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수원에는 모두 67점의 문화재가 소장한다. 이 중 국가지정 보물이 모두 11점으로, 보물 제14호인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와 수원화성 화서문, 팔달문, 방화수류정, 서북공심돈 등이 속해있다. 국가 사적은 3점으로 사적 제3호인 수원화성, 사적 115호 화령전, 사적 제478호 수원화성행궁 등 3점이다.

 

국가민속문화재는 장안구 파장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소재한 제123호 수원광주이씨 고택이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는 제69인 팔달문 동종(수원박물관) 26점이 있다.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는 제8호인 승무·살풀이춤 등 4, 경기도기념물은 제19호 노송지대 등 8점이 소재한다. 경기도문화재자료는 제1호 수원향교를 비롯해 모두 8점이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근대에 생성·건축된 유물 및 유적이 중점적으로 등재되어 있는 등록문화재는 모두 6점의 등록문화재가 있다. 등록문화재 제597호인 팔달구 교동 741에 소재한 구 수원문화원 건물과, 등록문화재 제598호로 지정되어 있는 팔달구 매산로 119(교동, 가족여성회관)에 소재한 구 수원시청사 등이 있다.

 

이중 불교관련문화재는 보물 제14호인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151호 봉녕사 석조삼존불, 152호 봉녕사 불화와 제221호 수원청년암 영산회상도, 경기도기념물 제225호 수원창성사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46호 수원청년암 아미타회상도, 147호 수원 청년암 신중도, 148호 수원 청년암 독성도, 149호 수원 청년암 산신도, 150호 수원 청년암 칠성도 등이 10점의 문화재가 소재하고 있다.

 

 

불교문화재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여행

 

항상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의미없는 여행은 그만두라고 권하고 싶다. 요즈음 사람들은 기동력이 좋기 때문에 차를 몰고 어디든지 돌아보기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 없이 떠난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이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아있을까? 여행은 다녀온 후 10년이 지나도 그 당시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하기에 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주제를 정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테마로 인근에 있는 관광명소를 돌아보면(그곳이 문화재가 되었던지 명소가 되었던지) 후일 정리하기도 좋고, 테마가 있는 여행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수원여행을 하면서 경치가 좋은 곳이나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을 여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한 가지 테마를 정해 돌아보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하기에 수원에 문화재로 지정된 많은 유산 중에 불교와 관련이 있는 곳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나 수원시청 홈페이지를 들려보면 자료는 충분하다.

 

 

보물 진국국사 탑비와 봉녕사, 청년암 등 하루에 돌아볼 수 있어

 

13, 일찍 길을 니섰다. 방화수류정을 오르는 길로 들어서면 삼일상업고등학교로 오르는 도로 좌측에 진각국사탑비가 자리하고 있다. 진각국사탑비는 원래 광교산 창성사 터에 있었다. 이 탑비는 고려 우왕 12년인 1386년에 명승인 진각국사(1307 ~ 1382)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로, 진각국사는 충렬왕 33년에 출생하여 13세에 화엄종 반용사에 들어가, 19세에 상풍선에 오른 고려 말의 화엄종사이다. 왕은 <대화엄종사 선교도총섭>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창성사가 폐사되어 1965년도에 이비를 현 위치인 방화수류정 인근으로 옮겼다.

 

탑비를 돌아본 후에는 인근 우만동에 소재한 봉녕사를 찾아가면 여행 동선이 편해진다.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248번지에 소재한 비구니의 요람이라는 봉녕사는 비구니 승가대가 있는 절이다. 봉녕사의 용화각에는 고려중기의 석불로 보이는 석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석조삼존불상은 대웅보전 뒤편 언덕에서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도중에 출토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되어있는 석조삼존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있다. 불상과 연화대좌는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하였는데,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다. 삼존불 모두 뚜렷한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오랜 시간 땅 속에 파묻혀 마모가 된 것으로 보인다.

 

봉녕사의 중심인 대적광전을 바라보고 좌측에는 약사보전이 자리하고 있는데 약사보전에는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52호인 봉녕사 불화 2점이 일괄 지정되어 있다. 약사보전에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는 바로 신중탱화와 현왕탱화이다. 봉녕사를 돌아본 후 조원동 광교산 자락에 위치한 청년암을 찾아보는 동선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련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조선 정조 1년인 1777년에 비구니 청련이 심낙서 등의 시주를 얻어 창건한 사찰로, 1902년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가 중창하였다. 청련암에는 여러 조선후기의 불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세 곳의 불교 관련 문화재를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차를 이용한다면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진각국사탑비를 제외한 봉녕사 불교문화재나 청련암 불화 등을 촬영하려면 반드시 먼저 종무실을 찾아들어가 촬영을 하겠다고 승낙을 받아야 한다. 요즈음 불교문화재 훼손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전각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 테마가 있는 수원여행, 더 날이 추워지기 전에 한 바퀴 돌아보기를 권한다.

 

가을이란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길을 나선다. 우리나라에는 단품의 명소가 많다. 설악의 붉은 단풍, 내장산의 아름다운 가을, 구룡령의 은은한 멋을 풍기는 가을, 그리고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 길 등, 곳곳에 단풍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수원 화성의 단풍을 보았는가? 이번 주말이 절경이라고 하는 화성의 단풍은 요란하지 않다. 그리고 먼 길을 힘들여 가지 않아도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곳이다. 조선조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화성을 축성할 것을 명했다. 강한 국력을 상징하는 화성은 장용외영의 무예24기와 함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화성 한 바퀴, 곳곳에서 즐기는 즐거움이 달라

 

화성은 평산성이다. 평산성이란 산과 평지를 연결해 쌓은 성을 말한다. 높지 않은 수원의 팔달산과 그 아래 너른 평지를 연결해 성을 쌓았다. 상 안으로는 광교산에서 발원하는 수원천이 흐르고 있어, 성 안 백성들이 가뭄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방화수류정과 용연을 마련해, 성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축조물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그 화성에 가을이 깊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팔달산은 온통 물감을 뿌린 듯하다. 울긋불긋한 단풍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란 은행나무도 제 빛을 자랑한다.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리는 억새 또한 화성의 성벽과 더불어 묘한 감흥을 이끌어낸다. 무엇하러 고생하며 먼 길을 나설 것인가? 그저 눈앞에 펼쳐진 화성만으로도 가을은 이미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천천히 성벽을 따라 걷는다. 까치 한 마리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그 소리도 정겨운 곳이 소나무가 우거진 길이다. 소나무 가지들은 성벽을 넘나든다. 그 안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심호흡을 한 번 해본다. 눈에 보이는 색색들이 사람의 발길을 재촉한다. 어쩌면 느슨하게 마음을 먹었다가 절경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인가 보다.

 

펼쳐진 억새밭으로 연인들이 숨어들어

 

수원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곳을 가을철에 걷기 좋은 곳으로 지정을 했다. 팔달산 회주도로, 연무대 성 밖 길 등이다. 그저 걷기만 해도 좋은 걸이다. 소나무 향에 취해 서장대 외곽을 지나 화서문으로 향한다. 그늘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는 어르신은, 땀을 흘리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나에게 넌지시 한 마디 건넨다.

 

 

어딜 그리 바삐 가오. 가을은 그저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라는데. 아까운 이 경치를 그렇게 걷다보면 어떻게 감상을 하려고

 

걸음을 늦춘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는 듯해서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니 화성을 돌아보는 화성열차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억새밭이 펼쳐진다. 그 안으로 젊은 연인들이 숨어든다. 사진을 찍는다고 들어간 억새밭에는 길이 나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억새밭으로 숨어들은 것일까?

 

 

천년 그리움이

달빛으로

피어오른다

 

화홍문 흐르는

수원천

푸른 물소리

가슴을 적시면

 

세월도

쉬어가는

방화수류정

 

그리운 사람아,

용지 호심에 떠오른 팔각정이

오늘 더욱 유정하다

 

 

경기시인협회 이사장인 임병호 시인이 노래한 방화수류정이다. 한 시간 넘게 땀을 흘리며 걸어 온 화성의 가을을 잠시 쉬어본다. 봄철이면 용암에 가득 핀 철쭉에 마음을 뺐기고, 한 여름철이면 시원한 바람에 마음을 빼앗기는 곳이다. 이 가을에는 용연 주변에 잎을 떠군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가을이 깊었음을 느낀다.

 

정조대왕도 이런 풍광 때문에 이곳에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을 지은 것은 아니었을까?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어머니 한 사람, 아이를 달랠 생각도 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것일까? 그곳에 가을이 깊게 내려앉은 화성이 자리하고 있다.

 

달고나란 예전 작은 양철로 된 용기에 설탕과 소다를 넣어 연탄불에 올려놓으면 설탕이 녹는다. 그것을 철판 위에 붓고 비행기, 짐승 등을 조형한 강철로 만든 틀을 눌러 그 모형대로 따내던 또뽑기 놀이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달고나는 전혀 다르다. ‘달빛아래 고색(古色)을 배경삼아 놀자꾸나.’가 달고나란다.

 

그렇다고 매번 달이 뜰까? 안 뜨는 날은 마음에 달을 하나 만들면 된다. 고색은 수원 화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앞에 조성한 용연이 놀이터이다. 한 마디로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류정 앞 용연에서 한번 놀아보자는 것이다. 13일 토요일 8, 용연 주변에는 1,000명 정도의 관람객이 무대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용연 안에는 작은 인공섬이 있다. 그 섬에 가교를 설치하고 무대를 마련했다. 그 무대에서 한 시간 정도를 질펀하게 놀자는 것이다. 노는데도 격이 있다. 한 마디로 여긴 노는 물이 다르다. 수원문화재단에서 913일부터 1011일까지 매주 토요일 밤에 마련한 달고나는 국악과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킨 공연이다.

 

남사당놀이와 춤이 결합된 젊은 놀이판

 

13일 오후 8시부터 무대에서 조명이 켜지면서 함께 태평소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12명의 젊은 남녀들이 무대 위로 올랐다. 이 친구들 쉴 새 없이 춤을 추어댄다. 오빠는 강남스타일로 시작한 춤은 온갖 걸그룹들의 춤과 2000년대 박남정의 춤까지 정신없이 이어진다. 넌버벌 퍼포먼스 <The Club >이 만들어가는 무대이다.

 

 

이 친구들 복장을 보니 클럽께나 다녔던 친구들이다. 춤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시간여행으로 조선조 말기 남사당까지 이어진 놀이판은 결국 진도북춤과 소고춤, 그리고 난타와 버나, 살판 까지 들고 나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흥이 난다. 장단에 맞추어 손뼉을 치다가 손바닥이 얼얼한지 손을 흔들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이 참 재주도 많다. 클럽에서 노는 날라리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하는 양을 보니 풍물께나 접한 친구들이다. 한바탕 춤을 추고 난 뒤 한 젊은 처자가 호주전통 악기인 디저리두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디저리두 연주를 하는 동안 무대 위에 슬그머니 북을 갖다 놓는다. 두드림의 미학이라는 난타를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이 사람들 어쩔 것이여? 밤새 놀아봐?

 

난타연주가 끝나자 사물패가 먼저 장단을 치면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층이 진 아래무대에 젊은 처자 둘이 북을 메고 나온다. 진도북춤 한 판을 신바람 나게 출 모양이다. 난장을 펼칠 남사당의 장단에 진도 북춤 한판이라. 기대를 하게 만든다. 춤을 추는 선이 아름답다. 뒤편 방화수류정에서 예전 정조대왕도 이렇게 용연의 춤을 즐기지는 못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탈을 쓴 이매가 나와 춤을 춘다.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젊음의 몸짓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몸에 익으면 제대로 된 몸짓 한 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버나잽이가 접시를 돌린다. 커다란 버나 하나를 들고 나온 친구가 사람들을 웃긴다. 이 친구들 나이에 비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줄을 안다.

 

 

다시 처자 둘이 소고를 들고 나왔다. 사물에 맞추어 소고춤을 멋들어지게 춘다. 조금은 미숙한 면이 더 미소를 짓게 만든다. 살판을 하는 땅재주꾼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무대에서 재주를 펴는 사람들도 즐겁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열두발 상모가 무대에 올랐다.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좁은 무대에 마음대로 돌리지 못하는 상모가 몸을 치감는다.

 

그래도 관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미 이 젊은이들의 놀이판에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어디 밤새 한 판 벌려봐라는 소리들을 하지만, 1초도 쉬지 않고 이어진 클럽 판의 무대는 꼭 한 시간 만에 조명이 꺼져버렸다. 마음속에 아쉬움만 남겨 놓은 채.


 

수원 화성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들라고 하면 당연히 방화수류정이다. 수원에서 7년 동안 살면서 가장 많이 가본 곳이기도 하다. 이 방화수류정은 화성의 네 곳에 있는 각루(角樓) 중 하나로 동북각루이다. 방화수류정은 1794년 9월 4일 터 닦기를 시작으로 그 해 10월 19일에 완성을 하였으니, 200년이 지난 역사를 갖고 있다.

 

주변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정자

 

화성은 자연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가장 큰 조형물이라고 한다. 화성의 아름다움이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어느 곳 하나 자연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좇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아름다운 정자다. 성벽 밑으로는 용연을 파서 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하고, 옆으로는 흐르는 버드내 위에 화홍문을 세워 그 주변 경관과 함께 아름다움을 더했다. 누마루로 깐 정자에 올라서면 사방의 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방화수류정의 또 다른 멋이다.

 

 

방화수류정의 동편 바로 옆으로는 북암문이 있어, 쉽게 용연을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화성의 암문은 깊고 후미진 곳에 설치한 비밀 문으로, 적이 모르게 가축이나 사람들을 통용할 수 있도록 낸 문이다. 그러나 이 북암문을 이용하면 방화수류정에서 용연까지 가장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가 있다. 용연은 방화수류정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용연의 가운데는 인공 섬을 만들어 놓았으며, 전체적인 조화를 보이는 이 용연과 방화수류정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성중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2단의 벽돌담으로 쌓은 위에 지은 정자

 

방화수류정은 정자의 모양도 특이하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인 조화다. 성벽이 높게 오르기 시작하는 산중턱에 지어진 방화수류정은, 그 서 있는 장소마저 눈에 잘 띄는 곳이다. 정자는 이단의 기단위에 세워졌는데, 기단을 벽돌로 쌓아올렸다. 일단의 벽돌을 쌓은 후 장대석 계단을 놓고, 그 위에 정자의 기둥을 세웠다. 그런 다음 다시 벽돌을 높여 정자를 지었다. 이곳에 모든 기운이 모여든다고 하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하다. 

 

좌측에는 문을 달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는데, 그 문 또한 아름답다. 그 문 안에로 들어간 병사들이 적을 향해 화살을 쏠 수 있도록 하였다. 적과 교전을 하는 성곽의 건물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정자. 그리고 정자로의 기능만이 아니라, 본연의 성곽 기능을 갖고 있는 정자가 바로 방화수류정이다.   

 

 

아름다운 십자문양의 벽면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은 정자만이 아니다. 정자 밑에 있는 쪽문을 돌아서면 벽면이 십자모양의 문양을 넣었다. 이런 조선시대 건축에서 많이 나타나는 문양이기도 하다. 이런 문양 하나가 방화수류정을 지으면서, 얼마나 자연경관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가를 생각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벽면이 사방을 둘렀다면, 그 또한 지금과 같이 아름답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 벽만 그렇게 처리를 한 것이 더욱 돋보이는 미가 아닐까? 아마 방화수류정을 축조한 공인이 그런 것 하나까지 모두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의 기단을 오르면 정자가 한편으로 서 있게 된다. 정자는 남쪽은 쪽문의 위까지 돌출이 되고, 북쪽은 중앙으로 돌출을 시켜 용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게 했다. 그저 넘길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이 된 아름다움이다. 일단의 기단 위 공백은 네모난 흑색으로 된 돌을 깔았다. 그런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 방화수류정이다.

 

 

지붕위에 올린 용두

 

아마 방화수류정만큼 많은 용두가 지붕 위에 올려 진 건물은 없을 것이다. 방화수류정은 정자가 여기저기 돌출이 되어있고, 그 돌출이 된 곳의 지붕이 서로가 엇물려 있다. 그 양편에 모두 용머리를 올렸다. 또한 한 가운데는 절병통과 같은 모양도 있다. 이렇게 많은 용머리를 올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방화수류정의 위치는 정조가 직접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45일 만에 공사가 끝난 이 정자에서 활을 쏘기도 했다. 방화수류정은 정조 자신이 왕권을 상징하는 마음을 알린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징적인 정자이기 때문에, 그 많은 용두를 지붕 위에 올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방화수류정의 지붕 위에 유난히 많은 용두들. 아마 정조가 끊임없이 추구해 온 힘이 있는 왕조를 상징하는 듯하다.

 

 

수원 팔경의 하나인 '용지대월'이 용연에

 

보름달이 뜨면 방화수류정에는 네 개의 달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하늘에, 또 하나는 바로 용연에 뜬단다. 그리고 세 번째의 달은 술잔에, 네 번째의 달은 사랑하는 님의 눈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멋진 말은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서 나타난다. 강릉 경포호에도 있다. 그러나 화성의 방화수류정 아래 용연은 그것과는 뜻이 다르다. 그래서 용연위에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용지대월(龍池大月)'이라고 하여 수원 팔경 중 하나로 꼽았다.      

 

사실 이 용연은 화성의궤에 나타난 용연과는 다르다. 지금의 용연은 당시의 용연보다 많이 형태가 달라졌다.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처음 용연을 조성했을 때는, 반달 모양의 연못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당시의 용연은 둘레가 250m에 깊이가 185cm라고 적고 있다. 지금의 연못보다 오히려 크다. 그 연못 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고 했으니, 그 운치가 어떠했을까?

 

아름다운 용연이 제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면,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도 한결 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름다운 방화수류정, 찬바람도 마다않고 찾아간 곳에서 그 아름다움에 빠져 시간을 잃어버렸다.

 

821일은 음력으로 715일인 보름이요 백종일이다. 이날 저녁 화성 신풍루 앞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수원화성 성곽의 당당함과 화성행궁의 아름다운 야경, 수원천과 전통음악이 함께하는 고품격 프로그램 운영인, ‘화성 달빛동행프로그램에 초대 된 기자들과 일반인들이다.

 

이 달빛 동행은 내 · 외국 관광객에게 색다른 만족감을 제공하기 위해, 매월 음력보름 밤을 전후 해 야간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체류형 관광에 기여하고자 하는 품격 높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자 함이다.

 

 

달빛동행프로그램의 동선은, 수원화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구성했다. 관람동선을 보면 신풍루(집결) 화성행궁 정조대왕동상 화성열차(팔달산장안문) 화홍문 방화수류정 용연(달빛감상) 수원천변 화성행궁 유여택(전통공연, 다과) 신풍루(해산)로 돌아오는 총 3.84km의 거리이다.

 

다양한 준비로 야간 관광의 특화상품 조성

 

그동안 야간에 화성열차의 운행 등은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제한되어 왔다. 그러나 화성의 경우 야간에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 사람들은 그런 야경을 담기에 주저함이 없는 곳이 바로 화성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특화된 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는 것이, 바로 수원 화성 달빛동행이라는 고품격 프로그램이다.

 

 

준비된 동선을 따라 야경의 관람을 마친 후에는 행궁 내 유여택으로 돌아와 20~30분 정도 전통공연관람 및 다과 시식을 하는 코너도 마련하였다. 달빛동행의 운영은, 동선별 세심한 배려와 해설, 격조 있는 전통음악 공연으로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색다른 정취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고품격 운영을 한다는 것이다.

 

혹서, 혹한기를 제외한 7개월 정도에 30회 정도가 진행되는(2014년 기준) 달빛동행은 오후 20:00 ~ 22:00(, 10월은 19:00 ~ 21:00)에 진행이 되며 일회 당 참여인원은 내, 외국인 100명이다. 음력 보름밤을 전 후로 한 달에 4~5일 정도가 운영이 될 달빛동행은 어떤 색다른 것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인가? 821() ‘수원 화성 달빛동행을 따라 나섰다.

 

 

대보름에 달빛 아래서 만나는 화성

 

한 조에 20명 정도로 구성을 하여 조별로 시간의 차이를 두고 행궁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는 4명꼴로 한 개씩의 청사초롱을 들고, 관광해설사의 안내로 행궁의 여러 곳을 둘러보게 된다. 조별로 서로 관람코스를 조절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배려를 했다. 행궁을 둘러보고 난 뒤, 정조대왕 동상 뒤편에서 화성열차에 탑승을 한다.

 

화성열차는 성 밖에서 야경을 관람할 수 있는 동선으로, 화서문을 지나 장안문 적대 앞에서 하차를 한다. 그리고 장안문을 들어서 화홍문까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달빛아래 화성을 걷는다. 둥근 보름달과 함께 걷는 화성의 아름다움에 빠져 걷다가 보면 화홍문에 도착을 하다. 방화수류정은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방화수류정에 올라 용연에 걸린 달을 보고 난 뒤, 수원천을 따라 걸으며 달과 물, 그리고 바람에 소리를 내는 수초를 만나게 된다.

 

 

매향교 옆 노래하는 계단을 오르면 다시 행궁으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공연관람을 하고난 뒤 차와 다식 등을 맛볼 수 있다. 이 달빛동행은 2013년은 모두 초대로 이루어지며, 2014년부터는 25,000원의 관람료를 받을 계획이다.

 

고품격 야간 화성 관람 상품인 달빛동행’.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행궁과 화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상당히 색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아직은 시범운영 단계라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이러한 점만 잘 보완한다면 또 하나의 이색적인 관광상품으로 평가를 받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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