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동 민원실 ‘행궁나라’ 우송연 인두화 ‘태움전’ 열어
코로나19로 전시 만나기 힘들 때 가뭄에 단비 같아
“행궁동에서 3월에 민원실 갤러리인 행궁나라 전시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했어요. 행궁나라 갤러리 벽면에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아래편에는 공예작품을 전시하는데 아직 공예작품을 전시하는 곳은 비었네요. 아무래도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갤러리 등이 문을 닫은 곳이 많다보니 작가들도 활동이 축소된 듯해요”
팔달구 행궁동 행정복지센터 1층 민원실 벽면인 행궁나라 갤러리에 전시작품을 설치하고 있던 우송연 작가는 연락을 받은 후 며칠 밤을 새워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송연 인두화 작가는 수원 행궁동 공방거리에서 수원화성인두화 교육센터를 운영하면서 인두화 공예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작가이다.
우송연 작가는 제38회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인두화 심사위원(2019년)을 맡아본 것을 비롯하여 인두화 캘리그라피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종합예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우송연 작가는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인두화 대상을 비롯하여, 전국인두화 작품공모전 대상을 수상하는 등 남다른 열정으로 인두화를 알리는데 앞서고 있는 작가이다.
조선시대부터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두화
조선시대부터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두화(우드버닝)’는 화로에서 달궈진 무쇠인두로 문양과 자연풍경 등을 그림으로 새기는 것을 말한다. 인두화는 뜨겁게 불에 달궈진 인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화상을 입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화로에서 달궈진 무쇠인두로 그림을 그리는 인두화는 나무의 재질에 따라서 대나무에 그리는 것은 낙죽(烙竹), 나무에 하는 것은 낙목(烙木) 또는 낙화(烙畵)라고 한다.
“인두화는 불에 달구어진 인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작업을 하다보면 인두에 데는 일이 많아요. 하기에 인두화 작품활동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무에 불에 달군 인두로 작품을 그릴 때면 나무마다 타는 냄새가 다르기 때문에, 그 냄새만 맡아도 힐링이 된다고들 해요. 남녀노소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인두화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두화를 배워 작품을 만들고는 하죠”
우송연 작가는 항상 불에 달군 인두를 사용하는 인두화는 화상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최근에는 납땜용 인두나, 숯에 달구어 사용하던 인두 대신 전기로 펜을 달구는 인두기인 버닝펜이 개발됨에 따라 간편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작가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두화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이다.
‘불꽃을 피우는 여자의 태움전’
우송연 작가는 스스로를 ‘불꽃을 피우는 여자’라고 소개한다. 인두화 작업을 할 때 불에 달궈진 인두와 나무가 만나면서 불꽃이 일기 때문이다. 이번 행궁동 행정복지센터 민원실 갤러리인 행궁나라 전시도 ‘태움전’이라고 소개한다. 나무를 태워 작품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3월 30일까지 행궁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우송연 작가의 태움전은 코로나19로 인해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을 때 볼만할 전시라고 생각한다.
“저희도 코로나19로 인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어요. 저는 이렇게 사람들이 조심할 때 인두화가 제격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속설에는 불은 사악한 것을 태우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인두화 자체가 불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니까요. 코로나19도 인두화 전시로 인해 수그러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에 전념했어요”
벽에 인두화 작품을 설치하면서 인두화가 갖고 있는 <태움>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도 코로나19가 하루 빨리 수그러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행궁동 행궁나라 전시실에서 3월 한 달 동안 전시를 하는 우송연 작가의 ‘불꽃 피우는 여자의 태움전’. 마땅히 볼만한 전시가 찾기 어려우면 행궁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가 인두화 작품을 감상해보기 바란다.
벽안의 수녀님 한국의 풍광을 그려내다
22세 때 한국으로 온 노애미 수녀님의 그림
22세에 한국으로 건너 온 노애미 수녀님은 올해로 87세를 맞이하셨다. 그동안 노애미 수녀님은 한국 사회에서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셨다. 벌써 65년 째 한 결 같이 봉사를 해 오신 노애미 수녀님은 이제는 한국의 풍물까지 사랑한다. 수녀님의 이런 봉사와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그림전시회가 열렸다.
“노애미 수녀님은 프랑스에서 젊은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 오셔서, 65년간을 오직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이번에 저희 남문로데오상가와 남문로데오 갤러리, 한국치매미술협회, 3세대문화사랑회 등이 힘을 모아 수녀님의 그림을 남문로데오 갤러리에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문로데오거리 상인연합회(회장 김한중) 담당자는 남문로데오 갤러리에서 ‘프랑스 할머니 수녀의 그림 속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2월 31일까지 기획전을 갖는다고 한다. 주차장 갤러리인 남문로데오 갤러리의 벽면에는 크지 않은 작품들이 걸려있다.
한국의 풍광을 그대로 그려내
노애미 수녀의 그림은 65년을 한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서 본 풍광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그림 속과 제목에는 대한민국 만세, 행복. 아주 옛날 나무와 연인들, 한국 대나무 빵 왔습니다, 둥근 밥상 속 행복 등의 제목이 보인다. 그림도 크레용파스로 그려 어린아이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갤러리 전시장 안에는 많은 사람들은 노애미 수녀에게 보내는 글들이 적혀있다.
“수녀님은 아직도 초등학생의 맑고 순진한 동심이네요 부럽습니다.”
“따듯한 마음 감사드립니다.”
“수녀님의 따듯한 사람과 마음을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시길..”
“맑은 영혼을 보고 갑니다.”
”그림 속 이야기들이 너무 감동적입니다“
“수녀님의 깨끗한 마음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수녀님의 따듯한 마음 대한민국과 함께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등 수많은 글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영원히 이 땅에 머무르시길 간구합니다.
초등학생 같은 맑은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을 그대로 도화지에 옮겨 놓은 그림. ‘시골에서 상경한 꽃분이’라는 그림은 꽃가지를 든 여자가 큰 보따리를 이고 있고, 그 뒤에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수녀님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시골에서 상경한 꽃분이를 처음으로 보고 그린 그림인 듯하다.
노애비 수녀님의 그림 속에는 우리들의 풍속도 다양하게 표현이 되어있다. 가족들이 함께 윷놀이를 하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빨래가 가장 사랑하는 햇님’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그림 속에는 길게 맨 줄 위에 빨래들이 널려있다. 그런가하면 한 겨울 길에서 고구마를 굽고 있는 그림에는 ‘맛있는 고구마 사주세요’라는 제목을 붙였다.
“수녀님의 그림을 처음에는 초등학생들의 그림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니 밑에 모두 노애미라는 작가의 명칭이 붙어있고, 올해 87세가 되신 수녀님께서 그리신 그림이라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맑은 영혼을 갖고 계신 것인지, 그저 고맙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노애미 수녀님께서 영원히 이 땅을 사랑하시고 머무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림을 보고 있던 대학생이라고 하는 한 관람객은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노애미 수녀님의 그림 전시는 로데오 거리 송산주차장 외벽에 조성한 로데오 갤러리에서 31일까지 전시가 된다.
커튼사이로 눈 마주친 곰 인형, 살아있었네?
길을 가는데 창문으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그것도 활짝 열린 창문이 아니라, 커튼이 드리워진 사이로 조금만 커튼을 젖히고 보고 있다.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그와는 반대로 내가 남의 방안을 누가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괜히 무엇인가 잘못한 것만 같아서 움찔한다.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24번 길 40에 소재한 행궁동 주민센터. 민원실 벽면은 ‘정월행궁나라 갤러리’이다. 정월은 나혜석의 호이다. 그 벽면 갤러리에 그렇게 커튼을 조금 열어젖힌 눈망울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임진실의 초대전 ‘나도 모르게 보려고 해’는 지나가다 창문 틈 사이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보려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보려고 해
9월 1일부터 30일까지 정월 행궁나라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작가 임진실의 ‘나도 모르게 보려고 해’ 전은 한 마디로 상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시회이다. 벽에 걸린 몇 점 안되는 작품들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처음 이 작품을 만났을 때는 벽걸이 장식인줄 알았다고 한 주민은 이야기를 한다.
“저 작품 전시회 걸개가 없었다면 그냥 벽을 치장한 것인 줄로만 알겠어요. 그런데 작품전시라고 해서 하나하나 보고 있노라니 참 묘한 느낌이 들어요. 마치 제가 남의 집 창문을 들여다보다가 주인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이요. 아마 작가분도 그런 느낌으로 세상을 본 것은 아닐까요?”
작가 임진실은 한남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꿈과 마주치다(임호갤러리)’외 다수의 그룹전을 열었고, 개인전은 세 차례를 열었다. 2010년 서로 몰랐던 일들(대안공간 게이트), 2010년 너를 위한 동화(All Souls cafe), 2014년 임진실 개인전(갤러리 자인제노)과 이번에 네 번째 전시회가 된다.
장난감이 영혼이 있다면?
작가노트에서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동네 안을 걷다가 보면 시선은 건물과 창문에 늘 머물게 된다.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다. 언제나 그렇듯 이미지 파일은 창문과 건물들로 가득하다. 오래된 양옥집과 두꺼운 페인트가 발린 대문과 낡은 창문들을 보며 저 집은 곰돌이네 집이라고 상상해본다. 문을 두드리면 곰돌이가 조금은 망설이다가 현관으로 나와 문을 열고 쑥스러운 얼굴로 맞이해줄 것이다.」
그랬다. 어린 시절 사람들은 누구나 인형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이 영상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간혹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지금도 그 침대 맡에 놓여있는 곰 인형이 영혼이 깃들었다고 생각을 한단다. 작가들의 상상의 그 모든 것이 결국 작품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인가 보다.
작가는 그 곰 인형과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안타까움을 작품에 그려 넣었는지도 모른다. 창문 커튼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는 곰 인형이 눈과 마주쳤다. 순간 저 곰 인형이 내 생각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보다야 저 인형과 생각을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행궁나라 갤러리에 가면 임진실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 창문 틈으로 얼굴을 내민 곰 인형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전시회에 발길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팽생직업으로 그림을 택했다는 박정신 작가
앳된 얼굴에 작은 체구, 얼핏 보아서는 그림을 그려도 순정만화를 그릴 것만 같은 그런 생김새다. 그런데 정작 전시실에서 만난 그림은 영 딴판이다. 무엇인가 사회를 향해 두 손을 불끈 쥐고 고함이라도 칠 것만 같다.
그런 작은 체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31살이라고 한다.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에 거주하고 있는 박정신 작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를 졸업했단다.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박정신 작가는, 수원 동우여고를 다니면서 무엇인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기 위해 그림을 선택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무엇인가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을 그리면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죠. 다른 것은 다 이런저런 주변의 환경에 걸리겠지만 그림은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판화 속에 담겨진 작가의 분노 느껴져
생각지도 않은 대답에 조금은 당황스럽다. 많은 작가들을 만나 대화를 해보지만 이렇게 의외의 대답은 처음이다. 28일 팔달구 행궁마을 커뮤니티 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민예총 미술위원회의 전시인 세월호의 아픔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세월아 세월아’ 전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판화.
40×40cm의 크지 않은 목판화는 ‘파도처럼 일어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파도와 촛불이 세상을 향한 분노의 주먹을 움켜쥔 듯하다. 그 작은 판화 속에서 작가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느끼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런 왜소하고 앳된 표정 속에 어떻게 이런 울분이 숨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한 번도 힘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고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다고 생각하질 않았죠. 그런 생각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오히려 제가 힘들다고 느낀 것은 그런 생활 속이 아니고 제가 하는 작업 때문이죠.”
작가의 긍정적인 사고가 앞으로의 기대를 걸게 해
참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박정신 작가는 그림 작업을 하면서 언제나 자신이 작업을 하는 작품에 대해서만 고민을 했다고 한다. 책 작업에 디자인을 하고 삽화 등을 그리면서 본인이 생활을 할 만큼은 늘 마음에 여유로움을 가졌단다.
“사람들은 물질로 인한 어려움을 가장 큰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 여유라는 것이 저는 이해가 가질 않아요. 여유의 한계가 분명치 않잖아요. 저는 그저 알음알음으로 인해 작업을 하면서도 제가 필요한 만큼은 수중에 들어왔어요. 그것으로 생활을 하는데 충분했고요. 결국 어려움이란 본인 스스로가 만드는 것 같아요.”
수원 팔달산 아랫동네 이야기를 다루는 계간지인 골목잡지 ‘사이다’에서 디자인과 그림을 담당하기도 했던 박정신 작가는 훌쩍 제주도 성산으로 떠나버렸단다. 사이다와의 계약기간이 끝나 처음에는 그저 며칠 친구한테 가서 놀고 오리라고 생각했으나, 그곳에 가니 그림 소재가 너무 많아 당분간 그림을 그려야 하겠다는 것.
“저는 그저 제가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인 여유를 항상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 글쓰는 작가, 연극하는 사람, 음악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죠. 세상에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벽을 두고 사물을 보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은 그림을 그리니까, 저 사람은 글을 쓰니까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벽을 허물면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주변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소홀치 않다는 것이다. 전시회에 참석을 하기 위해 수원 집으로 올라왔다는 박정신 작가. 내일이면 다시 재주도 성산으로 가서 작업을 해야 한다고. 잠시 나눈 대화 속에서 앞으로 많은 기대를 걸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세상을 보는 편견 없는 시각 때
작가의 일상을 표현한 색다른 미술전시회
“사람들이 흔히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하나같이 ‘나’라고 대답을 하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딱히 그런 질문을 갑자기 받는다면 그 이상의 대답은 없을 것 같습니다. 굳이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자식같은 제 인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131-2에 소재한 임아트갤러리(관장 임하영)에서 만난 김기창 작가와의 첫 대담 내용이다. 임아트 갤러리를 찾았을 때 마침 점심을 들고 있던 작가를 만날 수가 있었다. 김기창 화백은 현재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학과레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는 교수이자 화가다.
“저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죠. 대학을 경기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난 뒤 유학을 떠났어요. 그곳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난 뒤 모교인 경기대에서 2012년부터 전임교수가 되어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예술가들은 본질을 묻는 질문에는 선 듯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갤러리로 구경을 온 고등학생들에게 일일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이 대학교 강의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번째 개인전을 갖는 작가 김기창
“저는 이번이 19번째 개인전입니다 매년 한 번씩은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연 셈이죠. 그동안 단체전은 300여회를 했는데, 저는 그림을 그릴 때 먼저 주제를 설정하고 난 뒤에 작업을 준비합니다.”
김기창 작가는 작업을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주제로 할 것인가를 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주제에 맞는 자료들을 수집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많은 작품들을 먼저 사진을 찍은 후에 그것에서 응용을 해 작업을 한다는 것. 벽에 걸린 작품 중에는 19개의 작품을 연결하여 벽면 가득차게 전시한 작품이 눈에 띤다.
“이 작품은 하나하나 따로 그려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연결을 해서 커다란 하나의 작품이 딜 수도 있죠. 이 작품들은 모두 작업을 하면서 느낀 영역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작업을 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직업을 하는지, 또 내가 어디서 작업을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작업을 하는 것인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이죠.”
벽에 걸린 커다란 작품은 사진도 간간이 눈에 띤다. 미술대학의 건물이라는 것이다. 대패도 보이고 망치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캔버스에 칠을 하고 있는 손 그림도 있다. 유화로 그려진 작품들은 저마다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으로 보던 전시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작품 활동의 아이디어는 주제 안에서 찾아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나면 그 주제에 맞는 소재를 찾아야 합니다. 때로는 그 소재가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주제를 정해놓고 작업을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화가 김기창 하면 먼저 ‘운보 김기창’ 화백을 떠올린다. 그만큼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이름이 갖기 때문에, 사람들이 혼동을 할만하다. 하지만 같은 이름을 갖고는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처음에 김기창 작가의 전시회라도 해서 저는 운보 김가창 화백의 유작전인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갤러리를 돌아보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죠.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는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작가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6월 2일부터 임아트 갤러리에서 전시를 시작한 김기창 작가의 전시를 들러본 한 관람객의 말이다, 1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작품의 영역(The Realm of work)'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