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경기도 일원의 각 마을 도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안과태평을 위한 마을굿이다. 경기도당굿은 한수 이남의 경기도 전역과 현 인천광역시의 섬까지 걸쳐 연희가 되던 마을 제의로, 화랭이라고 하는 세습무들에 의해서 전승이 되어왔다.

 

19901010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은 보유자인 고 조한춘과 고 오수복이 세상을 떠난 뒤, 아직도 보유자 지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경기도당굿보존회에서 모든 행사 및 각 도당의 제의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전승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경기도당굿 남부지부 승경숙 지부장을 만나보았다.

 

 

처음에는 낯설기 만한 경기도당굿

 

현재 경기도당굿 이수자인 승경숙 지부장은 1986년 내림굿을 받은 후, 주로 한양굿을 배워 굿판에서 나름 잘 불리는 무녀였다. 그러다가 1993년 경기도당굿 보유자인 오수복 선생님의 권유로 경기도당굿의 전수생으로 입문을 하게 된다.

 

“1993년에 처음으로 당시 경기도당굿의 보유자이신 오수복 선생님을 뵙고 도당굿에 첫발을 내딛었어요. 당시는 경기도당굿에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두 문하생으로 있었죠. 거기서 함께 끄트머리에 서서 무녀제 도당굿의 제차를 배웠어요. 오수복 선생님께서는 도당굿에서 무녀가 맡아하는 부정, 제석, 군웅 등 여자가 할 수 있는 굿거리를 저희들에게 알려주셨죠.”

 

처음에는 경기도당굿이 낯설기만 했다고 한다. 경기도의 판소리인 판배개 창으로 불러대는 도당굿의 소리가 따라 하기조차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힘든 도당굿의 춤사위며 장단, 소리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전수교육조교인 고 방돌근 선생 때문이라고. 고 방돌근 전수교육조교는 이 시대의 마지막 전악이라고 할 만큼 도당굿의 장단과 경기 시나위를 구가하고 있던 악사였다. 할아버지가 경기도의 대금 시나위의 창시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유지 받들어야

 

낮에는 오수복 선생님께 도당굿의 굿 제차를 배우고, 저녁에는 방돌근 선생님께 도당굿의 장단과 무가를 배웠어요. 경기도당굿은 신이 나지도 않고 까다로운 장단과 사설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했죠. 배우다가 보니 점점 그 깊이에 빠져들게 되고, 나중에는 도당굿의 소리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렇게 경기도당굿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도당굿의 모든 행사에서 거리를 맡아 자신이 가진 재주를 선보였다고 하는 승경숙 지부장. 기획 공연만 해도 50여회에 도당굿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인공연도 2회나 가졌다.

 

선생님들께 그냥 받은 재주잖아요. 열심히 할 수밖에요. 그동안 많은 곳에 공연을 다녔어요. 선생님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공연을 했죠. 때로는 박물관에서 때로는 산사에서, 어디든지 도당굿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달려가서 공연을 했죠. 당시 연세가 많으신 오수복 선생님께서 노구를 이끌고도 도당굿의 전승을 위해 애를 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선생님들이 이젠 한 분도 세상에 있지 않다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고 방돌근 선생은 첫 개인발표회를 며칠 앞두고 세상을 하직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기도. 보유자이신 오수복 선생도 20111217일 세상을 하직했다.

 

선생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산의 굿당에서 선생님의 지노귀굿을 해드렸죠. 두 분의 선생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재주를 널리 퍼트려야 하겠다고. 그래서 오산에 경기도당굿 남부지부를 개설했어요.”

 

 

그동안 50여명의 전수생 키워내

 

20121월부터 6개월 과정으로 경기도당굿의 기본적인 학습을 시작한 전수생들은, 그동안 114, 28, 316, 415명 등 53명에 달한다. 경기도당굿은 그 특성상 일반 굿과는 제차가 다르기 때문에, 6개월 과정으로는 배울 수가 없다. 하기에 꾸준히 학습을 하고 행사에 자주 참석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오산에서 전수생들을 학습시키다가 보니 이동거리가 멀어 전수생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수원 팔달구 인계동 지하에 20여 평 정도 되는 연습실을 마련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것을 온전히 전수시키고자 마음을 먹었죠. 이달 16일에 전수소를 개소하려고요.”

 

전수소의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인계동 지하에서 만난 승경숙 지부장. 경기도당굿의 온전한 전수 보전을 위해서 앞으로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한다. 남들은 어렵다고 배우기를 꺼려하지만, 선생님들께 배운 재주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어려움을 참아내야 되지 않겠느냐며 각오를 다진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이 온전히 전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기도당굿은 매력이 있어요. 많은 굿중에서 경기도당굿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남다른 품위가 있어요. 제가 경기도당굿을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죠.”

 

8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550-83에 소재한 애기씨당이라는 간판을 건 전안에서 만난 최남수(, 35). 작은 체구에 귀여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대개 이런 무속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는 생김새가 조금은 다르다. 전안은 신령들을 안쪽에 모시고, 입구 쪽에서는 손님들을 접대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넓지는 않지만 간결하면서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어, 어찌 보면 경기도당굿의 굿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23세부터 찾아 온 신병

 

저는 남들처럼 그렇게 심하게 신병을 앓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23세 때부터 이상하게 꿈을 자주 꾸게 되었어요. 눈만 감으면 흰 고깔을 쓴 사람이 보이는데 고깔밑으로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죠.”

 

그래도 처음에는 그렇게 심하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은 점점 깊어가고, 술만 먹으면 사람들에게 아는 소리를 해 댔다는 것.

 

밤에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술을 먹기 시작했어요. 잠이라도 편하게 자려고요. 그런데 술만 먹으면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막 하는 거예요. ‘언니 남편 바람났다거나 팔 부러지겠다, 조심해라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점집을 찾아갔더니 신병이 왔으니 내림굿을 받으라고 했지만, 콧방귀만 뀌고 돌아왔다는 것. 25세가 되던 해는 일본으로 건너갔단다. 제과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1년 반 정도 일본에 가서 살다가 왔는데, 그 이후부터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고.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다리가 붙고 하혈을 심하게 하기 시작했어요. 병원에 가면 몸에 이상이 없다고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고 의사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의사에게 막 퍼붓기도 했어요. 몸이 아픈데 무조건 스트레스라고 하니 사람이 화가 난 것이죠.”

 

음식을 먹기만 해도 토해내기가 일쑤여서 먹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잠이라도 좀 청하려고 하면 도대체 이상한 것들이 모여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27세가 되던 해부터는 눈만 감으면 방울소리가 들렸다는 것. 내림굿을 받기 전에 여기저기 찾아다녀 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29세에 내림굿을 받아

 

굿을 몇 차례나 했는지 모른단다. 29세가 되던 해 할 수없이 내림굿을 받았다. 당시는 오산에서 살고 있을 때인데, 안산에 있는 무속인을 찾아가 내림굿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에는 결혼을 해서 일가를 이루었다. 지금 생각해도 자신이 내림굿을 받지 않았다면 온전한 삶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지난해부터 이곳 수원 인계동에 자리를 잡고 경기도당굿의 전수를 받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전수생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선생님 못지않은 도당굿의 무녀가 되려고요.”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남자인 화랭이(악사로 지정)와 무녀 두 사람의 보유자가 있다. 남자 악사는 장단과 화랭이 굿인 의뎅이, 그리고 터벌림과 장문잡기 등의 제차를 맡아서 진행을 한다. 여무는 부정, 제석, 군웅 등을 맡아한다. 경기도당굿에서는 군웅굿을 할 때 쌍군웅이라고 해서 화랭이와 무녀가 함께 군웅상을 돌면서 굿을 진행한다.

 

배우면 배우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전안도 이곳에 차렸어요. 열심히 배워야죠.”

 

길 건너편에는 제석천궁이란 간판을 단 도당굿의 스승인 경기도당굿 이수자 승경숙씨의 전안이 자리를 하고 있다. 아직은 도당굿 판에서 한 거리를 맡아할 수가 없지만, 언젠가는 굿판에서 멋진 굿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신을 모시는 사람들을 흔히 ‘기자(祈子)’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칭할 때는 ‘무격(巫覡)’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무(巫)’란 여자를 말하고, ‘격(覡)’이란 남자를 말한다. 즉 무격이란 여자 무당인 만신(=많은 신을 모신다는 뜻이다)과 남자 무당인 박수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렇게 신을 모시는 무격들은 일 년에 한번, 혹은 3년에 한번 정도 자신이 모시는 신령들을 위한 굿을 한다. 이를 ‘맞이굿’ 혹은 ‘진적’이라고 한다. 맞이란 신을 맞이하는 의식이라는 뜻이고, 진적이란 아마도 좋은 음식이나 맛있는 음식을 쌓아 놓은데서 붙여진 명칭이란 생각이다.

 

 

무격들의 굿판 중 가장 큰 굿인 맞이굿

 

11일(화) 수원시 인계동에 거주하는 승경숙(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이수자)씨의 맞이굿이 열렸다. 맞이굿은 처음에 ‘천궁맞이’라고 하여서 밖에서 굿을 한다. 고깔에 장삼을 입고하는 천궁맞이는 신령들을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천궁맞이가 끝나고 나면 안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굿이 시작된다. 맞이굿은 자신이 모시는 신령들을 모셔 놓은 전안에서 하게 된다. 맞이굿이란 자체가 자신이 모시고 있는 많은 신령들을 위하는 굿이기 때문이다. 맞이굿은 무격들이 하는 의식 가운데 가장 큰 의식이다. 이때는 자신들의 단골들을 다 초청을 하기 때문에, 굿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도 맞이굿의 특징이다.

 

 

또 무격이 맞이굿을 할 때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무격들을 초청하고, 악사들을 초청해 한바탕 신나는 굿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날 맞이굿을 한 승경숙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의 이수자이자, 경기남부지부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서 도당굿을 배우는 전수생들까지 합세를 했다.

 

경기도당굿도 볼 수 있는 즐거움

 

대개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무격들이 맞이굿을 할 때는 ‘선거리굿’(서서 굿을 진행하기 때문에 선거리굿이라고 한다. 이와 대비되는 말로 충청도 지역의 송경(誦經) 위주의 굿을 ‘앉은거리굿’이라고 부른다)으로 진행한다. 선거리굿은 신령을 나타내는 신복(神服)을 거리마다 갈아입으면서 진행을 하게 된다.

 

경기도당굿은 과거에는 신복이란 특별한 것이 없었다. 화랭이 위주의 굿이었기 때문에, 주로 등걸잠방이에 남쾌자 하나를 걸치고 굿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이굿은 전안에 모셔진 신령들을 위하는 굿이다보니, 각 거리마다 신복을 갈아입고 굿을 한다. 이 날 맞이굿의 특별한 점은 경기도당굿의 절차와 선거리굿의 절차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보는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냈다는 점이다.

 

 

무격이 신령들을 위하는 맞이굿을 할 때, 단골들이 모여드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각 거리마다 신탁(神託)이라는 ‘공수’를 주기 때문이다. 공수란 무격의 입을 빌어 신령이 단골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행위를 말한다. 즉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을 조심하라’는 등의 말을,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달에 좋은 일이 있다’ 등의 이야기이다.

 

신탁인 공수는 맞이굿을 할 때 가장 영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단골들은 맞이굿을 할 때는 앞 다투어 몰려든다. 무격들이 공수를 할 때 단골들에게 겁을 주는 행위는 올바른 행위가 아니다. 올바른 무격이라는 단골들에게 수도 없이 ‘도와주마, 생겨주마’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전수생들도 한 거리씩 기량을 보여

 

맞이굿에서는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그것은 어린 애동(내림굿을 하고 무격이 된지가 오래지 않아 굿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들도 한 거리씩 굿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맞이굿에서 한 거리씩 익히면서 굿을 배우는 것이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요”

 

이날 애동으로 대신(대신할머니를 상징하는 노랑색 몽두리 신복) 신복을 입고 굿판에 들어서면서 최남수(내림굿을 한지 5년이 된 애동)씨가 한 말이다. 굿판에 흔히 큰 만신이라고 하는 선생과 단골들이 줄을 지어 앉아있는 곳에서 굿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애동들이 굿을 할 때는 선생들이 일일이 대꾸를 하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그렇게 해야 애동들이 편하게 굿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밤새 상차림을 준비를 하고 오전 9시에 시작한 맞이굿은 밤 9시가 되어서 끝났다. 꼬박 12시간이 걸린 굿이다. 우리 굿은 직설적이다. 그 자리에서 공수를 주면서 수도 없이 ‘도와주마’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기에 굿판에 모여든 사람들 모두가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는가 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지방과 수원· 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대동굿이다. 도당굿이란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위해 매년 혹은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 초나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굿을 말한다.

 

1990년 10월 10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은 다른 지방의 도당굿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무당인 화랭이들이 굿을 맡아서 한다. 도당굿에서 나타나는 음악과 장단도 판소리기법을 따르고 있어, 예술성이 뛰어나고 전통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원이 전승지인 경기도당굿

 

경기도당굿은 처음 지정이 될 당시 화랭이인 고 조한춘과 무녀인 고 오수복이 기예능보유자로 지정이 되었다. 지정 당시 도당은 부천 장말에서 연희를 하였으며, 수원에서는 평동과 거북산당(영동시장 안), 고색동 당에서 굿이 이루어졌다. 무녀로 지정이 된 고 오수복이 수원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 전승지가 수원이 되었다.

 

 

고 오수복 보유자에게서 그동안 굿거리 제차를 배운 이수자들은 상당하다. 이들은 주로 무녀들이 맡아하는 시루도듬이나 부정굿, 제석굿, 군웅굿 등을 익혔으며, 고 조한춘 보유자에게서 화랭이 굿제를 익힌 화랭이들은, 조한춘의 아들인 조영국이 맡아서 연희를 담당해왔다.

 

오수복 보유자 생전 당시 음악을 맡아하던 전수조교는 고 방돌근이 있었다. 고 방돌근은 음악과 장단 문서(굿의 사설) 등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개인무대를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경기도당굿을 이어간다.

 

당시 고 오수복 보유자에게서는 무녀제 굿을 익히고, 고 방돌근 전수조교에게서는 장단과 문서 등을 전수받은 승경숙(도당굿 이수자)이, 경기도당굿의 명맥을 잇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수자 승경숙은 현재 팔달구 인계동에 전안(무당들이 신을 모셔 놓은 곳)을 차리고 있으며, 전수생들의 강습은 오산시 원동 마등산 아래 역말굿당에서 하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인원에게 소리와 장단, 춤사위 등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더욱 주택가에서는 이렇게 큰 소리를 내어 사설을 익히고, 장단을 치는 등의 학습방법은 주위로부터 눈총을 받아야 한다. 이런 강습의 특성 때문에 인적이 없는 굿당을 택했다는 것이다.

 

오산시 원동에 소재한 역말굿당은 현재 마등사라는 명칭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이곳은 경기도당굿 남부지부(오산시지부)로 등록이 되어있으며, 현재 4기 전수생을 가르치고 있다. 4기생은 모두 16명 정도가 학습을 하고 있으며, 수원과 오산 등에서 배우러 오고 있다고.

 

경기도당굿은 위엄이 있어

 

6월 3일(일) 경기도당굿의 학습을 하는 전수생들을 가르친다는, 오산시 원동 역말굿당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무가와 장단을 연습하는 소리가 마등산 자락에 넘실거린다. 10여 명의 전수생들이 저마다 장고를 앞에 놓고, 사설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아직 4기생이 전수를 시작한지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전수생들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수원 팔달구 인계동 550-83번지에 ‘애기씨당’이라는 전안을 차려놓은 전수생 최남수(여, 35세)는 이제 신내림을 받은 지 6년 밖에 안 되었단다. 23세부터 이미 신이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림굿을 한 후, 굿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경기도당굿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저는 이제 2개월 정도 되었는데, TV 등에서 만날 이북굿이나 덩덩 뛰는 굿만 보다가, 경기도당굿을 보고 저 굿을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경기도당굿은 딴 굿과는 달리 무가도 판소리기법으로 하는 것을 보고요. 도당굿은 위엄이 있고, 무게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우아하다고 할까요.”

 

오산시 원동에 거주한다는 전수생 강봉임(여, 40세)은 화장품 가게부터 별별 것들을 다해보았다고. 그러다가 신을 받은 지 12년이 되었다고 한다.

 

“신내림을 받고나서 창이나 배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이곳에서 경기도당굿을 가르친다고 해서 3기 전수생으로 등록했어요. 이제 8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아주 조금은 도당굿에 대해서 알 것 같아요. 도당굿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우리지역의 굿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직은 도당굿의 진수를 잘 모른단다. 하지만 그 매력에 푹 빠져있다는 전수생들. 올해는 도당굿 정기공연에도 참석을 했다고. 고 오수복 보유자 사망이후 자칫 맥이 끊길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한, 경기도당굿의 맥은 이수자 승경숙에 의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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