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병원에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수원에 사는 아우가 가을맞이 진적굿을 한다는 것이다. 무료한 시간도 달랠 겸 수원으로 올라갔다. 굿판은 언제나 흥청거린다. 진적굿이란 신을 모시는 ‘기자(祈者)’가 자신이 모시는 신령들을 위해 한판 흥겨운 굿판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굿 중에는 가장 성대하게 상을 차린다.

굿판은 ‘열린 축제’라고 한다. 누구나 들어와 구경을 할 수가 있다. 굿판의 문은 항상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음식을 먹기도 하고, 한편에선 굿을 보면서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그 한편에 낯선 이방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문화교류단으로 온 브라질 사람들

외국인들이 어떻게 알고 굿판에 온 것일까? 궁금하지만 굿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수가 없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이야기를 하고 웃기도 한다. 한참 굿판이 무르익었을 때 보니, 한편애서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때다 싶어 다가갔다. 마침 통역도 있는지라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오늘 이 굿판에 온 것은 3730 로타리크럽 총재 보좌역인 김성배(남, 58세)와 수원 서부로타리크럽 회장인 이재현(남, 52세)의 안내로 참가했다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온 이들은 브라질 사람들로 GSE 회원들이라는 것이다. 문화교류 차 온 이들이 제대로 우리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두 사람의 남자와 세 사람의 여자, 모두 다섯 명이 참가를 했는데 그 단장인 로난에게 질문을 하였다.



단장과의 인터뷰

- 오늘 우리 굿을 본 소감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행사가 없다. 이렇게 춤이 있고 음악이 있어 좋은데, 거기다가 음식제공까지 하다니 정말 놀랍다. 이런 행사는 처음 본다. 정말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는데 흥미롭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본다는 것이 정말 멋있다. 그야말로 ‘굿’이다.

-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왔다. 우선은 한국을 돌아보고, 그 다음에는 단원 각자가 전문적인 분야에서 교류를 한다,

- 각자의 전공분야는 무엇인가?
나는(단장 로난) 건축기술이 전공이다. 건축을 하면서 공간의 활용에 대한 것을 연구한다. 내 옆에는 건축분야 중 물에 대한 것을 전공으로 한다. 물은 어떻게 공급을 하는가 등이다. 그리고 그 옆에 타이스는 광고 마케팅이 전공이다. 쥴리아나는 휘트니스 훈련을 시키는 전문가이다. 그리고 맨 끝에 아나는 식품가공업 전문이다.



음식을 이것저것 맛있게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뺐어가며 더 많은 것을 물을 수가 없어 기념사진 한 장만 찍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함께 포즈를 취해주고 나서, 단장은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며 연신 ‘굿’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역시 우리 굿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 보아도 굿임에 틀림이 없나보다.

옛 말에 이란 말이 있다. '굿이나 보고 떡이자 먹자'는. 과연 이 말은 맞는 이야기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맞는다'가 정답이다. 예전 굿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은 굿을 하번 과일, 육고기 등 음식을 많이 차리지만, 예전에는 전과 떡을 수북히 쌓아놓았다.

이렇게 음식을 많이 준비를 하는 까닭은. 굿은 열린 축제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굿판을 모두에게 개방이 되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집에서 굿을 한다고 하면, 그 집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떡과 전을 준비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굿판에 가면 '굿을 보고 떡을 먹는' 것이 그 당시의 풍습이었다.


굿, 어떻게 다가서야 할까?

요즈음 일부 종교인들은 '굿'을 '미신'이나 ;우상숭배' 혹은 '마귀' 등으로 표현을 한다. 난 당연히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굿에서 보이는 많은 신들이 미신이고 우상숭배 혹은 마귀라고 친다면, 세상의 모든 신격들은 다 우상숭배요 마귀가 된다. 왜 유독 굿판에 현신하는 신격들만이 그런 이야길 들어야 할까? 그것은 굿을 잘 모르고 하는 무식의 소치이다. 또한 굿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고,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초 이래서 굿을 해왔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 이 모든 것을 '맞이굿'이라고 불렀다. 가끔 드라마에서 보이는 천관이나 천녀들이 지금 우리가 보는 굿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맞이굿이란 하늘의 신인 '천신'을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이런 의식을 할 때는 3일 밤낮을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이런 굿이 시대가 흐르면서 연
희적 성격을 접고, 신성만 강조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질이 된 것이다. '굿' 그 자체는 정말로 'good'이다. 이런 굿판에서는 항상 먹을 것이 넘치고 사람들은 밤새 웃고 떠들고 같이 울고는 했다. 굿을 하는 주인집에서는 문고리마다 떡을 끼워 놓는다. 굿판에 모인 아이들이 다니면서 그것을 막게 하기 위함이다. 나눔의 장소, 그곳이 바로 굿판이었다.

좋은 날도 없는데 굿판이나 한 번 벌려봐!

사람들은 왜 긋을 할까? 물론 굿을 하는 무격들의 인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회에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무격들 중에는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30년 가까이 혼자거 300여명이나 되는 어른들을 모시고 봄, 가을로 경로전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굿, 그 자체가 아니라, 굿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전해지는 '굿니아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에게는 좋은 의미이다. 굿판에 가서 즐길만큼 즐기고, 그러고도 배불리 먹을 수가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잇을까? 그래서 굿판을 '열린 축제의 장'이라고 표현을 한다.

굿 중의 굿, 안택성주굿

굿판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굿판이기 때문이다. 안택성주굿은 집안의 가신 중에서 가장 으뜸인 성주를 모시는 굿이다. 일부러 성주굿만 하는 경우도 있다. 집안의 가장의 나이가 29, 39. 49. 59. 69 살이되면 성주를 맞아 모신다. 이렇게 9이라는 숫자에 성주를 모시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속설에 '아홉수를 넘기기 힘들다'고 하기 때문인가 보다.

성주를 받는 모습이다. 성주신이 내리면 성주대가 움직이고, 성주를 모실 자리를 알려준다. 

이 성주굿은 정말로 흥이 난다. 대청에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한 사람은 징을 치고, 또 한 사람은 참나무로 만든 성주대를 잡고 앉는다. 축원을 하면 성주대가 움직여 성주를 달 곳을 알려준다. 성주신은 집안의 대들보나 안방의  위에 자릴 잡는다. 성주를 모시고나면 대천에서 길게 소창을 늘여 놓는다. 성주풀이를 하면서 지신을 밟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밤새 웃고 마시고, 울고 떠들고 춤을 추면서 지새우는 것이 바로 굿이다. 이런 굿의 진가를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이 괜한 소리를 한다. 요즈음은 이런 굿판 보기도 쉽지가 않다. 하도 떠벌리는 인간들이 많으니 점차 산 속으로 숨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살기 멋같은 요즘 같은 세상. 걸진 굿판이나 벌렸으면 좋겠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게.


 

성주를 모시고 나면, 소창을 잡고 한바탕 춤을 추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누구나 다 이집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굿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축제의 장'이고 끈끈한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이다. '굿이나 보고 떡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2011년 6월 20일 수원에 있는 궁전이라는 한옥에서 전통경기도 안택굿이 열립니다. 이 굿은 4대째 무가(巫家)의 계보를 잇고 있는 고성주(남, 55세)씨가 경기도 굿의 정수를 보여주는 마당으로, 이제껏 볼 수 없던 질펀한 경기도 굿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경기도 굿은 세습무들이 진행하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경기도당굿과 강신무들이 굿판을 여는 강신무굿이 있습니다.

강신무굿인 경기도 안택굿에서는 성주굿에서 대들보에 소창을 걸고 굿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 천을 잡고 지신밟기를 하며, 뒷전에서는 맹인풀이 등 해학이 넘치는 굿판이 펼쳐집니다. 이런 기회는 앞으로도 볼 수 없을 듯합니다. 하기에 블러거님들 중 관심이 있는 분 딱 세분만 모시겠습니다,

아래 팸플릿을 보시고 댓글에 전화번호 등 연락처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초대되신 분 외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하기에 딱 세분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팸플릿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빙의란 ‘죽은 생명의 원혼이 살아있는 생명에 붙는 것’을 말한다. 요즈음 드라마 ‘여우누이뎐’인가의 막바지에 빙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듯하다. 나야 원래 드라마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니 여우누이뎐이란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빙의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원혼이 붙는 현상이 아니다.

요즈음 들어 빙의현상을 체험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에게 붙은 원귀를 떼어준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빙의와는 달리, 빙의에 접한 사람의 입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귀신들림’ 혹은 ‘귀신접함’이란 형태의 빙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지전춤(기사의 특정사실과는 무관합니다 

한 몸에 두 영혼이 존재할 수 있는가?

우선 빙의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틀린 것은 아니다. 빙의에 걸린 사람은 때로는 본인으로, 때로는 몸에 붙은 귀신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개의 영혼이 어떻게 한 몸에 공존을 하는 것일까? 흔히 ‘귀신 들린 사람’들의 형태를 보면, 때로는 정신이 멀쩡했다가 때로는 미친 것 같아 보인다. 이런 형태를 우리는 흔히 ‘반미치광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왜 빙의가 들린 사람들이 이렇게 반은 자신으로 반은 원혼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일까? 오래도록 굿판을 다니면서 ‘귀신 쫒는 굿’, 흔히 ‘ 귀(逐鬼)굿’ 혹은 ‘축사(逐邪)굿’이라고 하는 굿을 수도 없이 보았다. 엎어놓고 소금을 뿌리고 불로 위협하고, 무검(巫劍)을 갖고 찌르는 시늉을 한다. 그럴 때마다 몸에 붙은 귀신은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형태를 흔히 ‘귀신이 집을 짓는다’라고 이야기 한다.


굿을 할 때는 무격(巫覡 - 여자무당은 巫, 남자무당은 覡이라 표현한다)들과 몸에 붙은 귀신들이 협상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혼만 있는 귀신이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택해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 집을 짓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빙에 걸린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풀려나지는 않는다.

“제가 저를 바라다보고 있어요”

이런 빙의에 걸린 여자가 굿을 했다. 23살인 여자는 8살짜리 남자 아이가 빙의가 되었다고 한다. 굿판에서 여자는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면서 안 나간다고 울고불고 한다. 그러다가 학용품과 옷을 사다주면 나가겠다는 것이다. 사람을 시켜 가방이며 옷 등을 사다가 주었더니, 나가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물으니, 길에 있다가(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 아이는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었다고 한다) 마음 좋은 누나가 지나가 길래, 얼른 따라갔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6시간이 넘게 실랑이를 벌리다가 아이가 간다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 눈에 보이는 실체는 물론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여자가 한숨을 토하더니 일어난다. 그리고 제 정신이 돌아왔다. 놀라운 이야기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언제 아이가 몸에 들어온 것 같아요”
“두 달 전인가 직장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갑자기 몸이 섬뜩했어요. 그때인 것 같아요”
“나이가 있어서 본인이 정신을 차리면 괜찮을 듯도 한데”
“그럴 수가 없어요. 그 아이가 내 몸을 뺐으면 저는 몸에서 쫓겨나요. 그리고 그 아이가 마음대로 하죠”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저를 보고 있어요. 제가 들어가려고 해도 그 아이가 나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어요”

세상에 어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빙의란 한 사람의 몸을 두 개의 영혼이 공유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유가 자신이 있고, 귀신이 접하는 것이 아니라, 몸은 하나를 갖고 서로 번갈아가면서 몸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결국 ‘여우누이뎐’에서도 자식의 병을 고치려고 딴 아이를 죽여 간을 먹은 초옥에게, 죽은 연이의 원혼이 씌었다는 것이다. 결국 초옥이의 몸을 초옥이와 연이가 공유를 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설정은 초옥이 연이가 되어 구산댁과 모녀사이가 된다고 하지만, 이런 설정의 경우 설득력이 부족하다. 몸의 주인인 초옥이가 없는 연이는 그 몸을 지탱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몸의 주인이 살아있을 때라야 귀신도 그 몸을 함께 공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인 경우와 같이 귀신이 씌었다고 해도, 언제나 연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여우뉴이뎐’이 방영되면서 여러 사람이 빙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해오기에, 굿판에서 본 내용을 정리를 해본다. 결국 빙의란 우리가 알고 있듯 의지가 약해 들린다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무속에서 이야기를 하듯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무당이 될 수 있듯, 누구나 빙의에 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