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많은 예인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도당굿은 한수 이남지역인 수원을 비롯한 인천, 시흥, 용인, 화성 등지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을 목적으로 매년 또는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 초나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굿을 말한다.

 

현재 수원에서는 영동시장 거북산당과 고색동 도당굿, 평동 도당굿이 해마다 정해진 날에 굿판이 벌어진다. 경기도당굿은 집안에서 대를 이어 기, 예능을 연마하고, 음악과 무용에 뛰어난 세습무당인 화랭이들이 진행한다. 남자무당인 화랭이들은 줄을 타면서 재담을 하거나, 재주놀이를 하면서 굿을 축제분위기로 이끈다. 예전에는 기생들의 소리와 춤이 함께 곁들여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경기도당굿은 기, 예능보유자였던 고 오수복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아직도 기능보유자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열리는 도당굿판에서도 진쇠, 터벌림 등의 춤을 전문적인 춤꾼들이 판을 벌이기도 했던 경기도당굿은, 이제는 굿판에서 한 판 멋지게 춤판을 벌이는 모습조차 보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도당굿판에서 만난 춤꾼 김지혜

 

1년 동안 경기도당굿이 열리고 있는 굿판을 찾아가보았다. 그런데 도당굿의 전수생 중에 무녀나 화랭이, 혹은 악사 같지 않은 사람이 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춤을 추는 사람이란다. 춤을 추는 사람이 왜 도당굿판에서 열심히 뒷배’(대개 기능을 익혀 굿판에 서기 전에는 잔심부름 등을 하는 것을 말한다)를 보고 있는 것일까?

 

“2011년에 경기도당굿 전수생으로 등록을 했어요. 이애주(중요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선생님의 승무전수관에 들어가 학습을 하게 되었는데,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도당굿을 만나게 되었죠. 경기도당굿에 들어와 목진호(경기도당굿 이수자) 선생님께 장단 등을 배우기도 했고요. 도당굿판에서 보이는 진쇠 춤이나 터벌림 춤으로 이수를 하고 싶어서요.”

 

그동안 무용을 하는 사람들이 도당굿판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도살풀이를 추는 사람들은 물론, 진쇠 춤이나 터벌림 춤을 추는 사람들도 흔히 도당굿판에 동참하여 춤을 추워왔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무용전공자가 이수자가 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김지혜(, 35. 경기도당굿 전수자)가 춤으로 이수를 받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경기도당굿이 워낙 춤과 소리 등에 뛰어난 굿꾼과 춤꾼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부터 배운 춤, 이제는 깊은 춤을 추고 싶어

 

군산 영광여자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무용부에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한국무용을 비롯해 발레와 현대무용 등의 기본을 혹독한 체련단련과 함께 익히기 시작했죠. 하지만 집안에서 반대가 심해 고3 때 인문계로 전향했고, 아주대 심리학과에 입학을 했죠. 2009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대학이라는 녹색대학이 출범했는데, 이때 1기생으로 입학을 했어요. 경남 함양에서 여러 명이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 풍류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이애주 선생님의 특강을 듣고, 과천의 승무전수관으로 들어간 것이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경기도당굿을 알게 되었고, 벌서 3년 째 경기도당굿이 열리는 곳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춤꾼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있다는 김지혜는, 계양문회회관에서 사람들에게 살풀이와 입춤 등을 가르쳤다. 그 외에도 서울대학교, 봉원사, 운현궁, 남아사 마당공연 등에서 춤을 추었으며,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살풀이춤을 추기도 했다.

 

그동안 일본 동경 문화회관에서 황진이공연도 했고요. 영등포 아트홀 무대에 2013년과 올해 연속으로 올린 오다아 아리랑창극에 출연도 했어요. 10월에는 진주성 특설무대에서 열린 뮤지컬 촉성산성 아리아에 무대에도 올랐고요.”

 

경기도당굿의 독창적인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는 화랭이춤에 푹 빠져있다는 김지혜. 이제는 굿판에서 한 바탕 멋들어진 춤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보아야겠다. 요즈음은 도당굿판에서 멋진 화랭이춤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는데,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세상을 산다는 김지혜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작은 체구이긴 하지만 풍물패의 맨 앞에 서서 꽹과리를 열심히 두드려댄다. 풍물패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어깨를 들썩인다. 2일 오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381 - 4에 소재한 수원시 향토유적 제9호인 고색동 도당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매년 가을이면 열리는 고색동 도당굿의 당제 날이기 때문이다.

 

넓지 않은 고색동 도당 안에 들어 온 풍물패들이 열심히 풍장을 울려댄다. 그 앞에선 상쇠 김현주(, 49. 오목천동)씨가 풍물패를 인솔해 도당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 도당 앞에서 한 바탕 놀이판을 벌린다. 고색동 도당굿은 이렇게 풍물패와 굿을 주관하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회원들이 이끌어 간다.

 

 

작은 체구에 15년 된 당당한 쇠잽이

 

김현주씨는 어려서부터 춤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중간에 춤을 잠시 중단을 했다고.

어려서부터 춤을 배웠어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추다가 춤을 중단했는데 지금은 다시 배우고 있죠. 결혼을 하고나서 고색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사물을 가르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으로 시작을 했죠. 아줌마들이 모여서 1년 만에 정월 대보름에 여는 고색동 줄다리기에 나가서 호남우도 농악으로 마당놀이를 했어요. 그런대 고색동에서 저희들을 보고 고색농악에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고색농악대로 많은 행사에 동참하게 된 것이죠.”

 

20015월부터 고색동에 있는 새마을금고에서 연습을 하던 농악팀은 지금은 노인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마을에서 적극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연습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연습을 했으나, 지금은 일주일에 목요일을 뺀 나머지는 매일 연습을 한단다.

 

 

월요일은 기초반 연습이 있고요. 화요일은 중급반이 모여서 연습을 해요. 수요일은 북반이 연습을 하고 금요일은 전체적으로 다 모여서 연습을 하는데. 요즈음은 중보뜰 공원으로 나가서 야외에서 신나게 연습을 하죠. 그만큼 40여 명 정도의 단원들이 열심을 내고 있어요.”

 

쇠잽이와 천성적으로 맞아 떨어져

 

고색농악이 일 년에 담당하는 행사만 해도 적지 않단다. 정월 대보름에는 근동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줄다리기를 하고, 5월에는 어버이날 행사에서 판굿을 벌인다고. 그런가하면 매년 10월에 열리는 고색동 도당굿에서 한마탕 질펀하게 놀기도 하고,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고색동 체육대회에서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는 9일에 열리는 화성문화제 시민퍼레이드에 허수아비를 들고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동안 줄다리기도 하고 지난해는 모심기 노래를 하면서 퍼레이드도 해보았는데, 올해는 오목천동에서 허수아비 축제를 하잖아요. 그래서 허수아비를 들고 시민퍼레이드에 참가를 하려고요.”

 

이날 마당놀이에서는 상쇠노릇을 했지만 자신은 부쇠라고 한다. 상쇠를 담당하시는 분이 바쁜 일이 있어 이날만 상쇠를 맡은 것이라고. 여자가 쇠를 치는 것이 쉽지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쇠를 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사물놀이반에 들어갔는데 저는 장구를 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장구는 이미 사람들이 다 차고 쇠잽이 자리가 비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꽹과리를 맡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더 잘된 일인 듯해요. 제 적성에도 딱 맞고요.”

 

대담을 하고 있는데 농악대 단원들이 찾는다. 그 소리를 듣고 곁에 있던 마을 어르신들이 한마디 거드신다. “상쇠 찾는데 얼른 가봐. 저 사람은 재주가 좋아. 그리고 어떻게 늙지도 않아.”

 

3대를 내려가도 100년이다. 그런 대물림도 대단하다고 하는데, 자그마치 4대를 대물림을 하면서 집안으로 전승이 된 음률을 지켜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피리 시나위 남양제는 옛 수원군 남양면의 한 귀퉁이에서 그렇게 전승이 되었다. 어림잡아 100년이 훨씬 지나도록 가계로 전승이 된 것이다.

 

예전에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장자만자용자를 쓰시는 분이십니다. 피리 시나위 남양제의 창시자라고 보아야죠. 그 시나위 제를 할아버님인 장자점자학자를 쓰시는 분이 이어받으셨고, 다시 아버님이신 장자유자순자를 쓰시는 분이 전해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나위의 본가락이 바로 경기도당굿 전수조교였던 고 방돌근 선생에게 전해진 것이죠.”

 

 

7일 오후 인계동 한 연습실에서 만난 장영근 명인. 직접 부친에게서 배운 것은 아니라고 해도, 어릴 때부터 부친을 따라다니면서 남양제 피리 시나위를 익힌 고 방돌근 선생에게서 시나위 가락을 익혔으니 대물림을 했다고 해도 허언은 아니다. 그렇게 4대를 이어오면서 남양제 시나위를 지켜냈다.

 

재인청의 산이들 뛰어난 기량으로 민속음악 지켜

 

우리의 음악은 궁중악인 아악과 민초들의 민속음악으로 크게 구분을 짓는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연주하고 즐겨듣는 것은 역시 민속음악이다. 민속음악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악기를 다루는 시나위류의 음악은 대개가 수원을 비록한 화성, 오산, 평택, 광주 등지에서 창출이 되고 전승이 되었다.

 

조선조 말기에 130여 년간 존속이 되어왔던 재인청(才人廳)에는 수많은 기능인들이 속해 잇었다. 그 중에서도 악기를 다루는 산이들의 기능을 뛰어났다. 경기도의 무속음악은 한수이북과 한수이남 지역이 조금씩 다른 특성을 보이며 전승이 되어왔는데, 흔히 남양제(南陽制=현 화성군 남양면에서 발생한 음악)와 광주제(廣州制=광주 출신 피리의 명인 이충선의 가락을 전수 받은 律制), 그리고 평택을 기점으로 한 동령제(東嶺制=대금의 명인 방화준의 율제)로 구분이 되고 있다.

 

 

여기에 해금의 명인으로 한때 무형문화재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던 지영희의 안산제(安山制)가 더해진다. 이 중 광주제는 이충선에 의해서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전승이 되고 있으며, 지영희의 안산제는 국악예술학교에서 후학들에게 전해져 한 류파를 이루며 전승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안산제나 광주제는 본래의 경기도 무속음악인 시나위의 형태는 사라지고, 정형화된 산조의 기능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다만 남양제만이 경기 무속음악에서 시나위로서의 기능을 지니며 남양출신 산이인 장유순의 가계로 전해지다가 전 경기도당굿의 전수교육조교이며 동령제의 기능인인 방화준의 손자 고 방돌근에게로 전해져 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동령제는 김광채에게로 전해졌다가 그 맥이 끊겨서 기실 전통 경기도의 무속음악에서 나타나던 경기시나위의 맥은 남양제만이 전승이 되고 있을 뿐이다.

 

4대째 시나위 맥을 이어가는 장영근 명인

 

저희 아버님은 일 년이면 한 5일이나 집에 계셨어요. 당시는 조금앵, 임춘앵, 김진진 등 국극단체들과 함께 전국을 유랑하실 때라 거의 뵐 수가 없었죠, 어머니께서는 우자정자옥자를 쓰셨는데 전 경기도당굿 보유자셨던 고 오수복 선생님께 같은 급의 대만신이셨어요. 그러니 자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악기 등에 취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죠.”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무속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에서 워낙 반대가 심해 21세 때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 가서 5년 정도 택시운전을 수원으로 다시 내려와 버스 운전을 3년간 했다. 그러다가 다시 굿판으로 돌아왔다.

 

 

“2006년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전수조교로 지정을 받았어요. 하지만 아직도 화랭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많은 아픔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인가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그렇게 즐겨하는 편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과거의 아픔 대문이겠죠.”

 

우리 민속악계에서는 손 꼽을만한 대단한 부모님을 두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늘 마음 한 구석을 누르고 있던 만신과 화랭이의 자식이라는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런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언젠가 자신이 부친의 뒤를 이어 당당히 보유자가 되었을 때, 스스로 그런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4100년 이상을 이어 온 남양제 시나위, 이제 장영근 명인 그 대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 본다. (자료사진은 장영근님의 것을 인용했습니다)

 

16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 전수소가 문을 열었다. 경기도당굿 남부지부 승경숙 지부장이 경기도당굿의 전수를 위해 마련한 전수소의 개소식에는, 경기도당굿 전수교육조교인 장영근을 비롯해 전수생 등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경기도당굿 남부지부의 개소식을 축하해 주었다.

 

경기도당굿이란 경기도와 서울 근교의 마을에서 열리는 대동굿이다.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위해 열리는 마을굿으로 한 수 이남 지역에서 주로 열린다. 경기도당굿의 시원은 대개 200년 정도로 알려져 조선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시흥 군자봉 도당굿의 경우에는 고려 때부터 전래했다고 하고 있어, 조선조 이전에도 마을굿이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전통예술의 모체 경기도당굿

 

경기도당굿은 대개 세습남무인 화랭이들이 굿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음악과 장단 등도 판소리 기법으로 나타난다. 하기에 경기도당굿은 우리 전통예술이 모체가 되며, 많은 춤을 생성한다. 경기도당굿에서 파생된 춤은 태평무를 비롯하여, 진쇠춤, 제석춤, 터벌림, 군웅춤, 도살풀이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태평무와 도살풀이 등은 중요무형문화재로 독단적인 춤의 유파를 만들어 냈으며, 진쇠춤, 신칼대신무 등도 경기도당굿의 류파로 본다. 특히 판배개창이라는 굿꾼들의 소리는 경기, 충청간의 판소리인 중고제의 시원이라는 설까지 있어, 경기도당굿이 얼마나 예술성이 뛰어난 굿인가를 알 수가 있다.

 

특히 경기도당굿의 춤과 장단, 소리와 음악 등이 다양하게 발달이 되어 우리 전통예술의 산실로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120년간이나 존속이 되었던 화성 재인청(才人廳)이 수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재인청에 속한 무리가 3만 여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가히 이 지역의 전통문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경기도당굿에서 파생이 되었거나, 굿에서 추워지는 춤은 고 오수복 선생의 군웅굿 중에서 활춤, 제석거리의 장삼놀이, 중요무형문화재인 태평무와 도살풀이, 남무인 화랭이들이 추는 터벌림과 진쇠춤, 고 이동안 선생에게서 전해 진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등이 있다.

 

 

군웅굿의 활춤

군웅굿은 경기도당굿에서는 가장 중요한 굿거리 제차이다. 일반적으로 굿에서 군웅굿은 혼자 진행하는데 비해, 경기도당굿에서는 쌍군웅이라고 하며 군웅상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진행을 한다. 군웅굿은 화랭이들이 군웅노정기라서 해서 군웅이 해동 대한민국으로 나오게 된 내력을 풀어내는 소리이다. 경기도당굿의 전 보유자였던 고 오수복 선생이 살아생전 가장 많은 연희를 한 군웅굿의 활춤은 도당굿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제석굿 중 장삼놀이

제석은 인간의 수명재복을 관장한다는 신이다. 제석굿은 일반적으로 중부권 이북의 굿에서는 간단하게 처리가 되지만, 경기도당굿이나 경기안택굿에서는 중요한 굿거리 제차 중 하나이다. 특히 경기도당굿에서는 군웅굿과 쌍벽을 이루는 제차로 제대로 굿거리를 진행하자면 11번이나 장단이 바뀌기도 한다. 제석굿의 가장 화려한 춤사위는 바로 장삼놀이이다. 장삼을 펄럭이며 추는 장삼놀이는 춤으로도 손색이 없다.

 

 

화랭이 춤인 터벌림

터벌림 춤은 도당굿 판에서 화랭이들이 추는 춤이다. 화랭이들이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꽹과리를 들고 반설음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터벌림은 굿판의 터를 벌린다혹은 터를 불린다등의 뜻이며, 도당굿의 굿거리 제차 중 화랭이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춤을 춘다. 터벌림의 장단은 3분박 5박자로 15/8 박자로 두 장단이 한 짝을 이룬다. 반설음장단은 경기도당굿의 손굿과 터벌림 등에 사용이 된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엇중모리 장단을 사용한다고 하여서 붙여진 명칭이다. 춤꾼인 고 이동안 선생으로부터 전승이 되었다. 이동안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인청에서 기예를 익힌 재주꾼이다. 엇중모리는 4분의 20박으로 장단이 빠르고 경쾌하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망자의 한을 달래는 춤으로, 빠른 장단과는 달리 느린동작으로 종이로 만든 신칼을 어루듯 추는 춤이 일색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인 경기도당굿. 16일 수원 인계동에 문을 연 경기도당굿 남부지부의 개소로 인해, 지역의 중요한 전통예술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비록 보유자가 타계를 해 전승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전수소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을 하기를 기대한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경기도 일원의 각 마을 도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안과태평을 위한 마을굿이다. 경기도당굿은 한수 이남의 경기도 전역과 현 인천광역시의 섬까지 걸쳐 연희가 되던 마을 제의로, 화랭이라고 하는 세습무들에 의해서 전승이 되어왔다.

 

19901010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은 보유자인 고 조한춘과 고 오수복이 세상을 떠난 뒤, 아직도 보유자 지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경기도당굿보존회에서 모든 행사 및 각 도당의 제의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전승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경기도당굿 남부지부 승경숙 지부장을 만나보았다.

 

 

처음에는 낯설기 만한 경기도당굿

 

현재 경기도당굿 이수자인 승경숙 지부장은 1986년 내림굿을 받은 후, 주로 한양굿을 배워 굿판에서 나름 잘 불리는 무녀였다. 그러다가 1993년 경기도당굿 보유자인 오수복 선생님의 권유로 경기도당굿의 전수생으로 입문을 하게 된다.

 

“1993년에 처음으로 당시 경기도당굿의 보유자이신 오수복 선생님을 뵙고 도당굿에 첫발을 내딛었어요. 당시는 경기도당굿에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두 문하생으로 있었죠. 거기서 함께 끄트머리에 서서 무녀제 도당굿의 제차를 배웠어요. 오수복 선생님께서는 도당굿에서 무녀가 맡아하는 부정, 제석, 군웅 등 여자가 할 수 있는 굿거리를 저희들에게 알려주셨죠.”

 

처음에는 경기도당굿이 낯설기만 했다고 한다. 경기도의 판소리인 판배개 창으로 불러대는 도당굿의 소리가 따라 하기조차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힘든 도당굿의 춤사위며 장단, 소리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전수교육조교인 고 방돌근 선생 때문이라고. 고 방돌근 전수교육조교는 이 시대의 마지막 전악이라고 할 만큼 도당굿의 장단과 경기 시나위를 구가하고 있던 악사였다. 할아버지가 경기도의 대금 시나위의 창시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유지 받들어야

 

낮에는 오수복 선생님께 도당굿의 굿 제차를 배우고, 저녁에는 방돌근 선생님께 도당굿의 장단과 무가를 배웠어요. 경기도당굿은 신이 나지도 않고 까다로운 장단과 사설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했죠. 배우다가 보니 점점 그 깊이에 빠져들게 되고, 나중에는 도당굿의 소리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렇게 경기도당굿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도당굿의 모든 행사에서 거리를 맡아 자신이 가진 재주를 선보였다고 하는 승경숙 지부장. 기획 공연만 해도 50여회에 도당굿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인공연도 2회나 가졌다.

 

선생님들께 그냥 받은 재주잖아요. 열심히 할 수밖에요. 그동안 많은 곳에 공연을 다녔어요. 선생님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공연을 했죠. 때로는 박물관에서 때로는 산사에서, 어디든지 도당굿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달려가서 공연을 했죠. 당시 연세가 많으신 오수복 선생님께서 노구를 이끌고도 도당굿의 전승을 위해 애를 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선생님들이 이젠 한 분도 세상에 있지 않다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고 방돌근 선생은 첫 개인발표회를 며칠 앞두고 세상을 하직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기도. 보유자이신 오수복 선생도 20111217일 세상을 하직했다.

 

선생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산의 굿당에서 선생님의 지노귀굿을 해드렸죠. 두 분의 선생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시고 난 뒤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재주를 널리 퍼트려야 하겠다고. 그래서 오산에 경기도당굿 남부지부를 개설했어요.”

 

 

그동안 50여명의 전수생 키워내

 

20121월부터 6개월 과정으로 경기도당굿의 기본적인 학습을 시작한 전수생들은, 그동안 114, 28, 316, 415명 등 53명에 달한다. 경기도당굿은 그 특성상 일반 굿과는 제차가 다르기 때문에, 6개월 과정으로는 배울 수가 없다. 하기에 꾸준히 학습을 하고 행사에 자주 참석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오산에서 전수생들을 학습시키다가 보니 이동거리가 멀어 전수생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수원 팔달구 인계동 지하에 20여 평 정도 되는 연습실을 마련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것을 온전히 전수시키고자 마음을 먹었죠. 이달 16일에 전수소를 개소하려고요.”

 

전수소의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인계동 지하에서 만난 승경숙 지부장. 경기도당굿의 온전한 전수 보전을 위해서 앞으로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한다. 남들은 어렵다고 배우기를 꺼려하지만, 선생님들께 배운 재주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어려움을 참아내야 되지 않겠느냐며 각오를 다진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 경기도당굿이 온전히 전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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