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와 서원, 모두 예전 교육기관이다. 개인이 운영을 하는 교육기관이냐, 아니면 국가에서 하는 기관이냐의 차이라고 보면 간단하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으로 유교문화 위에서 설립, 운영된 교육기관이다. 당시 국가가 유교문화이념을 수용하기 위해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시키면서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인 향교는 지방의 수령이 책임을 맡았으며 중앙의 재정적 지원도 받았다.

 

이와는 달리 서원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거나, 석학이나 충절로 죽은 사람을 제사하던 곳이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지방에 세운 사학(私學)의 명칭으로, 서원은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지역에서 선비들이 자의적인 모임을 이어가기 위해 구성원들을 모아 꾸려나가던 곳이다.

 

 

서원은 지방사림세역의 구심점

 

조선 초기의 교육제도는 중앙에 있는 성균관과 사부학당, 그리고 지방의 향교를 중심으로 한 관학이 교육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대두하기 시작한 소규모 서재의 사학도 인정되었으며 국가에서 그러한 사학을 장려하기도 했다.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은 중종 38년인 1543년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웠다.

 

우리나라의 서원은 16세기 후반부터 세워지기 시작했다. 서원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존재하던 서재의 전통을 잇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재의 성격이 단순히 유자의 안거강학의 장소였던 데 반해, 서원은 안거강학의 기능뿐만 아니라 선현을 봉사하는 사묘를 가지고 있었다. 서원은 지방사림세력의 구심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중앙 정치세력의 제지 기반으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었다.

 

 

 

모처럼 대성전 문을 개방한 수원향교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07-9 (교동)에 소재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호인 수원 항교. 향교는 일년 중 춘추에 벌어지는 석전제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성전의 문을 개방하지 않는다. 대개의 향교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성으로 되어있는 향교는 명륜당 앞 외삼문과, 명륜당 뒤 대성전으로 오르는 내삼문이 있다.

 

향교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문묘에서 공자를 비롯하여, 신위를 모시고 있는 41018현을 제사지내는 의식을 치루는 일 이외는 대성전을 거의 개방하지 않는다. 그런 수원 향교가 모처럼 향교를 개방해 일반인들도 대성전 등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수원 향교는 원래 화성군 봉담면 와우리에 있었다. 정조 19년인 1795년경 정조의 명에 의해 현 위치로 옮겨 세우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원 향교 역시 앞쪽으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두고, 뒤편으로 계단위로 올라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였다.

 

 

향교의 기본 형식을 충실히 따른 수원 향교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학의 공간인 명륜당이 자리한다. 명륜당은 정면 5, 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이다. 정면 가운데 3칸은 문을 달았으며 양쪽 2칸은 막혀 있다. 양편의 두 칸이 막힌 것은 이 곳은 온돌방으로 마련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명륜당 뒤편 좌우측으로는 동재와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

 

명륜당 뒤편에 높게 계단을 놓고 그 위에 내삼문이 마련되어 있다. 모두 세 칸으로 된 삼문은 대성전에 출입을 할 때는 우측 문으로 들어가고, 대성전에서 제향을 마치고 나올 때는 좌측 문을 이용한다. 수원 행교 대성전은 정면 5, 측면 3칸 규모이다. 좌우에 마련한 동무와 서무는 정면 3, 측면 2칸 규모로, 공자와 그의 제자 등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모처럼 문을 개방해 돌아볼 수 있었던 수원 향교.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 지역의 문화재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1. 참교육 2014.07.14 06:50 신고

    향교의 재조명이라...!
    수원이 이런 면에서까지 앞서가는군요.
    다른 지역에서는 굳게 문이 잠겨 뭘 하던 곳인지 조차 무시당하고 있더군요.
    제대로된 역사해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 행복끼니 2014.07.14 07:33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한주되세요~^^

  3. *저녁노을* 2014.07.14 08:19 신고

    수원은 남다는 도시같아요

  4. 2014.07.14 08:52

    비밀댓글입니다

  5. 포장지기 2014.07.14 08:53 신고

    지방마다 향교 거의 개방 하는것으로 알고 잇었는데..모두가 그런건 아니었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6. 다소미아 2014.07.14 09:18 신고

    일반인들이 보기 드문 대성전을 접할 수 있었다니, 참 좋은 기회였네요..
    전통이 짧은 나라를 보면 작은 것 하나에도 가치를 부여하고, 계승하는데,,
    우리나라는 정말 수많은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잘 보전하고, 이어나가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책임이라 생각되네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여시길 바랍니다..

  7. 굄돌* 2014.07.14 09:32 신고

    역시 수원이로군요.
    방치되어 있는 향교도 있던데...
    옛것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8. 자칼타 2014.07.14 11:00 신고

    제 고향 울산에도 향교가 있는데...
    항상 지나다니고 보던 곳이지만, 살면서 한 번도 안 들어가본 것 같아요...
    지금생각해 보면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9. 워크뷰 2014.07.14 12:28 신고

    향교를 재조명해볼수 있는 포스팅입니다^^

  10. sneakers 2014.07.14 18:02

    열린 의식은 무엇인가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 교육기관으로 설립한 곳으로 교학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현재의 중,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향교는, 양민이상이면 입학할 수 있었다. 향교에서는 학문을 배우는 외에도 대성전을 두고 있어, 선현들에게 제를 지내고 있다. 향교에 학생은 정원을 두었는데 대개는 군에서는 50명, 현에서는 30명 정도의 학생들을 수용하였다.

정형에서 벗어난 무주향교의 건물배치

향교는 일반적으로 전국 어디를 가나 동일한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학생들의 묵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두고, 그 중앙 뒤편으로 명륜당이 있다. 그리고 명륜당의 뒤 높은 곳에는 내삼문 안으로 공자와, 공자의 제자 및 우리나라의 현인들을 모시는 동무와 서무를 배치한다. ‘전학후묘(前學後廟=앞에는 배움터, 뒤편으로는 제각)’의 형태가 향교의 일반적인 배치이다.


그런 일반적인 향교의 배치와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건물 배치를 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전북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소재하고 있는 무주향교이다. 무주향교는 외삼문의 우측 담벼락에 붙여 명륜당이 있다. 명륜당의 전면은 담장에 붙어있고, 후면이 대성전으로 향하는 마당이 된다.

이러한 다른 형태의 건물배치는 앞으로 난 도로로 인하여, 담장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명륜당의 전면이 담장에 붙어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명륜당의 뒤편으로 출입을 해야 한다. 명륜당의 뒤편에 있는 건물이 기숙사로 사용했던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명륜당을 한편으로 비켜서 내삼문을 지나면 동무와 서무가 있고, 그 안쪽에 대성전이 있다.




호환으로 자리를 옮긴 무주향교

일반적인 향교는 낮은 산을 이용해 층이 지게 건물배열을 한다. 즉 외삼문을 지나면 다시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들어가게 하는 형식이다. 정면에서 보면 외삼문, 동재와 서재, 명륜당을 두고, 그 뒤편에 축대를 쌓아 높은 곳에 내삼문, 동무와 서무, 그리고 대성전의 형태로 조성이 되면서 전체적으로는 비스듬한 비탈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무주향교는 평지에 축대를 쌓고 돌계단을 오르도록 대성전을 두었다. 이렇게 조금은 일반적인 향교의 배치와 달리 조성된 무주향교. 그런 획일적이지 않은 배치가 어쩌면 딱딱한 향교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여유로움까지 갖게 만든다.



원래 무주향교의 건물배치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무주 관아 동편에 있던 무주향교가 호랑이의 행패가 심하여, 조선 숙종 18년인 1692년에 김몽신이 향로산 서쪽으로 옮겼다가, 그곳이 땅이 습하다고 하여서 조선조 순조 32년인 183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는 것이다. 결국 무주향교는 두 번이나 자리를 옮기면서 향교의 건물배치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불망비가 나란히 서 있다. 역대 관찰사 등의 선정을 기리는 이 비가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향교 경내에 관찰사 등의 불망비나 선정비 등이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아마 이 비군은 후일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세운 것으로 보인다. 호환으로 인해 자리를 옮겼다는 무주향교. 그런 와중에 향교의 기본적인 건물배치를 벗어났지만, 그런 배치가 오히려 향교의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1. 온누리 온누리49 2011.11.18 11:05 신고

    예약한 글입니다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데 만만치가 않네요
    아침부터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 중^^
    비가 오네요. 좋은 날들 되세요^^

  2. 꽃보다미선 2011.11.18 13:29 신고

    오늘도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 잘보고 가요 ^^/

  3. 루비™ 2011.11.18 15:52 신고

    호환이 향교의 배치마져 달라지게 했군요.
    무주향교에 대한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경주는 너무나 분위기있게 비가 오네요.
    날씨는 흐리지만 행복하고 멋진 주말 보내세요~~

  4. 2011.11.18 16:09

    비밀댓글입니다

  5. 자 운 영 2011.11.18 23:47 신고

    이곳도 부슬 비가 나립니다
    집도 언넝 구하셔야 할테데 말이죠 춥기전에요 ^
    전에 시댁 횡성에 내려갔다가 향교에서 전통 혼례를 치르는 것을 보았는데
    외국인들이 참 좋아 하시더라고요^^
    편한밤 되시구요^

  6. 워크뷰 2011.11.19 05:30 신고

    호환때문에 이런 구조가 되나요...

  7. pennpenn 2011.11.19 06:58 신고

    베스트 축하드립니다
    토요일을 편안하게 보내세요~

  8. 어신려울 2011.11.19 09:01

    호랭이이가 그렇게 많았었나 봅니다,
    호랭이때문이 이사도 하고..

  9. 올매거진 2011.11.20 03:21 신고

    무주향교, 파격의 아름다움도 볼 만 합니다.

참 사업이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인 줄 몰랐다. 몇 번을 실패를 거듭했을 때도 그 원론적인 방법조차 모르고, 또 다시 시작을 하고는 했으니 말이다. 서너 번 거듭되는 실패는 사람을 참담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중에는 힘이 부치는 정도가 아닌, 정말로 세상을 버릴까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2003년인가, 문화재 답사를 계속하다보니 무엇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통예술신문>이라는 신문을 창간하게 되었다. 타블로이드판으로 낸 이 신문은, 올 칼라 면으로 인쇄를 해 인쇄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광고로 운영을 해야 하는 신문은, 전통예술신문이라는 특성상 많은 광고가 붙지 않음은 당연한 일.

아우네 집 이층에 마련한 서재. 신문사를 하면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정리가 되어있다. 이곳을 가면 언제나 이 서재에서 하루를 보낸다.


버티기 힘든 재정난으로 결국엔 문을 닫다

그렇게 겨우 2년인가를 버티었다. 그러나 매달 늘어나는 적자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할 수 없이 문을 닫게 되었다. 신문사 사무실 보증금도 당연히 사라져 버리고, 급기야는 모든 물건을 처분한다는 통지서까지 날아들었다. 당시는 정말로 그런 것들조차 찾을 엄두도 못 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수원에 사는 아우한테서 연락이 왔다. 형 짐을 모두 찾아왔노라고. 신문사에는 컴퓨터며 복사기, 인쇄기 등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수많은 자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것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어 마음 아파하던 차에 온 연락이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란 생각이다.


소중한 자료들이다.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자료들을 아우가 찾아다가 정리를 해놓았다. 아직 짐도 풀지 않은 것들도 있다. 더 넓은 서재를 만들 때까지 그대로 놓아두라는 아우의 말이다.


정리를 해 놓은 서재, 좁지만 아늑해

그리고 얼마 동안은 아우네 집에 들르지도 못했다. 딴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우가 늘 걱정을 한다. 몸이 아프면 딴 데 가서 고생을 하지 말고, 형 물건이 있는 집으로 오라고. 물론 피도 섞이지 않은 아우이다. 그런데도 살갑게 구는 것이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사람이 있는 곳을 떠나 길을 나섰을 때, 편하게 묵을 곳이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가 없다.

언제나 찾아가기만 하면 편히 쉴 수 있는 곳.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이곳이 남의 집 같지가 않다. 신문사에서 사용하던 책들이며, 여러 가지 때 묻은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넓은 아우의 집 이층, 그 한편에 마련한 서재. 그곳에는 내가 고생을 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신문사 시절 찍었던 사진까지 그대로 정리를 해놓았다.


서재의 모습이다. 해가 잘 드는 곳에 꾸며놓아 항상 기분이 좋은 곳이다. 예전 신문사시절 사용하던 사진까지 그대로 갖다 놓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비록 사업에는 실패를 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얻었다는 생각이다.

“형님, 아프지만 마세요. 그리고 문화재 답사 다니실 때까지 열심히 하시다가, 이다음에 힘이 들면 언제라도 집으로 돌아오세요.”

아우의 말이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아우의 그 말 한마디였다. 힘들고 지쳤을 때, 언제라도 돌아오라는 아우의 말. 여기가 바로 형님이 살 곳이라는 그 한 마디가, 그저 답사의 어려움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전통예술신문의 내용. 올 칼라로 발행한 이 신문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많은 노력을 해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우리 문화를 알리겠다는 욕심 하나만으로. 


비록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그 대신 든든한 아우를 얻었다는 것. 어찌 보면 이 글을 쓰면서도 난 인생에 실패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귀한 사람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 힘들고 지친 모든 분들. 어쩌면 주변에서 이렇게 화이팅을 외칠 분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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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쿤다다다 2011.08.18 15:10 신고

    이렇게 좋은 일은 나라에서라도 고마워하며 후원과 보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온누리 님의 마음과 실천이 헛되이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봅니다.

  3. 대한모 황효순 2011.08.18 15:17

    남는건 사람뿐이죠~
    온누리님은 행복한 분이시네요.^^
    아우님 멋지심.ㅎㅎ

  4. 오붓한여인 2011.08.18 15:45 신고

    그러셨군요,
    너무좋은일을 하셨는데 우리는 문화재에 인색하니..
    그러게요,이런일은 나라에서 도움이있었어야했는데..
    잘이겨내시고 또 늘 알려주시니 대단한온누리님..
    조상님들이 복주실겨요~

  5. 저수지 2011.08.18 15:57 신고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장소이네요.
    이렇게 노력하셨는데 실패하셨다니 안타깝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이
    한국사, 역사, 전통 이런 주제 말고 다른 곳에 더 있으니
    광고가 잘 안 붙을 것 같긴 합니다.

  6. MK 문 2011.08.18 16:30 신고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힘내세요~

  7. 2011.08.18 16:42

    비밀댓글입니다

  8. pennpenn 2011.08.18 17:44 신고

    역시 대단한 열정입니다
    목요일 오후를 편안하게 보내세요~

  9. 시향기 2011.08.18 17:44

    남원으로 .....
    언제인가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청도와 밀양도...
    따듯한 마음을 지닌 아우가 있으니
    행복하시죠.
    힘내시구...
    모든 것을 잃어본 사람은
    힘찬 날개짓을
    다시 할 수 있음이니.......
    건강도 잘 챙기시구...

  10. 예또보 2011.08.18 18:23 신고

    정말대단한 열정이십니다
    훌륭한 아우님을 두셨네요

  11. 아랴 2011.08.18 18:42 신고

    어찌보면 성공한 인생이죠 .. 사람을 얻는다는건 누구나 쉽게 할수있는 일이 아니란걸...
    새삼 나이먹으면서 느끼고 또 느끼고 절실히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전통예술신문이란말에.. 헉 ....낯이익은 ...글자들 !!
    제 동아리이름이 '전통예술연구회한'이었거든요..
    오랜동안 유지해온 동아리가 없어진지 꽤 댑니다 ..추억마저 사라진듯한 느낌을 늘 받구있죠

    온누리님 ~화이팅입니다 ^^

  12. 해바라기 2011.08.18 19:27

    전통예술신문을 만드셨군요. 오래하지 못한점이 아쉬웁니만
    믿을 수 있는 아우를 얻었음이 가장 보람 되시겠군요.
    편안한 밤 되세요.^^

  13. 모피우스 2011.08.18 19:50 신고

    분명 좋은 소식이 날아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 문화는 영원히 후대에게 알려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14. 파리아줌마 2011.08.18 20:37

    사업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죠,
    전통예술신문,, 참 귀한신문이었을듯한데요,
    안타깝습니다.

  15. 2011.08.18 20:41

    비밀댓글입니다

  16. 시골영감 2011.08.18 23:44 신고

    하고 싶어하시는 일을 했다는 것이 더 뜻깊은거 같습니다

  17. 촌스런블로그 2011.08.19 00:02

    두 분의 관계가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무더위가 한 풀 꺾였지만 여전히 덥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18. 워크뷰 2011.08.19 06:27 신고

    아 온누리님!
    이런 아픈 경험이 있다는것 잊[ 알았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사람을 얻으셨다니 좋은 경험이었던 같습니다

  19. 참교육 2011.08.19 11:36 신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돈보다 귀한 행운이지요.
    지난 경험을 계기로 앞으로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20. 가야인 2011.08.19 13:49

    사람을안다는것 보다 좋은사람을 얻는다는게 본인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은 내가 상대
    에게 덕과 진실한 마음을 보였기에 그에 대한 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1. 배움ing 2011.08.20 11:08

    힘내세요.
    의미있고 값진일을 하셨고 또 지금도 하시는 일들이
    소중한 결실이 꼭 맺어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짚은 우리 생활에 아주 오래 전부터 요긴하게 쓰였다. 우선 짚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초가집의 이엉 엮기이다. 추수가 끝나는 가을이 되면 초가지붕을 새로 덮는데, 짚을 엮어 씌우고 맨 위에는 용마름을 얹는다. 그 외에도 소의 사료로 사용하는가 하면, 각종 도구 등을 만들기도 했다. 새끼를 꼬는가 하면 광주리, 짚신, 삼태기, 망태기, 다래끼, 채반, 멍석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짚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짚을 사용하는 것은 제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용을 하는 기간이 짧아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없지도 않아, 점차 짚을 이용해 제작한 도구 등이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짚을 이용해 도구 등을 제작하려면 일일이 수공예품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짚공예를 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자 자연쇠퇴 되기도 했다.


‘호랑이 한 마리 사가시려우’

전주 경기전 안 서재마루. 열심히 짚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 한 분은 연신 판소리 한 대목을 불러가며 손을 놀린다. 그 옆에는 직접 만들었다는 짚공예품들이 나열이 되어있다. 일반적인 소품이 아니라 멧돼지, 호랑이 같은 동물들이다. 그 짚으로 만든 동물들을 보다가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웃은 것이 아니고, 짚으로 만든 호랑이의 표현력 때문이다. 코털을 세우고 입을 쩍 벌린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포효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빨이 날카롭고 혓바닥까지 있다.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들여다보다가 연신 카메라에 담아낸다. 어린 아이 하나가 호랑이가 무섭다고 칭얼댄다. 옛날이야기라도 들은 것일까?



짚을 만지면 손이 거칠어진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렇게 직접 제작을 했다. 멧돼지와 돼지의 표현이 재미있다.

‘호랑이 한 마리 사가시려우?’농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일일이 새끼를 꼬아, 그것으로 제작한 호랑이다. 몇 날을 저 호랑이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 소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 것을 가격으로 따질 수는 없다. 그저 그 호랑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르신의 미투리는 신어도 좋을 듯

그 옆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한 분이 연신 손을 놀리고 계시다. 앞에 보니 <김형철 할아버지의 수공예작품>이라고 쓰여 있다. 짚신이며 미투리, 소쿠리 등이 보인다. 비닐과 짚을 섞어 손수 제작하신 미투리가 눈길을 끈다. 당장 신어도 좋을 듯하다.


전주 경기전 안 서재마르에서 짚공예를 하시는 김형철 어르신과 수공예품인 미투리

짚공예의 역사는 상당히 길다. 『고려도경』에 보면 짚신을 만들 때는 삼이나 왕골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도경은 전 40권으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인종 1년인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여, 당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풍속, 예술, 기술, 복식 등을 정리한 책이다.

누구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많은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짚공예. 이제는 실생활에 사용하기 보다는, 집안을 장식하는데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짚공예가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전 서재 마루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도,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 호랑이의 떡 벌린 입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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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광제 2010.08.25 08:06 신고

    와우~~짚으로 별걸 다 만드는군요...
    대단합니다...
    근데...호랑이가 너무 귀여워요..ㅎ

  3. 펨께 2010.08.25 08:14

    짚으로 만든 작품 너무 맘에 듭니다.
    이런 전통 물품 많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4. 정암 2010.08.25 08:18 신고

    이젠 점점 사라질지도 모르는우리의 모습입니다.
    전에 장거리 운전할때 저 미투리 신고 운전했었는데 발이 시원해서 여름에 좋더군요..

  5. 꼭 짚공예가 아니더라도 어렸을때는 새끼도 꼬고, 간단한 바구니 정도는 끈을 이용해서 만들기도 했던것 같은데,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드네요~ 간만에 예전 시골모습 떠올려 봤습니다~

  6. *저녁노을* 2010.08.25 08:48 신고

    와..짚공예가 꼭 실물을 보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ㅎㅎ

    잘 보고 가요.

  7. 모튜 2010.08.25 09:03 신고

    이런 사진들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좋습니다.
    시골로 산으로 바다로 여행 가고 싶어지네요 ^^

  8. pennpenn 2010.08.25 09:08 신고

    짚으로 호랑이를~
    대단한 손재주입니다.

  9. 엔죠™ 2010.08.25 09:10 신고

    헉!!! 멧돼지의 정면포즈는 정말 무시무시한데요 ^^*
    짚신제작은 보았지만 이렇게 짚공예로 동물까지 만들어내는 것은 첨 본것 같습니다.
    귀한 장면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

  10. 무릉도원 2010.08.25 09:33 신고

    짚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더 정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네요...덕분에 시원하네요...
    귀한 사진 잘 보고 갑니다....즐거운 하루 되세요....*^*

  11. 지원교육 2010.08.25 09:58 신고

    와우~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예술이라 불러도 좋을듯...^^

    장인정신도 살며시 스며들어있겠죠? ㅎㅎ

  12. ★입질의추억★ 2010.08.25 10:01 신고

    너무 멋진데요~ 장인의 숨결이 있는거 같아요. 이러한것이 후세에도 계속 이어져야 할텐데 말예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참 그리고 제 블방에 들어오니 "접근이 차단되었습니다"라고 뜨는지요?
    제 이웃분들도 그런 분이 종종 계신데 일종의 오류같아요~ 몇 일 지나면 또 괜찮아지고 그런답니다.
    저도 신경이 쓰여요 ㅠㅠ

  13. 바람꽃과 솔나리 2010.08.25 10:12 신고

    짚공예는 가끔 보았지만 이렇게 멋진 호랑이와
    멧돼지는 첨입니다~
    짚공예를 계속 이어갔으면 합니다.

  14. 칼리오페 2010.08.25 10:37

    저 이거 본적있어요!
    손에는 굳은살이 온통 박혀있는 장인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잘보고 가요^ ^

  15. 가을 2010.08.25 11:00

    손으로 만든 짚공예..대단합니다. 짚신을 신은 옛날에는 무좀이나 엄지 발가락이 구부러지는 그런 증상이 없었대요...다시 짚신 신는 날로 돌아가면 좋을텐데요^^ 멋쟁이 여자들 때문에 안되겠죠? ㅎ

  16. Yujin 2010.08.25 12:05

    예전엔 생활의일부였지만 지금은 기념품으로 보관을 하는 시대의 짚..짚공예 장인들 모습이 신기합니다.

  17. 또웃음 2010.08.25 12:43 신고

    익살스러운 호랑이의 모습이 재밌습니다. 돼지도 그렇고요.
    짚공예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데 배우는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사라지는 장인들과 기술이 너무 많아서요. T.T

  18. 장인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호랑이와 맷돼지는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담겨있을까요?

    잘보고 갑니다.^^

  19. 달수님 2010.08.25 18:12 신고

    블로그 글에 내공과 깊이가 느껴집니다.
    앞으로 방문해서 많은 글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 김천령 2010.08.26 09:23 신고

    정말 멋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21. 손녀딸 2010.10.09 10:54

    앗, 우리 할아버지다!!..내가 만든 작품이름표까지 예쁘게 찍어주셔서 감사해요^^ 저 노란 이름표 다시 만들어드릴려는데, 전에 만든 파일이 없어서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ㅎㅎ 울 할아버지, 진짜루 손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어요..손이 굳은살이 배기다 못해 쩍쩍 갈라져서, 칼에 베인거마냥 피가 나기도 해요..할아버지 손 잡을 때마다 마음이 참 많이 아파요..그런데도 넘 비싸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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