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이야기 하나를 해야겠다. 체질적으로 연애이야기는 맞지도 않거니와, 표현력 또한 부족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도 머쓱하긴 하다. 그러나 지금도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아까운 여자를 놓쳤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를 당당하게 만드는 여자

지금이야 세상이 많이 바뀌어졌다. 하지만 사람의 심성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아마 지금 세상에도 이런 여자가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총각 때니 아마도 내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어섰을 때쯤으로 기억이 된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동료였으니, 벌써 40년은 지난 이야기이다.


한 직장에 있는 동료와 연애를 한다는 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늘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설레기도 하니까. 또한 복도에서라도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하고 지나치지만, 그 또한 직장생활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당시는 근무를 마치고 데이트를 한다는 것이, 분위기 좋은 곳을 찾거나 좋음 음식을 먹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가까운 곳에 있는 길을 걷는다거나, 음악다방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시는 것이 고작일 때이다. 그런데 그렇게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면, 내가 들고 다니는 책을 슬그머니 집어간다.

그리고는 핸드백을 열어 무엇인가를 책갈피에 끼워, 다시 책을 돌려준다. 책 표지를 열면 그 안에는 언제나 빳빳한 지폐 몇 장이 들어있다. 그것으로 계산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언제나 앞장 서 문을 나선다. 남자를 당당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무용을 하는 이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인가 위였다. 아마도 그 친구 집안에서 반대가 없었다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길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집 안의 반대라는 것이 그리 쉽게 넘길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결국 그 친구는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지금 같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았을 텐데 말이다.

결코 앞서지도 나대지도 않는 여자

당시는 길을 걸을 때도, 지금처럼 찰떡 붙듯 왜 붙어 다니지 못했는지 모른다. 지금 젊은이들이 보면, 머 이런 바보 같은 연인이 다 있나 하겠지만. 길을 갈 때도 한 번도 앞장 서는 일이 없었다. 다만 앞을 설 때는 어쩌다가 길거리에 몇 개 없었던 육교라도 오르려면, 항상 한 발 앞서 육교를 오른다.

그런 행동이 하도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왜 육교를 오를 때는 나보다 먼저 오르는가를. 대답을 듣고 참으로 세상을 올곧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자가 험한 길을 걸을 때는 남자가 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남들 보기에 남자가 여자를 보호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처음 여자를 새겨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두고두고 잊히지가 않는 것이, 아마도 이런 마음 때문인가 보다. 남자를 편하게 하는 여자. 그리고 남자를 당당하게 만들 줄 아는 여자. 이런 여자가 지금도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연애에 대한 글을 써보질 않아 표현력이 부족하여 고작 이렇게 밖에 표현을 할 수가 없지만, 아마도 이런 여자가 있다면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조건 잡아야 내 인생이 잘 된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 그런 사람이다.


세상 머 있어. 그냥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가슴 속에 묻어 둔 말을 하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 받은 인생이란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대고 살다가 보면, 깊은 병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인생이란게 머 있어. 그냥 사는 거지”

하긴 누구나 다 자신만의 소중한 삶이 있다고 하지만, 그 소중한 삶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다. 성공을 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부를 축적하거나, 아니면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이 성공을 한 것일까? 사람들은 제각각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성공한 삶일까? 늘 그것이 궁금하다.


인생살이에서 세 번째 스카우트가 되다

세상을 살면서 ‘스카우트’라는 말을 들어보았다. 이번에도 스카우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려는 가는 모르겠다. 벌써 세상을 살면서 세 번째인 듯하다. 남들이 말하는 스카우트와는 좀 다르다. 하지만 있던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이기에 데리고 왔다니, 이런 것도 스카우트라고 보아야 할까?

나이가 60이 넘어 이렇게 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리를 옮겨놓고 나서도 조금은 걱정스럽다. 나를 필요로 하는 데서, 과연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죽어라고 일을 해보아도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기대를 했던 분들에게 더 실망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한 곳이 있다

사람마다 제각각 성정이 다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능력도 다르다. 그 능력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발휘할 곳이라면, 기대를 해봄직도 하다. 하기에 사람마다 각기 필요한 곳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두고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자리를 옮겼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옮겨 온 곳이다. 이곳에서 과연 내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으려는 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 갖고도 행복하다. 아직은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몸이 피곤할 수도 있다.

인생은 60부터 라는데...

자리를 옮긴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을 한다. 그리고 차분히 노후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그래서 그냥 살다가 후에 어디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숨죽인 듯 살고 싶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 머 있어. 그냥 살다가 가는 거지”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참으로 세상 편하게 산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의 속이 과연 편안한 것일까? 아마도 그 누구보다도 속이 더 타버렸을 것만 같다. 그저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인생은 60부터 라고” 그 말이 나에게는 적격인 듯하다.

모처럼 옮겨 온 자리에서 창밖을 보니 멀리 지리산이 바라다 보인다. 이렇게 날이 좋은 날 천왕봉이라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인생의 마지막 자리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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