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교통 수원2013’에 아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행궁 광장 앞에 마련된 아이들의 공간에는 어머니와 함께 하거나, 아버지와 함께 탈것들을 타고 아이들이 즐거워한다. 생태교통에 아이들이 즐겨 탈 수 있는 전동차들이 마련되어 있고, 공간을 따로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생태교통 수원2013은 화석연료가 고갈이 되는 시기인 30~40년 후에, 어떤 연료를 이용하여 운송수단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공해가 없이 환경을 보존할 것인가 등을 준비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하기에 아이들이 이렇게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운송을 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인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

 

92일 오후 6시 경, 행궁광장. 아이와 함께 탈 수 있는 전동 자전거를 타고 있던 한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2인승 자전거를 타면서 즐거워한다.

아이와 함께 나왔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네요. 이렇게 펜스를 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서 안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생태교통이라고 해서 어른들만 보는 것만으로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탈 수 있어 너무 즐겁습니다.”라고 한다.

 

다만 어머니들이 아쉬움이 있다면 종료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퇴근 후 들렸다가 김아무개(, 43. 연무동 거주)씨는 부랴부랴 찾아왔는데,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간이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물론 퇴근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감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자만, 홍보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너무 준비에 소홀한 것 같다. 국제적인 행사라고 해서 당연히 밤늦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8시경 까지는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일찍 끝난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황당할 것만 같다.”고 의견을 말하기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 듯

 

3일 오전 11시경. 생태교통 전시장에는 선생님을 따라 찾아 온 아이들이 몰려든다. 아이들은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한다. 아이들을 인솔해 온 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교육이 될 것 같다. 이 다음에 이 아이들이 자라면 어차피 당면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지금 이렇게라도 아이들이 생태교통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고 한다.

 

오전 11시 생태교통 거리인 화서문로.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던 이아무개()씨는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도로를 마음대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앞으로 이렇게 차가 없이 사람중심의 거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다.

 

 

아이들이 즐거운 생태교통. 그리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생태교통의 운송수단들. 생태교통이 인간에게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리고 인간중심의 도로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 생태교통 수원2013이 시작된 지 3. 행궁동 일원에는 점차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동력 자전거 등이 선을 보이고 있다. 자전거 택시를 타고 행궁동을 한 바퀴 돌았다는 한 관람객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정말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을 줄이고, 자전거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권유를 해야겠다.”고 한다, 생태교통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막(廬幕)’이란 오두막집을 말한다. 사람이 기거하기 위해 짓는 정상적인 집이 아니라, 임시로 필요에 의해 일정기간 사용을 하는 움막이다. 그런데 이 여막은 일반적인 움막과는 다르다. 바로 선조의 묘 옆에 짓는 집이기 때문이다. 여막에서 생활을 하는 것을 우리는 ‘시묘살이’리고 부른다.

‘시묘(侍墓)’란 말 그대로 묘를 섬긴다는 뜻이다. 즉 성분을 하고 난 후 그 서편에 여막이라는 초막을 짓고 3년을 평소처럼 부모님을 모신다는 뜻이다. 시묘는 효의 근본이며, 가장 힘든 상례 중의 하나이다. 하기에 시묘를 마친 자손을 사람들은 극진히 대우를 하기도 했다.


2대에 걸친 시묘를 한 조씨일가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소재한 문의문화재단지. 단지 안에는 묘와 함께 여막 한 채가 지어져 있다. 이 여막은 묘소 또는 혼백이나 신주를 모신 ‘궤연’ 가까이에 지어놓고, 탈상을 할 때까지 3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묘를 보살피는 것이다.

이 여막은 청원군 강내면 연정리에 한양 조씨 문중의 조육형과, 2000년 4월 작고한 부친 조병천이 대를 이어 시묘를 하였던 곳이다. 이 여막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고 있어, 효의 근본으로 삼고자 현지에 잇던 여막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을 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특히 부친 조병천은 1957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묘소 곁에 여막을 짓고 3년간이나 시묘를 하였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생식을 하면서 견디었다는 것이다. 선친묘소에 공장이 들어서자 이장을 하고 난 후, 또 다시 여막을 짓고 3년간을 다시 시묘를 했다고 한다.

효의 근본이 되는 여막

여막은 돌과 흙, 그리고 짚을 이용해 지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눈비를 피할 수 있고, 겨울 추위를 막기 위해 돌을 쌓아 단단하게 지은 움막이다. 한편에는 불을 땔 수 있도록 하였으며, 안에는 만장과 상복 등이 걸려있다. 안은 제상 위에 음식들이 차려져 있고, 하루에 세 차례씩 제상을 차리고 상식을 올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이라는 세월을 묘를 지키며, 생활을 일체 접어야 한다는 시묘살이. 요즈음에도 시묘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 방송 등에 소개를 한 적도 있다. 효의 가장 근본이 된다고 하는 여막과 시묘.

아마도 ‘시묘’라는 말도 어찌 보면 ‘시집’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살이’라고 하는 것도 ‘시묘살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도합 9년을 보내야 시집살이에서 조금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말의 뜻처럼, 시묘살이도 그와 같은 힘든 나날은 아니었을까?


요즈음 패악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을 보면서, 여막과 시묘살이라는 것이 새삼 얼마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문의문화재단지 안에 소재하고 있는 여막. 물론 재현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우리의 부모에 대한 효에 대한 깊은 뜻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해본다.

스님이 한 분 계시다. 가끔 답답할 때 전화라도 드리면, 곧잘 우스갯소리를 해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시고는 한다. 나잇살깨나 먹어 세상을 살다가보니 사는 것이 점점 버거워진다. 아마 물질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심적인 부담이 더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며칠 째 감기몸살로 인해 사람이 늘어져서인가? 괜한 우울증이 걸린 듯하다.

전화를 드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맑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린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일까? 스님께서야 세상 놓는 공부를 하신 분이시니, 머 세상에 좋고 나쁘고도 없으실 것만 같다. 문안인사를 드리고 다짜고짜 질문을 퍼부었다,

“스님, 세상살이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스님 잠잠하시다. 딴 때 같으면 바로 한 마디 하시는 분이시다. 농담 삼아 한 마디씩 주고 받는 대화 속에 은연 중 세상살이 공부를 알려주시고는 하시는 분이라,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을 한다.

“하감독님(스님들은 예전 프로덕션에 있을 때 호칭을 지금도 쓰신다) 요즘 많이 힘든가보네요. 그러니까 곡차 좀 조금씩 하라니까요”
“곡차는 머 좋은 사람하고 만나면 한잔씩 하지만, 요즈음은 거의 안마시고 지냅니다.”
“그럼 곡차 부족인가? 하하... 아마 길 위로 나가면 곧 나아질 병인 것을. 요즘 바쁘다고 답사를 오래 안가서 그런 것 같네요.”
"그렇지가 않아요. 영 죽겠다니까요“
“그럼 죽어야지. 사람이 죽을 때를 잘 가려야 세상을 잘 살다가는 것이라는데”

늘 이런 식이다. 답답할 때 전화를 드려도 시원한 해법은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농 비슷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보면 어느새 속이 조금은 풀려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세상살이 한 번 이야기 해 볼까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전화를 주셨을까?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이렇게 심각하게 말씀을 시작하면 열띤 법문을 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말을 피하고는 하는 나이다.

“세상살이를요?”
“예, 이 세상에는 딱 세 종류의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어요”
“세 종류라뇨?”
“첫 번째는 부모님을 잘 만나 살아생전에 돈 걱정 안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우리가 흔히 재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은 절대 굶지는 않을 테니, 자신들의 생은 살아갈 수가 있겠죠.”
“예,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럼 두 번째는 무슨 사람들입니까?”
“두 번째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잡스 같은 사람들이죠. 실력이 남보다 출중해 자기 스스로가 이룰 수 있는 사람들도 살아남을 수 있죠. 우리나라 같은데도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고 하네요. 아이티산업 쪽에는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개발을 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공감이 갑니다. 세 번째가 정말 궁금하네요. 세 번째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세 번째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특별한 공부를 했다거나 기술도 없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이 사람들이 사실은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고, 세상을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라고 보아야죠.”

이쯤 되면 이 세 번째 부류라는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스님은 세 번째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으로 구분을 지은 것일까? 대답을 듣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니 재촉을 할 수밖에.

“세 번째는 바로 쓰리기통에 거꾸로 처박아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은 실패를 해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가 있으니까요. 아마 이런 세 부류의 사람들만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보이네요. 특히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더 더욱 그렇죠.”

우리는 어느 부류에 속해있을까?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잠시 생각을 놓고 있는데, 말씀이 이어지신다.

“요즈음 젊은 부모님들 정말 큰일예요”
“왜요? 요즘 젊은 부모님들 아이들 잘 키우잖아요?”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바보로 만들고들 있어요. 그 부모님들 재산이 무척 많아요? 아님 아이들을 남보다 출중하게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하나요? 그것이 아니라면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받자만 하고 키우고 있으니, 그 아이들이 자랄 때 쯤엔 세상이 정말 험해질 텐데, 아이들이 어떻게 헤쳐 나갈 수가 있겠어요? 그 때까지 그 부모님들이 명을 버틸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무조건 받자를 하면, 아이들이 어려서 부터 부모님께 의지하는 마늠만 키우는 것이예요. 아주 어릴 적에는 사랑으로, 그리고 조금 지나면 스스로 일을 처리하도록 가르쳐야죠. 아이들 그렇게 키우면 부모님들이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긴 통화가 끝났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혹 나도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부류는 아니었을까? 오늘은 정말 이 말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만 할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전주는 요즈음 시내버스가 파업 중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난 듯하다. 시내를 나가지를 않으니 버스를 탈 일이 별로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시에서는 해결책으로 전세버스를 긴급 투입하고는 있지만, 그도 버스가 운행을 하는 때만 못하다. 예전에 20분이면 오던 버스가, 30분 이상을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날씨까지 추운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발을 동동거리며 차를 기다리다가 보면
, 괜한 성질도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성질을 참고 있는데, 옆에서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내 자식이지만 정말 밉구먼.’이라니. 처음에는 버스가 자주 안다녀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기에, 아드님이 버스 기사분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방역을 하기 위해 하루종일 마을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휴대폰사진) 

구제역으로 자식 얼굴 보기를 포기하다

구제역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다. 뉴스에서는 해당부서 장관이 나와 구제역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다고 한다. 온 나라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에, 조속히 마무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어안이 멍멍하다. 그렇게 조속히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사람의 애를 태운 것인지 모르겠다.

나야 축산업자도 아니고, 구제역에 대한 지식도 무지하다. 그저 구제역이라는 것이 네 굽을 가진 짐승들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정도만 알뿐이다. 그 구제역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가는 곳마다 방역을 하느라 난리법석을 피운다. 예전보다 참 오랜 기간 동안 구제역이 창궐을 하고, 수많은 소, 돼지들이 살아있는 대로 땅에 묻혔다. 지하수에서도 핏물이 섞인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무엇이 어찌 되어가는 것인지, 정말로 하루하루가 불안스럽기 만한 요즈음이다.

호남과 제주도만이 청정지역이라고 한다. 이번 설 연휴에 많은 사람들이 귀향을 하면서, 구제역이 이곳에도 화를 미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죽하면 명절인데도 고향을 떠나 외지에 나가있는 자손들을 향해, ‘이번 명절에는 제발 고향에 내려오지 마라. 절대로 와서는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일까?


부모님의 마음에 상처를 준 행동은 해외여행

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갸갸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구먼.”
그래도 소 몇 마리 살리려고 오지 말라고 했다고, 지 어미애비 속 아픈 줄도 모르고 그런 델 가야 혀

그럼 고향에도 못 오는데, 해외라도 나가면 고향에 와서 부모 못 보는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가 보지 멀 그려

암튼 철이 없어. 부모들은 가심을 조이고 있는데, 해외여행이 당키나 헌 것이여. 내 자식이지만 정말로 밉구먼
.”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이번 명절은 징검다리 명절이라고 한다. 길게는 일주일 정도를 쉬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제역으로 인해 외지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자손들에게, 고향으로 내려오지 말라고 부탁이라도 한 모양이다. 자손들이야 그런 시간을 이용해 해외여행이라도 하겠다는 것이고. 부모님들이야 어렵게 살림살이를 하면서 집안에 식구처럼 살아 온 가축을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그런 시간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자손들에게 마음이 아프신 것이다.

이번 연휴에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커다란 짐을 꾸려 줄을 서서,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을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구제역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소를 짓게 만들었나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모든 일들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한편에서는 좋아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꼭 한 가지는 부탁을 하고 싶다. 아무리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제발 이웃의 아픔을 조금만 이해를 하고 살자는 것이다. 내가 아프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자칫 나에게도 언젠가 돌아올 수 있는 일이다. 구제역으로 인해 고향을 가지 못해 마음이 아픈 자손들이나, 혹 불똥이라도 튈까봐 절대로 내려오면 안 된다는 어른들. 그 마음을 조금만 이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제 저녁 평소 존경하는 스님과 동석을 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즈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을 정말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자, 스님께서는 아이들을 탓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셨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잘 키우는 것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인 사람들 중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결국은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정답인 듯하다. 단순히 모인 자리가 법문을 듣는 자리로 변해버렸지만.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지금 부모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것만 같다. 그 자리에서 나온 아이들을 잘 키우는 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모를 따라 운조루에 들린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꼭 필요하다.
 

1. 내 아이를 믿어라.

내 아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소중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부모들의 행동을 보면, 그 아이가 소중하다는 것이 허구임을 볼 수 있다. 내 아이가 소중하다면 내 아이를 믿어라. 부모도 믿지 못하는 아이를 누가 믿어줄 것인가? “난 너를 믿는다. 네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난 너를 믿는다. 네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는 믿음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부모가 그런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아이들이 조심을 하게 되고 그 믿음대로 행동을 한다는 것. 결국 부모의 믿음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을 갖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 잘못을 하였으면 깨우쳐 주어라.

아이들은 늘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은 없다. 만일 아이가 잘못을 했다고 하면, 혼을 내기 전에 왜 그것이 잘못인가를 깨우쳐 주어야만 한다. 무조건 적인 혼냄은 아이에게 반감만 일으킬 뿐이다. 아이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가를 알려주지도 않고, 혼을 먼저 낸다는 것은 부모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행동이다.

3. ‘네가 최고’라는 말은 절대 금지하라.

내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네가 최고라는 말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세상에 최고란 있을 수가 없다. 최고란 자리는 항상 불안하고, 그 자리는 인간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이기 때문이다. 최고라고 추켜세우기 보다는 ‘너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라는 말로 아이에게 용기를 주어라. 최고는 떨어질 수가 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등급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예의를 모르는 아이는 사회성이 없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부모에게서 나온다. 부모가 예의를 차릴 줄 모른다면, 그 아이들은 절대로 예의를 알 수가 없다. 예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집안에서 부모들이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행동을 그대로 본받게 된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예의를 모르는 아이들은 사회성이 없다. 예의를 차릴 줄 모르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곳이 바로 사회이다. 예의를 알지 못한다면 사회에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집안에서 부모들의 예의범절을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들. 그 아이가 잘못 되는 것은 결국 부모의 책임이다. 모든 것을 사회가 잘못 되었다고 핑계를 대지마라.

5. 함께 여행을 떠나라.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이들은 평소에 집안에서는 하지 못하는 말들도, 여행길에서는 다 할 수 있다. 그런 여행에서 마음을 열수가 있다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아이들은 함께 길을 걸으면서 동등한 동반자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 인지는 곧 믿음이 된다. 하기에 아이들과의 여행은 중요하다.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여건이 되질 않는다.”라고. 하지만 세상에 나에게서 태어난 아이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여건은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만드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 내가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아이 소중한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부모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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