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은 장식장에 가득한 CD뿐이다

햇수로는 9년이 되고, 제대로 생활을 한 것은 7년 정도가 되었나보다. 그동안 플래닛에서 블로그로 넘어오고, 또 다시 티스토리를 했다가, 피치못 할 사정으로 인해 티스토리를 접었다가 다시 시작한 것이. 벌써 강산이 한 번 정도가 변할만 한 시간이었다. 아마도 구불거리며 잘 흐르던 4대강이 직강으로 변한 것이, 그 중 가장 큰 인위적인 자연의 변화였다는 생각이다.  

그 4대강 때문에 여강 길을 참 많이도 걸었다.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기 전에 눈도장이라도 찍어 두겠다고. 이젠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강길이 되어버렸지만. 지금 강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시 시작한 티스토리의 첫 번째 글을 송고한 것이 2010년 8월 2일이었다. 공주 공산성 안에 있는 '만하루와 연지' 이야기를 송고한 날짜가.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동안 463개의 글을 써 갈겼으니, 참 주인 잘못 만난 팔이 엄청 고생했다는 생각이다.

2010년 8월 2일에 송고한 공산성 안 만하루와 연지의 모습이다. 앞으로는 금강이 한창 파헤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1년. 그동안 늘어난 것이라고는 장식장에 가득한 CD뿐이다. 아마도 어림잡아 300여장 정도는 더 늘어났는가 보다. 이제 자리가 부족해 또 하나의 장을 사야할 지경이니 말이다. 1년 동안 현장을 돌아다니며, 문화재 답사를 한 것이 40여회. 날로치면 일 년 365일 중에 거의 80일 정도를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 발품을 팔았다. 

그 발품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허름한 장식장. 그 장식장을 보면서 배를 두드릴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배를 두드릴 때가, 아마 이 짓거리를 하면서 가장 좋은 세월이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 그 잠시의 좋은 세상은 물 건너 가버렸다. 지금은 온통 역한 땀 냄새에 주린 배를 움켜쥔, 허름한 인간 하나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답사들 한 번 나가보시려우?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나섰다. 청도에 있는 운문사를 찾아가기 위해서이다. '스님짜장'을 봉사한다고 가는 길이지만 , 그 곳에 있는 많은 문화재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화재 하나를 더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은 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아침에 길을 나설 때는 그 좋던 날씨가, 청도에 다다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참 날씨마져 날 도와주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이미 땀인지 빗물인지 구별도 안된다. 물신 땀 냄새가 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관광을 온 듯한 젊은 여인네들이 옆으로 지나가면서,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린다. 몸이 뜨겁다보니 땀 냄새가 역했나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도 그렇지, 은근히 화가 치민다. 한 마디 불거진 소리를 뱉어낸다.

"당신들도 이 복중에 문화재 답사 한 번 나가보시려우. 땀 내 안나나"

도대체 무엇하려고 이 고생을 사서할까? 그동안 모아 놓은 자료만 해도, 앞으로 10년 넘게 편안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될 것을. 시간버리고 돈 버리면서, 거기다가 몸까지 축내가면서 이 짓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돌아오는 내내 생각을 해본다.

'나는 왜 이 짓을 하는 것일까?'
'이것으로 인해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속에서 과연 글은 써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그저 지나가면서 코를 잡고 고개를 돌려버린, 어느 여인의 눈초리만 자꾸 생각이 날 뿐이다. 이제 이 짓도 그만두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 이 무더운 복중에 날 괴롭힌다.  하기야 그 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비와 땀이 함께 범벅이 된 내 몰골이 이상했을 뿐이지. 그래도 찜찜한 기분은 영 가시지를 않는다.
 

신묘년 새해가 밝으면서 고민이 생겼다. 바로 티스토리 운영에 관한 일 때문이다. 그동안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름 열심을 내었다. 그런데 그 열심히 점점 도를 지나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전날 정리한 글을 다음 뷰로 송고를 하고, 그 다음에 즐겨찾기를 한 블로그를 찾아다니면서 추천을 하고 댓글을 단다.


낮에도 잠시 틈을 내어 같은 일을 반복한다. 저녁에 역시 블로그를 찾아다니면서, 추천을 하고 댓글을 달다가 보면 하루에 4~5시간을 매달려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한계에 부딪친다는 생각이 든다. 체력도 문제지만 일일이 문화재를 답사하여 글을 적는 것도 버거운 데, 거기다가 하루에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가 보면 내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댓글 없는 블로그 운영, 소통이 안되는 것일까?

  

몇 번인가 댓글을 막아놓았다. 나도 찾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댓글을 막아 놓으면, 그날 방문객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문화재를 답사하고 그것을 정리하여 포스팅을 하는 나로서는, 그런 시간이 제일 걱정이다. 글을 올리는 것이야 정리를 하여 예약송고를 할 수도 있지만, 댓글은 일일이 찾아다녀야만 한다.


그런 댓글 달기가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열심을 내다가 보니 체력도 체력이지만, 수많은 시간을 블로그에 매달려 있어야만 한다. 하는 일이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일인데, 이렇게 블로그 운영에 오랜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하기에 포스팅 자체를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많은 분들의 걱정에도 대안은 없었다.


글을 올리지 않으니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한다. 그렇게 서로간의 소통을 하고, 안부를 걱정하는 것이 블로그의 운영의 묘이기 때문이다. 그런 서로간의 소통은 ‘댓글’이라는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안부 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댓글을 달 시간을 아껴야만 하는 나로서는, 불로그 운영에 대한 획기적인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수도 없이 생각을 해보지만, 댓글이 없는 소통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그렇게 운영을 해왔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작정 방치를 할 수만도 없는 일. 고민 끝에 결정을 한다. 아무리 대안이 없다고 해도, 그저 꿋꿋이 문화재에 대한 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등록문화재 부여 반교마을 옛 담장

순수한 문화재 소개로 이어가고 싶다.


물론 추천이야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충실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댓글을 다는 그 많은 시간이 나에게는 버겁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댓글은 막고 문화재 소개를 하는 글만을 올려야겠다고 생각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올리는 이유는, 바로 우리 문화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굳이 댓글 때문에 글을 막아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하루에 단 한 사람이 들어와 내 글을 본다고 해도, 그저 묵묵히 우리 문화재를 소개할 생각이다. 물론 댓글을 받지도 못하고, 찾아가서 댓글을 달지도 못한다. 이런 점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방법이 없다. 그저 지금까지 해오던 문화재 소개만을 하는 수밖에.

요즈음은 블로그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동반한다. 물론 그 동반함이라는 것이 수익과 관련이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의 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나 역시 티스토리를 운영하면서 믹샵이나 기타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가 티스토리에 글을 적고 다음 뷰에 송고를 한다고 해서, 나에게 얼마나 큰 득이 될지는 알 수 가 없다.

믹샵이 베타로 전환을 하면서 새로워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100명의 블로그를 선정했다고 한다. ‘베타테스트’란 말 그대로 베타로 전향을 한 후 이런저런 것을 테스트 하기 위한 블로거들을 말하는 것인가 보다. 그리고 믹샵의 위젯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달고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수익금을 지불한단다.

믹샵에서 보이는 많은 블로거들은 뷰에서 매일 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것에 혹해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속 보이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믹샵을 통해 더 많은 블로거들을 접할 수가 있었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뷰를 통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믹샵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른 것은 아니다. 뷰를 통해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믹샵을 누르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믹샵이 나름대로 또 하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임은 틀림이 없다. 믹샵을 통해서 사람들이 블로그에 접속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직히 난 글을 쓰고 그것을 송고하는 것으로, 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요즈음은 블로그를 통해서 수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내용들이 보이지만, 그렇게 머리를 쓰면서 운영을 할 수 있는 실력이 모자란다.

열심히 활동을 하다가 보면 두 개의 글이 믹샵 베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가끔은 ‘이 나이에 나 정도만 해도 되지 멀 그래’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 젊은 블로거들을 따라갈 수 없음을 스스로 자탄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알아보려고 애를 쓰는 시간이면, 글 하나를 더 써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버릇없는 말 같지만 ‘조금 불리하면 ’나이 탓‘으로 돌려버린다. 그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믹샵은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이다. 가끔은 믹스업 베스트에 두 개의 글이 노출되기도 한다. 아마 믹샵에서 보아주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을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말하기나 듣기나 일단은 무조건 누르고 본다. 어차피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러다가 보면 차츰 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시작을 하였으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힘들게 활동을 하는 블로거들을 돕는 길이기도 할 테니까.

2년 전인가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락거리던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떠났다. 그리고 1년 6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재를 알리려면, 다음 뷰에 글을 송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티스토리 초대장을 받은 것이 올 4월인가 보다. 티스토리는 개설을 해놓고도 글도 쓰지 않고 송고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당시 책을 쓰는데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술 마시기에 급급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한 달이면 10여 차례나 현장답사를 하면서, 쌓여만 가는 문화재답사 자료들을 보면서 한숨만 내쉴 수는 없는 일. 친분이 있는 블로거 한 분의 종용이 가장 컸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라는.

한달 동안 60편의 글을 썼다. 매일 두편씩 쓴 것이다. 그리고 1,200개가 넘는 댓글을 달았다.
 
한 달간 송고한 포스팅이 60편

2010년 8월 2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쌓인 글이 60편. 하루에 두 편 씩을 송고를 한 셈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글을 쓰느냐고 한다. 현장 답사를 다니면서 쓰는 글은 앉아서 감상문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시간과 경비가 만만치 않게 깨진다. 하지만 문화재를 내 눈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느낌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힘이 들어도 현장을 나가 돌아다녀야 한다.

낮에는 근무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시간이 밤 밖에 나질 않는다. 점심시간을 잠시 이용해 전날 써 놓았던, 두 번째의 글을 올려놓고 부리나케 나가야 한다. 아니면 미리 예약송고를 해놓던지. 보통 두 편의 사진을 고르고 글을 쓰려면 두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놓고 이웃 블로거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하다가 보면 시간은 두 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렇게 보낸 한 달이다.

어느새 이렇게 순위가 매개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노력을 따라 온다.

먼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식 잘난 체는..’이란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바로 글을 그만 읽으셔야만 한다. 계속 그런 쪽으로 흘러 갈 수도 있으니. 처음 글을 송고하고 난 뒤 우연히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니 순위라는 것이 있다. 굳이 순위를 매겨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전체 9287위>란다. 두 편의 글을 송고하고 난 뒤니, 적어도 그 앞에 글을 쓰시는 분들이 그만큼은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싶다.

순위 매김에 마음을 쓰는 인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한 번씩 드려다는 본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400 등으로 올라 있다. 아마 현장을 다니면서 쓴 글이고 전통문화를 쓰는 분들이 많지 않아서, 다음 측에서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을 블로그에 매달려 살았다.

순수문화의 글을 쓰는 분들이 많지가 않아 오히려 득이 되었다.

난 한 달 동안 이렇게 치열한 싸움을 했다.

처음 글을 송고하면서 15편의 글을 쓸 때 까지만 해도 베스트에 걸리지가 않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15번 째 글이 열린 편집 베스트에 걸리더니, 그 뒤로 하루에 두 편의 글이 모두 베스트에 걸리기도 했다. 순수문화를 쓰는 블로거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글을 자주 쓰는 나로서는 그것이 득이 되었던 것만 같다. 하지만 추천이나 구독은 아주 미미한 정도이다. 하루에 고작 100 ~ 200명이 들려가는 곳일 뿐이다. 추천은 많아봐야 40 ~ 60 정도이니, 내가 찾아간 분들의 절반 정도뿐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찾아가는 노력을 한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나름 무수한 블로그를 방문을 했다. 그들이 오건, 오지 않건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물론 티스토리를 떠날 때 황금펜을 갖고 있었으니, 그도 다시 돌아와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찾아보지 않아도 그들이 찾아올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일 뿐이다. 지금도 난 아침이면 거의 100명에 가까운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추천을 하고 댓글을 단다. 그러면 내 글에도 추천이 100개는 기본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다녀도 고작 30% 정도만이 답방을 오는 정도이다.

티스토리와의 기나 긴 싸움이다. 아니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전쟁이라고 해야 옳다. 난 요즈음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컴퓨터의 기능조차 모른다. 그저 사진을 작업하고 그것을 글을 써 올리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물어물어 하면 된다. 우리 문화재를 한 사람이라도 더 볼 수가 있다면, 난 그것으로 다시 시작한 티스토리의 덕이라는 생각이다.

현장을 찾아다니는 답사글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도전해볼 만 하다. 다음측의 배려도 고맙다.

이렇게까지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에 재미를 붙였던 것도, 알고보면 매일 거르지 않고 들려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알음부터 지금 새롭게 알아가는 모든 분들의 힘이 되는 그런 글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의 공은 모든 그분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야 말로 문화재에 대한 글은 쓰지 않아도 나와 함께 우리 문화를 답사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진정한 전도사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처음으로 블로그를 접한 것은 2005년인가 보다. 그 전에는 플래닛이라는 것을 참으로 열심히 하였다. 그러다가 블로그를 하게 되고, 그 재미에 한참이나 빠져 있었다. 아마 블로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접하게 되고, 더 많은 지식을 얻기 때문이었나 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 아픈 일도 많았다. 그러나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를 답사하고 그것을 다음뷰에 송고를 하면서(그 때는 다음 뉴스였었던 것 같다) 쌓여가는 자료들을 보고, 그나마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2006년 3월에 19번 째로 황금펜촉을 달았다. 

블로그를 접고 난 후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에서는 황금펜촉이라는 것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지금도 베스트 블로거라는 황금펜촉이 있지만 당시의 황금펜촉은 남달랐다. 그만큼 황금펜촉 달기가 어려웠다는 생각이다. 2005년 12월부터 베스트 블로거인 황금펜촉을 단 블로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내가 2006년 3월 마지막 주에 달았으니 당시 베스트 블로거인
황금펜촉을 단 블로거로서는 19번째로 황금펜촉을 단 셈이다.

지금 보니 428명의 베스트 블로거들이 있으니, 내 뒤로 꼭 400명이 더 황금펜촉을 단 셈이다. 당시에는 베스트 블로거들의 글도 많이 올라왔지만. 오프라인에서의 블로거들도 상당히 친근하게 지내고는 했다. 물론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 무슨 일이 있으면 블로거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흔쾌히 함께 해주고는 했던 것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쨌든 그렇게 열심이던 블로그를 하루아침에 삭제를 해야 하는 사건이 생겼다. 주위에서는 삭제는 말고 중단만 하라고 권유를 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완전 삭제’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당시에도 다음블로그와 티스토리에서 모두 100대 블로거 중에 포함도 되었고, 블로거상 후보에 까지 오르기도 했으니, 삭제를 하면서도 그 아픈 마음을 누가 알고나 있었을까?

이제 두 번째 황금펜촉에 도전한다.

2008년 초에 블로그를 삭제를 하였으니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그때만 해도 50대라고 박박 우기고 살았는데, 이제는 환갑을 넘어버렸다. 만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블로그를 시작한다. 물론 블로그는 삭제를 시켰지만 아이디를 버린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도 엄연한 황금펜촉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그 황금펜촉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블로거들은 왜 그 아이디를 안 쓰느냐고 성화다.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시작하려고 한다. 늘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모처럼 돌아 온 블로그의 세계가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다양하던 다음뷰의 많은 글들이 한편으로 치우쳐버린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써오던, 그리고 앞으로 써가야 할 문화재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몇 사람이 읽어준다고 해도 좋다.

아직도 블로그를 운영하던 아이디는 황금펜촉을 달고 있다.

환갑이 지나서 다시 시작하는 블로그. 그리고 두 번째 도전하는 황금펜촉. 나에게는 이 두 가지만 있어도 즐겁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황금펜촉을 다는 날은, 코가 삐뚤어지게 막걸리를 마시겠다고 미리 작정도 해본다. 늘 도전하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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