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라는 기능이 있다. 장황하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간단하게 보내는 방법이다. 생전 열어보지도 않던 것을 열었더니 쪽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개의 쪽지 중 하나는 맛있는 고기 집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화번호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문화재청 영상팀이라는 곳에서 나를 촬영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문화재 답사를 하는 모습과 문화재 글을 쓰는 것 등을. 그래서 전화번호를 남겼다, 다음 날 목소리가 예쁜 작가 분이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참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나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리고 보니 벌써 문화재 답사를 한답시고 전국을 내 집 안반처럼 돌아다닌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다. 남들 같으면 지겨워서 하라고 해도 안 할 그런 세월이다. 그런대도 아직 난 여기 길 위에 서 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리 길 위로 내 몰고 있는 것일까?

‘잘 되면 내 탓이고, 잘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듯, 이런 역마살도 다 조상 탓이려나. 요즈음은 점점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며칠 씩 걷고(길), 오르고(산) 하면서도 다음 날 새벽 같이 다시 길을 나서고는 했는데, 이젠 그렇게 다닐 수가 없다. 현저하게 체력이 고갈되어 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격려를 보낸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아직 ‘청춘’이라고 고함을 치는 나이기에, 이런 쪽지나 댓글이 나에게 힘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른 길을 나서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생각해보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다. 아마도 ‘운명’이란 말을 쓰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문화재 답사를 해야 하는 일이.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백점인 나라로 만들고 싶어

‘빵점’. 내가 늘 우리 국민의 수준을 물으면 주는 문화재에 대한 점수이다. 물론 전 국민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아래 점수를 주고도 싶다.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 눈에 빠지면, 더위에 지치며, 왜 그 짓을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 짓’이란 단어를 쓸 만큼 내가 한심해 보였기 때문인가 보다.

난 다시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 짓 한 번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아직 한 번도 같이 해보겠다고 대답을 한 사람은 없다. 아니 딱 한 분 계셨다. 단 하루 만에 소리 없이 사라지셨지만. 그만큼 이 일이 힘들었나 보다. 하기야 돈 버리고, 시간 뺐기고, 힘든 일인데, 누기 이런 일을 좋아할까?

이 무더위에도,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물 폭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도, 난 길에 서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모든 국민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100점’짜리를 만들고 싶어서이다. 혼자 다니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모든 국민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된다면, 아마 그 때는 나도 길거리로 나가는 일을 접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 정말 말로만 소중하다고 하실 건가요?

문화재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를 해도 부족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치욕적이지만 외국에 강탈당한 문화재 하나가 돌아오면 생난리를 친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다. 이런 것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수준이다.

‘이제는 솔직히 쉬고 싶다. 하지만 내가 쉬는 동안, 누군가 우리 문화재를 발로 걷어차고 갈지도 모르다’라는 생각이다. 며칠 전 들린 통도사에서 부모에게 투정을 버리던 한 아이가 당간을 발로 차듯. 그 옆에 부모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고. 그래서 ‘오늘도 안녕’한가를 돌아보고 싶은 것이다.

아무튼 20년간 줄기차게 돌아다녔더니, 이런 날도 있다. 하게 될지는 몰라도 자주 연락이 오는 것을 보면 하긴 하나보다. 또 글거리 하나 늘어 좋겠다고 하실 벗님들. 나 이러고 산다우.

여름철에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보양식을 먹는 것이다. 남들이야 보신을 하기 위해 즐겨 먹는 것이 있지만, 난 그런 것을 먹을 수 없으니 늘 말로만 즐기는 편이다. 그래도 초복도 지나고 중복이 지났는데, 그까이꺼 삼계탕이라도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여름을 나기 위해 체력보강을 하려면, 더운 날임에도 산으로 올라 자연산 더덕을 캐고는 한다. 우선 자연산 더덕은 오삼 중 하나로 '사삼'이라 한다. 그 사삼을 먹으면 몸안에 열기를 가시게 하기 때문에, 이 여름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더덕을 캐서 먹는다.

이건 머? 남들이 자연산 산삼이라고... 

더덕을 캐러 갔다가 만난 횡재

사람들은 때 아닌 것을 얻었을 때, '횡재'를 했다고 한다. 꼭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얻어야 횡재는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 외에 소득이 생겼을 때도 횡재가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기어 오르고, 다시 물이 있는 계곡 쪽으로 내려가 더덕을 찾는다.

더덕은 물가 가까운 곳에 주로 많이 서식을 한다. 고산지대부터 계곡 근처까지 폭 넓게 자라는 더덕이다. 어딘 들 더덕이야 다 있지만, 향이 좋은 것은 아무래도 고산지대에서 캐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 지리산이 있으니, 지리산을 뒤질 수 밖에. 

한 참이나 그렇게 산을 뒤지며 더덕을 캐기에 바쁘다. 많이만 캘 수 있으면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여나 옅은 비를 맞으며 땀을 흘렸다. 땀인지 빗물인지 구별도 안된다. 거기다가 여름에는 유난히 뱀들이 기승을 떤다. 자칫 뱀에 물릴 수도 있다.

이끼를 덮어 잘 갖고 내려오긴 했는데....

그런데 이게 먼가. 낯 익은 것이 눈에 띤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풀이다. 잎이 다섯개, 그리고 가느다란 줄기. 이거 산삼이 분명한데. 먼저 손을 모아 잠시 감사를 한 후, 찬찬히 흙을 뒤집어 본다. 오~ 정말이네. 작기는 해도 산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여름에 보신을 하라고 산신령이 주시는 것인가 보다.

자연산 산삼을 캐긴 했는데, 이건 머

사람들은 평생 산삼 한 뿌리 먹기도 힘들다고 한다. 산삼이 어느 집 아이녀셕 이름도 아닐테니, 그리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가 일부러 씨를 뿌린 것도 아닌, 자연산이 아니던가. 한 뿌리를 캐고 주변을 돌아본다.

"오 ~ 산신령님 감사합니다. 불초소생 이걸 먹고 이 더운 여름에 힘좀 쓰겠습니다. 땡큐 산신령님"

여기저기 산삼이 눈에 띤다. 여기도 저기도 보인다. 이 정도면 더덕은 뒷전이다. 무릎을 끓고 열심히 캐어본다. 작다. 상품으로야 얼마나 가치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산삼은 분명하다. 내가 전문 심마니도 아닌데, 더 세월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캐서 돌아오기는 했다. 이끼를 잘 덮어 내려왔다. 잎이라도 시들까 보아서.

                                       나에게는 '그림의 떡' 그럼 이걸 어떻게 해?

그러나 이건 머시람? 지난 번에 이것보다 작은 거 하나를 먹고 난 후, 열이 뻗쳐 죽는 줄 알았던 기억이 난다. 벌떡증이 생겨 거의 초죽음이 되었었다. 눈 앞에 보이는 산삼을 놓고, 한 숨만 내쉰다. 이걸 어쩌지. 다시 갔다가 심어야 하나?

먼 좋은 방법이 있음 알려나 줘 보셔. 누가 알아 횡재할 일이 생길지. 

덧글 / 이 것은 상품가치가 없는 이쑤시개 삼입니다요


2년 동안 발이 되어 준 등산화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했다. 메이커를 신으라는 사람들의 말을 그저 흘려들은 것이 화근이었다. 정품이 아닌 신발을 신으면서, 신발이라는 것이 내발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긴 등산화 한 켤레 값도 만만치가 않으니, 서민들이 좋은 제품의 신발을 신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는 지인 한 분이 신발은 좋은 것을 신어야 한다면서 운동복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를 데리고 가 등산화를 한 켤레 사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껴 신는다고 신지도 않고 보관을 하다가, 동생 녀석에게 빼앗겨 버렸다. 신발 하나도 주인은 따로 있는가 보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등산화 한 켤레를 갖고 온산을 다 뒤집고 다녔다.


다 닮은 신발을 꼬매기도 했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산을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화가 된다.

나에게 신발이 중한 것은 바로 답사 때문이다. 한 달이면 4~5회씩 나가는 현장답사. 그 답사를 하려면 발이 보통 아픈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산 날망까지도 올라야 하는 것이 현장답사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돌아 다녔으니, 등산화의 창이 많이도 닮았을 것이다. 그런 신발을 이번에는 더덕을 캐러 다닌다고 혹사를 시켰다.

아마 정품 신발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통 산으로 들로 돌아다닌 2년. 그동안 얼마나 많은 힘이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비를 만나 온통 젖기도 하고, 눈이 쌓인 길을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2년간 충실히 나의 발이 되어 준 등산화다. 이 등산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신발을 고치는 분에게 수선을 부탁한 것도, 알고 보면 그 동안 정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아마 이 등산화를 신고 수백리는 더 걸었을 것이다. 하루에 십리를 걸었다고 해도, 2년이면 그 거리가 얼마인가?


수백리를 걸었을 등산화. 안에는 검불이 차 있고, 여기저기가 낡아 물이 스며든다.

그러던 신발인데 이제는 헤어져야만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수선을 한 곳이 쉽게 떨어져 나가고, 이 신발로 인해 화를 입게 되자 신발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차에 좋은 정품 등산화를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인간이 그만큼 간사한 것인가 보다. 좋은 신발을 새로 신고 보니 날아갈 듯 가볍고 좋다.

그런데 저 한편에 있는 낡은 등산화가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 버려야 할 텐데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생각하면 2년간이나 날 위해 얼마나 힘든 길을 걸었던가? 내가 글이라도 잘 쓰는 사람 같으면 예전 분들과 같이 신발예찬론에, 신발을 떠나보내는 작별의 글이라도 썼을 테지만 그도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새신발. 이 신발을 신어보니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모른체 하기에는 낡고 떨어진 등산화가 너무나 많은 정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고별을 알리는 글을 쓰자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등산화 한 켤레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감이 들기 때문이다. 낡은 등산화를 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참 많이도 신었다.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 등산화는 나를 위해 2년이란 세월을 함께했다. 그러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오늘 이 낡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떠나보내면서 서운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 적는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런 것을 보면 나도 조금은 괜찮은 남자인 듯하다. 남들이야, 얼빠진 사람이라고 웃겠지만.

모처럼 마음을 먹고 산을 올랐다. 요즈음 '능이버섯'이 제철이라고 한다. 그래서 능이버섯을 좀 채취할 수 있으려나 해서, 능이가 많이 난다는 곳을 찾아갔다. 버섯이나 약초를 캘 때,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카메라가 해를 입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보아도 약초를 전문으로 캐러다니는 사람 쯤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산을 오른다. 산은 깔딱산이다. 한발만 잘못 딛어도 저 밑으로 굴러떨어질 그런 험한 산을 오른다.

땀이 비오듯 한다. 그래도 이왕 산을 올랐으니, 무슨 소득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저만큼 사람들이 산을 헤매고 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산에는 여기저기 발자욱이 수도없이 찍혀있다. 남들보다 늦은 셈이다. 채취하고자 하는 능이 버섯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경사가 70도는 될만한 비탈에 더덕 잎이 보인다. 먼저 간 일행이 더덕을 캔다. 더덕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 길이가 무려 25cm 정도는 넘을만하다.

하루 종일 산을 뒤져 채취한 각종 식물의 모습이다. 시장 통에 있는 장사를 방불케 한다.

산은 우리에게 수많은 것을 제공한다.

험한 산을 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산을 타면서 땀을 흘리고, 산에서 뿜어나온다는 각종 인체에 좋은 기운을 받다보면 그만큼 건강해 질 것이다. 그래서인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산을 오르면서 상당히 피부가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마 몸안에 있는 노폐물을 많이 배출하기 때문인가 보다. 거기다가 이렇게 다양한 좋은 것을 많이 채취할 수 있으니, 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까?

산으로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 우리에게 필요한 수많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들이 모두 땀을 흘려 걷어들일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은 늘 우리가 땀을 흘린만큼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준다. 그것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다. 사람이 키워낸 것이 아닌, 자연이 직접 키워낸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또 있을까 싶다. 그것이 내가 산을 오르면서 자연에게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더덕. 십년이 지난 것들이다. 그 크기도 상당하다.

산을 탔더니 이런 소득이 있었다네.

더덕은 늘 캐고, 그것을 나누면서 즐거움을 찾고는 한다. 이번 산행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의 소득이 있었다. 능이버섯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참나무에서 서식하던 '노루궁뎅이버섯'을 발견한 것이다. 노루궁뎅이버섯은 그 모습이 노루궁뎅이와 비슷한 털을 갖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원숭이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후두고'라고 부르며, 일본에서는 '야시부시다케'라 부른다.

이 버섯은 줄참나무나 떡갈나무 등 활엽수의 줄기에 하나씩 자란다. 이 버섯은 복용을 하면 위궤양, 십이지장, 신경쇠약 등에 효과를 본다고 한다. 또한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암세포의 증식 등을 억제시키며, 노루궁뎅이버섯에만 있다는 성분들이 치매나 항암치료 등에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노루궁뎅이버섯. 참 희안하게도 생겼다. 항암효과를 갖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잔대'가 아닐까 한다. 잔대는 농약, 중금속, 화학약품, 뱀 등의 모든 독을 풀어줄 수 있는 약초이다. 옛 기록에도 잔대는 '백가지 독을 풀어주는 약초'라고 서술하고 있다. 잔대는 여성들의 산후풍과 가래, 해소, 천식 등에 특효약이라고 한다. 잔대는 반찬으로 늘 복용을 하면, 살결이 백옥같이 고와지고 희어진다고 하였다.


여성들에게 특히 좋다는 잔대(위)와 영지(아래)

영지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갖고 있다. 영지는 암종양의 성장을 억제하고, 혈압을 조절하고 혈당을 줄여 피를 맑게한다. 전염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높이며, 간을 튼튼하게 한다. 다양한 약효를 갖고 있는 영지는 우수한 약재로, 가장 활발하게 그 효능이 연구된 버섯이기도 하다.

산으로 올라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선물. 이런 것을 채취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인데, 그것보다 더욱 좋은 것은 스스로가 몸이 튼튼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과 동화될 때, 가장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땀을 흘리며 즐거움으로 채취한 자연의 선물. 이렇게 사는 것이 참 즐거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8월 11일부터 하기휴가이다. 딱히 휴가라고 해서 근사하게 계획을 잡아 놓은 것은 없다. 그저 나도 남들처럼 휴가라는 것을 한번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40대까지만 해도 직장이라는 것을 갖고 있었으니, 휴가철이 되면 한 달 전부터 그럴 듯한 계획을 세워 놓고는 했다. 그러다가 직접 자영으로 언론 쪽의 일을 하면서부터는, 휴가가 먼지 아예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먹어 새로운 직장을 가지면서 나도 남들처럼 ‘휴가’라는 것을 즐기고 싶었다고 하면, 참 속 좋은 소리 하고 있다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 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딱히 남들처럼 그리 즐거운 휴가계획은 아예 세워놓지도 않았다. 휴가란 말 그대로 일정기간 동안을 쉬는 일이니, 정말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뿐이다.


산을 오를 때 사용하는 배낭과 토시, 그리고 발 보호대

편히 쉬지 땀 흘리고 산은 왜 가?


“이번 휴가 어디로 가세요?”

“글쎄요 산에나 가려고요”
“아~ 등산 가시나 봐요”

“아닙니다. 그저 산에 올라 아무것이나 좀 캐려고요”

“그럼 약초를 캐시나요?”

“...... ”



삼과 더덕을 캘 때 사용하는 괭이와 12일 오른 산. 그 뒤편 안개에 가린 산을 올랐다.

더 이상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답이 없으니 질문을 하기도 멋 적은가보다. 그러나 내가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난 등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산에 꼭 일이 있어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쉬는 것이 무료해, 산삼이라도 한 뿌리 캐볼 심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난 심마니는 더욱 아니다.

     

“날 더운데 땀 흘리고 산에는 모하러 가”


아는 녀석이 볼멘소리를 한다. 물론 산에 오르면 땀이 비오 듯 쏟아진다. 남들보다 유난히 여름을 잘 타는 나로서는 산 밑에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먼저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런데도 산에 오른다. 남들은 그런 나를 말리기도 한다. 너무나 지치면 몸에 오히려 좋지가 않다는 것이다.


여주에 있는 아우 녀석의 집으로 휴가지를 잡았다. 근처 산에 올라 산삼이라도 캐 볼 심산이다. 12일 아침에 산을 오른다. 땀이 비오 듯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뜨거운 날씨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몇 시간을 산을 헤맸지만 삼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굵은 더덕 몇 뿌리를 캔 후 토종닭을 사서 백숙으로 만찬을 즐겼다. 깊은 산 중에서 캔 더덕은 그 향이 짙다. 백숙에서는 짙은 향내가 난다.


다음 날은 다리도 아프다. 전날 먹은 술이 아직도 몸 안에 남아있는데, 또 다시 산을 오르자고 사람들에게 재촉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어제 움직인 것도 지쳐있는데, 산을 또 가자니 누가 반길 것인가?




산에 오를 때 복장을 보면, 이건 나도 일류 심마니다. 등산화를 신고 다리에는 신발에 흑이 안 들어가도록 보호대를 찬다. 그리고 얼음물과 이온음료를 한 병씩 챙긴다. 배낭 안에는 허기가 질 것에 대비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도 준비한다. 여름에도 긴 옷을 입어야하지만, 요즈음에는 시원한 토시를 팔에 낀다. 그리고 삼을 캘 때 사용하는 곡괭이까지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다르다. 해가 있어도 어둡다. 계곡을 끼고 따라 오르다가 보면 더위가 조금은 가실 듯하지만, 워낙 빨리 산을 오르니 땀이 마를 새가 없다. 두 세 시간을 산을 타다가 보면 몸에서는 쉰내가 나기 일쑤다. 그래도 왜 그렇게 산을 올라야 하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몸은 가볍고, 주변 사람에게는 나눌 수 있어 좋다.


산을 오르면 무엇이든지 소득은 있다. 하다못해 더덕 몇 뿌리라도 캐오기 때문이다. 자연산 더덕을 입에 넣고 씹으면, 그 향이 짙어 목이 아릴 정도이다. 오늘도 산에 올라 두 시간여를 골짜기를 타고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큰 더덕 10여 뿌리를 캐면 블로거인 아우 녀석에게 택배로 보내 줄 심산이었다. 날마다 사진만 찍어 약을 올려놓았으니, 산삼은 그만두더라도 더덕이라도 보낼 줄 생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산을 뒤져도 눈에 뜨이질 않는다. 장소를 옮겨 보았지만 마찬가지다. 대신 영지버섯만 따왔다. 영지버섯은 왜 그리도 눈에 잘 띠는 것인지. 내일은 이것이라도 포장을 해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을 내려오면서 다짐을 한다. 아직 휴가가 이틀이나 남았으니, 내일은 또 다른 산으로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하다못해 새끼삼이라도 좋으니 그저 몇 뿌리라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나는 땀을 흘려 몸이 가벼워져 좋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수 있으니 더욱 좋은 것이 아닐까?


“아우야 기다려라, 영지버섯 착불로 보내 주꾸마”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