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공무원이 왜 필요한 것일까? 공무원이란 공무를 보는 사람을 뜻한다. 그 ‘공무(公務)’란 뜻은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 일을 보는 사람, 혹은 공적인 일을 보는 사람을 말한다. 그 공적인 일이라는 것은 지역을 위해, 혹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단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지역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통칠 공무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공무원들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지역의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공무원이 아닌 ‘공무원(空無員)’이란 이야기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리만 채우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풀이하면 된다.

 

국가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발표한 호우 시 매뉴얼

 

집중호우로 피해당한 시민 발만 ‘동동’ 굴러

 

7월 6일 경기지역을 강타한 폭우는 30년 만에, 혹은 40년 만에 내린 호우였다고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몇 년 만에’라는 수식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을 듯하다. ‘104년 만에 가뭄’ 혹은 ‘14년 만에 호우’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한다. 어찌 그리 몇 년 만에를 잘 알고 있는 것인지.

 

그는 그렇다고 치고 6일에 내린 경기지역의 집중호우는 안산, 광주, 시흥, 수원, 의왕 등에 300mm가 넘는 비를 퍼부었다. 이 비로 인해 경기도내에 729가구가 물에 잠기고 3천ha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잇따른 피해 신고로 법석을 떨기도 했다.

 

이 날 6시께 화성시 송산면 중송리에 사는 홍아무개씨(남, 50세)는 집 주변의 신축공사장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자신의 주택 담장과 포도밭 등을 덮치는 수해를 입었다. 홍씨는 바로 면과 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업무시간이 지났다. 담당자가 없어서 처리를 해 줄 수 없다’라는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폭우로 인해 토사는 집안으로 밀려들었고, 하수구가 막혀 빗물이 집안으로 까지 흘러들었다는 것.

 

홍씨는 재차 급박한 상황임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똑 같았다는 것이다. 결국 사고가 발생한지 4시간이 지나서인 오전 10시 30분께야 시청 직원 한 명이 둘러보고 갔으며, 오후까지도 복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발표한 호우 시 매뉴얼

 

매뉴얼은 아예 모르쇠?

 

국가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발표한 호우 시 매뉴얼을 보면, 도시지역에서는 저지대·상습침수지역 등 재해위험지구 주민대피 준비, 노후가옥, 위험축대 등 시설물 점검 및 감시, 고압전선 접근금지, 옥 내외 전기수리 금지, 각종 행사장 안전조치, 고속도로 이용차량 감속 운행, 뇌우 시 저지대 또는 인근 가옥으로 대피, 배수문 및 양수기 점검 등에 유의할 것을 알리고 있다.

 

또한 농촌지역일 경우에는 안전대책 요령은 도시지역과 행동요령과 동일하지만, 그 외에도 농작물 보호와 용·배수로 정비, 소하천 및 봇물, 뚝 정비와 산간계곡의 야영객 대피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화성시의 경우에는 이런 안전수칙조차 모르쇠로 일관하고, ‘근무시간이 아니다’, ‘담당자가 없다’로 일관한 것이다.

 

주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 아니었나?이번 비에 피해를 당한 홍씨는 “지난해 공사장을 짓는다며 공사장 아래에 사는 주민들과는 아무 상의 없이 뒷산에 있던 나무를 베어내고 토사를 옮겨 놓더니, 이번에 내린 집중호우로 토사들이 쓸려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통이 터지는 것은, 다급하게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한 마디로 묵살을 한 당직 공무원의 태도이다.

 

이러한 공무원들의 신고 방관 사례는 시와 소방서, 한전 등에서도 이루어졌다. 황계동에서도 주택 10여 채가 침수가 되면서 단전사태까지 벌어 졌지만, 시와 소방서, 한전 등에서 신고를 받고도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9일 전화로 확인한 결과 아직도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람들 오늘도 두 명이 나와서 사진을 찍어갔어요. 매일 나와서 똑 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갑니다. 그래서 이제는 신경도 쓰질 않아요. 믿음이 가질 않기 때문이죠.”

 

만일 이러한 산사태가 날 경유 자칫 주민들의 생명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신고를 받고도 늑장 대처를 한 행정당국과 모르쇠로 일관한 공무원은 어떤 해명을 해도 핑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공무원(空無員)’이 아닌 제대로 주민들을 섬길 줄 아는 공직사회가 그래서 그립다는 것이다.

이번에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다양한 문화재에 관련된 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헤리티지 채널’에서 영상 제작을 한다고 해서 함께 답사를 나가보았다.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소개하는 <러브人 문화유산>이라는 코너에, 소개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그동안 20년 가까이 전국을 돌며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문화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남들은 그런 나를 두고 ‘미쳤다’라고 곧잘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 ‘미쳤다’ 라는 표현이 그리 듣기 싫지가 않았다. 스스로도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늘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사적 파사성 / 2009, 10, 18 답사

‘힘들다’ 느낄 때에 채찍질이 되다

사실 요즈음은 힘들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모든 여건이 점점 그렇다.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체력적으로도 많이 떨어진다. 역시 세월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그래도 아직은 ‘팔팔한 청춘’이라고 말은 하지만, 남몰래 저려오는 팔다리는 어쩔 수가 없으니 말이다.

촬영 중에 프로듀서가 묻는다. ‘왜 문화재 답사를 하는 것인가?’를. 그렇게 질문을 하면 딱히 대답을 찾지 못하겠다. 왜? 라는 질문이 참 낯설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문화재 답사가 ‘왜’가 아닌, ‘당연’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적부터 그렇게 당연히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문화재 답사는 일상이요, 당연이다. 답사를 하지 않으면 도대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돌아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늘 마음이 조급하다.

나에게 문화재 답사는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겨울에 찾아간 수옥폭포 / 2010, 2, 15 답사

나는 왜?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한다. ‘문화재 답사란 나에게 있어서는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이라고.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석불이며, 탑, 마애불 등을 돌아보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문화재는 과거 선조들과 나를 연결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 생명이 없는 돌과 바위, 그리고 나무들과 스스로 대화를 하면서, 지금의 내가 과거의 선조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난 답사를 할 때마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왜'가 아닌 '당연'이라는 해답을 찾는다.

내가 선조들에게 묻는 것이 바로 ‘왜?’이다. 왜? 무슨 마음으로 이것을 조성하였을까? 왜? 그 오랜 세월을 이렇게 피땀을 흘린 것일까? ‘왜’는 바로 내가 만난 문화재에게, 그리고 그것을 조성한 낯모르고 이름 모를 선조들에게 묻는 말이다.

그 왜는 때로는 엉뚱한 해답을 가져오기도
한다. 물론 그 해답이라는 것이, 나 스스로의 답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문화재로 인해 선조들과 이야기를 한다. 그 안에서 왜? 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재는 바로 남의 것이 아닌 우리 것

문화국가, 문화재사랑. 참 말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저 마음으로나마 문화재를 소중하게 알아야한다는 생각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러나 과연 마음으로나마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 아마 다만 몇 사람만 있어도, 그 마음들이 모아지면 상당한 힘을 가질 것이란 생각이다.

단종이 귀향길에 물을 마셨다는 어수정(여주 골프장 안에 있다) / 2009, 11, 11 답사 

문화재가 국가소유, 지자체소유, 아니면 개인소유일까? 아니다. 그것이 비록 법적인 주인은 국가나 지자체, 혹은 개인일지 몰라도,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다. 하기에 우리가 지켜내야 한다. 혹 우리 것이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는 멍청이 같은 생각을 하지는 말자. 우리 것이기에 소중히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재 답사. 아마 그런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했다면, 벌써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도 짐을 싸들고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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