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에는 길을 걸으며 재충전 시간 가져야 할 때

 

어정 칠월 동동 팔월이라는 말이 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뙤약볕에서 농작물이 익어가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크게 바쁜 일이 없다. 하지만 8월이 되면 다르다. 음력으로 7월에 해당하는 처서가 지나면 사람들은 바빠진다. 농작물의 수확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어정 칠월 동동 팔월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23일은 가을의 두 번째 절기인 처서(處暑)이다.

 

처서가 되면 여름의 무더위도 한 풀 기세가 꺾인다. 무더위가 가시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가을날씨가 된다. 아무리 한낮의 기온이 30도에 가깝다고 해도 7월 복중(伏中)의 따가운 햇볕과는 다르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한다.

 

처서가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다. 이 때는 포쇄(曝曬)’를 한다. 포쇄란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일이다. 이 무렵에는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여름동안 극성을 피우던 파리와 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는 무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들이를 즐기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가장 바빠지는 농촌의 절기는 8월이다.

 

처서가 지나면 사람들은 백중의 호미씻이를 끝낸다. 호미씻이란 봄철부터 여름 내내 농사일에 필요한 호미를 잘 씻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두는 의식이다. 우리 농촌에서는 호미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농기구 중 하나이다. 호미를 잘 간수해야 다음해에 농사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호미씻이 의식도 거행한다.

 

그야말로 어정칠월 동동팔월이 지나 농작물의 수확을 마치면 팔월한가위에 조상들에게 새로운 곡식과 과실로 차례를 지낸 후 농촌은 한가한 한때를 맞이하게 된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치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가을수확을 해야 하는 농작물이 비로 인해 수확을 못하게 되면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음력팔월을 동동팔월또는 건들팔월이라고 한다. 동동팔월은 수확을 하기 때문에 부지깽이도 뛴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바쁜 절기가 바로 팔월이다. 처서 때가 되면 첫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이 있다. 이를 건들바람이라 한다. 건들팔월은 음력팔월이 바쁜 수확일로 인해 건들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바쁜 계절이 바로 팔월이다.

 

 

처서가 되면 가까운 곳을 찾아 재충전하는 날로 잡아

 

난 매년 처서 때가 되면 가까운 곳을 찾아가 길을 걸으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다. 여름 복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부터 다시 열심을 내기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2017년에는 인천시 영흥도를 찾아가 바닷가 목책길과 소사나무 길을 걸었으며, 지난해는 광교저수지 산책로를 걸었다.

 

올해는 8월이 되면 아름답게 연꽃이 피는 곳을 찾아보기로 마음먹고 가까운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에 소재한 보통저수지를 찾아갔다. 23일 오후, 30여분의 시간이 걸려 찾아간 보통저수지는 화성시에서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목책산책로를 조성했다. 그렇게 조성한 보통저수지 인근에는 카페들과 식당들이 몰려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하다.

 

한 카페에 들려 차를 한 잔 마신 후 보통저수지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저수지지만 가득 핀 연꽃이 반긴다. 천천히 산책로를 걸어본다. 7월 북중이라면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를 텐데 바람까지 불어 산책로를 걸어도 여름 복중 같지가 않다. 더구나 저수지에 가득 핀 연꽃이 걷는 발길을 따라 함께 걷는 듯하다.

 

 

그저 바쁠 것이 없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 경치를 만끽한다. 푸른 하늘도 높다. 아침에 꽃을 피우는 연꽃이기에 한 낮이라 꽃잎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무수한 각양각색의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처서 무렵에 길을 나서면 가급적이면 연꽃이 피어있는 곳을 찾아간다.

 

어정 칠월 동동 팔월이라는 처서를 맞이하여 나름대로 한 여름 무더위를 잘 이겨내고 또 다음 절기를 맞이하면서, 늘 보아오던 길과는 또 다른 길을 걸으며 심신을 재충전한다. 이제부터 가을절기를 지나 겨울절기로 접어들 때 또 한 절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이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입니다. 우리민족은 설날이라는 새해 첫날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날에는 일찍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먼저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차례를 올립니다. 차례상을 준비할 때는 좋은 음식 자재들을 구입해 정성을 다해 준비를 하고는 합니다.

 

이렇게 설날 아침에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하고 덕담도 주고받습니다. 차례를 마친 가족들은 성묘를 하러 갑니다. 이때도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싸들고 가는 것이죠. 이런 설날에 마련하는 음식은 남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새해 첫날에 처음으로 입에 대는 음식이기 때문에 조상님들만이 아니고 식구들에게도 소중한 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변해가는 세상, 그래도 명절인데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조금은 황당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어쩌다가 명절날에 집에 있질 못해 본의 아니게 차례를 지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잇는 곳에서 물 한 그릇이라도 정성스럽게 놓고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던 버릇에 있어서인지, 저는 늘 설날 차례는 지극한 정성이 우선이란 생각을 합니다.

 

하긴 요즈음은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차례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조상이 없는 후손이 생길 수 있을까요?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상님들께 대한 감사는 드려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하고 종교가 다르다고 조상님들까지 귀신 취급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본인이 귀신의 자식이란 이야기인데.

 

잠시 딴 길로 나갔습니다. 전화 한 통을 받고나서 참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야 나 동해안으로 왔는데 너무 좋다. 너 시간되면 이리로 와라

명절인데 동해안을 어떻게 갔어. 너 장남이잖아?”

그런데 식구가 이번에는 좋은 곳에 가서 지내지고 해서 올라왔다

그래, 어차피 갔으니 잘 놀다가 와라

 

이번 명절 연휴는 4일이나 됩니다. 고향을 찾아 가는 사람들은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고생인줄 알고 가겠지만, 서울이 고향인 저희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경계가 좋은 곳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차례는 어떻게 하려고?”

펜션에서 지내려고

음식 준비를 할 수 있나? 제기도 없을 텐데

여기 명절음식 배달해 주는 집에다가 마쳤는데, 상과 제기도 함께 빌려준단다.”

 

 

세상이 좋아진 것일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명절 음식 배달업체가 성행한다고 합니다. 명절 하루 동안, 동해안 같은 곳에 업체는 엄청난 매상을 올린다는 것이죠. 모드 콘도나 펜션을 빌려 그곳에서 묵으면서 배달 제수음식을 주문해 차례를 지낸다고 합니다. 장에를 나가도 요즈음은 제수음식 중에 전 등을 만들어 포장을 해서 팔기도 합니다.

 

장에서 사서 쓰는 사람들이야 그래도 일부는 자신들이 조리한 것으로 상차림을 할 테니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해다가 주는 음식으로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낸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네요. 정성을 다해 섬겨야 할분들 아니던가요?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 녀석이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한 나들이에 찬물을 끼얹기 싫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죠. 문제는 제가 너무 변하지 않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 살아가는 방식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음식을 조리한 사람들이 정성이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팔달문 앞에 인정시장(인정시장은 흔히 전통시장이라고 하며 상인회의 가입된 점포수가 50개 이상인 시장을 말한다.)은 모두 9개 시장이 있다. 팔달문시장, 영동시장, 남문 패선1번가, 시민상가, 지동시장, 미나리광시장, 못골종합시장 등 7개 시장과, 도로를 사이에 둔 남문로데오상가와 구천동 공구상가 등이다. 이 중 도로를 건너는 2곳의 시장을 제외한 7개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흔히 명절 대목장이라고 하는 장날 아닌 장날인 셈이다.

 

평소 이 7개 시장을 이용하는 인원은 하루에 4만 여명 정도가 될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대목장이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20만 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팔달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의 말이다. 이곳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곳이지만, 29일 오후는 단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평소보다 세 배 정도 팔았어요.”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서부터 지동교 바향으로는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리저리 피하기도 수월치가 않다. 팔달문 시장 거리와 영동시장, 그리고 패션 1번가와 시민백화점 등을 돌아보았다. 어림잡아도 주말에 모이는 인파의 두 배는 넘을 듯하다.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빠졌어요. 오전에는 정말 발 디딜 팀도 없었어요. 예년보다 올해가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패션 1번가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 예년보다 사람들이 더 몰린 듯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 그동안 꾸준히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해오기도 했지만, 방송 등에서 전통시장을 이용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를 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고.

 

 

오늘은 정말 대목장 분위기가 납니다. 저희들도 오늘 평소 때보다 세 배는 더 판 것 같아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미나리광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바쁘다고 빨리 가라고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온통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다. 못골시장 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사람들에게 밀려 장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정말 밀려서 그냥 물건 흥정도 제대로 못할 지경예요. 저희는 수지에서 왔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말 엄청나네요. 전통시장을 사람들이 이렇게 선호할 줄은 몰랐습니다.”

수지에서 장을 보러 왔다는 이아무개(, 43)는 제대로 장이나 보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한 바퀴 더 돌아보아야겠다고 한다.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해야

 

오늘따라 노점상들까지 모여들어 정말 대목장 분위기가 납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인데 말이죠. 이렇게 전통시장에 나와 물건을 사면서, 흡사 과거 우리네 모습을 찾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지동시장 정육점 앞에서 적거리를 사고 있던 한 시민은 차례는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를 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좋은 상품으로 제사를 모시는 것은 후손의 당연한 도리이다. 이곳 전통시장을 늘 이용하고 있는데, 이곳은 대형마트 등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도 다 준비가 되어있다. 굳이 딴 곳을 가지 않아도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 전통시장이 살아나야 지역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다.

 

갑오년 정월 초하루를 맞이해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즐길 수 있는 우리고유의 명절인 설날’. 전통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민족의 본 모습이 아니겠는가? 대목장을 돌아보면서 그 안에 들어가 그저 인파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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