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SK아트리움 개관기념 페스티벌

 

수원SK아트리움 개관기념 페스티벌이 지난 7일 오프닝 콘서트를 시작한 이래 주요공연이 매진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라수흥)이 주관하는 개관기념 페스티벌은 다음달 6일까지 20개 공연(24)을 무대에 올린다.

 

개관기념 페스티벌 첫 주말에 열린 4개의 공연이 모두 80% 이상의 객석점유율을 보인 가운데, 8일 열린 수원오페라단의 오페라 봄봄이 수원SK아트리움의 첫 번째 매진공연으로 기록되었다.

 

티켓 오픈 이후 현재(10)까지 수원연극협회의 환타지 연극 무협’(19), 예술공동체 술래의 판소리 음악극 출세가’(22)를 비롯하여 총 3회 공연되는 KBS 성우극회의 ‘KBS 성우극장’(44, 5)이 모두 100%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이어 수원국악협회의 전통소리극 축만제’(41), 수원연예예술인협회의 ‘OST 콘서트’(45), 수원시 아마추어 음악동아리 페스티벌(46)90% 이상의 예매율을 보이며 매진을 앞두고 있다.

 

 

이밖에도 무대에 올린 작품 대부분이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기 작품의 경우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공연 티켓은 1천원에서 3만원까지 다양하며, R석과 S석의 경우 10인 이상 단체는 30%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또 학생(대학생 제외)과 수원문화재단 및 수원SK아트리움 홈페이지 회원가입자와 수원시립예술단, 인터파크 Tiki회원도 20% 할인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한편, 수원SK아트리움은 20124월 착공하여 16개월간의 공사 끝에 지난해 10월 완공됐다. 950석의 대공연장과 300석의 소공연장과 더불어 수원시립교향악단과 수원시립합창단이 상주해 있다.

 

 

국보 시인 고은과 재즈뮤지션 나윤선의 특별한 앙상블

 

시는 마음의 소리이다. 모든 시인에게 운명적 열정이 있고, 나에게도 있는 그 열정으로 낭독을 한다.” 수원시민이자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고은 시인이 수원SK아트리움의 개관을 기념하여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과 함께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봄밤의 특별한 콘서트를 연다.

 

오는 14일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고은, 시의 밤에서 거장 시인과 재즈 보컬리스트의 화려한 만남이 펼쳐진다. 이날 고은 시인은 미발표작 초혼을 포함하여 10여 편의 시를 직접 낭송할 예정이다. 나윤선은 세노야’, ‘작은 배등 고은 시인의 시를 가사로 한 노래를 부른다. 특히 이번 공연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마음을 모두 위로하는 새봄 희망의 앙상블이다.

 

 

고은 시인은 1933년 태어나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1960년 첫 시집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시, 소설, 평론 등 155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왕성한 창착열을 발휘하는 시인의 작품은 20여 외국어로 50여권의 작품이 번역됐다.

 

한편,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공연에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나윤선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하여 프랑스에서 수학하했고,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상하는 등 대한민국 국가대표 재즈뮤지션으로 활동 중이다.

 

이번 공연은 소설가이자 시인인 장석주가 사회를 맡아 진행하며, 기타연주자 오정수가 함께한다. 공연예매는 수원SK아트리움 홈페이지(suwonskartrium.or.kr)와 인터파크 티켓에서 가능하다. 문의 : 250-5300

 

 

수원SK아트리움 개관기념 페스티벌 일정표

 

일 정

장 소

공 연 명

출 연 진

티켓

3. 7() 19:30

대공연장

Opening Concert

<The New Beginning>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김대진,

바이올린/강동석)

R3만원

S2만원

A1만원

3. 8() 19:00

대공연장

손열음

피아노 리사이틀

피아노/손열음

R3만원

S2만원

A1만원

3. 8() 17:00

소공연장

오페라 <봄봄>

수원오페라단

전석 5천원

3. 9() 17:00

대공연장

KBS교향악단

초청공연

KBS교향악단

(지휘/안드레아 보나타,

첼로/김민지)

R3만원

S2만원

A1만원

3. 13() 19:30

대공연장

<봄의 소리와 함께>

수원음악협회

전석 5천원

3. 14() 19:30

대공연장

<고은, 시의 밤>

고은 시인,

재즈가수 나윤선

R3만원

S2만원

A1만원

3. 15() 19:00

대공연장

<한국합창 BIG3>

수원시립합창단

국립합창단

대전시립합창단

김동규&프렌즈

R3만원

S2만원

A1만원

3. 19() 19:30

소공연장

환타지 연극 <무협>

수원연극협회

전석 5천원

3. 20() 19:30

대공연장

정조의 트라우마 장용영

<춤의 칼>

아트컴퍼니 예기

(수원예기보존회)

전석 5천원

3. 22() 19:00

소공연장

판소리음악극 <출세가>

예술공동체 술래

전석 5천원

3. 23() 15:00

18:00

대공연장

뮤지컬 디바 최정원과 함께 하는 <K뮤지컬 콘서트>

한국뮤지컬협회

(뮤지컬배우/최정원, 뮤지컬배우/김준현, 더뮤즈, 카리엔앙상블)

R3만원

S2만원

A1만원

3. 28() 19:30

대공연장

연극 <혜경궁 홍씨>

국립극단

R3만원

S2만원

A1만원

3. 29() 17:00

대공연장

댄스 페스티벌

수원무용협회

전석 5천원

3. 29() 19:00

3. 30() 17:00

소공연장

<11>

(Eleven Minutes)

국립현대무용단

전석 2만원

4. 1() 19:30

소공연장

수원의 전통소리극

<축만제>

수원국악협회

전석 5천원

4. 2() 19:30

대공연장

광대열전

<대단한 탄생>

국악예술단 고창

전석 5천원

4. 4() 19:30

대공연장

뭔가 특별한 음악회

<기억나? Show!>

수원시립합창단

R3만원

S2만원

A1만원

4. 4() 19:30

4. 5() 15:00

18:00

소공연장

<KBS성우극장>

KBS성우극회

전석 1천원

4. 5() 19:00

대공연장

듣는 영화, 보는 음악

<OST 콘서트>

수원연예예술인협회

전석 5천원

4. 6() 17:00

소공연장

수원시 아마추어

음악동아리 페스티벌

수원시 아마추어

음악동아리

전석 1천원

 

학자무사 최형국 박사 논문에서 오류 지적

 

수원문화재단 무예24기 시범단 수석단원이자 공부하는 학자무사 최형국 박사가 지난 7일 오후 430분부터 서울 고등교육재단 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사학회 제3회 정기발표회에서 <TV 역사물의 考證 한계와 그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KBS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의 무예사·군사사 고증을 중심으로 발표를 했다.

 

이날 최형국 박사의 발표는1. 머리말 2. KBS 다큐 <의궤 8일간의 축제>의 배경과 壯勇營의 창설, 3. KBS 다큐 <의궤 8일간의 축제>의 무예사·군사사 고증 오류 4. TV 역사물 고증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그 대안 5. 맺음말로 이어졌다. 이 발표에서 최형국 박사는

TV에서 방영하는 역사물은 한국이 향유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창구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학계에서도 단순히 논문이나 저술로 한정되어 있었던 연구 발현의 영역을 TV를 비롯한 대중 영상매체의 발달에 따라 조금씩 확대하는 추세에 있다.

 

특히 사극이나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TV 역사물을 학생들의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역사교육에서 그 영향력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머리말에서 TV 등의 사극이나 다큐멘터리가 역사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피력하고 있다.

 

대작 다큐멘터리인 <의궤 8일간의 축제>의 오류 꼼꼼하게 따져

 

제작 기간 2, 총 제작비 15억 원의 대작 다큐멘터리인 KBS 1TV<의궤 8일간의 축제>를 꼼꼼하게 따지고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에 수록된 내용을 기반으로 한 이 8일간의 축제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1795년 열었던 회갑잔치를 조선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극적인 축제중 하나로 꼽고 있다.

 

1795년은 정조 재위 20년이자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탄생 60(舊甲)이 되는 해였다. 정조는 현재 가치로 약 70억 원에 이르는 예산 10만 냥과 수행원 6000여명, 1400필을 동원해 성대한 축제를 벌였다. 서울에서 출발한 행렬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 화성까지 8일간 계속됐다. 총 제작비 15억 원, 거기다가 2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제작된 역사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이 축제>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들은 대작이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거론된 장용영의 군사들의 직제를 살펴보면 장용영이 내외영 이중 구조의 영으로 성장한 후, 군제의 상황을 보면 내영 안에 마보군은 기병인 선기대의 ··3초와 보군인 오사의 각 5, 아병의 6초를 합한 34초와 각표하군이 839명으로 구성되었다. 이중 3초의 선기대는 모두 345명으로 각 115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경군은 615명이며 향군 2,540, 사후군 52, 공장아병 26, 치중복마군 40, 배봉아병 245, 고성아병 439, 노량아병 144명으로 장용영 전체 군사의 수는 5,245명으로 훈련도감에 버금가는 병력규모를 구축하였다. 특히 장용영 전체 기병 숫자는 853명으로, 당시 중앙군영인 오군영에 배속된 기병 숫자 중 가장 많은 인원이 편성되었다.

 

무예사와 군사사 고증 오류 부분 일일이 대안제시

 

 

위 사진(다큐멘터리 영상화면)에서 보이 듯 정조의 호위무관인 선전관은 전형적인 日本刀를 허리띠 혹은 전대에 꽂아 움직이고 있다. 이는 마치 일본 사무라이가 정조를 지키는 형국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몇몇 부분에서는 아예 환도를 손에 들고 다니며 척후를 나선 장용영 군사들의 모습도 확인된다. 이러한 환도패용의 오류장면은 거의 모든 역사물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고증상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園行乙卯整理儀軌의 반차도 중 환도 패용 방식을 보면 조선후기 군사들의 환도패용 방식은 평시에는 환도의 손잡이가 뒤를 향하게 패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무장형태는 정조의 주변을 호위했던 선전관들 역시 동일하다. 그래서 유사시 전투 상황이 발생하면 360도 회전형 고리인 띠돈이 있기에 손쉽게 손잡이를 앞으로 돌려 칼을 뽑아 사용하였다고 오류를 지적했다.

 

 

다음으로는 장용영 군사들이 사용하는 등패의 오류도 지젇하였다. 비교 사진에서도 확인 되듯이 본 다큐멘터리에서 사용된 등패의 크기는 마치 머리에 쓰는 삿갓을 연상시킬 정도로 작은 모습이다. 심지어 다른 장면에서는 등패가 아주 얇게 만들어져 앞이 보이는 정도의 장면까지도 연출되었다. 조선후기 군사무기로 활용된 등패의 경우는 기존 조선군들이 사용하는 무거운 장패가 아니라 화살이나 표창의 직접적인 공격을 막을 수 있도록 견고하게 가공한 가벼운 등나무로 만든 패였기 때문에 전장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최형국 박사는 이 논문에서 <의궤 8일간의 축제>에서는 다음의 6가지가 오류라고 지적하고 있다.

KBS 다큐멘터리<의궤 8일간의 축제>에 드러난 고증 상의 문제점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첫째 정조의 호위무관인 선전관이 일본도를 일본도 패용방식으로 차고 근밀 경호에 나선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장면에서는 환도를 손에 덜렁덜렁 들고 다니며 척후근무를 한다는 치명적인 고증오류를 확인하였다.

둘째, 신궁이라 불렸던 정조가 전통 엄지걸이 깍지사법이 아닌 깍지 없이 검지와 중지에 화살을 걸어 쏘는 지중해 방식의 사법으로 활을 쏘는 장면이다.

셋째, 정조대 가장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국왕 친위부대인 壯勇營의 군사들이 고증과는 동떨어진 무기와 전술운용을 한다는 점이다.

넷째, 정조대 군사신호체계를 무시한 手旗의 활용과 夜操시 명령전달체계 고증의 오류였다.

다섯째, 불이 활활 타며 날아가는 夜操火箭의 모습은 고려중기 이전에 사용한 무기로 정조대 당시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무기가 신무기인 것처럼 묘사되었다.

여섯째, 위와는 반대로 佛狼機紅夷砲와 같은 화약무기의 경우 당시에는 발사체가 충격신관이 발명되지 않은 때라 폭발할 수 없음에도 장용영이 화력시범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억지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화성 야조 시에는 아예 화포훈련 자체가 없었음에도 정조의 군사력을 드높이기 위하여 날조된 역사내용을 첨가하기도 하였다.고 지적했다.

 

교육용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사극 등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최형국 박사의 논문은 한국사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에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화성 안에는 독립구역이 몇 개소가 자리를 한다. 이 독립구역들은 같은 화성에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방비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독립구역은 바로 봉화를 올리는 봉돈과, 공심돈이다. 이 독립지역은 화성 안에 또 다른 작은 성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봉돈은 봉화를 올리는 신호의 기능을 갖고 있는 곳이다.

 

봉돈은 외부와는 차단되어 있다. 봉돈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 안쪽으로 난 문을 들어서야 하며, 사방은 벽돌로 쌓아 막혀있다. 하기에 이 봉돈을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앞쪽에 난 문 뿐이다.

 

일반적인 봉수대와 다른 봉돈

 

화성의 봉돈은 1796년 6월 17일에 완성이 되었다. 화성 봉돈은 일반적인 봉수대와는 다른 형태이다. 일반적인 봉수대는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부의 높은 곳에 자리한다. 그러나 봉돈은 화성의 몸체 위 성벽에 맞물려 축조를 하였다. 봉돈의 재료는 벽돌로 활용하였으며, 우리나라 성곽 형식에서는 색다른 형태이다.

 

이 봉돈은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평상시에는 남쪽 횃불구멍인 첫 번째 ‘화두(火頭)’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피워 신호를 한다. 화성 봉돈에서 신호를 보내면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로 신호를 보내는데, 다른 4개의 화두에는 위급한 일이 없으면 불을 피울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방지를 하였다.

 

 

독립된 축조물 봉돈

 

문 안으로 들어가면 좌우에 방이 있다. 좌측의 방은 무기고로 사용하고, 우측의 방은 봉돈을 지키는 병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계단식으로 축조를 한 봉돈의 내부 벽은 모두 4층으로 구성이 된다. 각 층마다 성벽으로 타고 오르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총안이나 기름 등을 부을 수 있는 구멍이 있다.

 

봉돈이 독립된 구조물이라는 것은 성 안의 벽쪽으로도 총안이 나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성이 일부 적에게 열려도 봉돈은 지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성의 계단마다 안으로 들어쌓기를 하고, 그 위편에 통로를 내어 군사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도, 화성 봉돈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구성이다.

 

 

봉화의 신호체계는 어떻게 구별할까?

 

봉돈에는 모두 5개의 불을 피우는 화두가 서 있다. 일반적인 봉수대가 보이는 숫자와는 사뭇 다르다. 봉화는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이 되면 횃불을 피운다. 총 다섯 개의 화두를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 1개만을 올린다

○ 적이 국경 근처에 출몰하면 봉수가 2개가 오르고

○ 적이 국경선에 도달하면 3개의 봉수가 오른다

○ 봉수 4개가 오르면 적이 국경을 넘었다는 신호이며

○ 적과 교전이 벌어지면 5개의 봉수에 신호가 모두 올라간다

 

예전에는 이 봉돈의 연기나 햇불이 아마도 가장 빨리 상황전달을 할 수 있는 신호였을 것이다. 멀리서보면 아름다운 하나의 축조물과 같은 봉돈. 그러나 이 봉돈이 갖는 중요성은 화성의 그 어느 구조물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화성문화제 봉수의식 거행

 

제50회 화성문화제가 시작됨을 알리는 의식이었을까? 화성문화제 첫말 첫 행사로 봉돈에서 봉수의식이 거행되었다. 봉수의식은 장용영의 군사들이 ‘장용군사명’의 기를 들고 봉돈에 도착한 후, 군령에 따라 진행이 되었다. 북소리에 맞추어 화병(火兵)들이 화두에 횃불로 불을 붙였다. 화구 안에 쌓인 나무에 불티 붙어 연기가 오르게 되어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불을 붙여서 그런지 연기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성문화제의 한 행사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비록 연기가 많이 나지 않아 봉수의식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불만을 토하고는 했지만, 봉수의식은 그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할만하다. 화성을 지키기 위해 불을 피워 신호를 하던 봉수의식. 또 다른 볼거리였다.

검은 벽돌로 성에서 돌출시켜 쌓아올린 포루. 포를 쏘는 구조물인 포루는 성의 몸체에 凸 자 모양을 붙여 치성과 비슷하게 하고, 그 위에 포사를 3층으로 지은 구조물이다. 포루는 그 가운데를 비운 점이 마치 공심돈의 구조와 비슷하며, 그 안에 화포를 많이 감추어 두어 위아래에서 한꺼번에 포를 쏘게 하였다.

 

이런 설명만 갖고는 포루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화성에는 모두 5개의 포를 쏘는 포루가 있는데, 관리를 위해서 모두 잠가놓았다. 하기에 포루의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포루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포루의 형태는 같게 생겼지만, 크기는 조금 다르다.

 

 

 포루는 성안에서는 맨 위에 전각만 들어나지만, 성 밖에서 보면 3층으로 된 구조물이다.


 

3층으로 된 포루, 위용이 대단해

 

화성의 포루는 3층으로 되어있다. 맨 위에 총안을 낸 문은 판문(板門)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포루의 책임자가 있어, 적을 향해 공격을 지시하게 된다. 포루는 성 안에서 보면 맞배지붕이지만, 성 밖에서 보면 팔작지붕으로 그 형태가 다르다. 성 밖에서 보면 3층의 구조로 되어있지만, 성 안에서 보면 맨 위의 전각만 들어난다. 이 포루 안에는 몇 명의 군사들이 들어가 있었을까?

 

화성박물관 이달호 관장은 포루의 병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포루 안에 병사들이 몇 명이나 들어가서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포루는 3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규모 등으로 볼 때, 한 층에 대략 5~6명 정도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에 소재한 화성박물관 2층 상설 전시관에는, 화성문화실에 포루의 한 면을 절개한 조형물이 있다. 이곳에는 포루 안의 생김새와 그 안에 병사들의 모습이 모형이로 만들어져 있어, 포루의 대략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과거 성벽 위에 있는 여장의 한 타에 5~6명의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던 것을 보면, 아마도 포루의 한 층에 그 정도 인원이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유추해 본다. 모형을 보면 맨 위층인 전각에는 포루 안에서의 전투를 지휘하는 무장과 총수들이 있고, 1층과 2층에는 불랑기를 가진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임진왜란 전부터 사용한 불랑기자포

 

홍이포, 신기전, 녹로 로 등과 함께 화성의 장용영 군사들이 많이 사용했던 불랑기자포는 현재 보물 제861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그 중 861-1호는 육군박물관에 3점이 있으며, 861-2호는 서울역사박물관에 1점이 지정이 되어있다.

 

‘불랑기자포(佛狼機子砲)’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시키는 화기로는 조선시대 유일한 후장식 화포이다. 불랑기는 15세기 포루투칼을 포함한 서구제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는 조선 선조 25년인 1592년에 명나라 군대가 가지고 들어왔다고 알려졌었으나, 이미 그 이전인 명종 때 이미 사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인 불랑기자포에는, 자포 포신 표면 우측에 <가정계해 지통중칠십오근팔냥 장김석년(嘉靖癸亥 地筒重七十五斤八兩 匠金石年)>이라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자포가 1563년에 제작되었으며 중량이 75근 8냥이고 장인 김석년에 의해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랑기로 무장한 장용영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던 화성과 포루. 아마 당시 이들의 화력은 막강했을 것이다. 그러한 포루를 돌아보면서 과거 ‘정조의 꿈’이라는 화성이 더욱 달라져 보인다. 화성을 돌아보면서 만난 포루 하나로만도 가슴이 벅찬 이유이다. 역사 속의 산물이라는 존재는, 늘 그렇게 세월이 지나도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다스리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인지.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