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운봉읍 가산리 89번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국악의 성지. 그곳을 가면 볼 것이 있다. 남원은 판소리의 본고장이다. 판소리 다섯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가 될 만큼 유명한 곳으로, 예로부터 국악의 산실이었으며 동편제 판소리를 정형화한 가왕 송흥록이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판소리는 우리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그 판소리 중 동편제 소리의 발상지 이며, 춘향가 흥부가의 배경지인 남원. 운봉에는 국악의 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는 가왕 송흥록과 박초월의 생가지가 있고, 지리산을 바라보고 많은 후학들이 소리에 전념하고 있는 국악성지전시관이 있다.


동굴독공을 따르는 후학들이 피를 토하는 곳

국악의 성지 전시관을 들어가다가 보면, 좌측으로 판소리의 명창들이 묻힌 성역인 국악선인묘역이 있다. 그곳을 오르다가 보면 계단 위로 소나무 숲길인 소릿길이 있고, 밑으로는 조경을 해 놓은 길이 하나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가면, 돌로 조경을 해 놓은 곳에 문이 세 개 있다. 그 문을 열어본다.



문을 열고 입구를 들어서면, 안으로 들어가 꺾인 곳에 또 하나의 문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판소리를 할 때 고수가 사용하는 소리북과 방석 등이 보인다. 이곳에서 명창이 되기 위해 후학들이 소리공부를 하는 곳이다. 동굴독공의 진한 맛을 보기 위해 마련한 곳. 그 힘든 학습방법을 과연 이곳에서 깨달을 수가 있을까?

예전 명창들은 득음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굴독공과 폭포독공을 행해왔다. 동굴독공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입구를 막아버리고, 그 안에서 2년이고 3년이고 소리를 얻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던 득음의 방법이다. 명창 이날치와 이동백 등이 바로 이 동굴독공으로 소리를 얻었다.




그런 명창들을 따라 소리공부를 하기 위해 동굴처럼 마련한 곳이다. 지금이야 소리공부를 하고나서 밖으로 자유자재로 출입을 할 수 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옛 명창들의 소리공부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

이것이 가로등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아

동굴독공을 체험하는 곳을 본 후 천천히 전시관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런데 앞에 선 조형물이 색다르다. 여기저기 적당한 간격으로 놓인 것을 보니 가로등이다. 그런데 그 가로등 밑에 소리북이며 가야금, 거문고 등을 달아놓았다. 그것을 보고 괜한 웃음을 웃는다. 멋지다. 누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




어두운 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같을 필요는 없다. 나름대로 그 지역에 걸 맞는 가로등을 이렇게 조형을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다. 단지 어두움을 밝히는 용도가 아닌, 색다른 멋을 낼 수 있는 조형물. 그것을 보면서 또 다른 가로등을 생각해본다. 아마도 각 지역마다 그곳에 알맞은 이런 멋진 가로등을 장식한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지는 않을까?

제4회 남원 지리산 허브축제가 8월 27일(토)일부터 9월 4일(일)까지,9일간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 지리산 허브밸리 일원에서 열린다. 26일 오후에 행사 현장을 미리 가보았다. 허브축제는 이제 4회를 맞이하지만, 나름 남원의 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축제 중 하나이다.

허브축제 행사장은 마지막 준비를 하느라 부산하다. 여기저기 차들이 내일부터 전시를 할 물품들을 나르는가 하면, 허브를 여기저기 옮겨 심는 모습도 보인다. 아름답게 조성이 된 곳이 있는가 하면, 마무리 작업에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들도 보인다. 축제장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나름대로 독창적인 면이 돋보이는 축제장

축제장 여기저기를 돌아보니 나름 독창적인 면도 돋보인다. 한편에 마련한 부스에는 허브를 이용한 각종 만들기 등을 할 수가 있다. 미쳐 준비가 되지 않아 촬영을 하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이벤트가 있는 것만 같다. 본 행사는 토요일 10시부터 개막식전 행사인 국악퓨전 공연을 시작으로 11시에 개막식을 하게 된다.

개막일에는 축하공연과 해외민속공연도 있다. 9일 동안 비보이 및 밸리댄스, 마술, 댄스파티, 통키타 연주와 허브요정 선발대회 등을 선보인다고 한다.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디카 사진 콘테스트에는 130만원 상당의 디카가 상품으로 걸려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허브천국

벡설공주와 일곱난장이. 그런데 난장이 한 사람이 보이지가 않는다. 어딜 갔느냐고? 급해서 화장실에 깄단다^^


허브에 숨어있는 아기도깨비






그런데 여기도 ‘옥의 티’는 있다

물론 행사 하루 전날에 찾아간 행사장이다. 준비를 한다고 바삐 돌아치는 모습들에서, 행사장의 어려운 점을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행사장에는 항상 옥의 티가 있는 법. 몇 군데가 눈에 거슬린다. 옮겨 심은 허브가 말라가고 있는 밭의 모습이나, 잡초를 제거하느라 뿌린 제초제의 잔재. 이런 것은 정말로 행사장 준비를 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다.


급하게 심어 말라버린 허브와(위) 잡풀을 없애기 위해 제초제를 뿌린 사잇길(아래) 축제장의 옥의 티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즐기는 축제장. 전국에는 수많은 축제가 있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축제는 거기서 거기라는 소리를 듣는다. 나름대로 특징적인 축제를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가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원 허브축제는 나름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축제이기도 하다.

9일간 남원 운봉읍 지리산 허브밸리 일원에서 열리게 되는 허브축제, 가족과 함께 찾아가 즐길거리를 찾아보기 바란다.

(뱀다리) 모두모두 남원으로 오세요
             술은 지가 쏠랍니다. 안주는 셀프고요^^ 짜장팔러 나갑니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582에 소재한 지리산 내원사. 그 대웅전 옆에 서 있는 전각 안에는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한 기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보물 제1021호호로 지정된 이 석불은 지리산 중턱에 있던 석남암사지에 있다가, 현재 내원사로 옮겨 놓은 돌로 만든 비로자나불상이다.

8월 13일, 지리산 골짜기로 들어섰다. 비가 정신없이 내리기 시작하다. 내원사를 들어가는 길 곳곳이 공사중이다. 지난 번 비로 인해 수해를 입은 곳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내원사 삼층석탑 뒤편 전각에 모셔진 비로자나불. 우리나라 비로자나불 중 제일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의 흔적이 보여

현 대원사에 소재한 석남암사지 석조 비로자나불상은 비바람에 의해 심하게 마멸이 되었기 때문에, 세부표현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외형만 보아도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머리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육계는 높고 큼직한 편이나, 약간 파손이 되어있다. 갸름하면서도 살이 있는 얼굴은 부피감이 풍부하여, 그 형태가 균형이 잘 맞으며 8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석조 비로자나불의 상체는 건장한 모습이다. 자연스러운 가슴과 허리의 굴곡, 어깨나 팔의 균형미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법의는 얇아서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옷주름 역시 촘촘하고 부드럽게 표현하여 8세기 불상의 옷주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제적으로 알맞은 체형

전체적인 얼굴의 형태나 귀의 크기 등이 사실적으로 잘 묘사가 되어있다. 수인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습에서, 이 불상이 비로자나불임을 알려주고 있다. 앞에 수미단을 놓아 가려져 있는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로 이루어졌는데, 8각의 하대에는 아래를 향한 큼직한 연꽃무늬를 새겼다.

중대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두 겹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0 광배는 신체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형태인데,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광배는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하단까지 깨져, 약 3분의 1정도가 없어져 버렸다.




가장 오래된 석조 비로자나불

대좌 중앙의 구멍에 있었던 사리호 표면에 기록된 글에는, 신라 혜공왕 2년인 766년에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석남암사에 모신다는 내용이 있다. 이로 보아 이 불상은 1250년 정도가 지난 고불이다. 석남암사지 석조 비로자나불상은,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 중에서 가장 빠른 조성 예로 기록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현재 이 석조 비로자나불상은 보물 제1021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소중한 문화재, 그것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러한 책임을 나몰라라 하는 사람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인가? 깨지고 훼손되어 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문화재, 그리고 온통 낙서가 된 낙서판인 벽과 명승지. 그것이 과연 우리가 후손들에게 떳떳이 줄 수 있는 것일까? 오늘 깊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538에 소재한 내원사. 지리산 내원사라고 부르는 이 절은 양편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여름철 계곡에 물이라도 불어나면, 암반으로 된 계곡 바닥을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한 곳이다. 가끔은 천둥이 치듯 굴러 떨어지는 물소리에 막힌 가슴이 확 트이기도 하고.

지난 8월 13일 찾아간 내원사. 내원사로 들어가는 다리가 붕괴되어 있고, 아름답던 계곡은 여기저기 파여 나갔다. 내원사로 들어가는 마을의 길도 한편이 뭉툭 잘려나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번 집중호우 때 지리산 일대에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하더니, 그 때 수마가 할퀴고 간 자국을 남겼는가 보다.



빗속에 찾아간 내원사, 삼층석탑을 보다

내원사에 도착 했을 때는 또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오락가락 하는 비 때문에 제대로 답사를 할 수가 없다. 경내로 들어서면 시원한 마당과 산 밑으로 나란히 선 전각들이 보인다. 내원사의 대웅전을 바라보면, 대웅전 앞에 역간 비켜 서 있는 삼층석탑이 있다.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전형적인 신라 탑의 모습이다.

내원사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과 3층의 탑신, 그리고 정상부에 상륜을 장식한 신라시대 일반형 석탑이며 높이는 4.8m이다. 이 석탑의 북쪽에는 옛 법당지가 있고, 주변에 석등부재와 석탑의 상륜부재, 각종 조각석의 파편 등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남향한 1탑 가람으로 현재 탑의 위치는 예전 그대로의 원 위치임을 알 수 있다.




여기저기 손상이 된 삼층석탑, 그래도 당당함을 잃지 않아

내원사 삼층석탑은 보물 제1113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그러나 이 탑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조금은 의아해 할 것 같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서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긴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불에 타서 심하게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심하게 훼손이 된 석탑이 보물로 지정이 되었을까 하고.

그러나 문화재를 지정할 때 조성 시기나 그 형태 등을 보아, 연대가 정확한 것은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한다. 이 내원사 삼층석탑은 신라 무열왕 때인 657년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1950년대에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가 되었다. 그 후 부수어진 탑을 1961년에 내원사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을 한 것이다.



석탑은 지대석과 하층기단 면석은 같은 돌 4매로 구성되었는데, 하층 기단 각 면에는 두개의 우주와 두개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탑신부에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한 개의 돌로 조성이 되었으며, 지붕돌인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4단씩이다.

옥개석 상면에는 2단의 받침으로 그 위층의 몸돌을 받고 있는 점과, 특히 기단부의 구성 및 양식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하대의 석탑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깨지고 많은 훼손이 되기는 했지만,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내원사 삼층석탑. 석탑을 돌아보고 있노라니 비가 더욱 거세게 쏟아진다. 그 빗속에 견디기가 어려웠는지, 작은 동자상 하나가 엎드려 있다. 비를 맞으며 돌아 본 내원사 삼층석탑. 그 당당한 모습에서 신라인의 자태를 떠올려본다. 그 안에 삼국을 통일한 기개가 서려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석탑 중에서 가장 특별한 석탑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지리산 대원사에 소재한 보물 제1112호인 ‘대원사 다층석탑’일 것이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 소재한 지리산 대원사는, 손꼽히는 참선도량 중 하나로서 지리산의 절경과 잘 어우러진 사찰이다. 경내 사리전 앞에 서 있는 이 다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8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이 탑이 왜 특별한 것인가는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기단부 모서리 기둥 모양을 본 떠 만든 문인상이 네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기단부 사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았으며, 탑은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석재나 형태 모두가 일반적인 석탑과는 다르다.


어렵게 들어가 본 다층석탑

대원사 다층석탑이 서 있는 곳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그 동안 두어 번 대원사를 찾았지만, 밖에서 탑의 윗부분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큰 맘 먹고 찾아갔던 차라 종무실에 허락을 받고나서야, 잠시 사진만 조용히 찍고 나오겠다는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 탑은 646년 신라의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높이 6.6m의 탑이다. 석탑 앞에 있는 배례석에는 조선조 정조 8년인 1784년에, 다시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그 후 1989년 해체복원 때에 58과의 부처님 사리와, 사리를 넣는 사리장엄구편이 발견이 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다층석탑

그저 밖에서 바라다볼 때는 붉은 색이 감도는 탑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전체적인 모습에서 다른 석탑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상상을 초월한 모습이다. 2단의 기단부에 8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기단 맨 위 갑석을 일층으로 삼아 전체를 9층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경우 짝수로 몸돌을 올리지를 않기 때문이다. 상륜부에는 탑의 높이와 비례가 되는 찰주가 솟아있다. 그 밑으로는 보주와 복발이 남아있다. 전체적인 상륜부는 보존되지 못했다고 해도, 남은 것만으로도 탑의 모습을 한결 신비롭게 만든다.



2단의 주름이 있는 지붕돌은 약간 투박한 듯하며, 각 지붕돌의 처마는 두껍고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있다. 맨 위 8층 지붕돌에는 금방이라도 맑은 소리를 내며 경내를 잠 깨울 풍탁을 달아놓았다. 현재 달려있는 풍탁은 아마도 후에 달은 것으로 보인다.

기단석 사방 모서리를 받친 문인석, 그 이전에는 무엇이?

임진왜란 때에 탑이 파괴가 되자, 정조 8년인 1784년에 다시 세웠다는 대원사 대층석탑. 8층이나 되는 탑은 높지만 전체적으로 체감비율이 뛰어나다. 조각은 웃기단부 사면에 새겨 놓은 사천왕상뿐이다. 이 탑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는 탑에서 서광이 비치고, 향기가 경내에 가득했다고 한다. 또한 마음이 맑은 사람은 근처 연못에 비친 탑의 그림자로 탑 안의 사리를 볼 수 있었다고도 전한다.



이 탑의 기단부 모서리에 세운 문인상은 왜 세운 것일까? 이 문인상이 조선 정조 때에 탑을 새로 고쳐 세울 때,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대신하여 세웠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다층석탑의 사방 모서리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웃기단부 돌이 일층 몸돌보다 작은 것을 보면, 처음부터 사방에 무엇인가가 몸돌을 받치고 있었다는 뜻이다.

문인상을 사방에 세운 이유도, 그리고 그 이전에 있었던 모서리의 모습도 다 궁금하다. 외국인들까지도 이 탑의 아름다움에 반해, 출입금지 구역인데도 들어와 열심히 촬영을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석탑 중에서도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는 대원사 다층석탑. 처음으로 전체를 다 볼 수 있었던 다층석탑은, 오랜 시간 눈앞에 아른거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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