가로 따져서 1,000원을 잡아도, 2만 그릇이면 2천 만 원이나 되는 거액이다. 그런 금액을 선뜻 후원을 하겠다니, 처음에는 얼떨떨하다.

 

46(),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가 볼 수밖에.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23-3에 소재한 장애인 생활시설인 바다의 별’. 이곳에 스님짜장을 봉사하기로 한 날이다. 비는 내리지만 그래도 봉사를 하는 분들이, 벌써 주방에 들어가 야채를 써는 등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짜장스님인 운천스님과 함께 박정운 국민은행 수원 화서동 지점장이 짜장을 볶고 있다) 

 

박정운씨 봉사하는 자리에서 밝혀

 

바다의 별에는 색다른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평일에는 봉사를 할 수 없는 은행 직원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박정운(국민은행 화서동 지점장)씨와 함께 찾아 온 이들 10여명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바로 일을 시작한다. 누구는 밀가루 반죽을 하고, 누구는 짜장을 삶아낸다. 그런가 하면 배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저희 지점 직원들이 저와 함께 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저희들이 일을 도와야죠. 평일에는 아무리 봉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오늘 이렇게 주말에 스님짜장 봉사를 하려고요.”

 

밖에서는 배식 준비가 한창이고(위) 주방 안에서는 스님이 면을 뽑고 있다. 모자를 쓴 이는 e수원뉴스 김우영 주간

 

박정운씨는 오래전부터 짜장스님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어떻게 도와 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스님이 수원에 올라오셔서 봉사를 하실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원가 1,000원씩을 잡아 2만 그릇을 제가 후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후원을 하면 스님이 편안하게 짜장 봉사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죠

 

 

좋은 일을 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

 

주방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에서 장애인 가족들에게 나누어 줄 요구르트와 귤 등도 준비를 했다. 장애인 생활시설인 바다의 별에서 묵고 있는 70여 명의 장애인들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식판과 그릇에 스님짜장과 단무지, 요구르트와 귤 등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남짓 식사시간이 끝났다. 그리고는 일반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돌아갔다. 하지만 주방에는 박정운씨를 비롯해 국민은행 봉사자들이 열심을 내고 있다. 그릇을 세척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대걸레를 들고 식당 바닥을 닦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 직원들이 그릇을 세척하고 았다

 

이렇게 열심히 봉사를 하는 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거기다가 박정운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장께서 2만 그릇을 후원하시겠다고 하니, 절로 힘이 납니다. 앞으로 수원에서 스님짜장 봉사를 할 때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있어 세상이 살 맛 난다.

 

짜장스님(남원 선원사 주지 운천스님)은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다. 사실 스님짜장 봉사를 하면서 전국을 다니지만, 적지 않게 들어가는 경비를 감당하기가 수월치는 않다는 것. 지리산에서 캔 야생 돼지감자를 이용한 국우차판매로 봉사를 하지만, 요즈음은 그것도 전과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란다.

 

봉사를 한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 직원들과 스님이 기념촬영을 했다(맨 앞 줄 좌측이 박정운 지점장) 

 

스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다가 부상까지 당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 먼저라도 스님이 봉사를 하시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 결정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과 함께 스님의 봉사를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온기가 있는가 보다. 적지 않은 돈을 쾌척하겠다는 박정운씨의 마음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참여하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짜장스님이 봉사를 하다가 부상까지 입은 것에 대한, 조그마한 보상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짜장스님이 돌아왔다. 짜장스님은 지난 125일 수원시 장안구 율천동 밤밭문화센터 3층에 있는 조리실에서, 마을 어르신들께 스님짜장 봉사를 하다가 면을 뽑는 기계에 손이 딸려 들어가 세 손가락이 뭉그러져 몇 시간의 수술을 받은 뒤 근 20여 일을 입원했다. 그리고 퇴원을 했지만, 정작 짜장스님은 봉사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짜장스님의 봉사는 선원사 봉사단원들이 주축이 돼 진행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난 3월부터 여기저기서 스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친 손을 비닐로 싸고, 봉사를 시작한 것.

 

 

"여기저기서 짜장면을 해달라고 찾는데, 무작정 쉴 수가 없었죠. 봉사란 힘이 있을 때 하는 것 아닌가요? 나중에 지치고 힘이 들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니까요."

 

염태영 수원시장도 깜작방문

 

그렇게 말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 봉사. 그런데 오늘(5), 자신이 손을 다친 율천동에 짜장봉사를 한다고 나타난 것이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그곳에서 불상사를 당했으니 피해 가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제가 그날 짜장면을 대접하지도 못한 채 손을 다치는 바람에, 어르신들께 누를 끼쳤습니다. 당연히 이곳부터 달려와야죠. 오늘은 200분의 어르신들께 짜장을 만들어 드리려고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도움을 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렇게 아픔을 당한 곳에 나타나기란 쉽지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자리에는 염태영 수원시장도 깜짝 방문을 했다.

 

"남원서부터 수원까지 달려오신 운천스님이, 우리 율천동에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하셔서 마음이 참 아팠다. 그런데 이렇게 오늘 다시 율천동에 와서, 짜장봉사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달음에 달려왔다. 오늘은 스님과 함께 저도 어르신들께 봉사를 해야겠다."

 

염 시장은 손수 앞치마를 두르고 짜장면을 나르기도 했다.

 

 

율천동 봉사 현장에서 만난 유인선·송경애씨

 

"봉사를 하면 우선 뿌듯함이 있죠. 그리고 봉사를 하면서 스스로 자기만족을 하기 때문에 봉사는 늘 즐거운 것 같아요. 봉사를 하면서 내가 힘이 든다고 생각을 하면, 절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즐기면서 해야죠."

 

밤밭문화센터 3층 조리실 앞에서 '스님짜장'에 사용할 면을 뽑는 것을 돕는 봉사를 하고 있던 송경애(46)·유인선(46)씨는, 봉사가 즐겁다고 이야기를 한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봉사를 시작했다는 두 사람은, 나이가 같고 같은 곳에 사는(율천동 삼성아파트) 친구란다.

 

"봉사를 시작한지가 꽤 됐어요.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아이를 데리고 함께 봉사를 다녔죠. 아이들이 식탁에 수저를 놓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이 어릴 때 다니던 곳의 어르신들을 만나면 아이들 소식을 묻고는 하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두 사람은 모두 일주일에 5~6회 정도 봉사를 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송경애씨는 삼성 아파트 내에 있는 삼성문고의 문고장이고, 유인선씨 또한 문고 일을 거쳐 현재는 율천동 44통의 통장 소임을 맡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한 주를 거의 봉사를 해야 한다.

 

봉사, 즐기면서 할 때가 가장 행복

 

"봉사라는 것을 남이 시켜서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하구한 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마음속에서 스스로 우러나 본인이 즐길 줄 알아야만 해요. 저는 봉사를 하는 것은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힘이 들지도 않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봐요."

 

쉽지 않은 대답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스님짜장에 사용할 면을 뽑는 것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니, 정말 봉사를 하면서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몇 시간을 서서 봉사를 하다가 보면 힘도 들 텐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행복한 표정이기 때문이다.

 

 

"봉사라는 것이 언제까지 한다고 정해놓고 할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죠. 봉사를 하다가보니 오히려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어 더 좋은 것 같아요. 또 즐겁게 하다가 보면 젊어지는 듯도 하고요."

 

두 사람 모두 자녀들이 세 명씩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봉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자라 대학과 중학교 등을 다니고 있어 마음 편하게 봉사를 할 수 있다고.

 

 

가끔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빨리 잊어야

 

"봉사를 하다가 보면 가끔은 난처할 때도 있습니다. 어르신들께 음식을 날라다주는 봉사를 하는데 늦게 가져왔다고 혼을 내시거나, 역정을 내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럴 때는 정말 울고 싶기도 하죠."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란다. 그렇게 역정을 내시는 어르신들 보다는, 그래도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는 분들이 더욱 많다는 것.

 

"봉사를 할 때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봉사를 해주니, 음식 맛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하세요. 그런 말씀을 들을 때는 정말 행복하죠. 아마 이렇게 봉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어르신들의 말씀 때문인 듯해요"

 

청솔복지관에서 무료 급식을 할 때 많은 봉사를 했다는 두 사람은, 스님짜장의 봉사는 처음이라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면서, 다음에도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라도 달려가 봉사를 하겠다고 한다.

 

진정한 봉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봉사'라고 한다. 남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혹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봉사는 상대를 기쁘게 만들 수가 없다. 유인선·송경애 두 사람이 정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렇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 하는 봉사이기 때문이다.

짜장스님’, 이참에 좀 쉬세요.

 

참으로 곁에서 보기에도 미안할 정도이다. 쉬지 않고 봉사하는 그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사랑실은 스님짜장으로 유명한 선원사 주지 운천스님. 선원사주지스님이기 보다는 짜장스님으로 더 유명하다. 하긴 일 년이면 70회에 4만 그릇이 넘는 짜장을 봉사하고 있으니, 짜장스님으로 유명할 만도 하다.

 

그렇다고 운천스님이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 소외되고 조금은 굶주린 이웃들에게, 아니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짜장 한 그릇을 해 먹이는 것이 다이기 때문이다. 늘 조금은 낡은 차에 스님짜장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반죽기와 면을 뽑는 기계, 그리고 야채와 밀가루 등을 가득 싣고 다닌다.

 

 24일. 수원에 소재한 우만종합사회복지관에서 스님짜자을 드시고 계시는 어르신들

 

빡센 일정, 보기만 해도 힘들어

 

멀리서 봉사를 하면 그나마 곁에서 잔심부름이라도 할 수가 없다. 그런 짜장스님이 요즘 들어 수도권에서 많은 활동을 한다. 그것만 해도 고마울 뿐이다. 스님과 더불어 아주 작은 복이라도 지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요 며칠 스님의 행적을 보면 20() 화성 신흥사에서 400명에게 짜장면 봉사. 21일은 수원장애인협회에서 100그릇을 봉사를 하기로 했지만 날씨 덕에 취소가 되었다. 장애인들이 눈, 비거 오면 바깥출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22() 여주 라파엘의 집 봉사, 23() 장안구청 인근 평화의 모후원 어르신들께 짜장면 봉사. 24() 수원 우만종합사회복지관에서 새터민 및 어르신들께 짜장면 봉사 등이다.

 

 하누리봉사단. 30명의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 이곳이 와서 봉사를 한다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

 

이렇게 짜장스님이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그 지역에 봉사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24일 우만사회복지관에는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중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한화봉사단과 가장 많은 봉사자들이 참여한 하누리봉사단(14, 단장 이완소) 등이다.

 

저희들은 회원이 한 30여명 정도 됩니다. 영통 등 수원에 거주하는 주부들 봉사단으로 한 달에 한 번 하루에 4시간 정도 봉사를 합니다. 우리 모음은 친목모임인데 산악회등을 결성해 산도 오르고 여가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한 달에 한 번 와서 봉사를 하는 곳이죠.”

 

하누리봉사단의 책임자라는 하영호(, 51)의 말이다. 방학을 맞아 친구끼리 봉사를 하러 왔다는 양규빈(1. 동성중), 조유민(1, 동수원중), 차은수(1, 동성중)도 봉사가 보람되고 즐겁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이 가는 곳마다 있어 짜장스님이 혼자 다니면서 짜장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친구사이라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도 방학을 맞아 봉사를 하러 왔다고

 

불시에 일어난 사고

 

이번 봉사일정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일을 연달아 잡혀있었다. 그리고 25() 수원의 모 주민자치센터에서 어르신 200분께 짜장봉사를 하기로 예약이 되어있었다. 스님은 먼저 그곳으로 향하고 아침에 글을 올리고 나서 길을 나섰다. 곁에 가서 그야말로 잔심부름 밖에는 해 드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전화를 받았더니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스님이 부상을 당해 119 구급차로 병원으로 가셨어요.”

 

이게 웬 벼락인가? 부상을 당했다고 하면 면을 뽑는 기계에 다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년 가까이 스님과 함께 다니면서 면 뽑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방심해도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위험스런 기계이기 때문이다. 병원을 물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119구급차에서 내린 스님,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응급처치를 한 모양이다.

 

 우만사회복자관에서 스님짜장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하는 운천스님. 이 기계에 부상을 당했다

 

이 스님 좀 말려주세요.

 

상처는 생각 외로 컸다. 오른쪽 손의 손가락 중 세 개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 뼈까지 상했다고 한다. 엑스레이를 찍고 수술실로 들어가 두 시간 가까이 수술을 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짜장스님의 말에 어이를 상실했다.

 

수술만 받고 바로 남원으로 내려가 내일 봉사를 가야하는데, 그럴 수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결정할 문제예요

 

간호사도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수술을 받을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하다니. 두 시간 가까이 수술을 받고 병실로 옮긴 짜장스님. 2주일 정도는 입원을 해야 한다고 간호사가 이야기를 한다.

 

일주일만 있다가 나가면 안되요. 봉사할 곳이 에약이 되어있는데

 

누가 이 스님 좀 제발 말려주세요.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도 짜장봉사를 해야 한다고 하는 운천스님의 말에 슬그머니 화가 난다.

 

스님 이 참에 좀 푹 쉬세요. 그동안 너무 많이 봉사를 해서 그냥은 쉬라고 해도 안되겠고, 아마 그렇게라도 쉬게 하고 싶었나 봅니다.”

 

억지로 이야기는 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분들과 약속을 한 봉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마음 아파하는 이 스님. 도대체 누가 말릴 수 있을 것인가?

2012년도 다 저물어가는 12월 29일.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에 소재한 서울노인복지센터 구내식당이 시끌벅적하다. 이른 아침부터 앞치마를 두른 자원봉사자 80여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센터 관계자로부터 봉사를 할 장소와 방법 등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날 자원봉사자들은 지구촌공생회, 영화사, 남원 선원사와 개인적으로 봉사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오전 11시 20분부터 1시 30분 정도까지 2,000명의 어른신들께 점심을 대접하는 이날 봉사는, 전날 남원서부터 이곳까지 갖가지 채소와 20kg짜리 쌀 15포를 차에 싣고 온, 스님짜장의 주인공인 운천스님이 2,000분의 어르신들께 짜장밥을 봉사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일 년의 봉사를 마무리한 짜장스님

 

짜장스님으로 더 유명한 운천스님은 2012년 한 해에 60회가 넘는 봉사를 하고 다녔다. 한 해에 만든 짜장면과 짜장밥만도 35,000그릇이나 된다. 2012년 스님짜장의 봉사가 이곳에서 마무리가 지어지는 것이다. 봉사자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자리로 옮겨 어르신들께 짜장밥의 공양을 준비하기에 바쁘다.

 

식당의 문이 열리기 전에 봉사자들은 각자의 자리에 섰다. 누구는 식탁만 청소를 하고 다니고, 누구는 배식구 안으로 들어가 밥을 푸고 짜장을 담아낸다. 그런가 하면 수저만 나누어주는 봉사자도 있고, 어르신들이 음식을 드신 후 입을 닦으라고 휴지만 준비를 하는 봉사자들도 있다.

 

 

빈 그릇을 재빨리 주방으로 날라다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말끔히 세척을 하는 봉사자도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식판에 담긴 짜장밥을 식탁으로 옮겨내는 봉사자도 있다. 하나같이 말없이 자신의 맡은 책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불만에도 웃음으로

 

11시 20분에 식당의 문이 열리고 어르신들이 식탁에 자리를 하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식판에 담긴 짜장밥과 수저를 어르신들이 앉은 자리로 날라다가 놓는다. 그런데 가끔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이 계시다. 아마도 밥이 부족하거나 짜장이 부족하다고 그러는가 보다. 양푼에 밥과 짜장을 담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더 떠주는 자원봉사자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그렇게 식당 안은 왁자하니 소란하다.

 

 

가끔은 듣기에 민망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자원봉사자 누구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 한꺼번에 320명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좁지 않은 식당이지만, 2,000명이면 8번이나 바뀌어야 한다. 이리저리 식탁 사이로 다니면서 식사를 마치고 나간 자리를 열심히 깨끗하게 닦아내는 봉사자들도 몇 차례가 바뀌자 지치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웃음으로 시종일관 어르신들을 대하는 자원봉사자들. 그들을 보면서 봉사라는 것이 얼마나 크고,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인 줄을 깨닫게 된다. 노인센터에서 근무를 했었다는 한 분은

 

“처음에는 줄을 서시라고 했다가 소화기를 갖고 등을 맞은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어르신들 스스로가 질서를 잘 지켜주셔서 그래도 참 좋아 진 것입니다. 이 복지센터를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이 하루에 3,500명 정도가 되는데 그 중에서 2,000명에게 식사대접을 하니 조금은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대접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제는 어르신들이 그런 것도 조금은 이해를 하시고 단돈 500원이라도 성금함에 넣어주십니다. 그것으로 다시 어르신들을 위하는 일에 사용을 하고 있죠.”라고 한다.

 

 

아름다운 미소 자원봉사

 

지구촌공생회에서 봉사를 하러 왔다는 한 자원봉사자는

 

“어르신들이 날도 추운데 점심 한 그릇을 드시겠다고 이곳까지 오셨는데, 행여 그분들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되죠. 그저 최선을 다해 봉사를 하다가 보면, 저분들도 언젠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알지 않겠어요?” 라고 되묻는다.

 

1시 30부이 지나자 2,000분의 배식이 모두 끝났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주방에서 나오는 운천스님께 수고하셨다고 말씀을 드리고 2013년 계획을 잠시 물었다.

 

“내년에는 한 4만 그릇 정도를 봉사하려고 합니다. 소록도 같은 곳이나 평택항에서 중국으로 가는 보따리 장사들을 위해서도 짜장면을 만들어 드리려고요. 그분들도 한 천명 가까이 된다고 하네요. 밥 한 그릇 마음대로 사먹지 못하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습니다. 2013년에는 더욱 살기가 팍팍할 것이라고 하는데, 저도 그렇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봉사를 하는 지원봉사자들이 줄을 잇고 있으니 앞으로 좋아지겠죠.” 라며 웃는다.

 

 

봉사가 즐거운 사람들. 그리고 그 봉사를 하면서 마음의 평안과 건강을 찾았다고 하시는 분들. 그 분들이 있기에 어둑하고 침침한 우리사회가 조금은 밝아지는 것은 아닌지. 해가 지날 즈음에 찾아간 노인복지센터의 그 아름다운 미소가 오래도록 가시지를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달 26일 구미공단에서 발생한 불산누출 사고로 인해,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와 임천리 일대가 황폐화가 되었다. 아직도 300여명의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피소로 옮겨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농작물의 면적은 212헥타르, 인명 피해는 사망 5명에 23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정부에서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했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한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봉산리 주민들은 농토가 불산으로 오염이 되었는데, 내년 농사는 어떻게 지을 것이냐고 볼멘소리를 낸다. 더욱 23일 환경부는 피해지역에서 불산에 노출된 3,997마리의 동물을 ‘일괄폐기처분’한다고 발표해,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황폐화 된 마을, 보기만 해도 처참해

 

구미시 임천리와 봉산리로 들어가는 주변의 농작물은 다 말라 처참하게 변해있었다. 논이며 포도와 같은 과실도 말라비틀어져 있고, 잘 익어가던 고추는 그대로 붉게 말라죽어버렸다. 논이며 밭 등 여기저기에는 붉은 현수막에 ‘불산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식용불가’라고 쓴 글씨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대구지방환경청의 대기오염측정차량의 모습이, 이곳이 아직도 안전하지가 않은 듯하여 걱정스럽다. 임천리에서 만난 주민이라는 어르신 한 분은 분을 삭이지 못하겠다며

 

“도대체 이렇게 땅이 다 오염이 되고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도, 내년에 여기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온전한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옮겨갈 수가 없습니다. 말이 괜찮다고 하지만, 그 누가 그런 말을 믿겠습니까?” 라고 한다.

 

 

 

짜장스님 불산피해 지역에서 봉사

 

얼마 전에 선원사 주지인 운천스님이 전화를 거셨다. 부산에 들렸다가 올라오시면서 구미 불산피해 지역을 들려오셨단다. 마을회관 등에서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분들에게 따듯한 짜장면이라도 대접을 하고 싶다는 것.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꺼려한다면서, 당신이라도 그분들에게 따듯한 음식을 대접해야겠다는 것이다.

 

10월 28일(일), 아침 일찍 선원사를 떠난 봉사단 일행은 4시간여를 달려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 청소년수련원에 도착을 했다. 가는 길에 차장으로 보이는 마을은 그야말로 사람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다 타버린 논이며 밭은 푸른색이 보이지 않는다. 논이며 밭, 과실나무들도 모두 벌겋게 타서 죽어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일까? 임천리 청소년수련원에 모이신 분들은 200여명 정도. 그분들에게 ‘스님짜장’을 봉사하기 위해, 봉사단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하지만 봉산리는 조리를 할 수 있게 준비가 되지 않아, 수련원에서 짜장을 볶아 밥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봉산리에서 짜장밥을 드신 주민들은 100명 정도의 인원이다.

 

두 마을을 돌면서 짜장면과 밥의 봉사를 마친 운천스님은 잠시 휴식을 하면서

 

“무책임한 실수가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불러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한 끼라도 이분들에게 따듯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것을 해드리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짜장면과 밥뿐이라 안타깝습니다. 얼른 이분들이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가실 수 있기를 매일 간구하겠습니다.”라고 한다.

 

 

 

황폐가 된 들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정작 피해를 입은 분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온다. 아마도 몇 날은 그 타버린 농작물이며 붉은 현수막이 아른거릴 듯하다. 언제나 이분들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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