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4일 화요일, 아침 일찍 부산으로 출발을 했다. 10여명의 봉사단원들이 피곤한 아침잠을 설치며 봉사 길에 나선 것이다. 일찍 출발을 해서인지 시간에 쫓기지 않고 부산의 무료급식소에 도착한 것이 11시경. 급식소는 부산 지하철 구서역 출구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위로는 전철이 다니는 곳, 주차장 옆에 자리한 급식소.

이곳에는 하루 600여명의 어르신들이 찾아와 점심을 드신다고 한다. 무료급식은 부산의 불교기관에서 맡아 하고 있는데, 월요일에는 해인사 포교원에서, 화요일에는 노포동에 있는 혜일암에서 담당을 한다. 수요일에는 범어사 화엄회에서 주관을 하며,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바라밀회에서 급식을 담당한다.

'사랑실은 스님짜장' 버스가 14일 부산 구서 전철역 옆에 자장을 싣고 달려갔다.

봉사를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11시에 도착을 하여 짐을 풀었다. 새벽 5시에 자장을 볶아서 출발을 했기 때문에, 조금 일찍 배식을 하자고 했으나 시간을 12시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앉아서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나, 뒤로 길에 줄을 늘여 서 계시는 분들에게는 죄스럽기만 하다. ‘스님짜장밥’을 해 주기로 약속을 하고, 남원 선원사에서 왔다고 소개를 한다.

한번 모든 자리가 차면 250~300분 정도의 어르신들이 음식을 드실 수 있다고 한다. 상 주변은 물론 주위에도 이미 자리가 없다. 그리고 밖으로도 점점 줄이 길게 늘어난다. 이곳에 모이시는 어르신들이 모두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는 얼핏 보아도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계신 듯하다.



11시인데도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계시는 어르신들과 자원봉사자들(가운데)

12시가 다 되자 속속 봉사를 할 봉사자들이 도착을 한다. 오늘 봉사는 혜일암 봉사단을 위시하여 한국전력과 대한적십자봉사단, 그리고 부산교통봉사단가지 합세를 했다. 한국전력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봉사를 하는데, 자신들이 쌀까지 담당을 한다고 한다. 이런 봉사자들의 따듯한 마음이 모여, 어르신들의 맛있는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 한편이 훈훈해진다.

따듯한 마음이 담긴 점심 한 그릇

배식이 시작되기 전 봉사자들은 떡과 요구르트를 비닐에 하나씩 싸기 시작한다. 어르신들 께 드릴 후식이라는 것. 배식소를 꽉 채운 어르신들은 봉사자들이 줄을 서서 자리까지 날라다주는 짜장밥을 맛있게 드신다. 이런 것 하나가 그동안 이곳에서 얼마나 오랜시간을 이렇게 봉사를 했는지 알게 한다.




짜장을 배식하고 있는 운천스님과(위) 줄을지어 자장을 나르는 봉사자들(두번 째) 그리고 맛있게 스님짜장밥을 드시는 어르신들
 
사진이나 잘 찍으면 되겠지 하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봉사자들과 점심을 드시는 어르신들을 담기에 바쁘다. 위로 전철이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환경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점심을 드실 수가 있어서 좋다는 어르신들이다. 한쪽의 어르신들이 점심을 드시고 자리를 뜨자, 밖에 줄을 서서 계셨던 분들이 바로 자리를 꽉 채운다. 이렇게 두 세 번이 바뀌어야 점심을 마친다는 것이다.

눈물을 훔치시는 할머니의 사연, 가슴이 아파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앞에서 밥을 드시는 할머니가 자꾸만 고개를 숙이신다. 처음에는 눈이 나빠 그러시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연신 눈 가까이 손을 가져가신다.


급식소 밖으로도 줄을 지어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시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녀 집에 계신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만”
“할아버지께서 왜요?”
“짜장면을 좋아하는데 거동을 할 수 없어서 혼자 나왔어”
“그럼 자녀분들은 아무도 안 계세요?”
“연락이 끊어진지 오래되었어. 할아버지하고 둘이 사는데 오늘 짜장면을 해준다고 해서 나왔는데, 자꾸만 할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마음이 아프다. 사연을 듣고 보니 할아버지와 두 내외분이 사신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동안 먹고 싶었던 자장을 해준다고 해서 나오셨다는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는 거동을 하실 수가 없어 집에 두고 할머니 혼자만 나오셨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봉사자들은 쉴틈이 없다. 그릇을 닦는 자원봉사자들(위)과 봉사를 마치고 뒤늦게 밥을 먹고 있는 한국전력 자원봉사자들

그러데 짜장밥을 먹다가 보니 집에 혼지 누워계시는 할아버지 생각에 목이 멘다는 것. 이야기를 듣고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듬뿍 떠 드렸으면 좋겠지만, 남은 것이 없다. 그런 사연을 가지신분들이 한 두 분도 아니다. 연세가 드셔서 거동도 불편하신 두 내외분이 그렇게 의지를 하고 살아가신다는 갓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자식들이 있어 도움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

내가 그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떡 한 봉지를 더 드릴 수 있는 것뿐이라니. 괜히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겁다. ‘스님짜장’ 봉사를 다니다가 이렇게 마음 아픈 사연을 접하면, 기운이 다 풀려버린다. 그래서 더 험하고 그늘진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아침부터 산을 오르려고 벼르고 있는데, 하늘이 영 반갑지가 않다. 잔뜩 검은 구름이 낀 것이 금방이라도 소나기 한 줄기가 내릴 것만 같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할머니 한 분이 농약통을 지시고 길을 나서신다.

"안녕하세요"
"예"
"밭에 약 치시러 가세요. 비가 올 것 같은데요"
"비가 올까요?"
"예, 금방 쏟아질 것 같아요"
"어제 잠시 해가 들었을 때 칠 것을 그랬네"


팔순 할머니는 아직도 농사일을 하신다.

할머니가 길을 접고 집을 향해 걸어가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심 잘 되었다고 안심을 한다. 돌아가시는 할머니는 하늘이 원망스러우신가 보다. 연신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러실 것이다. 힘들에 나서신 길인데 비가와서 일을 할 수가 없다면, 온 몸이 쑤시는 것이 더욱 힘드실  것 같다.

잠시 쏟아지던 비가 멈추었다. 우산을 손에 든 할머니가 다시 길로 나오셨다. 여주군 북내면의 정말 시골스러운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영감님을 여의신지가 벌써 몇 년째시다. 지금은 혼자 사시면서 밭일을 하고 이런 저런 일로 소일을 하신다. 매일 아침 그 시간이면 집을 나서시고, 같은 시간에 밭에서 돌아오신다. 밭이 먼 곳은 아니지만, 할머니께서 다니시기에는 결코 가까운 거리는 어니다.


할머니는 이 길을 따라 밭으로 가셨다. 

할머니의 길에는 물이 차 있고

뒤를 보이고 가시는 할머니를 몇 장 찍었다. 여주에 올 때마다 뵙는 분이기에 낯설지가 않다. 산 모퉁이를 돌아 할머니께서 사라지셨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할머니의 밭은 어떤 밭일까? 아우에게 할머니의 밭을 묻고 난 뒤, 뒤를 따라 나섰다. 길은 젖어 있고, 바지가랑이가 젖어든다. 그래도 궁금하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좌우로 길이 나온다. 어디인지 알았으니 우측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밭 가까이 가니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길이 끊겼다. 매일 다니시는 길이지만 연세가 드신 분이기에 건너기가 만만치가 않았을 텐데. 할머니가 보이지를 않는다. 여기저기 찾아 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신 것일까?

할머니는 이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으셨다. 할머니의 길을 따라 걸어본다. 발밑에 밟히는 감촉이 좋다. 가끔은 돌뿌리가 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 멀리 할머니가 계시다. 아까 뒷짐을 지고 들고 나가셨던 우산은 아직도 손에 꼭 쥐고 계시다.   

할머니가 밭으로 나가는 길에 도랑이 생겼다
할머니의 밭.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돌아오실 때는 마중이라도 해야겠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시는 할머니는 이제 돌아오실 시간이 가까이 되었다. 시간이 되니 걱정이 앞선다. 돌아오실 때는 개울에 물이 더 불어 있을텐데. 어떻게 건너실 수가 있을까? 할머니에게서, 우리의 어머니가 보인다. 아마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살아오셨을 것이다. 


돌아오실 때 연락이라도 해 주시면 좋을텐데. 그렇게 보아도 말을 놓지 않는 할머니는 아마 남에게 부담이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실 분 같다. 아직은 낯이 익지 않았으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을 눈여겨 보면서, 괜한 비탓만 해본다.   

눈이 내리고 난 10일, 여주 5일장을 찾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걱정이 되는 분들은, 난전을 펼치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눈을 대충 치운 장거리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몇 가지 안 되는 물건을 펴놓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할머니 추운데 나오셨네요, 춥지 않으세요?"

"좀 춥네."

"이나저나 왜 5일 장날마다 이렇게 눈이 오거나 비가 오네요."

"그러게, 올해는 계속 그러네."

"많이 파셨어요?"

"아직 개시도 못했어. 이나저나 하늘이 맘이 상하셨나."

 

좌판에 벌려놓고 있는 물건을 보니 몇 가지되지도 않는다. 깻잎과 새로 뜯은 냉이, 그리고 동치미무와 짠지무가 전부다. 이것을 들고 장마다 나오시는 할머니께 함자를 여쭤보기도 죄스럽다.  

 

"냉이는 어디서 캐셨어요?"

"집 근처에서 캤지"

"집이 어디신데요?"

"내양리"

 

▲ 할머니의 난전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펴시고 장사를 하신다

 

여주 장날만 나오신다는 할머니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벌여놓고 계신 할머니는, 장 한쪽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 자릴 펴고 계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도, 이쪽은 왕래가 드문 곳이니 팔릴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 많이 파실 수 있겠어요?"

"아는 사람들은 오지. 이 짠지무는 식당을 하시는 분이 4만원 어치나 사셨어. 맛이 있다고. 사가서 양념해 놓으면 정말 맛있어"

"오늘은 좀 파셨어요?"

"이것 좀 사가, 남자가 개시하면 잘 팔려"

"그 깻잎 오천 원 어치만 주세요."

 

깻잎을 담고 계시는 할머니는 여주 장날만 나온다고 하신다. 이만한 물건을 갖고 어떻게 이 장 저 장을 다니겠느냐는 할머니는, 이렇게 작은 물건이나마 파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장날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요,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안 보내는 것도, 다 하늘이 정해 놓은 일이라는  것이다.

 

▲ 깻잎 덤으로 깻잎을 듬뿍 담아주시는 할머니는 이렇게 일기가 고르지 못한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란다.


할머니의 하늘은 왜 마음이 상하셨을까?

 

그런 할머니의 하늘은, 오늘이 장날인데도 눈이 오고 날이 춥게 만들었다. 연세가 드신 분이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계시면서도, 날씨 탓을 하지 않으신다. 할머니의 하늘은 과연 무엇일까?

 

"깻잎 많이 담지 마세요."

"먹을 만큼은 주어야지. 개시를 잘 주면 하루 종일 손님이 많아."

"많이 파세요. 추운데 불이라도 좀 지피시지 않고."

 

할머니는 모든 것이 다 하늘이 알아서 하신다고 말씀을 하신다. 인간이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면 결국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것도,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다 인간들 스스로가 하늘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라는 것. 과연 할머니의 하늘은 어떤 것일까? 장을 돌면서 내내 생각을 해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머니의 하늘은 듬뿍 물건을 더해 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 작은 난전 여주 5일장 한편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은 하늘을 닮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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