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3일 째다. 산에 오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잠시 후에는 뇌성벽력까지 치면서 쏟아지는 비로 산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비가 이렇게 오는 날 산을 오르다가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길이 아닌 곳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미끄러운 바위가 위험하기 떄문이다.

무료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아우녀석은 휴가인데 그저 푹 좀 쉬라고 하지만, 쉬는 것조차 편하지가 않으니, 성질머리 하고는 참 희안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있다가 오후 3시가 지나 먹기 시작한 막걸리 파티다. 여주는 쌀이 좋아서인가 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몇 순배가 돌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사람들을 모아본다. 마침 여주에 작업을 하려고 내려온 지인이 있길래 무조건 초청을 했다.

여주에 있는 동생들과 지인들이 모여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나 중 아니거든요"

지인과 함께 찾아온 여주에 사는 또 다른 아우녀석. 늘 머리를 깎고 다닌다. 시원하기도 하겠지만, 개성이 있어 좋다. 가끔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모델이 되기도 하는 아우다. 삼겹살을 사갖고 찾아온 아우는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만든다. (사)민예총 경기지회장 일을 맡아하기 때문에 늘 바쁘다. 그런데 옷에 보니 이상한 글이 가슴에 쓰여 있다.

'나 중이 아님'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물어보고 포복절도를 할 뻔 했다. 평소 개량한복을 자주 입고 다니는 아우녀석이 머리까지 빡빡 밀었으니, 잘 못 보면 영락없는 스님이다. 지나는 사람들이 가끔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어느 여자분이 나더러 어느 절에 계시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했는데?"
"마덕사 주지라고 했죠"
"마덕사는 또 무엇이여"
"아 ~ 마누라 덕에 사는 사람들 말이죠"
   

그래서 생각을 하다가 가슴에 영어로 '나중이아님'이라고 적었는데 잘 몰라보더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이제는 한글로 적고 다닌다고 한다.


 늘 웃음을 주는 아우녀석. 벌써 20년 지기이다.

'난 마덕사 주지예요'

사람들은 늘 마음에 여유를 갖고 싶어한다. 아우녀석만큼 여우를 갖고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그런 이유도 마덕사 주지이기 때문이란다. '마누라 덕에 사는 사람들'을 줄여서 마덕사 주지라고 하는데, 언젠가는 인천인가를 놀러갔다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세요?"
"마덕사에 있습니다"
"마덕사가 어디 있는데요. 한 번 찾아뵐께요"
"여주에 있습니다"

재미있자고 하는 말이다. 아우는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는 예술가다. 3대째 도공의 집안으로 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 어디를 가나 1시간 안에 주변 사람들을 다 지인으로 만드는 재주도 갖고 있다. 아마 이런 기가막힌 발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휴가 마지막 밤에 정말 즐거운 추억거리 하나를 만들었다. 시골이 아니었다면 이런 푸근한 마음들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내가 휴가 때 시골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여유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산을 오르려고 벼르고 있는데, 하늘이 영 반갑지가 않다. 잔뜩 검은 구름이 낀 것이 금방이라도 소나기 한 줄기가 내릴 것만 같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할머니 한 분이 농약통을 지시고 길을 나서신다.

"안녕하세요"
"예"
"밭에 약 치시러 가세요. 비가 올 것 같은데요"
"비가 올까요?"
"예, 금방 쏟아질 것 같아요"
"어제 잠시 해가 들었을 때 칠 것을 그랬네"


팔순 할머니는 아직도 농사일을 하신다.

할머니가 길을 접고 집을 향해 걸어가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심 잘 되었다고 안심을 한다. 돌아가시는 할머니는 하늘이 원망스러우신가 보다. 연신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러실 것이다. 힘들에 나서신 길인데 비가와서 일을 할 수가 없다면, 온 몸이 쑤시는 것이 더욱 힘드실  것 같다.

잠시 쏟아지던 비가 멈추었다. 우산을 손에 든 할머니가 다시 길로 나오셨다. 여주군 북내면의 정말 시골스러운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영감님을 여의신지가 벌써 몇 년째시다. 지금은 혼자 사시면서 밭일을 하고 이런 저런 일로 소일을 하신다. 매일 아침 그 시간이면 집을 나서시고, 같은 시간에 밭에서 돌아오신다. 밭이 먼 곳은 아니지만, 할머니께서 다니시기에는 결코 가까운 거리는 어니다.


할머니는 이 길을 따라 밭으로 가셨다. 

할머니의 길에는 물이 차 있고

뒤를 보이고 가시는 할머니를 몇 장 찍었다. 여주에 올 때마다 뵙는 분이기에 낯설지가 않다. 산 모퉁이를 돌아 할머니께서 사라지셨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할머니의 밭은 어떤 밭일까? 아우에게 할머니의 밭을 묻고 난 뒤, 뒤를 따라 나섰다. 길은 젖어 있고, 바지가랑이가 젖어든다. 그래도 궁금하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좌우로 길이 나온다. 어디인지 알았으니 우측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밭 가까이 가니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길이 끊겼다. 매일 다니시는 길이지만 연세가 드신 분이기에 건너기가 만만치가 않았을 텐데. 할머니가 보이지를 않는다. 여기저기 찾아 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신 것일까?

할머니는 이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으셨다. 할머니의 길을 따라 걸어본다. 발밑에 밟히는 감촉이 좋다. 가끔은 돌뿌리가 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 멀리 할머니가 계시다. 아까 뒷짐을 지고 들고 나가셨던 우산은 아직도 손에 꼭 쥐고 계시다.   

할머니가 밭으로 나가는 길에 도랑이 생겼다
할머니의 밭.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돌아오실 때는 마중이라도 해야겠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시는 할머니는 이제 돌아오실 시간이 가까이 되었다. 시간이 되니 걱정이 앞선다. 돌아오실 때는 개울에 물이 더 불어 있을텐데. 어떻게 건너실 수가 있을까? 할머니에게서, 우리의 어머니가 보인다. 아마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살아오셨을 것이다. 


돌아오실 때 연락이라도 해 주시면 좋을텐데. 그렇게 보아도 말을 놓지 않는 할머니는 아마 남에게 부담이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실 분 같다. 아직은 낯이 익지 않았으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을 눈여겨 보면서, 괜한 비탓만 해본다.   
 

8월 11일부터 하기휴가이다. 딱히 휴가라고 해서 근사하게 계획을 잡아 놓은 것은 없다. 그저 나도 남들처럼 휴가라는 것을 한번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40대까지만 해도 직장이라는 것을 갖고 있었으니, 휴가철이 되면 한 달 전부터 그럴 듯한 계획을 세워 놓고는 했다. 그러다가 직접 자영으로 언론 쪽의 일을 하면서부터는, 휴가가 먼지 아예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먹어 새로운 직장을 가지면서 나도 남들처럼 ‘휴가’라는 것을 즐기고 싶었다고 하면, 참 속 좋은 소리 하고 있다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 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딱히 남들처럼 그리 즐거운 휴가계획은 아예 세워놓지도 않았다. 휴가란 말 그대로 일정기간 동안을 쉬는 일이니, 정말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뿐이다.


산을 오를 때 사용하는 배낭과 토시, 그리고 발 보호대

편히 쉬지 땀 흘리고 산은 왜 가?


“이번 휴가 어디로 가세요?”

“글쎄요 산에나 가려고요”
“아~ 등산 가시나 봐요”

“아닙니다. 그저 산에 올라 아무것이나 좀 캐려고요”

“그럼 약초를 캐시나요?”

“...... ”



삼과 더덕을 캘 때 사용하는 괭이와 12일 오른 산. 그 뒤편 안개에 가린 산을 올랐다.

더 이상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답이 없으니 질문을 하기도 멋 적은가보다. 그러나 내가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난 등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산에 꼭 일이 있어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쉬는 것이 무료해, 산삼이라도 한 뿌리 캐볼 심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난 심마니는 더욱 아니다.

     

“날 더운데 땀 흘리고 산에는 모하러 가”


아는 녀석이 볼멘소리를 한다. 물론 산에 오르면 땀이 비오 듯 쏟아진다. 남들보다 유난히 여름을 잘 타는 나로서는 산 밑에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먼저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런데도 산에 오른다. 남들은 그런 나를 말리기도 한다. 너무나 지치면 몸에 오히려 좋지가 않다는 것이다.


여주에 있는 아우 녀석의 집으로 휴가지를 잡았다. 근처 산에 올라 산삼이라도 캐 볼 심산이다. 12일 아침에 산을 오른다. 땀이 비오 듯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뜨거운 날씨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몇 시간을 산을 헤맸지만 삼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굵은 더덕 몇 뿌리를 캔 후 토종닭을 사서 백숙으로 만찬을 즐겼다. 깊은 산 중에서 캔 더덕은 그 향이 짙다. 백숙에서는 짙은 향내가 난다.


다음 날은 다리도 아프다. 전날 먹은 술이 아직도 몸 안에 남아있는데, 또 다시 산을 오르자고 사람들에게 재촉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어제 움직인 것도 지쳐있는데, 산을 또 가자니 누가 반길 것인가?




산에 오를 때 복장을 보면, 이건 나도 일류 심마니다. 등산화를 신고 다리에는 신발에 흑이 안 들어가도록 보호대를 찬다. 그리고 얼음물과 이온음료를 한 병씩 챙긴다. 배낭 안에는 허기가 질 것에 대비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도 준비한다. 여름에도 긴 옷을 입어야하지만, 요즈음에는 시원한 토시를 팔에 낀다. 그리고 삼을 캘 때 사용하는 곡괭이까지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다르다. 해가 있어도 어둡다. 계곡을 끼고 따라 오르다가 보면 더위가 조금은 가실 듯하지만, 워낙 빨리 산을 오르니 땀이 마를 새가 없다. 두 세 시간을 산을 타다가 보면 몸에서는 쉰내가 나기 일쑤다. 그래도 왜 그렇게 산을 올라야 하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몸은 가볍고, 주변 사람에게는 나눌 수 있어 좋다.


산을 오르면 무엇이든지 소득은 있다. 하다못해 더덕 몇 뿌리라도 캐오기 때문이다. 자연산 더덕을 입에 넣고 씹으면, 그 향이 짙어 목이 아릴 정도이다. 오늘도 산에 올라 두 시간여를 골짜기를 타고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큰 더덕 10여 뿌리를 캐면 블로거인 아우 녀석에게 택배로 보내 줄 심산이었다. 날마다 사진만 찍어 약을 올려놓았으니, 산삼은 그만두더라도 더덕이라도 보낼 줄 생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산을 뒤져도 눈에 뜨이질 않는다. 장소를 옮겨 보았지만 마찬가지다. 대신 영지버섯만 따왔다. 영지버섯은 왜 그리도 눈에 잘 띠는 것인지. 내일은 이것이라도 포장을 해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을 내려오면서 다짐을 한다. 아직 휴가가 이틀이나 남았으니, 내일은 또 다른 산으로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하다못해 새끼삼이라도 좋으니 그저 몇 뿌리라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나는 땀을 흘려 몸이 가벼워져 좋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수 있으니 더욱 좋은 것이 아닐까?


“아우야 기다려라, 영지버섯 착불로 보내 주꾸마”


일요일이 되면 가끔 산으로 올라간다. 등산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남들처럼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하면 남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잘 먹기 위해서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 살다보면 사람들은 무엇인가 좀 좋은 것이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질문에 늘 되묻는 말이다. 그럼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더구나 복중에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산을 온통 헤집고 다니는 이유 말이다.

처음 캔 것을 손에들고 휴대폰으로 인증샷을...

'우리들이 무슨 특수부대도 아니고'

산으로 오르는 이유는 바로 산에서 자라는 자연산 더덕이나 도라지 등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올 봄부터 우연히 산을 올랐다가 더덕을 캐게 되었다. 그 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향도 그렇지만 5월 초순까지는 줄기까지 씹어 먹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끔은 캔 더덕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많이 캐서가 아니라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덕을 캐러 산에 오르면 그 복장이 장난이 아니다. 우선 긴팔 윗옷을 입어야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면 가시에 찢기는 등 상처가 아물 날이 없기 때문이다. 장갑은 필수요, 다리에는 보호대인 각반을 착용한다. 어디 그것뿐인가? 물과 비상식량(이건 머 아이들 같지만 간식거리를 말한다. 온 산을 누비고 다니면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거기다가 등에는 배낭을 하나 둘러매고, 손에는 곡괭이를 하나 들고 간다. 가끔 운이 좋으면 어린 산삼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섯시간 동안 산을 돌아다니면서 캔 자연산 더덕. 향이 그만이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이미 옷은 땀으로 젖어버린다. 목에 두른 수건은 짜면 물이 주르륵 흐른다. 땀이 이 정도로 비오 듯 쏟아지니 몸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다. 쉰내가 난다. 산모기와 작은 파리는 연신 달라붙는다. 참으로 귀찮은 녀석들이다.

이놈의 등산화야 어쩌자는 것이냐?

정확히 말하면 어제(8월 8일) 오후인가 보다. 지인들과 함께 더덕을 캔답시고 산행에 나섰다. 산을 가로질러 몇 고개를 넘는다. 겨우 더덕 몇 뿌리를 캤다. 일단 인증샷을 휴대폰으로 찍어 놓고 한 시간 이상을 돌아다녔지만,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자리를 옮겨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로 등산화 앞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산에 무수한 줄기들이 등산화를 물고 놓지를 않는다. 몇 번인가 넘어지고 부터는 실실 화가 난다. 거기다가 나무 가지에 걸려 모자까지 나무가 가져가버렸다. 높지는 않은 나무지만 이미 많이 지쳐있는 터라, 모자를 찾아야겠다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장소를 옮겼다. 계곡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더덕이 보인다. 곡괭이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으니 맨손으로 캘 수밖에.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낭패인가. 흙을 파다가보면 더덕의 줄기가 끊어져버린다. 화는 나는데 벌어진 등산화의 주둥이는 연신 흙을 집어삼키고 있다. 발바닥이 까칠 거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줄기를 물어 걸리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를 수십 번은 했다. 어쩌란 말이냐 이 더위에.

다섯 시간 정도 산을 탔다. 손에는 십여 뿌리의 자연산 더덕이 들려있다. 그런데 이 주둥이 빠진 등산화는 어찌할까? 등산화가 입을 벌리고 나에게 항의를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산을 좀 작작 다녀 이 인간아”


눈이 내리고 난 10일, 여주 5일장을 찾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걱정이 되는 분들은, 난전을 펼치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눈을 대충 치운 장거리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몇 가지 안 되는 물건을 펴놓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할머니 추운데 나오셨네요, 춥지 않으세요?"

"좀 춥네."

"이나저나 왜 5일 장날마다 이렇게 눈이 오거나 비가 오네요."

"그러게, 올해는 계속 그러네."

"많이 파셨어요?"

"아직 개시도 못했어. 이나저나 하늘이 맘이 상하셨나."

 

좌판에 벌려놓고 있는 물건을 보니 몇 가지되지도 않는다. 깻잎과 새로 뜯은 냉이, 그리고 동치미무와 짠지무가 전부다. 이것을 들고 장마다 나오시는 할머니께 함자를 여쭤보기도 죄스럽다.  

 

"냉이는 어디서 캐셨어요?"

"집 근처에서 캤지"

"집이 어디신데요?"

"내양리"

 

▲ 할머니의 난전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펴시고 장사를 하신다

 

여주 장날만 나오신다는 할머니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벌여놓고 계신 할머니는, 장 한쪽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 자릴 펴고 계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도, 이쪽은 왕래가 드문 곳이니 팔릴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 많이 파실 수 있겠어요?"

"아는 사람들은 오지. 이 짠지무는 식당을 하시는 분이 4만원 어치나 사셨어. 맛이 있다고. 사가서 양념해 놓으면 정말 맛있어"

"오늘은 좀 파셨어요?"

"이것 좀 사가, 남자가 개시하면 잘 팔려"

"그 깻잎 오천 원 어치만 주세요."

 

깻잎을 담고 계시는 할머니는 여주 장날만 나온다고 하신다. 이만한 물건을 갖고 어떻게 이 장 저 장을 다니겠느냐는 할머니는, 이렇게 작은 물건이나마 파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장날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요,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안 보내는 것도, 다 하늘이 정해 놓은 일이라는  것이다.

 

▲ 깻잎 덤으로 깻잎을 듬뿍 담아주시는 할머니는 이렇게 일기가 고르지 못한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란다.


할머니의 하늘은 왜 마음이 상하셨을까?

 

그런 할머니의 하늘은, 오늘이 장날인데도 눈이 오고 날이 춥게 만들었다. 연세가 드신 분이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계시면서도, 날씨 탓을 하지 않으신다. 할머니의 하늘은 과연 무엇일까?

 

"깻잎 많이 담지 마세요."

"먹을 만큼은 주어야지. 개시를 잘 주면 하루 종일 손님이 많아."

"많이 파세요. 추운데 불이라도 좀 지피시지 않고."

 

할머니는 모든 것이 다 하늘이 알아서 하신다고 말씀을 하신다. 인간이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면 결국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것도,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다 인간들 스스로가 하늘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라는 것. 과연 할머니의 하늘은 어떤 것일까? 장을 돌면서 내내 생각을 해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머니의 하늘은 듬뿍 물건을 더해 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 작은 난전 여주 5일장 한편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은 하늘을 닮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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