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 8도의 파워 소셜러들이 수원에 모였다. ‘12로 수원을 체험하고, 그것을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수원을 홍보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 한 마디로 결과는 상당히 좋았다. 역시 파워 블로거들이라는 것이 실감나게 만들었다. 결국은 그런 연유로 인해 KBS-2TV 리얼 버라이어티 ‘12이 수원을 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8도의 파워 소셜러들이 또 다시 수원으로 모인다. 이번에는 인원이 지난번과 많이 교체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거는 기대 또한 크다. 또 다른 ‘12의 코스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물론 그 중에 화성과 무예 24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것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수원을 상징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대가는 돌아오기 마련

 

31(), 모처럼 맞는 쉬는 날이지만 수원시 정책홍보담당관실 SNS팀 박사승 팀장과 조남진 주무관, 그리고 본 기자가 10시에 수원시청을 나섰다. 8도 파워 소셜러들이 12로 관람을 할 동선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이다. 사실 이번 KBS-2TV 리얼 버라이어티 ‘12의 수원편을 유치하는 데는 박사승 SNS팀장의 활약이 대단했다.

 

당시 e홍보팀장인 박사승 팀장은 5일간이나 12일의 작가들과 '새피디(본명 최재형PD)' 등과 함께 수원의 여기저기를 수도 없이 돌아다니면서,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촬영 중에도 눈길에 팔달산으로 차가 올라가지 못하자, 이리저리 뛰면서 안전한 길로 인도를 하는 등 엄청난 고생을 하기도. 물론 숙소인 사랑채의 수원문화재단 식구들도 함께 고생을 했지만.

 

그러고 보면 무엇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는, 참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수원을 홍보하기 위해 정책홍보담당관실의 모두가 마음을 더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또 다른 ‘12동선을 다녀보니

 

첫날의 일정은 화성에서 이루어진다. 316() 오후 1시에 수원시청에 집결한 8도 파워 소셜러들은, 버스로 팔달산 남측에 있는 수원중앙도서관으로 이동. 그곳에서 산길을 오르면서 경기도 문화재 자료인 고인돌군과 화성 축성 당시 성돌을 떼어 낸 흔적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용도 남쪽 끝에 있는 화양루(서남각루) 밖에서 성 밖을 따라 서장대 쪽으로 걷다가, 관광안내소 앞에서 화성의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서남암문을 들어서 용도를 따라 화양루까지 갔다가 돌아 나와, 팔달문 방향으로 내려가게 된다.(지난 해 파워 소셜러 화성 답사 때와는 반대편을 걸었다) 중간 화성열차가 다니는 성신사까지 걸어 참례를 한 후, 행궁 앞에서 펼쳐지는 무예 24기를 관람한다.

 

무예 24기 시연을 보고 난 후, 일행은 행궁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행궁의 9곳에 마련되어 있는 관람 스탬프를 찍어, 담당자에게 먼저 갖고 오는 2명에게 수원문화재단 라수홍 대표이사가 직접 기념품을 전달하게 된다. 이 또한 지난번과는 달리 관람과 재미를 두 배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했다.

 

 

재래시장과 야경도 일품

 

행궁 미션을 마친 일행은 지동교를 거쳐 재래시장으로 이동을 한다. 이곳에서는 한 시간 정도를 각자가 재래시장의 이모저모를 촬영을 한다. 이번 8도 파워 소셜러들은 여행 전문 블로거들이 대거 참여하여, 질 높은 사진으로 수원을 홍보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지동 제일교회 노을빛 전망대에 올라 수원 야경을 다시 한 번 관람한다.

 

일몰과 야경을 관람하고 나면 수원왕갈비로 저녁을 먹게 된다. 그리고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의 야경을 구경한 후 서장대에 올라, 수원의 또 다른 야경을 보는 것으로 첫 날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둘째 날은 만석거와 노송지대, 해우재로 이동

 

둘째 날인 17()에는 아침을 먹은 후 만석거로 이동을 한다. 만석거에서는 영화정과 수문을 답사 한 후, 수원미술관에서 차에 승차 노송지대를 거쳐 해우재를 관람한다. 해우재에서는 또 다른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래저래 수원은 어딜 가나 볼거리 천지이다. 이렇게 8도의 파워 소셜러들이 수원을 한 번 다녀갈 때마다 수원을 홍보하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수원을 찾아오게 된다.

 

그저 아침에 내려왔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수원이 아니라, 오밀조밀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잔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원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12시에 지동시장 순대타운에서 점심을 먹은 후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되는 ‘8도 파워 소셜러 수원 팸투어’, 이번에도 기대가 큰 것은 지난 번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꽃샘추위가 몰려와 바람도 불고 기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318도 파워소셜로 들이 돌아 볼 동선을 따라 걸으면서 생각을 한다. 지금 시대는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를 할 수 있는 SNS, 일시에 많은 시청을 할 수 있는 방송이라는 매체가 대세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역할을 함께 하는 파워 소셜러들의 공존이 정말 필요할 때라는 것을.

KBS의 '1박 2일'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담당PD가 바뀌고 출연자들이 바뀌면, 처음에는 모두가 낯설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즈음 1박 2일을 보면, 나름대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참에 KBS 1박 2일 제작진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먼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바로 코앞에 아름다운 화성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복불복게임’을 할 수 있는 수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재미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고 안 오고는 전적으로 방송제작 담당자들의 몫이지만.

 

화성 연무대 앞에 마련된 활쏘기 체험장에서는 저녁 잠자리 복불복을 할 수가 있다. 무예24기 단원 7명과 1박 2일 출연진 7명이


 

왜 수원이 1박 2일에 좋을까?

 

우선은 수원은 거리상으로는 가깝다고 하지만, 정말 좋은 1박 2일의 코스가 있다. 아름다운 수원 화성과(낮과 밤이 전혀 다른) 행궁, 그리고 벽화골목과 수원갈비, 순대타운 등 복불복에 필요한 조건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1박 2일의 진행에 적합하다는 것일까?

 

1박 2일의 멤버로는 김승우, 엄태웅, 이수근, 차태현, 성시경, 김종민, 주원 등 7명이다. 수원에는 무예24기 단원들이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무예 24기를 연마한, 과거 장용영의 병사들이 하던 무술이다. 이들 중 7명과 함께 1박 2일 동안 시합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한 수는 접고 시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화성열차를 타고 30분 정도 화성구경을 할 수가 있다. 여기서도 문제를 제출해 14명의 사람들 중 절반은 화성열차를 타고, 남은 사람들은 화성을 걸어서 성신사까지 이동을 하면 된다. 


서장대에 어르면 수원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는 화성에 대한 문제를 제출해 저녁 복불복을 할 수가 있다. 이긴 사람은 수원갈비로 진 사람은 알아서....  


 

제일먼저의 복불복은 연무대 앞에 마련된 활쏘기 체험장에서 시작을 할 수 있다. 각자에게 화살을 쏘게 해 복불복을 하는 것이다. 이긴 편은 행궁의 방에서 취침을 하고, 진편은 당연히 마루에서 한데 잠을 자는 것이다. 1박 2일이 즐겨하는 ‘잠자리 복불복’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화성열차를 타고 성신사로 이동을 하면 된다. 여기서도 문제를 맞춘 사람은 열차를 타고. 못맞춘 절반은 화성을 걸어가면 된다.

 

성신사에서 서장대로 걸어 올라가면 수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서 또 한 번 시합을 할 수가 있다. 바로 화성에 대한 상식을 묻는 게임이다. 이긴 편은 당연히 수원의 자랑인 ‘수원갈비’를 먹을 수가 있고, 진편은 제작진이 알아서 준비를 해주면 된다. 그리고 화성을 걸어본다.

 

 지동 벽화골목은 한창 조성중이다. 이곳에 1박 2일팀의 벽화를 남겨놓으면 보는 사람들에게 홍보만점이다.


 지동교회 종탑인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원 화성이다. 행궁과 화성박물관 등이 보인다.


 

지동 벽화골목으로 오면 요즈음 자원봉사자들의 그림봉사가 한창이다. 이곳에 1박 2일팀의 벽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두고두고 기억이 될 만하다. 그리고 나서 지동교회 노을빛 전망대에 올라 수원과 화성의 야경을 관람한 후, 화성의 야경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다. 낮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24기 무예를 배울 수 있는 시간도

 

첫날 일정을 마치고나면 화성 행궁에서 낮에 활쏘기에서 이긴 사람은 방에서, 진 사람은 야외취침을 하게 된다. 또한 행궁의 이모저모를 돌아볼 수가 있어, 다양한 우리 고건축과 정조대왕의 효심 등을 알릴수가 있다. 요즈음 말초신경만 자극하고 있다는 방송사가 제대로 된 효(孝)와 충(忠)이 무엇인가를 시청자들에게 일깨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군가 이런 표현을 했다. '화성의 야경은 처절하리만큼 아름답다고..' 야경을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그 아름다움은 충분한 영상을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이튿날 아침에는 무예24기 단원들에게 장용영의 무사들이 익혔다는 무예도 배워볼 수가 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무예24기 단원들을 따라 24기 무예를 배우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다. 그 또한 아직껏 접해보지 못한 1박 2일의 재미를 더할 수 있는 부분이다. 11시부터는 행궁의 신풍루 앞에서 시연하는 24기 무예를 관람한 후, 수원천을 따라 지동 순대타운에 가서 전골 등을 먹을 수가 있다.

 

이렇게 좋은 1박 2일 코스가 있는 수원. 왜 이곳을 선택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너무 좋은 곳이 많은 우리나라라고 하지만, 역사와 아름다움, 효와 먹거리, 그릴 것과 즐길거리, 이런 것들이 완벽하게 준비기 되어있는 수원이다.

 

1박 2일 팀, 수원으로 오라!, 와서 7명의 멤버들과 장용영의 후예들이 한 판 붙어보자. 물론 ‘복불복’으로.

제49회 수원 화성문화제가 10월 4일 오후 8시부터 방화수류정 성 밖 용연에서 전야제인 ‘용연지몽1’을 시작으로, 5일부터 7일까지 화성행궁과 화성 화홍문, 방화수류정, 수원천 일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번 화성문화제에서는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과 개혁에 대한 꿈으로 축성된 화성에서, 정조대왕의 품었던 그 꿈을 아로새기고자 마련했다.

 

‘화성, 꿈을 품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제49회 수원 화성문화제는, 10월 5일에는 화령전에서 열리는 ‘작헌의‘와 ’정조대왕 능행차‘ 등이 준비되어 있으며, 10월 6일에는 ’정조대왕 친림 과거시험‘의 모습을 봉수당에서 볼 수가 있다. 셋째 날인 10월 7일에는 봉수당에서 열리는 ’혜경궁홍씨 진찬연‘의 모습이 재현 될 예정이다.

 

 

 

축제에 모인 분들에게 수원천을 권하고 싶다

 

3일 동안 열리는 화성문화제에는 외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온다. 수원을 찾은 그 분들께 꼭 한 곳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주변에는 이런 저런 것들을 볼 것들이 많지만, 이왕 이곳에 왔으면 이것만은 꼭 한 번 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문화재를 찾아가는 길에 꼭 하나 고집하는 것이 있다. 가급적이면 문화재 앞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지 말고, 조금쯤은 걸어서 가라고 권유한다. 조금 땀을 흘리고 난 뒤 만나게 되는 문화재, 그래야 조금 더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남수문에서부터 수원천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갖가지 생태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우선은 천변 양편으로 난 길이 풀로 뒤덮여 있다. 천천히 물소리를 따라 걷다가 보면,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한다. 그 뒤로는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유영을 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새로 조성중인 다리 밑 벽화

 

조금 올라가다보면 매향교 밑을 지나게 된다. 아직은 완성되지가 않았지만, 이 다리 밑에는 벽화작업이 한창이다. 수원청개구리의 일화도 만날 수가 있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손짓을 한다. 매향교 옆에는 수원화성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재미를 쏠쏠하게 느낄 수가 있다.

 

 

 

조금 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며 옛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줄 수도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건너보는 징검다리. 아마도 50여 년 전쯤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아닐까? 북수문인 화홍문에 도착하기 전에 물오리 등도 만나게 되는데, 운이 좋으면 재두루미 부부와 만날 수도 있다.

 

‘방화수류정’, 이름만으로도 아름답다

 

수원 화성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들라고 하면 당연히 방화수류정이다. 방화수류정은 화성의 네 곳에 있는 각루(角樓) 중 하나로 동북각루이다. 방화수류정은 1794년 9월 4일 터 닦기를 시작으로 그 해 10월 19일에 완성을 하였으니, 200년이 지난 역사를 갖고 있다.

 

 

 

화성은 자연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가장 큰 조형물이라고 한다. 화성의 아름다움이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어느 곳 하나 자연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쫒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아름다운 정자이다. 성벽 밑으로는 용연을 파서 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하고, 옆으로는 흐르는 버드내 위에 화홍문을 세워 그 주변 경관과 함께 아름다움을 더했다. 누마루로 깐 정자에 올라서면 사방의 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방화수류정의 또 다른 멋이다.

 

방화수류정의 동편 바로 옆으로는 북암문이 있어, 쉽게 용연을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화성의 암문은 깊고 후미진 곳에 설치한 비밀 문으로, 적이 모르게 가축이나 사람들을 통용할 수 있도록 낸 문이다. 그러나 이 북암문을 이용하면 방화수류정에서 용연까지 가장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가 있다.

 

 

 

용연은 방화수류정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용연의 가운데는 인공 섬을 만들어 놓았으며, 전체적인 조화를 보이는 이 용연과 방화수류정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성중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10월 5일부터 3일간 막을 올리는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 구경도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 수원천 길을 걸어 방화수류정에 올라보자. 또 다른 즐거움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화성을 걷다가 보면 서문인 화서문서부터 동문인 창룡문 사이에는 유난히 많은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이곳이 평지이다 보니 그만큼 많은 대비를 해야 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반화수류정과 용연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꼭 밤에 달빛이 교교하게 흐르는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만일 방화수류정에서 용연으로 나오고 싶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 바로 옆에, 숨겨진 문인 북암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문의 문루 위에 쌓은 아치형의 용도는?

 

암문은 대개 숨겨 놓았다. 그러나 북암문은 성벽이 양편에 돌출되었을 뿐이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작은 성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양편을 검은 벽돌로 쌓은 성벽 안에 움푹 들어가 있는 북암문은 방화수류정에서 동편으로 40보의 거리에 있다. 안과 밖은 모두 검은 벽돌로 쌓았는데, 문의 위에는 둥그렇게 아치형으로 아름답게 꾸몄다.

 

암문은 비상시에 군사들의 빠른 이동 등을 고려해 만든 성문이다. 더 견고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저렇게 문 위에 아치형으로 벽돌을 쌓아야만 했을까? 물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그 아치형으로 쌓아올린 벽돌의 쓰임새는 더 중요한데 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적이 문을 공격해 오면 아치로 된 벽돌을 무너트려 성문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아름답기만 한 아치형의 구조물이 이런 쓰임새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감히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화성을 겉도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원하게 터진 조망을 바라보는 즐거움

 

북암문을 지나면 갑자기 성이 용틀임을 하며 위로 오른다. 지형이 갑자기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곳은 성 돌을 잘 다듬지 않고 막쌓기를 한 구간이다. 그런 모습이 비탈을 오르는 나그네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돌출 된 치성 위에 올려 진 전각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병사들이 쉴 수 있는 ‘동북포루’ 창룡문을 향해 걷다가보면 이곳은 비탈 위에 축성을 하였고, 동북포루는 그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다. ‘각건대’라고도 부르는 이 동북포루 위에 앉으면 앞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 어떤 지형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 바로 화성이다.

 

 

 

동북포루는 아래는 돌로 쌓고 그 위는 검은 벽돌을 이용해 3단으로 쌓아올렸다. 그리고 그 안은 공간을 만들었으며, 총안 구멍 19개와 누혈 11개를 조성하였다. 치성 위에 잇는 병사들을 보호하고 쉬는 공간이지만, 이곳으로 몰려드는 적에게는 참으로 소름돗는 구조물이 아닐 수가 없다.

 

또 하나의 암문, 동암문을 지나다.

 

그 성곽을 따라 걷다가 보면, 푸른 이끼가 낀 성 돌과 하얀색의 성 돌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200년 전의 역사와 현대가, 사이좋게 몸을 부딪치며 성을 이루고 있는가 보다. 그 돌 틈 사이사이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 그저 아무렇게나 성 돌에 기대어 살고 싶은 생명들이다.

 

 

 

밑으로 경사가 진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또 하나의 암문이 나타난다. 바로 동암문이다. 이 동암문 역시 북암문과 같은 형태로 조성이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치 양편에 비예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암문의 너비는 말 한필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꾸며놓았다.

 

각건대부터 동암문을 지나 연무대인 동장대 밖을 걷는 성 길을 돌아본다. 마치 뱀이 기어가 듯 구불거리는 성곽의 형태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듯한, 생명들이 자라고 있다. 마치 생명 없는 성 돌이 그 생명을 품어, 스스로 살아나려고 하는 것처럼.

 

 

 

저만치 성벽 위에 동장대의 지붕이 보인다. 그리고 동장대 밑으로 가면 비스듬한 비탈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서서 동장대를 훔쳐보고 있다. 화성의 성 밖 나무들은 왜 그리도 성을 탐한 것일까? 아마도 화성 겉돌기를 하는 내내, 그 해답은 얻어질 것 같지가 않다.

화성 중에서 가장 큰 조형물은 장안문이다. 밖에서 바라다보는 장안문의 위용은 역시 ‘장안문 답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장안(長安)’이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 장안문은 화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문인 창룡문이 화성의 백성들의 출입을 관장하는 문이라면, 북문인 장안문은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목에 서 있는 문으로 정조 이산의 꿈이 그곳에 서려있는 문이기도 하다.

 

밖에서 볼 수 있는 옹성의 벽은 양 옆면에 총안과 현안을 둔 ‘철형여장(凸形女墻)’을 쌓았다. 옹성의 중앙에는 성문과 맞추어 홍예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5개의 원형구멍을 낸 오성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양 대문 모두 안쪽으로 정면과 측면이 각각 한 칸인 누각을 세웠다.

 

 

 

장안문에 담긴 정조의 큰 뜻은?

 

장안문에 걸린 편액은 참판을 지낸 조윤형이 썼다고 한다. 서울의 숭례문과 같은 형태로 조성을 하였다는 이 장안문은, 우리나라 성곽의 문루 중에서 장점만 따서 축조를 했다고 한다. 하기에 가장 견고하고 웅장한 것이 바로 화성의 장안문이다.

 

정조는 왜 화성의 북문을 ‘장안문’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1794년 2월 28일, 화성유수부의 북쪽, 장안문을 축조하기 위한 자리에서, 이유경은 북문 성곽 터에 제단을 쌓고 고유제를 올렸다. 원래 장안문을 세울 자리는, 현재 장안문의 자리가 아니었다. 처음에 정약용이 계획한 화성의 길이는, 3,600보인 4.2km였기 때문이다.

 

1794년 1월 14일 화성의 공사현장으로 내려 온 정조는, 백성들이 살고 있는 민가에 깃발이 꽂힌 것을 보았다. 당시 장안문 앞에는 영화역이 있었고, 그 앞에는 장시가 이미 서 있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해 살고 있었다. 그런 곳에 무수히 꽂힌 깃발을 보고 그 이유를 물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채제공이 물음에 대답하기를, 화성을 축조하기 위해 백성들이 이주를 할 곳이라는 대답이다. 정조는 즉시 이곳으로 이주를 해온 백성들이 또 이주를 하는 불행을 겪지 않게 성벽을 구부렸다 폈다 반복해, 백성들의 민가를 다치지 않게 민가 밖으로 성을 쌓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곳서부터 방화수류정까지는 화성이 구불구불하고, 덕분에 성의 길이가 길어졌다.

 

 

장안문에만 있는 적대

 

장안문의 양편에는 적대라는 구조물이 서 있다. 화성의 적대는 두 곳으로, 각각 장안문의 좌우 53보 되는 곳에 있다. 적대 안에는 활과 불화살, 화창 등을 대 위에 갖추어 둔다고 하였다. 적대란 성곽의 중간에 약 82.6m의 간격을 두고 성곽보다 다소 높은 대를 마련하여 무기를 비치해 두기도 하고,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는 곳으로 옛날 축성법에 따른 성곽 시설물이다.

 

적대는 장안문을 보호하는 시설이다. 그리고 장안문에만 유별나게 적대라는 구조물이 양 옆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위에는 당시의 가장 강력한 화기인 홍이포가 북을 향해 시커먼 구멍을 열고 있다. 아마도 정조가 이 북문을 장안이라고 하고, 그 양편에 적대를 마련한 것은 상징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북벌의 상징 말이다.

 

 

 

성돌 들이 말을 걸어온다.

 

장안문을 지나 방화수류정 쪽으로 걷다가 보면, 성돌이 말을 하자고 덤벼든다. 휘어진 성벽 저 끝에 북동포루가 보인다. 북동포루는 화홍문 서쪽 124보 3척쯤 되는 거리에 있다. 포를 쏘는 구조물인 포루는 성의 몸체에 凸 자 모양을 붙여 치성과 비슷하게 하고, 그 위에 포사를 지었는데 3층으로 하여 그 가운데를 비운 점이 마치 공심돈의 구조와 비슷하다.

 

이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그 안에 화포를 많이 감추어 두어 위아래에서 한꺼번에 포를 쏘게 하였다. 생각을 해보라, 장안문을 공격하려고 덤벼드는 적들은 멀리서부터 곤욕을 치루어야 한다. 성문의 옹성에서 까맣게 하늘을 가리고 쏟아져 나오는 화살도 그렇지만, 양편의 적대와 포루에서 한꺼번에 쏘아대는 포는 그 위력이 대단했을 것이다.

 

 

포루를 항해서 걷다가 보면 성돌에 흔적들이 보인다. 성돌을 쪼아내기 위해 파 놓은 흠집이다. 그 안에 마른나무를 끼어 넣고 물을 부으면, 나무들이 불어나 돌을 쪼개는 것이다. 저 구멍들은 불평을 한다. 석공이 자릴 잘못 잡아 제 구실을 못하고, 이렇게 성벽에 얼굴을 내밀어 부끄럽다는 것이다.

 

수원팔경 중에 이경(二景)을 만나다

 

광교(光敎)에서 발원한 대천(=수원천)이 가로로 화성을 자르며 흐르고 있다. 이 대천이 여름 장마 때마다 범람하는 환난이 있었다. 그래서 성을 쌓기 시작할 때에 물길을 내는 일을 먼저 하였다. 넓혀서 소통을 시키고 7간의 홍예로 된 돌다리를 하천 위에 걸쳐서 설치하였다. 7개의 안팎 홍예 사이에는 각각 좌우에 돌기둥 4개를 세웠다.

 

 

화홍문이란 말 그대로 수문의 모양이 무지개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넘쳐흐를 때 생겨나는 물보라의 장관을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 하여, 수원 팔경 중에 하나로 손꼽힐 정도다.

 

동북각루는 북성(화성의 북쪽)의 서북 19보 용연의 위에 있다. 광교산의 한 쪽 기슭이 남으로 벋어내려 선암산이 되었고, 다시 서쪽으로 감돌아 몇 리를 내려가 용두에서 그쳐 북쪽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다. 용두란 것은 용연의 위에 불쑥 솟은 바위이다. 성이 이곳에 이르면 산과 들이 만나게 되고, 물이 돌아서 아래로 흘러 대천에 이르게 된다.

 

 

이 풍광에 술 한 잔 없다면, 어찌 사내라 할 것인가?

 

수원팔경 중에는 ‘용지대월’이 있다. 바로 이 용연 위에 달이 떠 비치는 아름다움을 그린 것이다. 동북각루에 걸린 편액에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 하였으며, 참판이었던 조윤형이 썼다고 한다. 화홍문에서 용연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다보면, 못의 서쪽에 석각 이두를 설치하였다. 이는 용여에 물이 많이 차면 이 이두로 물을 화홍문 밖으로 뿜어낼 수가 있는 시설이다.

 

용연은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했다. 둘레가 210보, 깊이 6척이고, 못의 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다. 못 위 성의 모퉁이에는 방화수류정이 있고, 정자 아래에 있는 바위는 옛날부터 용머리라 하여 낚시터로 삼을 만하다고 하였다. 이곳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일몰 후 14분이 지나면 화성은 온통 불빛으로 아름답게 채색을 한다.

 

 

의자에 앉아 조금 기다리고 있으려니 방화수류정이 갑자기 변해버렸다. 조명으로 인해 이런 모습으로 바뀔 줄이야. 이 풍광을 보고 술 한 잔 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내라 할 것인가? 이번에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바로 저 아름다움이 눈에서 가시기 전에, 풍광을 잊지 않고 곡차에 몸을 적시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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