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포천시 소흘읍 산 64번지 노고산에 있는 포천시 향토유적 제43호인 ‘고모리산성지’를 다녀와, 다시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올립니다. 아마도 좀 더 실감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겨울철 산행이 만만치는 않지만 산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정작 산성의 흔적이 보이질 않아 급 실망을 하기도.

그래도 이곳에서 만난 지역의 답사가들로 인해, 고모리산성에 대해 조금 더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을 듯도 합니다. 문화재는 역시 사진보다 동영상이 있어야 더 좋은 듯합니다.


   
2011년 한 해. 참 한 해동안 바쁘게 살았습니다. 블로그라는 것을 2005년에 처음으로 접하고 난 뒤 여러 번의 쉼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정말 바쁘게 한 해를 살았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라는 것에 빠져들면 마치 중독성이 있는 듯도 합니다. 딴 것을 하지 못해도, 뷰에 글을 발행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기도 합니다.

물론 그 글은 나름대로 현장을 다니면서 숱한 고생을 하면서 일궈 낸 글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쓸 수가 없을 때는 주변에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써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죽도록 써서 무엇이 남았을까요. 글이 남았습니다. 그 글 안에는 나름 땀으로 젖은 나날들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웃님들

그동안 블을 하면서 참으로 즐거웠던 것은 이웃님들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피곤한 잠을 깨워 글을 쓰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인사를 한다는 것. 솔직히 저한 테는 과분한 일과였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생활을 해야하고, 답사를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추천을 누르고 시간이 날 때 찾아가 댓글을 달고, 그것도 힘들 때는 제 특기인 <복사신공>을 날리기도 했다는.

그런 연유로 저는 많은 분들에게 해를 입히기도 했나 봅니다. 한 마디로 정직한 추천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나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독을 요구하면 먼저 그 분 블에가서 5개 정도의 글을 찬찬히 봅니다. 그리고 이웃을 만드는 것이죠. 한 마디로 사전에 충분히 검증이 된 이웃이기 때문에, 믿고 추천을 누릅니다. 하루를 쪼개고 쪼개도 부족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를 그래도 이해하여 주시고, 늘 찾아주시는 분들께 정말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이웃들이 계셔 올 한해 최고의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좀 쉬겠습니다.

직장을 바꾸고 보니 여간 바빠진 것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하루에 잠을 단 두 시간 정도 밖에 자지를 못합니다. 거기다가 글까지 발행한다는 것은 정말 무리가 닌가 생각합니다. 한 달 반 전부터 어깨에 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했는데, 팔을 무라하게 쓴 것 같다고 합니다. 하긴 그동안의 직업 상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자판을 두드리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판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취재도 해야합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구멍
이 포도청'이라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기에 다음 뷰까지 글을 송고한다는 것은 조금은 무리일 듯 합니다.

그래서 이제 조금 쉬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생활을 하기 위해, 딴 곳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틈틈히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1년 정말 여러분들로 인해 행복했습니다. 2012년 모두들 행복한 날들이시기를 기원합니다.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이렇게 한꺼 번에 인사를 드립니다. 나중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늘 행복들 하시기 바랍니다. 내렸던 엠블런은 여러분들이 만들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달아놓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것이니까요. 뷰에는 송고가 안되도 가끔은 이곳에 글을 끄적거려 놓겠습니다. 

(주) 그 동안 저로 인헤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했던 이웃님들이 계시면 이 시간 이후로 훌훌 털어버리시기 바랍니다. 

2011년 끝날 전날에 온누리
어제 밤서 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 모임이 있어 중국집에서 독하디 독한 53% 짜리 술을 하고, 2차로는 간단하게 먹자고 생맥주 집으로 향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 1월 중에 연천으로 주상절리를 보러가자고 약속을 한다. 여름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지만, 겨울에 강이 얼면 트레킹을 할 수 있다니, 사뭇 기대가 크다.

이야기를 한창 하고 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간에 길이 온통 미끄럼틀이 되었다. 조금씩은 두어번 내렸지만, 이렇게 많이 내리기는 처음인 듯하다. 서둘러 해어지고 1월을 약속하는 수밖에. 길을 걸으면서 내일은 화성답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화성의 여장위에 흰 눈이 소복히 쌓였다.

눈 내린 화성 아름다워

아침에 출근을 했다가 서둘러 만두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 화성답사에 나섰다. 동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썰매를 갖고 간다. 아마도 썰매타기라도 할 모양이다. 화성에는 눈이 오고나면 자연적인 썰매장이 여기저기 생겨난다. 화성 안쪽으로도 성 밖으로도 경사가 있어, 겨울철 썰매타기에는 제격이다. 눈이 오고나면 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동안 화성을 연재하면서 여름에 찍은 사진을 갖고 글을 쓰려니 영 성의가 없어 보인다. 무엇이나 현장과 시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로서는, 이런 호기를 마다할 수 없다. 길을 미끄럽고 손은 떨어져 나가는 듯 하지만, 카메라를 둘러메고 화성 답사를 시작한 것이다.

화성의 경사진 곳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이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무관함)

아이들의 말에 어이가 없어

사내녀석들은 짓궂다. 아래서 타니 조금은 심심했나보다. 경사가 급한 성벽 가까이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소리소리 지르면서 타고 내려오는 썰매타기. 보기만 해도 즐거워 보인다. 그런데 이 녀석을 말소리를 좀 들아보자.

"야 거기서 타니까 재미있지?"
"엉, 졸라 재미있어"
"그러니까 위로 올라가서 타야 해"
"정말야 졸나 재미있어. 야 너희들도 여기섶 타봐 졸라 재미있다"


어이가 없다. 도대체 저런 말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어른이 해도 상스러운 말이다. 그런 말을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은 아이들이라도 함부토 혼을 낼 수가 없다.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훈시만 해도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덤벼든다.   
  


도대체 이 아이들이 저 말이 욕인줄은 알고 있을까? 안다면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할까? 어디서 저런 말을 듣고 사용을 하는 것인지.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그리고 정말 웃기는 방송 등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이놈들 그런소리 하면 혼난다"
"우리가 왜 혼나요. 졸나 재미있는네"


더 이상은 할 말이 없다. 어른이 무엇이라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은 아이들. 이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참 마음이 아프다. 인기리에 방영이 되던 TV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끝이났다. 나랏말을 창제한 세종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많은 후기를 남겨 놓았다. 백성들이 이 글을 깨우처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창제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 언어를 우리는 지금 사용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아이들이 언어를 제데로 익힐 만한 곳이 없다. 본 제목을 줄여서 간단하게 처리하기, 이상한 말 양산해 내기. 뜻이 애매모호한 말을 만들어 퍼트리기.

이런 것들이 블로그나 방송, 혹은 신문이나 잡지 들을 통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말을 하기를 바랄 것인가?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진 엉덩이보다 더 아픈 것이, 바로 이런 아이들과 접하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이다. 누구를 탓하랴, 나도 그 중 하나인 것을. 

그동안 정말 그런지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보다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매일 발을 씻으면서도, 이것은 당연히 내발이려니 하고 살았다. 당연히 내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니 내 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오늘 왜 ‘발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달 타령이라면 혹 몰라도.

아마 나처럼 발을 혹사시킨 인간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만 같다.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이 발은 위로 자그마치 작지 않은 키에, 몸무게도 만만치 않은 몸을 싣고 팔도를 돌아다녔다. 그 발은 한 번도 나에게 불평을 한 적도 없다. 때로는 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아직도 나를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양말을 신었을 때는 정말 볼랐다.

알고 보니 무지하게 혹사를 시켰네.

누구에게 발을 보여 줄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일도 없다. 그저 답사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면 찬물에 발을 담근다. 그리고 피로를 조금은 풀기 위해 오래도록 주무른다. 그리고 다음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길을 나선다. 하루에 10km를 걸었다고 쳐도, 그 동안 걸었던 길은 모두 24,000km 정도라는 거리를 걸은 셈이다.

이 계산은 이렇다. 답사를 나가면 기본적으로 하루에 걷는 거리가 10km 정도이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이 걸을 수도 있고, 덜 걸을 수도 있다. 평균 잡아 한 달이면 10일 정도 답사를 한다. 그러면 한 달에 100km를 걷게 되고, 일 년이면 1,200km를 걸은 폭이다.

20년을 답사를 했으니 24,000km 정도를 걸은 셈이다. 서울서 부산은 400km로 잡을 때 편도 60번, 왕복 30번을 걸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걸으면서도 한 번도 탈이 난 적이 없었다. 이런 발에게 한 번도 미안한 감을 표현하지도 않았고, 감사를 한 적도 없다.

더운 물에 담구고 주무르면서 보니, 정말 발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붓고 굳은 살 박히고, 찢어진 것이

통증 때문에 바라본 발

갑자기 발에 통증이 온다. 양말을 씻기 전에는 벗지 않는 사람인지라, 늘 맨발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발에 통증이 오는 바람에 우연히 양말을 벗었다. 따듯한 물에 발을 담구고 주무르기라도 할 셈으로. 그런데 발을 보다가 놀랐다. 내 발이 정말 형편없이 생겼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발톱은 그동안 산을 타면서 걸려 넘어지고 깨어지면서, 몇 번인가 빠지고 새로 돋았다. 그런 발톱이 제대로 생겼을 리가 없다. 주로 걸어서 답사를 하는 나로서는 그동안 발을 혹사시킨 정도가 아니라, 고문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통증이 오는 곳을 살펴보니 발 뒤꿈치다. 그것에 굳은살이 박여 터지고 피가 난다.

그래서 그렇게 심한 통증은 왔나보다. 그런데 그 발을 보면서 참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발을 보기가 미안스럽다. 아직 한 번도 발에 대해서 고마워 해 본적도 없다. 그리고 발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적도 없다. 그런데 양말을 벗고 들여다본 발은 충격 그 자체였다.

터지고 깨어지면서도 나를 버티게 해주었던 발. 그 소중함을 이제야 새삼 깨닫는다. 아파서 깨우친 것이다. 아마도 나를 깨우치기 위해 아픈 것은 아니었을까? 앞으로도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이 발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일까? 발을 보면서 정말 미안하다. 그래서 발에게 미안함을 이렇게라도 적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나쁜 발의 주인이 될 것만 같아서.

“발아 정말 미안하다. 그 동안 너무 혹사를 시켰나보다. 이젠 좀 쉬게 해주고도 싶다”

「안녕하세요, Daum view입니다. 2011 view 블로거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11년 한 해 view로 송고하신 양질의 콘텐츠, 타 블로거와의 소통 능력, 네티즌 투표, 내부 심사 등을 거친 결과이며, 수상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다음 뷰에서 이메일로 블로거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기 전에, 이미 많은 이웃 블러거님들의 축하인사를 받았다. 생각 같아서는 정말 기뻐해야 하고, 소리라도 질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저 덤덤하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 참에 절친 블로거 한 분이 전화를 했다. ‘생각대로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때서야 정말 수상을 하긴 하는가보다 라고 실감이 난다.


위는 문화재 답사를 시작한지 20년이 지난 후, 방안을 가득 메운 문화재 답사 자료인 3,000여 장의 CD입니다. 아래는 그 동안 썼던 20권이 넘는 책 중 일부입니다(좌측)  


나에게 문화재는 ‘살아있다는 존재감’

길고 긴 사간이었다. 물론 상을 받자고 한 것은 아니다. 다음 뷰의 전신인 <다음 뉴스>에 처음으로 송고를 한 것이, 2005년 10월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플래닛을 하다가 다음 뉴스가 시작되면서 블로그를 시작을 했다. 그리고 티스토리로 자리를 옮겨 앉아 2007년 까지, 거의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글을 썼다.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숱하게 상처도 받았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도 없었다. 한 때 중단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은, 바로 ‘존재감’ 때문이었다.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엄청난 자료. 그것을 혼자 품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쉬고 있는 동안에도 자료는 늘어만 가고, 난 항상 문화재를 찾아다니느라 길 위에 서 있었다.




문화재 답사는 고통을 수반한다. 저렇게 가파른 절벽을 수도 없이 올라야 하고(맨 위) 그 위에 오르면 설악산 천불동이 눈 아래 보인다.(두 번째) 그런가하면 비가 오는 날도 답사는 쉴 수가 없다(세 번째)
그리고 눈이 발목을 덮어도 답사는 늘 계속된다. 하기에 문화재 답사는 늘 고통을 수반한다.


20년이 넘는 시간의 답사. 그리고 수없이 걸었던 길.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문화재들.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방에 놓여있다. 문화재 CD 3천 여 장. 자료를 위시한 책들이 2.000 여권. 그 책들을 두 곳에 나뉘어져 보관을 하고 있다. 난 이 집을 <자료실>이라고 늘 부른다. 생활공간이자, 모든 답사와 문화재에 대한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늘 답사를 하러 길을 나서는 나로서는, 가족들이 함께 하는 집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항상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또 다시 길을 나선다. 2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길 위에 서 있었다. 그 20년 동안 숱한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했다. 그리고 또 힘이 들 즈음에 블로거 대상 중 ‘문화연예 부분 우수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 상은 나에게는 채찍질이란 생각이다. 나태해 져 가고 있는 나에게 ‘다음 뷰에서 주는 매’란 생각이다.


위에 사진은 현재 자료가 있는 방안 풍경이다. 아래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2,000 여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또 하나의 서재이다. 우측 위는 확대한 서책의 일부 모습이며, 우측 아래는 그동안 출간을 했던 문화에 대한 책들이다. 그리고 좌측 아래는 문화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렸던 자료들이다. 지난 20여년, 오직 우리 전통문화와 문화재를 알리는데 온 힘을 다했기에, 집 한 칸도 없지만 후회는 없다.


달라질 것이 없는 일상

수상을 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내 힘이 자라는데 까지는 답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쓸 것이다. 하나의 문화재라도 더 알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답사를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일상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그런 일상이다. 길을 나서고,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쓰고, 소개를 하는 것도 그와 다를 것이 없다.

많은 이웃님들이 이야기를 한다.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다”라고. 그러나 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문화와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그날이, 진정한 보상이란 생각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상은 그날까지 쉬지 말고 계속하기 위한 '주마가편(走馬加鞭)'이 될 것이다. 내일도 난 또 길 위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블로거 여러분. 정말로 고맙습니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죄송하기도 합니다. 더 열심을 내지 못했음이.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이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많이 부족한 인사를 선정해 주신 다음 측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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