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막(廬幕)’이란 오두막집을 말한다. 사람이 기거하기 위해 짓는 정상적인 집이 아니라, 임시로 필요에 의해 일정기간 사용을 하는 움막이다. 그런데 이 여막은 일반적인 움막과는 다르다. 바로 선조의 묘 옆에 짓는 집이기 때문이다. 여막에서 생활을 하는 것을 우리는 ‘시묘살이’리고 부른다.

‘시묘(侍墓)’란 말 그대로 묘를 섬긴다는 뜻이다. 즉 성분을 하고 난 후 그 서편에 여막이라는 초막을 짓고 3년을 평소처럼 부모님을 모신다는 뜻이다. 시묘는 효의 근본이며, 가장 힘든 상례 중의 하나이다. 하기에 시묘를 마친 자손을 사람들은 극진히 대우를 하기도 했다.


2대에 걸친 시묘를 한 조씨일가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소재한 문의문화재단지. 단지 안에는 묘와 함께 여막 한 채가 지어져 있다. 이 여막은 묘소 또는 혼백이나 신주를 모신 ‘궤연’ 가까이에 지어놓고, 탈상을 할 때까지 3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묘를 보살피는 것이다.

이 여막은 청원군 강내면 연정리에 한양 조씨 문중의 조육형과, 2000년 4월 작고한 부친 조병천이 대를 이어 시묘를 하였던 곳이다. 이 여막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고 있어, 효의 근본으로 삼고자 현지에 잇던 여막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을 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특히 부친 조병천은 1957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묘소 곁에 여막을 짓고 3년간이나 시묘를 하였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생식을 하면서 견디었다는 것이다. 선친묘소에 공장이 들어서자 이장을 하고 난 후, 또 다시 여막을 짓고 3년간을 다시 시묘를 했다고 한다.

효의 근본이 되는 여막

여막은 돌과 흙, 그리고 짚을 이용해 지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눈비를 피할 수 있고, 겨울 추위를 막기 위해 돌을 쌓아 단단하게 지은 움막이다. 한편에는 불을 땔 수 있도록 하였으며, 안에는 만장과 상복 등이 걸려있다. 안은 제상 위에 음식들이 차려져 있고, 하루에 세 차례씩 제상을 차리고 상식을 올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이라는 세월을 묘를 지키며, 생활을 일체 접어야 한다는 시묘살이. 요즈음에도 시묘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 방송 등에 소개를 한 적도 있다. 효의 가장 근본이 된다고 하는 여막과 시묘.

아마도 ‘시묘’라는 말도 어찌 보면 ‘시집’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살이’라고 하는 것도 ‘시묘살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도합 9년을 보내야 시집살이에서 조금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말의 뜻처럼, 시묘살이도 그와 같은 힘든 나날은 아니었을까?


요즈음 패악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을 보면서, 여막과 시묘살이라는 것이 새삼 얼마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문의문화재단지 안에 소재하고 있는 여막. 물론 재현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우리의 부모에 대한 효에 대한 깊은 뜻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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