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의 틀을 벗어난 무주향교, 호환 때문이라는데
2011. 11. 1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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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도 매번 그자리/향교, 서원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 교육기관으로 설립한 곳으로 교학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현재의 중,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향교는, 양민이상이면 입학할 수 있었다. 향교에서는 학문을 배우는 외에도 대성전을 두고 있어, 선현들에게 제를 지내고 있다. 향교에 학생은 정원을 두었는데 대개는 군에서는 50명, 현에서는 30명 정도의 학생들을 수용하였다.
정형에서 벗어난 무주향교의 건물배치
향교는 일반적으로 전국 어디를 가나 동일한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학생들의 묵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두고, 그 중앙 뒤편으로 명륜당이 있다. 그리고 명륜당의 뒤 높은 곳에는 내삼문 안으로 공자와, 공자의 제자 및 우리나라의 현인들을 모시는 동무와 서무를 배치한다. ‘전학후묘(前學後廟=앞에는 배움터, 뒤편으로는 제각)’의 형태가 향교의 일반적인 배치이다.
이러한 다른 형태의 건물배치는 앞으로 난 도로로 인하여, 담장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명륜당의 전면이 담장에 붙어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명륜당의 뒤편으로 출입을 해야 한다. 명륜당의 뒤편에 있는 건물이 기숙사로 사용했던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명륜당을 한편으로 비켜서 내삼문을 지나면 동무와 서무가 있고, 그 안쪽에 대성전이 있다.
호환으로 자리를 옮긴 무주향교
일반적인 향교는 낮은 산을 이용해 층이 지게 건물배열을 한다. 즉 외삼문을 지나면 다시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들어가게 하는 형식이다. 정면에서 보면 외삼문, 동재와 서재, 명륜당을 두고, 그 뒤편에 축대를 쌓아 높은 곳에 내삼문, 동무와 서무, 그리고 대성전의 형태로 조성이 되면서 전체적으로는 비스듬한 비탈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무주향교는 평지에 축대를 쌓고 돌계단을 오르도록 대성전을 두었다. 이렇게 조금은 일반적인 향교의 배치와 달리 조성된 무주향교. 그런 획일적이지 않은 배치가 어쩌면 딱딱한 향교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여유로움까지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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