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슴이 먹먹하다고 한다. 그리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절로 욕이 튀어나온단다. 이 나라 어디 한 곳 성한 곳이 없다는 느낌이다. 어째 나라가 이토록 비리로 얼룩져 잇는 것인지. 이젠 뉴스조차 보기가 싫다. 뉴스마저 신뢰가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아파해야 이 아픔이 끝날 것인가?

 

세상이 다 아프다고 하는데, 이 통에도 자신과 사고가 맞지 않는다고 물어뜯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미친개들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 아파하는데 그 아픔에 상처를 더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인지도 의심스럽다. 아침 일찍 산으로 향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려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들, 불빛으로 치유가 되었으면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본다. 하지만 잠깐 틀어놓은 TV화면에서 또 세월호의 아픔이 보인다. 괜히 책상머리에 앉아 이것저것 뒤적여본다. 그러다가 문득 석등이 눈에 들어온다. 사찰의 대웅전 앞에 석등과 나란히 서 있는 석등. 그러고 보니 며칠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석등의 용도는 절 안의 어두움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온 누리에 비추어 중생을 깨우쳐 선한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등불은 수미산과 같고, 등을 밝히는 기름은 넓은 바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는 등에서 나간 불빛이 고루 퍼져나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양구 중에서도 으뜸인 등불

 

석등은 언제나 석탑과 함께 대웅전의 앞에 자리한다. 대웅전이란 절의 중심 전각이다. 그 앞에 석등을 세우는 것은,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물 중에서도 등불 공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갖가지 형태의 많은 석등이 현재까지도 자리하고 있으며, 폐사지 등에도 석등이 남아있는 숫자가 많은 것을 보면, 석등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석등은 부처나 보살의 지혜를 밝혀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탑 앞에 조성한 석등의 불을 밝히면, 33천에 다시 태어나 허물이나 번뇌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석등은 흔히 광명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간주석과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전국에 산재한 많은 사찰에서 보이는 석등은 이러한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석등을 그렇게 대웅전 앞에 배치를 한 것도, 알고 보면 수많은 중생을 어둠에서 깨우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답사를 한 수많은 석등의 자료를 뒤적이면서 마음속으로 간구를 해본다.

 

정말 미안합니다. 석등의 불빛 따라 편히 가시길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한다. 그것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일꾼들을 뽑는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악에서 지켜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한 것이다. 제몫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수도 없이 고쳤다그러면 무얼 하겠는가? 소만 들여놓으면 또 잃어버리는 것을. 처음부터 튼튼한 외양간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겉만 번지르르하면 손 툭툭 털고 일어나버렸다. 그런 사람들의 관습이 이렇게 커다란 비극을 몰고 온 것이다. 초파일에는 가까운 곳을 찾아가 석등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겠다. 그리고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1. 해바라기 2014.05.02 06:35

    오월 부처님의 탄신일을 기해 세월호의 아픔을 다 씻어 주었으면 합니다.
    석등의 빛이 스며 나오는듯 합니다.^^

  2. 글마 2014.05.02 06:47 신고

    정말... 이 아픔이 치유되길 바래봅니다.

  3. 참교육 2014.05.02 06:51 신고

    제발 아이들이 살아돌아오기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사고의 전모가 조금씩 밝혀지면서 너도 나도 욕쟁이가 되어 갑니다.
    박근혜를 비롯해 선장, 항해사, 해경, 언딘, 선주.... 들에게 분노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4. komi 2014.05.02 07:01

    정말 부처님의 자비로 치유되면 좋겠습니다.
    자식키우는 입장에서 이번 정부의 대응은 너무 무능력의 실체를 보여준게 아닌가 생각 됩니다.
    분향소가서도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수가 없었네요
    꼭 석등의 불빛이 돌아가신분들을 극랑왕생으로 인도하고
    부모님들의 상흔들을 치유해 나가길 소망해 봅니다

  5. The 노라 2014.05.02 07:32 신고

    세월호 사고와 또 이후 미친X들 때문에도 더 상처받았는데 석등을 보니까 좀 편해지는 느낌이예요.
    이번 사고와 그 실종자 수색과정을 통해서 똑똑히 봤으니 어른들이 제발 정신을 차려야죠.

  6. 공수래공수거 2014.05.02 10:37

    사진에 대한 설명도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관심이 좀 있거든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 무량사. 무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신라 말 무염선사가 중수하고, 고려 고종 때 중창을 하여 요사채 3-여 동과 산내 12개의 부속암자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이 된 것을 조선 인조 때 대중창을 하였으며, 1872년 원영화상이 중창을 해 오늘에 이른다.

 

천년 고찰인 무량사에는 보물 5점과 충남 지방문화재 8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 보물로 지정된 2층으로 조성된 극락전 앞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과 석등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이런 사찰의 배치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배치형식이다. 백제불교의 혼을 지니고 있다는 무량사. 눈이 쌓인 무량사는 정취가 남다르다.

 

선이 고운 무량사 석등

 

극락전 앞에 오층석탑을 세우고, 그 앞에 자리한 보물 제233호로 지정된 무량사 석등이 석등을 볼 때마다 참 선이 곱다는 생각이 든다. 지붕돌인 보개석 위에 눈이 한 편에 쌓인 석등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부여 무량사 석등은 선이나 비례가 매우 아름답다. 이 석등을 볼 때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의 버선코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석등은 부처나 보살의 지혜를 밝혀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탑 앞에 조성한 석등의 불을 밝히면, 33천에 다시 태어나 허물이나 번뇌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무량사 석등은 아래 받침돌 위에 기단부를 놓고 그 위에 간주석과 불을 밝히는 화사석, 그리고 맨 위에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올렸다.

 

부여 무량사 석등은 화려하지가 않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넘어오는 시기에 조성을 한 것으로 보이는 석등은, 한 마디로 단아한 형태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보존이 되어있는 이 석등은 간결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이 석등을 만날 때마다 기품있는 반가의 새색시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간결한 연꽃이 기품을 더해 

 

무량사 석등의 기단부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아래받침돌에는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 간주석은 팔각의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으며,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윗받침돌을 놓았다. 윗받침돌인 상대석과 아래받침돌인 하대석에 새긴 연꽃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간결한 조형에 비추어 풍성한 느낌을 주는 연꽃을 조각하였다.

 

상대석은 좀 좁은 편이지만 간주석인 팔각기둥이 짧은 편으로, 그 덕에 전체적으로 둔중하지 않고 날렵함을 표현하였다. 팔각으로 조형한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네 군데로 난 화창은 넓고 그 나머지 면은 좁게 했다. 화사석의 8면 중 넓은 4면에 화창을 내어, 전체적으로 조형미에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마의 경사가 버선코를 닮아

 

화사석 위에 얹은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추켜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린다. 이렇게 경쾌하고 자연스럽게 올려진 귀퉁이의 선이 새색시의 버선코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위에 올린 작은 연꽃봉오리모양의 보주 또한 단아함의 극치이다. 많은 상륜부가 없는 것이 오히여 이 석등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듯하다.

 

눈이 쌓인 날 찾아간 부여 무량사. 그곳에서 만난 석등 한 기가 발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언제 이렇게 단아하고 기품있는 석등을 본 적이 있었던가?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긴 하지만.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꽃 문양 역시 신라시대의 화려함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것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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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렌지수박 2013.12.16 07:57 신고

    저렇게 깎아지는 듯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문화재는 정말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만의 멋이 있어 더욱 아름답습니다.

  3. 행복끼니 2013.12.16 07:58

    아주 멋지네요~
    감상 잘하고갑니다~^^

  4. 굄돌* 2013.12.16 08:01 신고

    온누리님 덕분에 사찰을 공부하게 되네요.
    무지하여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분야거든요.

  5. 예또보 2013.12.16 08:07 신고

    정말 너무 멋지네요 ㅎ
    잘보고갑니다

  6. pennpenn 2013.12.16 08:10 신고

    석등 하나만으로도 포스팅을 하는군요~
    대단한 혜안입니다
    월요일을 힘차게 열어가세요~

  7. landbank 2013.12.16 08:19 신고

    정말 멋진 곳이네요
    덕분에 잘보고갑니다

  8. 서비 2013.12.16 08:21

    연꽃의 기품이라는말이 전해지는그런 모습인데요..^^

  9. 행복한요리사 2013.12.16 08:39

    정말 새색시의 버선코를 닮았네요~
    무량사 석등에 대해 잘 알고 갑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

  10. +요롱이+ 2013.12.16 08:43 신고

    덕분에 오늘도 너무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1. Hansik's Drink 2013.12.16 08:56 신고

    잘 보고 간답니다 ~ ^^
    의미있는 한 주를 보내셔요~

  12. 발사믹 2013.12.16 09:19 신고

    참 멋진 장소네요. 월요일 아침부터 편안해지네요.오늘도 좋은 정보 잘알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13. 카르페디엠^^* 2013.12.16 09:40 신고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야 할 유산이네요^^

  14. 클라우드 2013.12.16 10:04

    흰눈이 쌓여 있음에 왠지 추워보여요.
    건안하세요.

  15. 여기보세요 2013.12.16 10:04 신고

    온누리님은 좋은 글을 항상올리시네요. 님 덕에 좋은 맘으로 보고갑니다.

  16. 모피우스 2013.12.16 10:11 신고

    석등의 곧은 지개처럼 느껴집니다. 좋은 구경하고 갑니다. 행복한 한 주되세요.

  17. ★입질의추억★ 2013.12.16 10:31 신고

    선 하나하나가 다 뜻이 담겨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품이 있는 소중한 우리 유산. 앞으로도 오래토록 보존되었으면 좋겠어요.^^

  18. *저녁노을* 2013.12.16 10:37 신고

    아름다운 선이 느껴지네요^^

  19. 라오니스 2013.12.16 11:20 신고

    무량사에 보물이 한 가득이로군요 ..
    고운 선이 담긴 무량사의 설경이 아름답습니다..

  20. 놀다가쿵해쪄 2013.12.16 15:34 신고

    연꽃무늬가 참으로 기품있어 보입니다.
    추운날 감기조심하세요~

  21. The 노라 2013.12.16 20:58 신고

    부여에 연고가 있어 외산 무량사가 유명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어째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저리 이쁜 석등과 오층석탑도 못보고 이역만리에서 지금 생각하니까 안타깝네요.
    눈 내린 무량사가 참 아름다운데 온누리님께서는 추우셨을 것 같아요.
    아~ 아니다. 전에 좋은 생일선물 받으셔서 따뜻한 답사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참, 올해 Best Blogger에 선정되신 것 정말정말 축하드려요.
    사실 온누리님 블로그에 Best Blogger 상을 주지 않는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 것이긴 하지만요.
    온누리님, 블로그 짱!!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소재한 고찰 쌍계사. 지리산의 남쪽기슭에 자리한 쌍계사의 경내에 서 있는 8각 석등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쌍계사석등(雙磎寺石燈)’으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 석등을 보면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석등이란 세상을 밝힌다는 의미로 불을 켜는 화사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쌍계사 석등에는 화사석과 지붕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석등이란 원래 3단으로 이루어진 받침 위에,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리고 지붕돌을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어야 하지만, 이 쌍계사 석등은 화사석과 지붕돌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 어떤 연유로 인해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석등의 의미는 매우 깊어

 

석등이란 절 안의 어둠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석등은 부처님의 진리를 빛으로 시방세계를 비춘다는 뜻으로 조성한다. 이것은 곧 중생을 빛으로 깨우쳐 선한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또한 석등의 등불 하나하나는 부처님이 계시다는 수미산과 같고, 석등에 불을 켜는 기름은 넓은 바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하기에 사찰에서 조성을 하는 석등은 공양구 주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하기에 석등은 언제나 부처님이 계시다는 대웅전과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거나 부처님을 상징하여 조성하는 탑과 함께 조성을 하는 것이다. 하동 쌍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등은 화사석과 보개석이 없기 때문에 그 원형을 알기가 어렵다.

 

 

 

조각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었을 것으로 보여

 

경남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쌍계사 석등은 화사석을 올리는 상대석 위에 복발과 보주가 놓여있다. 상대석 아래로는 팔각의 간주석이 놓여있으며, 그 밑으로는 아래 받침돌인 하대석이 놓여있다. 석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화사석과 지붕돌이 사라져버려 처음의 형태는 알 수가 없다.

 

아래받침돌인 하대석에는 엎어놓은 연꽃문양인 복련을 둘렀고, 상대석인 위받침돌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솟은 연꽃문양인 앙련을 조각하였다. 가운데기둥인 간주석은 가늘고 길며 중간이 부러져 있던 것을 나중에 맞추어 놓았다. 처음에 얼핏 보면 흡사 두 개의 돌로 간주석을 조성한 것처럼 보인다.

 

 

불을 켜는 곳인 화사석과 지붕돌인 보개석이 없어진 자리에는, 상륜부에 올려놓았던 머리장식만 놓여 있다. 상륜부는 낮은 받침위로 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인 보주와, 엎어놓은 그릇모양을 한 복발 등이 남아있다. 이 쌍계사 석등은 가운데기둥의 단조로움과, 상대석과 하재석 등에 조각한 세련된 연꽃무늬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또한 제대로 된 형태로 보존이 되었다고 하면, 뛰어난 걸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재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2년인 723년에 삼법, 대비 두 스님이 당나라 6조 혜능대사의 정상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을 찾아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830년에는 진감해소 국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두 스님이 지은 절에 영당을 짓고, 절을 크게 중창한 후 사찰명을 옥천사로 고치고 이곳에서 입적을 했다.

 

 

그 후 정강왕이 이웃마을에는 옥천사가 있고 산문 밖에는 두 내가 만난다고 하여 쌍계사라고 불렀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전하고 있다. 국보 제47호인 진감국사 대공탑비를 비롯해, 보물 제500호인 대웅전을 비롯한 보물 9, 일주문과 천왕문 등 지방문화재 20점 등 총 30점의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쌍계사를 일러 문화재의 보고라 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쌍계사. 그 경내에 서 있는 석등의 화사석은 언제 사라진 것일까? 쌍계사를 들릴 때마다 궁금증이 일어난다.

 

() 오늘부터는 하루에 한 개씩만 송고 하겠습니다. 단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너무 급하게 달려온 듯합니다. 이제 좀 벗어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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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클라우드 2013.12.13 11:11

    조각품의 예술성이 돋보이는 쌍계사 석등,
    쌍계사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건강하세요.^^

  3. 여기보세요 2013.12.13 11:24 신고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생각을하게 하는 글이네요.^^ 수고하세요

  4. ★입질의추억★ 2013.12.13 11:24 신고

    이번에는 균열도 아니고 뭐 하나가 쌍그리 없어진 건가요.
    도난 당한건지 아예 파손이 된 건지 알 수 없는 문화재들.
    관리의 부재가 심각히 느껴집니다~

  5. 포장지기 2013.12.13 11:37 신고

    보물단지가 따로 없네요..
    두고두고 후손에게 잘 물려줘야할 문화재들입니다^^

  6. 박씨아저씨 2013.12.13 11:39

    쉬엄쉬엄 하십시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7. 에스델 ♥ 2013.12.13 11:54 신고

    쌍계사 석등에 화사석이 사라진 이유가
    참 궁금해집니다...ㅎㅎ
    날씨가 어제보다 더욱 추워졌습니다.
    감기조심하시고 오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8. 발사믹 2013.12.13 12:11 신고

    눈으로 읽었네요. 우리나라 문화유산를 정말 사랑하시나봐요

  9. 알숑규 2013.12.13 12:35 신고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오래는 아니지만 꾸준히 블로그를 찾아온 방문자의 입장에서,
    너무 조급한 마음 가지지 마시고 편안히 글을 작성하셨으면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좋은 글인 것은 변치 않으니까요.

  10. 루비™ 2013.12.13 13:39 신고

    화사석이 없다는 석등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지요..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갔을까요?
    아니면 뭔지도 모르고 어딘가에 방치되었을지도...ㅠㅠ

  11. 김천령 2013.12.13 14:11 신고

    언제 여길...
    하루 한 개도 많습니다.
    쉬엄쉬엄 하십시오. 건강 잘 챙기시고요.

  12. The 노라 2013.12.13 14:12 신고

    잘 만들어진 석등인데... "화사석을 가져간 자 뉘기야? 뭔지는 알고 가져갔남?"
    안타까워요. 지금이라도 잘 관리했으면 합니다. ^^*

  13. 행복한요리사 2013.12.13 14:33

    우리의 귀한 문화재~
    제대로 보존이 되어야겠지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

  14. 대한모황효순 2013.12.13 15:14

    모든 문화재에
    경보음이 울릴수 있도록
    특별한 장치를 해뒀음 좋겠어요.^^

  15. 주리니 2013.12.13 15:48

    어둔 밤을 밝히는 기능만이 아니라 진리를 밤낮 가리지 않고 비추는 역할였던 거군요.
    오랜세월이 흘렀슴에도 아름답지만.... 무척이나 아쉬운 맘도 듭니다.

  16. 朱雀 2013.12.13 17:32 신고

    무심히 본 석등에 그런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었군요. 오늘도 하나 배워갑니다. ^^;
    그나저나 쌍계사의 석등에 왜 화사석이 없는 것인지...실로 안타깝네요...

  17. S매니저 2013.12.13 19:11 신고

    문화재 보존 힘써야죠!
    잘 보고 갑니다~

  18. 라오니스 2013.12.13 22:49 신고

    쌍계사는 정말 보물 같은 절집이지요 ..
    화사석.. 어디로 갔을지 .. 궁금해지는군요 ...

  19. 워크뷰 2013.12.13 23:00 신고

    문화재 관리 정말 신경집중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20. 공룡우표매니아 2013.12.14 04:38

    문화제를 알고, 보고, 아끼고하는 마음과
    부족한 상식 채워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21. 유머조아 2013.12.14 23:55 신고

    좋은 문화재 소개하셨군요.
    항상 무심코 지나친 건데..

국보 제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은,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경내에 자리한다. 국보 제18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무량수전 앞에 서 있다고 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이라고 명명하였다.

 

석등은 흔히 ‘광명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석등은 절의 가장 중요한 곳인 대웅전 앞이나 탑과 같은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간주석과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단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석등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석등은 문화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고 해도, 그 균형이 잘 맞는다고 느낄 정도이다. 4각으로 조성한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 기중인 간주석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간주석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인다.

 

간주석의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받침돌의 끝마다 조각한 귀꽃이 더 없이 아름답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이 보살상들은 금방이라도 불을 밝히고 석등을 빠져 나올 것만 같다. 그만큼 이 석등은 간결하면서도 조각 하나하나가 세련된 미를 자랑하고 있다.

 

뛰어난 균형미에 아름다운 선

 

지붕돌도 역시 8각이다. 지붕돌은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 부석사 석등은 그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무량수전 측면에서 석등을 바라본다. 하늘 끝과 맞닿은 안양루와 석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아마도 이런 멋진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석등이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을 하는가 보다. 그 앞에서 걸음을 땔 수가 없다. 언제 또 이곳을 들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지.

 

이렇게 아름다운 문화재를 하나하나 만날 때마다 항상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이렇게 문화재 답사를 할 수 있도록 내가 답사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만일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니지를 않았다면 생활은 좀 더 편했겠지만, 우리 문화재에 대한 고마움은 느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례석의 조화로움

 

자칫 석등에 빠져 그 앞에 놓인 배례석을 놓칠 수도 있다. 석등 앞에 놓인 배례석은 그 존재만으로도 아름답다. 네모난 일석으로 조성을 한 배례석은 윗면에 커다란 연꽃 한 송이를 돋을새김 하였다. 그 밑으로는 조금 층지게 파 들어가서 둘레를 안상을 새겨 넣었다. 밑 부분은 밋밋하게 표현을 하였으나,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잘 잡혀있다.

 

영주 부석사에서 만난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석등. 크지 않은 석등이지만, 그동안 만나왔던 수많은 석등보다 월등히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늘 길 위에 서 있는 것이지만.

  1. 귀여운걸 2012.09.03 06:49 신고

    단아하고 균형있는 조화가 참 아름답네요ㅎㅎ
    온누리님 덕분에 부석사 석등 잘 보고 갑니다^^

  2. landbank 2012.09.03 09:20 신고

    우리의 문화재 정말 소중히 잘 간직해야 할 것 입니다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3. 예또보 2012.09.03 09:57 신고

    덕분에 좋은 문화재를 앉아서 보게 됩니다.
    잘보고 갑니다.

  4. 朱雀 2012.09.03 10:23 신고

    덕분에 오늘도 우리 조상의 얼과 숨결이 담긴 부석사 석등을 보고 갑니다. ^^;;;

  5. 가을사나이 2012.09.03 11:10 신고

    제가 알지못하는 문화재가 정말 많네요.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다양한 모습을 만날 때마다 신비롭다는 것이다. 어떻게 선조님들은 이렇게 다양하게 하나하나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답을 얻을 수가 없다. 아마도 오랜 세월을 그렇게 조형을 한 문화재마다, 그 문화재를 조성한 장인들의 혼이 들어있을 것이란 생각 밖에는 말이다.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에 위치한 용천사는, 꽃무릇으로 유명한 절이다. 이 용천사의 가을 풍취는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 용천사를 찾았을 때는 꽤나 늦은 가을이었는가 보다. 절집 여기저기 아름다운 단풍이 온통 치장을 하고 있었을 때였으니. 그런 곳을 다녀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쉽게 잊히지가 않는 법이다.

 

작은 석등 하나, 거 참 신기하네

 

용천사 경내의 여기저기를 찍다가보니, 전각 앞에 작은 석등 한 기가 서 있다. 석등은 부처님의 말씀을 온누리에 펼쳐 사바세계를 밝게 비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석등은 절 경내뿐만 아니라 묘역 등에도 세우는데, 이것은 유택에 잠든 영혼의 저승길을 밝힌다는 뜻을 갖고 있다. 묘역에 세우는 석등은 장명등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 석등을 바라보다 한찬 넋을 빠트리고 말았다. 크지 않은 석등이지만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석등과는 많이 다르다. 이렇게 낯선 문화재를 만날 때면 괜히 가슴이 콩닥거린다. 비밀스런 그 무엇을 찾은 기분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작은 석등 하나가 주는 즐거움은 답사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함평 용천사의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받치는 기둥인 팔각 간석에, 강희 24년이라 음각을 해 놓았다. 조선조 숙종 11년인 1685년에 조성한 석등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한 조성연대까지 음각을 한 경우도 드문 예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보던 석등과는 다른 용천사 석등. 그 모습이 자꾸만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간주석 거북이들, 어디까지 오르려고?

 

우선 이 석등의 머릿돌은 팔작지붕을 본떠 만들었다. 지붕의 형태도 그렇지만 처마에 부연을 달아낸 것까지 조각을 하였다. 부연 밑에는 투박하기는 해도 공포를 조각한 것도 보인다. 이런 석등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화사석은 간단한 무늬를 음각해 고졸한 멋을 풍기고 있으며, 둥글게 창을 내었다.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간석은 연꽃문양을 조각하였다. 석등의 아랫 간석에는 두 줄을 내고 네 마리의 거북이가 매달려 있었는데, 현재는 두 마리만 남아있다. 거북이의 형태는 흡사 줄에 매달린 듯 재미난 형상을 하고 있다. 저 거북이들이 저렇게 위로 오르다가는 화사석에 낸 창 안으로 들어갔다가 불에 델 것만 같다. 혹 두 마리는 벌써 탄 것은 아닐까? 괜한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키득대본다.

 

용천사는 6·25 동란 때 불에 타서 거의 모든 유물들이 소실이 되었는데, 이 석등만은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높이 2.37m의 화강암 쑥돌로 조성된 이 석등은 투박하지만,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현재 이 용천사의 석등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일반적인 석등과는 달리 팔작지붕을 얹고 원형의 화창을 낸 화사석. 그리고 간석에 붙은 거북의 모습 등, 조금은 매끄럽지 못한 듯한 모습으로 조성이 되었지만, 가치가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답사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문화재 하나가 주는 즐거움. 용천사 석등은 바로 그런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 문화재였다.

  1. 여강여호 2012.03.31 06:25 신고

    석등에 그런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도 석등이 환하게 불을 밝혔으면 좋겠네요...
    이른 봄날 아침 지나간 아니 다가올 가을 정취를 물씬 만끽하고 갑니다.

  2. 산들강 2012.03.31 08:30 신고

    아! 관심없는 사람이 보면 모르고 지나갔겠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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