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30분. ‘생태교통 수원2013’의 지역인 팔달구 행궁동 일원. 이렇게 이른 시간은 행궁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조차 거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런데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이 시간에 벌써 중장비로 작업을 하고 있다.

 

“몇 시에 나오셨어요?”

해가 뜨고 바로 나왔어요. 요즈음은 이 시간이면 서둘러 작업을 시작해요.”

 

장비를 운전하고 있는 기사의 대답이다. 이 시간에 벌써 나와서 작업을 하다니. 예전에 잠시 아파트를 짓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그때도 이렇게 일찍 현장에서 작업을 시작하지는 않은 듯하다.

 

 

전체 공정 96%, 마무리 공사 한창

 

전체공정은 96%정도가 진척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마무리를 하고 있는 작업현장이 많다. 9월 1일 이전에 완벽한 모습을 갖추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공사의 특성상 제대로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쪼개어 써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서 서둘러 작업을 시작해도, 생태교통 개막전까지 빠듯할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그러고 보면 그동안 생태교통 시범지역을 다니면서 많은 소개를 하면서도, 정작 이렇게 현장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왕 일찍 나선 길, 골목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아야겠다.

 

 

옛 법원과 검찰청이 있었다는 사거리 한편에도 열심히 벽면 외장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외벽공사를 하고 난 후, 간판을 교체하고 마무리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영업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공사를 일찍 시작해

 

“일찍 나오셨네요.”

“예, 저희는 6시부터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점포를 여는 시간이 8시 30분 정도라 그 전에 마무리를 하려고요. 장사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그런 것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서둘러 작업을 하지 않으면 영업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골목을 돌아본 후 정조로 큰 도로로 나왔다. 이곳 역시 정조로 양편에 간판 교체작업을 하느라, 장비를 타고 높이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대로변에는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뜸한 시간이다.

 

 

옛 묵은 간판은 철거하고 외장고사를 말끔히 한 후, 새로운 간판으로 교체를 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간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제작이 되었다. 가급적이면 영업장 주인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반영해 디자인을 했다는 것이다. 정조로를 구분해 동편과 서편의 간판 조명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동편의 간판들은 자체적으로 조명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 생태교통 시범지역의 가판들은 자체조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명을 별도로 설치하는 작업까지 하느라 더 많은 시간이 걸리죠.”

 

이른 시간에 작업을 하면서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준다. 올해는 참 비도 많이 왔다. 그리고 살인적인 무더위가 계속되었다. 이런 날씨 속에서 작업을 하느라, 고생이 몇 배는 더 심했다는 것이다.

 

“올 여름처럼 공사를 하면서 힘든 적이 없었어요. 연일 내리는 비로 인해 공사가 지연이 된 대다가, 계속되는 무더위로 인해 한 낮의 공사는 정말 고통스러웠죠. 하루에 마셔대는 물만 해도 엄청난 양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힘든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이제 막바지에 접어 든 생태교통 공사현장. 이렇게 힘든 작업을 하면서도 가끔은 주민들에게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단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현장에 65만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올 것에 대비해,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는 것. 정작 우리가 박수를 보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 현장의 사람들이 아닐까?

 

날이 더워도 너무 덥다. 조금만 움직여도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한 낮의 기온은 30도를 넘어, 그늘에 있어도 후텁지근하다. 하물며 그늘이 없는 뙤약볕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취재라지만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다. 8월 3일(토), ‘생태교통 수원2013’이 열리는 행궁동 일대를 세 시간 가까이 돌아다녔다.

 

행궁동 골목을 돌아본다.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골목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이 더위에 누가 골목길에 나와서 있을 것인가? 그늘도 없는 곳에서. 행궁 앞으로 돌아와 토요상설공연을 관람하고 난 뒤, 다시 행궁동으로 향했다.

 

 

수원천은 시민들의 좋은 피서지

 

행궁동 벽화골목까지 다 돌아보고 나서 수원천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후텁지근하고 땀이 나는 여름에는, 아무래도 물소리라도 들으면 더위가 조금은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그치고 난 뒤 하천 바닥에 있던 앙금이 씻겨 내려가면서 수원천은 물이 상당히 깨끗해졌다. 7월 중순 때만 해도 물이 탁해 보이지 않던 물고기들도 뚜렷하게 보인다.

 

사실 수원천은 멀리 피서를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피서지이다. 오후가 되면 그늘이 지는 수원천에 놓인 다리 아래 피서객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자리를 펴고 앉거나 누워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수원천에 발을 담가 세족으로 피서도 한다. 그런데 늘 이렇게 수원천 변을 걸으면서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이 있었다. 바로 물고기들이 상류와 하류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어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 좀 어떻게 올라가게 해줘요.”

 

그동안 수원천을 따라 걸을 때마다 그런 우려를 했지만, 아직 한 번도 큰물고기가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흡사 나누어져 정해진 부분에만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3일 오후 수원천을 걷다가 그동안 우려만 했던 모습이 실제로 목격이 되었다. 크기가 거의 80cm이상이 되는 물고기 한 마리가 돌로 경사지게 만든 구조물을 오르려고 하는 것이다. 작은 물고기들이야 당연히 물살을 가르고 위로 오를 수 있었겠지만, 이 큰 물고기는 중간에 그만 갇히고 말았다.

 

돌로 쌓은 경사진 축대로 흐르는 물의 양이 이렇게 큰 물고기가 이동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거의 몸이 반 이상이나 물 밖으로 나왔다. 한참이나 숨을 헐떡이며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물고기. 입을 벌름거리면서 어떻게든 그 돌 틈에서 빠져 나가려고 허우적거리지만, 그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대형물고기 이동 어로 조성해야

 

수원천에는 큰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상류와 하류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어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어도를 대신한 경사지게 돌들을 틈이 나게 쌓아올려, 그 사이로 물이 흐르게 하여 그것으로 어도를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물고기들이야 그 사이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큰물고기들은 틈에 끼여 이동을 할 수가 없다.

 

물의 양이 많지 않은 물길을 따라 위로 오르려고 애를 쓰던 큰물고기. 한참만에야 겨우 밑으로 내려갔지만, 위로 올라가고 싶은 것인지 한참이나 경사면 밑을 떠나지 않고 있다. 수원천은 자연천이다. 하기에 많은 물고기들이 이곳에서 산란을 하고, 때가되면 생명들이 다시 이곳에서 한 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렇게 상하류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어도가 없어, 한 구간에 갇혀 살고 있는 듯하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아래로 흐르는 물은 경사진 하천을 따라 내려간다. 그런 곳에 마련한 경시지게 쌓은 축대. 하지만 그것은 어도가 아니다, 어도란 물고기들이 마음대로 상 하류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물길을 깊이 내주어야 한다. 수초가 자라고 물고기들이 유영을 하고, 이곳에서 깨어난 오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수원천. 이곳 물길 경사면 한 편에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는 어도를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9월 한 달 동안 행궁동 일원에서 열리는 ‘생태교통 수원2013’. 65만 명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 생태교통 때, 많은 사람들이 수원천을 따라 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럴 때 행여 이런 모습이 목격된다면, 자연하천이라는 수원천과 생태도시 수원의 명성에 누가 되기 때문이다.

 

광교저수지 수변 길을 물과 함께 걷다.

 

연일 계속된 장맛비로 인해 사람의 몸도 마음도 다 눅눅해 진 듯하다. 거기다가 습기가 가득 찬 집안은 퀴퀴한 냄새도 나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 정말 오랜만에 햇살을 본 것이다. 이런 날 가만히 있으면 어쩌랴. 지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광교저수지 수변 길을 찾았다. 오전 11시 10분, 반딧불이 화장실 앞에서 수변 데크길로 들어섰다.

 

모처럼 햇살이 퍼진 날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저수지 수변 길을 걷고 있다. 가끔 늘어진 벚나무 가지가 이마를 스치기도 하지만, 그도 반기는 것이란 생각이다. 저수지 물이 불어나 건너편 산자락과 맞물려 있다. 물이 불어나 저수지 가에 있던 나무들이 물속에 잠겼다. 마치 주산지를 보는 듯하다.

 

 

3.4km의 수변 산책로, 걷기에 최고

 

광교저수지 수변 산책로는 새로 마련한 도로와 인접한 테크 이 1.5km, 그리고 산자락을 끼고 걷는 길이 1.9km이다. 모두 3.4km의 이 길은 빨리 걸으면 50분이면 족하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 급할 것인가? 어차피 그동안 젖어버린 마음도 함께 말리려고 걷는 길이다. 휴대한 수첩과 소형 카메라, 그리고 부채를 꺼내 들고 걷기 시작한다.

 

데크 책로에는 중간 중간 작은 공연을 할 수 있게 조성을 해놓았다. 데크와 도로 사이에 난 꽃밭에 사람들이 잡초를 뽑고 있다. 장마 통에 자라난 풀들로 인해 이곳에 심어 놓은 화초들이 행여 방해라도 받을까 보아서다. 이 꽃밭에는 맥문동, 옥잠화, 비비추, 섬기린초, 조팝나무, 바위취, 털머위 등 다양한 꽃들을 심어 놓았다.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길을 걷고 계시다. 아마 이 어르신들도 이 길을 걷는 재미에 푹 빠지신 듯하다. 이 길을 걷는 분들은 왜 그리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많은 것인지. 무리하지 않고 걷기에 적합한 길이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다.

 

“날씨가 좋안 운동 나오셨나보네요?”

“그동안 하도 습해서 바람이라도 좀 쏘이려고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어요.”

 

 

길가까지 찬 물가를 걷다.

 

1.5km의 데크 산책로를 걷고 나서 산 밑으로 난 수변 산책로를 걷기 위해 다리를 건넜다. 산책로로 진입로 앞에 안내판이 보인다. ‘폭우 및 폭설로 인하여 산행이 위험하오니 자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아마 여름철 장마 때와 겨울 철 많은 눈이 내렸을 때 사용하는 안내판인 듯하다.

 

천천히 수변 산책로를 걷기 시작한다. 광교저수지에 불어난 물로 인해, 늘어진 나뭇가지들이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도 보인다. 사람들이 여느 때보다 더 많이 이 길을 걷고 있다. 부채를 꺼내 부쳐가면서 길을 음미해 본다. 어디서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볼 수가 있을까? 장맛비로 인해 잔뜩 습기를 머금고 있는 숲길 바닥에는 굵은 마로 만든 덮개를 씌워놓아 걷기에도 탄력이 있다.

 

 

중간 중간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마련한 의자 등에도 사람들이 모여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아니한가? 뒷짐까지 지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길이라서 더욱 좋은 광교저수지 수변산책로. 군데군데 바로 길 턱밑가지 차오른 저수지의 물이, 또 다른 풍경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한 바퀴 돌아본 길, 정말 명품일세.

 

물가에 서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광교저수지의 둑이 보인다. 3.4km의 수변 산책로를 걸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그동안 몇 번이나 이 길을 걸었지만, 장맛비가 잠시 멎은 후 걷는 이 길은 남다르다. 저수지 둑 한편으로 넘친 저수지의 물리 폭포처럼 흘러내리며 소리를 낸다.

 

더위가 가시는 듯하다. 그것도 장관이라고 그 물줄기를 배경 삼아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대느라 왁자하다. 12시 20분, 사진을 찍느라 20여 분을 더 걸려 돌아본 길이다. 어느새 윗옷 앞쪽에 땀을 흘린 자국이 선명하다.

백년지 뒤로 구층석탑이 보인다

 

아무리 장마가 들었다고는 하지만, 하루 종일 퍼부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충남 청양군의 문화재를 답사하겠다고 나선 까닭은 바로 대치면에 있는 장곡사 때문이다. 절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이곳은 유일하게 대웅전이 두 곳이 있는 절이기 때문이다. 장곡사를 나와 칠갑산을 옛 길을 넘어 찾아간 정산면 서정리에 있는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멀리서도 도로 옆 벌판 한 가운데 서 있는 구층석탑이 보인다. 사실 청양군의 문화재를 답사하면서는 딴 곳의 두 배가 더 힘들었다. 우선은 도로에 안내를 유도하는 안내판이 서 있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쏟아 붓는 듯한 장맛비로 인해서 찾아가는 길도 낯설고, 사진을 촬영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었을 때 연꽃을 찍느라... 

 

주변에는 400년이 지난 백련지가 조성되어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16-2에 소재한 보물 제18호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靑陽 西亭里 九層石塔)’은, 공주에서 청양 방향으로 23㎞ 정도 떨어진 벌판 가운데에 서 있다. 이 탑이 있는 부근에 고려시대에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이 구층석탑 주변에는 백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백련지는 조선 선조 20년인 1587년에 송담 송남수가 정산 현감으로 재임을 할 때, 정산현 좌측에 연못을 만들고 만향정이라는 정자를 세우면서 심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런 내용으로 보면 이 백련지는 400년이 훨씬 지난 백련지이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구층석탑

 

정산면 서정리 구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한 면에 2개씩의 안상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위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에 양우주를 돋을새김 하였고,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인 탱주를 돋을새김 하였다.

 

기단의 위로는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개석으로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이 구층석탑은 탑신의 1층이 지나치게 크다. 하지만 2층부터는 높이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넓이는 그리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덮개석인 지붕돌은 층급받침은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추켜 올라가 있다.

 

서정리 구층석탑은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이 구층석탑은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기단부에는 한 면에 두개씩의 안상을 새겼다 

 

천년세월 그 자리에 서 있어 고맙다

 

몸돌인 탑신부는 몸돌과 덮개돌인 옥개석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는 이 탑은, 1층 몸돌의 크기에 비해, 2층 몸동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우아하게 체감되어 있다. 몸돌의 덮개석 역시 탑신에 따라 아름다운 체감비율로 되어 있으며, 상륜부는 현재 모두 없어진 생태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석탑의 형식이 신라시대부터의 전형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상하의 비례가 아름답다. 서정리 구층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에 조형된 균형이 잘 잡혀간 거탑의 일종이다. 고려시대에는 석불이나 마애불, 탑 등을 이렇게 크게 조성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강한 국권의 상징은 아니었을까?

 

옥개석의 사방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나 있다

 

변 백련지에 핀 백련과 아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서정리 구층석탑. 천년 세월을 그렇게 한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상륜부만 사라진 채 잘 보존이 되어있어 고맙기만 하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장맛비가 다시 ‘후두둑’하며 쏟아지기 시작한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한 가지라도 많은 문화재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재촉한다. 다음에 만나게 되는 문화재는 어떤 것일까? 기대를 하면서 빗길을 달린다.

7월 15일,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산 7번지에 위치한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 주차장에 차를 댈 때부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 빗속에서 사람들은 꾸역꾸역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을 걷는다.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이 비를 맞으며 향일암에 오르도록 하는 것일까? 카메라가 신경이 쓰이지만, 그 인파 속에 나를 묻어 버린다.


‘향일(向日)’이란 말 그대로 해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일출의 명소로 알려진 향일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 19교구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금오산 향일암은 남해 제일의 관음기도 도량으로, 관세음보살이 중생들이 그 이름을 부르면 음성을 듣고(=觀音)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곳으로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좁은 바위틈을 빠져나가다


향일암을 오르는 길은 한 사람이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바위틈을 지나야 한다. 향일암의 전각들은 하나같이 바위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 바위가 전각을 맞이한 것인지, 전각이 바위를 찾아간 것인지. 그렇게 언제까지라도 하나가 되어 있을 전각과 바위들이 비에 젖은 나그네를 맞이한다.


카메라는 이미 비에 젖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렌즈를 닦아보지만 뿌옇게 김이 서린다. 그래도 어쩔 것이냐? 이 먼 길을 달려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다. 바닷가로 향해보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는다. 동행을 한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라대지만, 그럴 수가 없음이 참 답답하다.

 

 


사진만 찍으려고 하면 세차게 부는 바람과 쏟아지는 비가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금방 렌즈에 가득한 빗물이다. 그래도 몇 번을 천으로 렌즈를 닦아가면서 겨우겨우 여기저기 찍어보지만, 이런 날은 참 불가항력이다.


주변의 돌까지 거북등의 무늬가 있다는 향일암


원통보전 앞에 섰다. 우측으로는 산신각이 있고, 좌측으로는 종각과 그 아래 하관음전이라는 용왕전이 있다. 원통보전 안으로 들어가 삼배라도 하고 싶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다. 신발을 벗으려고 하니 바짓가랑이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오르는 길에 갑자기 넘쳐흐르는 물이 발을 치고 지나갔게 때문이다.

 

 


안에서는 스님의 예불이 한참이다. 할 수 없이 수미단 위에 좌정하신 세분 부처님께 마음의 염원을 고해본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중생들, 그리고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그러고 나서 하관음전을 향한다. 하관음전을 내려가는 길 바위 위에는 거북이인지 석물들이 줄지어 바다를 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십 수년 전 이곳에 들렸을 때, 한 노장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여기 향일암은 우리나라 최고의 관음성지인데, 관음보살이 이곳에 오실 때는 거북이를 타고 오시지. 그래서 이곳에는 바위와 심지어는 축대를 쌓은 돌에도 모두 육각형의 거북 등과 같은 문양이 보인다.”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많은 거북이들이 있는가 보다. 관음보살님을 모셔오기 위해서.

 

 


바위틈으로 다니는 길, 모든 곳이 바로 기도처라고


산신각을 둘러보고 난 후 상관음전으로 향한다. 원통보전 뒤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좁은 바위틈으로 계단이 있다. 그곳을 빠져나가 상관음전이 있다.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길을 비켜서 기다려야만 한다. 그렇게 찾아간 상관음전. 그러나 여기도 역시 어간문 앞에서 손을 모을 뿐이다.

 

 


장맛비 속에서 찾아간 금오산 향일암. 이곳은 온통 어디에 앉아도 기도처라고 한다. 그만큼 따로 기도처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곳에서 난 수많은 관음보살을 만난다. 이 빗속에서 여기 오른 사람들. 그들 모두가 관음보살은 아니었을까? 향일암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다시 거세진 빗줄기가 그리 싫지가 않다. 나도 이미 관음의 마음을 얻었는지.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