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돌은 고인돌과 더불어 대표적인 ‘거석문화(巨石文化)’에 속한다. 선돌은 우리나라의 고인돌이 상당수가 있는데 비해, 많이 분포되어 있지는 않다. 선돌의 분포지역은 함경도부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이다. 선돌은 돌을 세웠다는 뜻으로, ‘삿갓바위’나 ‘입암(立岩)’이라고도 부른다.

이 선돌은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구지바위, 수구맥이, 수살맥이, 수살장군, 석장승, 할머니·할아버지 탑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선돌의 형태는 위가 뾰족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대개는 선돌에 구멍을 파거나 줄무늬를 그려 넣기도 한다.


기자속이나 자손창성과 연결이 되

선돌은 그 형태에 따라 암돌과 숫돌로 구분이 된다. 끝이 뾰족한 것은 숫돌이고, 뭉툭한 것은 암돌이다. 이는 이 선돌이 기자속과 연관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선돌에 일곱 개의 구멍을 뚫은 것은 칠성의 믿음과 연관이 되는 것으로, 이는 자손창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성혈인 구멍이 뚫린 것은 모두 기자속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선돌은 아들을 바라는 기자믿음으로 보여진다. 선돌은 마을의 어귀나 구릉지대, 논이나 밭 등에 서 있다. 그러한 선돌은 선사시대 신앙물로 이어지면서, 신성한 지역을 알리거나 기자속까지 연결이 된다.


전주에서 남원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남원 못 미쳐 장수, 금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 좌측으로 나온다. 그곳에서 조금만 가면 지사면 영천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 길가에는 커다란 선돌 한 기가 서 있다.

빨래판으로 사용했던 선돌

이 선돌은 연대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돌에 새겨진 성혈로 보아 아마도 선사시대의 입석으로 보인다. 이 선돌은 마을 사람들이 냇가에 갖다놓고 빨래판으로도 사용을 하였고, 개울을 건널 때 다리로도 사용을 한 돌이라고 한다. 2009년 까지는 버스정류장 부근에 서 있던 것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이 선돌은 특이한 면이 있어 TV에 방영이 되기도 했다. 길게 일렬로 조성을 한 성혈 12개가 나란히 돌의 한 쪽 면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이렇게 12개의 성혈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12지를 뜻하는 것으로도 본다. 이렇게 12개의 성혈이 나란히 조형이 되어있는 형태는, 우리나라 전체의 선돌이나 고인돌에 새겨진 성혈 중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성혈의 크기는 직경이 8~10cm 정도에, 깊이가 2~5cm 정도나 된다. 돌의 한편에 나란히 새겨진 이 성혈의 의미를 두고 많은 해석을 하는 것도, 이러한 경우가 거의 발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빨래판 선돌’이라고 부르는 이 선돌은 아마도 신성한 지역을 알리는 표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돌은 삼한시대 소도나 솟대 등으로 변했다고 하는 학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사면의 빨래판 선돌의 경우도 그러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 의해 간절한 염원을 담고 조형을 한 것으로 보이는 12개의 성혈. 많은 선돌들이 뒤늦은 연구로 인해 훼손이 되었지만, 이런 희귀한 선돌은 그 가치가 매우 높아 좀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 길에서도 저만큼 커다란 석등 한 기가 보인다. 석등의 전체 높이가 5.18m나 되는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187에 소재한, 보물 267호인 용암리 석등. 그 규모만큼이나 대단한 크기에 뛰어난 조각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 용암리 석등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기나 아름답기로 손 꼽힐만한 대단한 석조미술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임실군 신평면 소재지에서 좌측 운암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길가에 보물인 용암리 석등이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석등은 아마도 예전에 사지가 있었던 곳 같다. 축대 위에는 몸돌은 사라진 채 덮개석만 남은 탑이 남아있고, 축대 위로 오르는 돌계단의 한편 난간과, 돌계단의 밑 부분도 예전의 석재를 이용해 복원을 해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 커다란 용암리 석등이 서 있다.


뛰어난 조각이 돋보이는 석등

이 석등은 신라시대 석등의 기본 형태인 8각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이곳을 몇 번이고 들려보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버스를 이용해 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한 가지 문화재를 보기 위해 하루를 소비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결정이다. 마침 겨울철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리를 하여 길을 나섰다. 이 석등을 보는 순간 어렵게 나선 답사길이지만, 이것 하나만 갖고도 아깝지가 않다는 생각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석등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용암리 석등. 크기가 크면서도 절대로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있다. 그 앞에서면 6m에 가까운 이 큰 석조미술품의 뛰어난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발목까지 눈이 빠지는 것도 모른 체, 석등 가까이 다가간다. 눈밭에는 발자국이 찍히면서 소리를 내지만,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길 틈이 없다.
        


귀꽃을 아름답게 장신한 덮개석 밑으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놓고, 그 밑으로는 3단의 받침돌로 구성이 되었다. 이 용암리 석등은 아래 받침돌에는 안상을 새기고, 윗면에는 커다란 꽃 장식을 두었다. 위에는 구름을 새겨 넣었으며, 간주석인 가운데 기둥은 장고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꽃을 새긴 마디를 둘렀다. 이와 같은 모양의 석등은 보물 제35호인 남원 실상사 석등 등에서도 보이는 제작기법이다.

보면 볼 수록 석등에 빠져들다.

한참이나 석등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과연 이것이 장비조차 변변치 않던 통일신라 시대에 인간이 만들어낸 조형물일까? 많은 석등을 보앗지만,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석등은 흔하지가 않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8면에 모두 장방형의 창을 내었다. 이러한 조형기법은 실상사 석등이나 보물 제111호인 개선사지 석등 등에서 보이는 제작기법이다.



화사석의 위에 올린 지붕돌은 경사가 급한편이다. 그 각 모서리에는 커다란 귀꽃을 조각하였는데, 그 귀꽃의 아름다움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리고 덮개석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머리장식의 받침인 노반과, 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복발이 놓여있다. 화사석에는 별다른 조각은 하지 않았으나, 8면에 낸 창이 시원하게 보인다. 세상을 밝히는데 있어, 좀 더 밝은 빛을 발하도록 한 마음이 엿보인다.

석등 주변을 떠나지 못하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용암리 석등이다. 이 석등이 서 있는 곳은 '진구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구사에 대한 기록이 없는 편이다. 다만 고승 보덕화상에게는 법륜이 높은 11명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때 적멸과 의융 2인이 임실에 진구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용암리 석등'은 2010년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명칭을 변경할 때 '진구사지 석등'으로 바꾸었다. 지붕에 하얀 눈을고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등. 도대체 그 당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은 석등을 조형을 할 수가 있었을까? 사람의 손으로 조각한 것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이렇게 조각을 하였을까를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디 한 곳 부족함이 없다. 어디 한 곳 더 지나치지도 않는다. 당연히 그 자리에 그런 조각을 해 놓아야 할 것같은 자리에, 각각 자리를 잡고 있다. 돌로만든 조형물이지만 딱딱하지가 않다. 그저 흙으로 잘 빚어놓은 것처럼 부드러움이 있다. 하얀 눈밭에 서 있는 석등의 모습이, 마치 이곳이 천상인양 착각을 하게 만든다. 길을 떠나야 하지만,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아마도 이대로 이 석등 곁에서서 못난 돌미륵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어제 남원으로 내려가 오늘(12월 19일) 아침 일찍 임실군에 있는 한 부대를 찾아갔다. 남원 선원사(주지 : 운천스님) 봉사단이 부대 장병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주는 날이라는 것이다. 군 장병들에게 한 달에도 몇 번씩 자장면 공양을 하는 선원사 자원봉사단은, 이미 전라북도 내에서는 수많은 부대에 자장면을 만들어 장병들에게 급식을 해왔다.

자장면 급식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봉사단을 따라간 것은 다름이 아니다.  장병들에게 어떻게 자장면을 만들어 급식을 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장병들이 자장면을 과연 좋아할까 하는 점도 굼금해서이다. 선원사 주지인 운천스님은 "나라를 위해 젊음을 불태우는 장병들에게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고민하다가, 자장면이 가장 먹기도 좋고 만들기도 수월하다는 생각에 자장면 급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선원사 봉사단이 직접 자장면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 봉사를 하고 있다"라고 한다. 그만큼 지역의 장병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이, 선원사 봉사단의 마음들이다.

 선원사 최인술봉사단장이 자장면을 볶고 있다. 자장면 만드는 기술을 배워 직접 만들고 있다.
 
병사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음식, 자장면

이른 아침 8시에 선원사에 모인 봉사단 일행은 최인술 단장을 비롯해 7~8명의 일행이 임실에 있는 군부대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이곳 군 법당에서 예불을 마친 병사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이다. 10시 30분부터 급식을 해야하기 때문에, 모두 손놀림이 바쁘다. 선원사에서 미리 준비해간 볶음야채에는 양파, 양배추, 호박, 당근 등에 표고버섯과 돼지고기까지 준비를 했다.



   

평소 선원사에서 자장면을 만들 때는 돼지고기 대신 콩고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장병들에게 줄 음식이기 때문에, 돼지고기까지 넣어서 자장을 볶았다. 한편에서는 면을 빼고, 또 한편에서는 단무지를 그릇에 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그동안 많은 봉사를 한 것 같다. 거의 한달에 두 세번은 자장면 봉사를 한다고 한다.



자장면을 만드는 최인술 단장의 솜씨를 보니 전문가 수준이다. 봉사를 하기 위해 자장면 집을 운영한 후배에게서 자장면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우선 기름을 붓고 끓이다가  돼지고기를 넣거 볶는다. 그 다음에 야채를 넣고 볶다가 표고버섯을 집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춘장을 넣고 계속 휘저으면 자장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오늘 금식을 할 병사들이 120명이나 되니, 몇번을 그렇게 볶아내었다.



 
선원사 자장면 맛있어요. 정말 최곱니다.

10시 30분이 되자 식당으로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배식구에서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면을 담고 자장면을 부어주고. 거기다가 간식으로 먹을 귤까지 준비를 했다. 한 그릇씩 들고가 식탁에 앉은 병사들은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정말 맛있습니다.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습니까?"
"선원사 자장면 정말 맛있습니다. 제대해서 나가도 이렇게 맛있는 자장면을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병사들이 자장면을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다. 하긴 정성이 깃든 음식이 맛으로만 따질 것인가? 그 안에는 봉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아들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듯, 정성을 다하고 있다.
 



모처럼 답사길에 만난 자장면 공양. 세상은 이렇게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름다운가 보다. 선원사는 매주 화요일 노인분들에게도 무료공양으로 자장면을 드린다. 또한 일이 있을 때는 채식뷔페와, 자장밥 봉사를 한다. 하기에 늘 선원사 봉사단들은 손길이 바쁘다. 일요일 답사보다 더 값진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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