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조안면 팔당수력발전소 앞을 지나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가 있는 능내리로 가려면 남한강을 끼고 난 도로를 따라간다. 이곳은 강변을 따라 다산로가 나 있고, 도로 옆으로는 길을 따라 늘어선 축대 벽이 있다. 이 벽을 보면 온통 낙서투성이이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써 놓은 낙서를 읽다가 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 사랑해

○○○○이 결혼한다.

내 마누라가 되어주어 고맙다

○○아 미안해

 

그 글만 읽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지나다가 보면 젊은이들이 스프레이 등으로 벽에 글을 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가히 젊은이들의 낙서 각축장이라고 보아야 할만하다. 이곳은 이렇게 낙서를 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중에는 정말 낙서다운 낙서도 보인다.

 

 

낙서의 달인들이 사는 대한민국

 

낙서는 우리들에게는 익숙해져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전국 어디를 가나 낙서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국보에도 낙서를 한다. 잘 자라고 있는 나무에도 낙서를 한다. 대나무에도 용케 낙서를 해놓았다. 가히 낙서천국이라고 말 할 수밖에. 이렇게 낙서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이곳 남양주시 조안면의 남한강가 길에 쓰인 낙서는 색다르다.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가장 많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낙서를 하느냐는 질문에 바위나 나무 등에 낙서를 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지지 않고 오래간다고 한다.’ 그래서 낙서를 한다는 것이다. 언제인가 문화재에 낙서를 한 것 때문에 언론에서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해 온 낙서. 2008년도에 한 것도

 

낙서란 글씨나 그림 따위를 장난이나 심심풀이로 아무데나 함부로 쓰는 것을 말한다. 그 심심풀이로 함부로 쓰는 낙서가 우리나라뿐이 아니라, 외국의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벽이나 나무 등에만 낙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경관이 좋은 곳의 암벽에도 이름 등을 적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음각을 해 놓은 이름 등은 낙서가 아니라 기원이라고도 한다. 암벽처럼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라는 염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낙서의 일종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남양주시 조안면의 남한강가 도로 벽에 쓰인 글들도 낙서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곳의 낙서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고백하는 장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젊은 연인들이 이곳에 와서 서로 이름을 적어놓고 오래도록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18일 오후 홍릉과 유릉을 거쳐 다산유적지를 찾아가는 길에 본 낙서. 이날도 젊은이들이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글씨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낙서도 문화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10여 년 전부터 해온 낙서를 그렇다고 쳐도, 문화재나 명승의 암벽, 그리고 나무 등에 하는 낙서는 자제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는 남한강 가 낙서길. 그 길을 지나면서 이제는 낙서도 가려가면서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지동마을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 담아 내

 

책을 받아 들고 표지를 보는 순간 책 참 예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부터 남다르다. <지동마을 이야기>는 작은 제목으로 사람 향기 진한 화성 동쪽 마을 이야기라고 적고 있다. 지동 마을의 이모저모를 사람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우선 이 책은 일 년 동안 지동을 내 집처럼 드나 든 필진들이, 직접 골목과 시장을 누비며 글을 엮었다는 것에 묘미가 있다.

 

140쪽에 달하는 지동마을 이야기는 재질부터가 남다르다. 그리고 한 페이지마다 특색이 있게 꾸며졌다. 책을 디자인 한 유순혜 작가는 지동벽화골목 조성의 총괄책임자로, 전에 방송사 일러스트로 활약을 한 바 있다. 책은 모두 여섯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동의 문화유산, 지동의 땅이름 이야기, 지동 시장이야기, 지동 사람들, 지동 시장사람들, 지동 마을만들기 이다.

 

 

편집부터가 남다른 책

 

책의 판형도 남다르다. 이 책의 발간을 기획한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총괄팀장은 책의 판형을 색다르게 한 이유를, 서가에 꽂혀있을 때 딴 책과 구별이 되게 했다고 한다. 집필을 한 사람들도 각자 일 년 동안 끊임없이 지동을 누비며, 지동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지동의 문화유산을 쓴 염상균은 향토사학자로 경기문화연구원장이다. 아주 오래된 지동의 역사와 지동이 품은 화성에 대해서 글을 썼다. 지동 땅이름 이야기와 지동 시장을 쓴 김우영은 오랫동안 지역 일간지에서 활동을 했으며, 현재는 e수원뉴스의 편집주간이다. 지동사람들과 지동 마을만들기를 쓴 하주성은 민속학자로 지동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지동이야기를 적고 있다.

 

 

지동시장 사람들을 쓴 김해자는 주부이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지동이야기를 글로 쓴 e수원뉴스의 으뜸시민기자이다. 벌써 몇 년 째 지동을 드나들면서 지동 사람들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동 사람들 중 몇 편의 글을 쓴 정다겸은 웃음치료사이면서 e수원뉴스의 시민기자이다.

 

마을만들기 정책의 일면을 정리한 책

 

염태영 수원시장은 책머리의 인사말에서 지동은 참으로 매력이 넘치는 마을이라고 적고 있으면서, 이 작은 책자 한권이 수원시의 마을만들기 정책의 일면을 정리하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동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아름다운 동쪽 성벽을 바라보고 형성된 마을입니다. 그래서인가 지동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밖으로 표출을 하지 않고 묵묵히 속으로 되새김질 하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변화한 지동은 이제 마을만들기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염태영 수원시장의 발간사 중에서)

 

 

박찬복 지동장은 지동은 관광의 중요한 다섯 가지 요소를 갖고 있으며, 수원에서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마을이라고 했다. 그 다섯 가지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창룡문에서 남수문까지의 동쪽 구간이라는 점과, 성곽과 연결된 다양한 벽화가 그려진 오밀조밀한 주택가 골목길, 이웃과 소통하여 훈훈한 정을 나누는 순박한 지동 사람들, 지역의 명소로 활용할 수 있는 수원제일교회의 노을빛 전망대와 갤러리, 그리고 지동, 미나리광, 못골시장 등 상인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세 곳의 전통시장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책

 

책의 평가를 시민 몇 사람에게 부탁을 해보았다. 우선 처음 책을 접한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시원하게 배치한 책은 처음이라는 답이다. 그리고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더니, ‘사람들 이야기는 역시 재미있다라는 대답을 한다. 지동마을이야기는 지동에 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주민들과 사장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참 감칠 맛나게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기획한 기노헌 팀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표현을 한다. 페이지마다 공백에 여러 가지 일러스트로 공백을 메우고, 글마다 독특한 편집을 했다. 오랫동안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을 한 유순혜 작가의 공이기도 하다.

 

 

나의 아내 김희경은 30살에 멈추어있지요. 우아한 외적 미모도 있지만, 젊어 보이는 남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이들(14)을 잘 키워주어서 예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서 더욱 예쁩니다.” 면서 실제 나이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지동시장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쓴 김해자의 글 중에서 넓은 가슴으로 시장을 품은 사나이 표영섭 지동자치위원장에 대한 글이다. 이 책은 이렇게 훈훈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꾸며졌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가슴 안으로 파고든다고 한다. 벌써부터 다음 편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까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동마을이야기 전자책 보러가기 => http://ebook.suwon.go.kr/20130123_112843

형님, 다음 뷰 관계자와 무슨 관계있어요?”


아침나절 평소 가깝게 지내던 아우녀석의 전화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아니 그러기 전에야 어째 다음 뷰 베스트가 몽땅 형님 글이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모르겠거든 가서 봐요 문화베스트 23개 글 중에 형님 글이 21개나 되네요.”

“설마, 이 사람아”

“참 안 믿어주네. 가서 보라니까요”

 


다음 뷰로 가서 문화베스트 글을 보았더니, 정말 아우 녀석의 말대로다. 순간 생각을 해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그러고 나서 참으로 마음이 착잡해진다. 문화면에 이렇게 관심이 없는 것일까? 그래도 나름대로 꽤 많은 블로거들이 문화에 글을 송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문화에 대한 글을 안 쓰는 이유는?


이런 현상은 내가 글을 잘 써서는 아니다. 예전에는 나 역시 베스트에 선정되는 경우가 일 주일에 한 두 번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그래도 나이 먹은 사람이 열심히 답사를 다니는 것이 안되 보였는지, 꽤 많이 베스트로 선정이 된다. 아마 하루도 안 거르고 송고를 하고 있는 이유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착잡한 마음이 든 것은 다름이 아니다. 그레도 많은 분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글을 썼는데, 언제부터인가 문화에 송고되는 글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문화쪽에서 그래도 상위에 있던 블로거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옮겨갔다. 어느 분은 여행으로, 어느 분은 드라마로, 또 어느 분은 요리로.

 

 

예전에는 그 많던 문화 블로거님들이 이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딴 것은 몰라도 나와 같이 문화재나 전통문화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일이 발품을 팔아 글을 써야한다. 바로 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답사를 하기가 수울하지가 않다. 우선은 물질적으로 많은 지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묵묵히 걷는 걸음, 이젠 버겁다


요즈음은 하루 종일 뷰에 송고된 글을 보아도, 하루에 불과 10여 편 정도의 문화재에 대한 글이 올라온다. 또한 카테고리가 세분화 되다보니, 딴 종목으로 나누어진 탓도 있다. 누구 말마따나 돈도 안되는 문화재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경비를 써가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솔직히 버겁기도 하다.

 


술자리에 가면 가끔은 친구들이나 아우 녀석들이 한 마디씩 한다. “돈 안되고 찾아오는 이도 없는 문화재에 대한 글 집어치우지 그러냐?”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의 말이 백번 옳다. 아무리 줄기차게 써보지만 몇 사람 찾아오지도 않는다. 문화재가 메인에 뜨는 일은 전혀 없다. 그러다가 보면 열심히 쓴 노력에 비해서는, 대가가 아예 없다고 보아야만 한다.


그런들 어쩌랴. 나하고의 약속인 것을. 걸음을 땔 수 있을 때까지는 답사를 하겠다고 했다. 한 사람이 찾아와도 글을 쓰겠다고 했다. 돈이 안되도 그만이라고 했다. 그저 날이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다. 아마 다음 뷰 관계자들도 그것 때문에 베스트로 선정을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나에게 욕심이 있다면, 더 많은 블로거님들이 우리 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슬슬 지쳐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을 한다. 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답사를 하고 글을 올린다면, 그저 슬며시 빠져나가 술 한 잔 마시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일정이 가뭄으로 인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모처럼 집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밀려있던 CD 정리 작업부터, 여기저기 쌓였던 먼지도 털어내고. 참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참 할 일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답사를 다니고 신문에 올릴 기사를 정리하다가 보니 늘어나는 것은 짐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자료들이 나중에 다 우리의 문화 한 쪽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작은 도움이나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열심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리만 하라고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듯싶습니다.

 

모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였습니다. 방안에는 많은 것들 두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꼭 필요한 것만정리합니다. CD와 책 뿐입니다. 3,000여장의 CD와 700권 정도의 책이 벽을 차지합니다. 책은 3,000권 정도가 되지만 삶터가 비좁은 관계로 나머지는 아우의 서재에 남아있습니다


 

블로거의 역할과 존재가치

 

세상에서 블로거라는 존재들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그 힘이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사실은 가장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활발한 활동을 하는 블로거 한 사람은, 이 시대에 매우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각 지자체마다 블로거들을 초청해 지역의 사안을 홍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블로거들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론사 혹은 대학 강단에도 블로거들이 당당하게 올라서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블로거들의 존재가치는 돈으로 환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3,000장 정도의 CD입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전국을 다니면서 찍어 온 자료들이죠. 이 CD들이 가끔은 잘못 된 세상을 바로 잡기도 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그 블로거의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이웃 블로거들 중에서는 벌써부터 독자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역할을 하는 분들이 상당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분들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분야 또한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블로거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한 것일 테고요.

 

세상이 블로거를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한 것이 한 7년 정도 되었나봅니다. 중간에 블로그를 접지 않고 계속했다면, 아마 현재 활동을 하는 블로거 중에서는 가장 고참이 될 것입니다. 2005년 다음에 플래닛이 없어지고 블로그가 처음으로 시작할 때부터, 한 사람의 블로거로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사실은 3,000개 이상의 들을 썼습니다. 중간에 막무가내로 블로그를 접을 때,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에 이미 2,000개가 넘는 글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1,000개가 넘는 글이 남아있으니, 그 자료만 해도 참 엄청난 자산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들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만 갖고 왔습니다. 좌측 밑에 통나무 찻상 보이시나요? 150년 정도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진 것을 3년간 비 바람 눈에 젖고 마르고 했던 것을 찻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기억을 떠 올려봅니다. 당시는 다음 메인창에 시사, 문화, 정치 등이 곧잘 올라있었습니다. 지금은 연예, 요리 등등이 주가 되었지만. 문화재에 대한 문재점을 이야기를 하면, 며칠 안에 말끔히 정리가 될 정도였습니다. 신호체계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면 바로 신호체계를 바로 잡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횡단보도가 이상하다고 하면 이틀이 안가 횡당보도가 올바르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블로거가 갖는 힘은 무한하다

 

한 사람의 블로거가 갖는 힘은 무한합니다. 다만 그 블로거들이 그것을 어떻게 표현을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강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다가 가끔은 곤욕을 치렀다고 이야기를 하는 블로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블로거들의 글 하나하나를 세상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업공간입니다. 남은 한 면은 창이죠. 오래된 TV(그래도 나올 것은 다 나옵니다)와 오래 된 컴퓨터. 방 하나에 있는 모든 물건의 전체입니다. 물론 딴 방이 하나 더 있고 주방겸 거실도 있습니다.이 안에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글을 씁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블러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로 인해 세상이 바뀔 수도 있지만,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행여 내 글로 인해 상처를 받을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글이 아니라, 대안까지 치밀하게 설명을 할 수 있는 블로거.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블로거이기 때문입니다.

참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음 뷰로 다시 돌아온 지가. 어제보니 그 동안 1,000개의 글을 다음 뷰에 송고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 1,000개의 글은 딴 분들의 글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여행블로거들이나 문화에 대한 글을 쓰시는 분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조금은 할 테지만 말이다.

 

다음 뉴스였을 때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옮겨 앉았다가, 2007년도에 2,000개가 넘는 글을 하루아침에 삭제를 해버리고 다음을 떠났다. 그리고는 한 3년 정도를 블로그를 떠나있었다. 그동안에 내가 느낀 것은 솔직히 ‘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인가 조금 허전하다’라는 생각이었다.

 

 

다시 돌아온 다음 뷰, 아쉽게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2

007년도에 다음을 떠날 때도 그랬다. 뉴스가 뷰로 바뀌더니 문화, 연예가 한데 묶이고 나서부터, 문화는 아예 찬밥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다음뉴스 시절에는 문화기사도 가끔은 메인 창에 버젓이 자릴 잡았고, 그런 기사에 30만 명 이상이라는 사람들이 들어와 글을 읽고는 했다.

 

그런데 뷰로 옮겨가더니 이것은 온통 문화는 사라지고, 연예기사가 도배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연예기사를 올려야 하는 다음의 곤란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 허전하게도 문화는 그야말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점은 문화재 글을 주로 송고를 하는 문화전문 블로거로써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작 글 1,000개, 하지만 나에겐 장난이 아니야

 

말이 그렇지 2009년 11월에 티스토리 초대장 한 장을 이웃블로거에게서 받아 개설을 해놓고도, 사실은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올리기에는 지난 울화가 채 가시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송고하기 시작한 것이 2010년 8월 경 부터이다.

 

이런 계산이라면 22개월 동안 1,000개의 글을 뷰에 송고를 했으니, 날마다 1~3개의 글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글이 모두 문화재에 대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횡성수설 지껄이기도 했고, 어쭙잖은 연애이야기도 쓰기도 했다. 그 중 750개 정도의 글이 문화, 문화재에 대한 글이다. 결국은 문화나 문화재에 대한 글을 매일 한 개 이상의 글을 송고를 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문화재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야만 했을까? 한 번에 답사를 나가면 보통 1박 2일로 돌아온다. 요즈음은 숙박비와 차량을 움직이는 비용이 만만찮다. 1박 2일에 기본적으로 30만원 정도의 경비를 써야한다. 지금은 뜸한 편이지만 일주에 1~2회 답사를 나간다.

 

어떤 날은 7월 복중에 50리를 걷기도 했다. 다리는 붓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그렇게 돌아다닌 세월이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다. 


 

일주에 경비를 50만원 정도 썼다고 하면, 한 달이면 200만원 정도를 답사 경비로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들어갈 때가 많다. 왜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결국 일 년에 2,400만원, 그동안 5,000만원 정도를 답사비로 날렸다. 그 금액으로 답사를 한 글을 다음 뷰에만 보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에서 2년 동안 들어온 돈은 얼마일까?

 

다음 뉴스 시절, 그 시절이 참 그립기도 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상금과 애드박스 등에서 들어온 돈은 고작 2년을 다 합해야 300만원이 되질 않는다. ‘그런데 왜 이 짓을?’ 하고 묻는 분이 계시다면 할말이 없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짓을 할 것인가? 결국 그 미친 짓이 지난해 년 말에 문화연예 부분의 뷰 블로거 대상을 받기도 했다. 결국 나에게 그 대상은 5,000만원 짜리라는 셈이다.

 

 

나에게는 이 사진 한 장마다 다 사연이 깊다. 그래서 사진이야 어떻든 소중한 자료가 된다. 위는 보물인 함안 방어산 마애불, 아래는 천연기념물인 전남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난 나의 길을 간다고 마음을 다진다. 앞으로 얼마동안이나 더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1,000개의 글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알고 보면 참 마음 아픈 글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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