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오륜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어버이날이 되면 생각나는 옛 소리 하나가 있다. 예전 대전KBS에서 방송생활을 할 때 대전과 충남을 돌아다니면서 옛 소리를 채록해, 라디오 생방송을 할 때이다. 공주시 신풍면 백룡리에 거주하시던 강갑수(, 채록당시 80. 1988)어르신께서 들려주신 오륜가(五倫歌)’라는 소리였다.

 

'오륜가(五倫歌)'는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가 낱낱이 적혀있다. 이 오륜가는 어버이날만 되면 생각이 난다. 그리고는 한 평생 부모님들에게 제대로 효도 한 번 하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게 만든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소리였다.

 

 

7~8세에 서당에서 배웠다는 소리

 

강갑수 어르신은 당시 마을회관에서 이 소리를 해주셨다. 어릴 때인 7~8세 때 서당에서 배우셨다는 이 오륜가를 연세가 그렇게 되셨는데도, 일일이 기억하고 계셨다. 거의 30분 가까운 시간을 오륜가를 읊어주시던 어르신. 아마 이 소리를 일찍 들었다고 한다면, 조금은 불효애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천지만물 생길적에 귀한것이 사람이라

무엇으로 귀하던고 오륜행실 그뿐이라

오륜자도 의미하면 천지중에 참례하고

오륜지도 모르며는 금수인들 비할소냐

부자유친 으뜸이요 군신유의 버금이라

안에들면 부부유별 밖에나가 붕우유신

형제간에 우애하면 장유유서 자연하니

다섯가지 하는일이 옛글에도 분명하다

조목조목 말씀하여 사람마다 일깨우세

 

강갑수 어르신의 이 오륜가는 이렇게 서두를 끄집어 낸 뒤, 부모님들이 자식사랑이 이어진다. 아마 수십 년 가까이 전국을 돌면서 만난 많은 옛 소리 가운데, 이렇게 사설로써 가치 있는 소리를 더 이상 들어보지 못하였다.

 

 

부모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이곳향당 아희들아 부자유친 들어보세

천지간에 중하기는 부모밖에 더있으랴

부모은혜 생각하니 태산이 가볍도다

아버님이 낳으시고 어머님이 기르시니

모태십삭 해임할때 신비하기 그지없다

 

목욕감겨 누일적에 금옥같이 다룬다네

한번울면 염려하여 쓸어보고 만져보고

진자리에 부모눕고 마른자리 골라뉘여

우울까 염려하고 배고플까 근심하네

홍진마마 가려낼때 부모마음 어떻드냐

음식이 맛이 없고 한 잠을 못이루어

천지에도 빌어보고 의술에도 의탁하여

주야정천 한마음이 아이에만 맺혀있어

병세만약 위독하면 인촌간장 다녹는다

 

 

어르신의 이 오륜가를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파왔는지 모른다. 이 소리를 듣고 있을 때는, 이미 부모님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신 뒤였다. 그래서 이 소리가 더 가슴을 후벼 팠는지도 모른다. 고개를 들 수가 없고 세상을 바라다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뒤로는 부모님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얼마나 정성을 쏟으며 많은 노력을 하는지, 구절구절 부모님의 마음이 이어진다. 공부를 시키고, 좋은 의복을 입히며, 좋은 것을 먼저 자식에게 먹이는 부모마음. 성혼이라도 할라치면 좋은 배필을 구해주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고생을 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글 안에 녹아있다.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이 오륜가를 다시금 생각해 내는 것은, 이 날만 되면 지난 옛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모님들의 속을 무던히 썩이던 인사였기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요즈음 방송 등을 보면 '효(孝)'라는 단어는 아예 어디로 종적을 감춘 지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날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방송 등에서는 효를 알려주는 내용은 거의 없고, 그저 부모에게 달려들고 떼를 쓰거나, 아니면 패륜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등 그야말로 막가는 내용들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세상이 하도 험난한데, 무슨 케케묵은 그런 효를 강조하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효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행위다. 효라는 것이 사라진 세상이, 어찌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고충절 길재의 후손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가면 효자비각이 하나 있다. 그 안에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효자비와 목판 정문이 있다. 목판 정문에는 <孝子 學生 吉壽翼之閭>라고 적혀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효자인 길수익을 기리는 문이라는 소리다. 비석에는 <길야은선생칠대손효자수익지비(吉冶隱先生七代孫孝子壽翼之碑)>라고 쓰여 있다. 즉 효자 길수익은 야은 길재의 7대손이라는 것이다. 길재는 태상박사를 조정에서 제수했으나 '신하는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벼슬을 사양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정종 2년인 1400년 길재의 나이 48세에 조정이 천도를 한 후, 송도를 둘러본 길재가 지은 시이다. 길재는 '만고의 충절'이란 칭호를 들었다. 조정에서는 그의 충절을 높이 사 100결의 밭을 식읍으로 내렸으나. 길재는 그 밭에 대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충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충절을 지킨 길재의 7대손인 길수익

 

만고 충절을 지킨 충신 길재의 7대손인 길수익. 길수익은 영릉의 수호군으로 이곳 왕대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왕대리는 바로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있는 곳의 산 뒤 마을이다. 이곳에 길수익의 효자정문이 내린 것이 1670년이고, 효종대왕의 능은 1673년도에 이곳으로 옮겨졌으니, 길수익은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의 수호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륜가(五倫歌)'에 보면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가 적혀있다. 7대조인 길재는 <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에도 오른 인물이었으니, 그 자손인 길수익이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수풀속에 저 까마귀 반포한줄 알았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부모은혜 잊을소냐

새벽에 일찍깨서 문안부터 먼저하고

즐기시는 음식으로 정성들여 차려드려

부모한번 잡수시면 자식된맘 기뻤어라

이즉하면 시장할까 날이차면 추워질까

부모님이 하고자 하는일 앞서가며 먼저하고

부모앞에 항상 있어 편안케도 하자꾸나

 

오륜가 중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효자 길수익은 이러한 오륜가를 익혔을 것이다. 왕대리 앞으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고기를 낚다가 물에 빠져 헤매자, 아버지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든 길수익. 그러나 끝내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고, 함께 물에 빠져 고혼이 되었다.

 

조정에서는 길수익의 효를 높이 기리고자, 현종 9년인 1670년에 효자정문이 내려졌다. 지금도 왕대리의 마을 안에 있는 정려각과 비. 후대에 자손들의 귀감을 삼고자 조성된 이 비각 옆에는, 커다란 향나무 한그루가 있다. 그런데 이 향나무 가지들이 모두 밑으로 처져있다. 아마 길효자의 효스런 마음에 감읍하는가 보다.

 

모두에게 살아가는 지표가 되어야 할 소리

 

부모취침 하실적에 자리깔고 물러날 때

온한도를 살펴보세 춥지말고 덥지말게

정성을 하루같이 우리부모 살펴보세

글읽고 행실닦아 군자소리 들어보세

입신양명 하는날에 부모님도 현달한다

가난함을 근심말고 농사하여 봉양하세

물논에는 벼를심고 물밭에는 조를심어

벼는베어 부모봉양 조는베어 우리먹세

뒷산에 뽕따오고 앞밭에 목화심어

명주짜서 부모의복 무명일랑 우리입세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오륜가의 부모님에게 자식들이 해야 할 도리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서 지금의 우리들은 이런 소리조차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 아마 효자 길수익의 효심을 조금이라도 따를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 세상이 이렇게 황폐화는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모두에게 귀감이 되어야 할 행동

 

 

효자 길수익의 행동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행동이다. 말만 번드르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륜가는 인간이 살아갈 행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오륜가를 꼭 듣고 따라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물론 인간 모두가 따라야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지도층의 인사라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다가 보면,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삼간다. 그런데 이 지도층의 사람들이란 분들의 꼬락서니를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하니 말이다. 물론 그 중에는 아직도 본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오륜가의 다음 한 대목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스스로가 지도층이라고 하는 분들에게.

 

위태한데 가지마라 부모근심 하시리라

주색잡기 멀리하자 부모에게 욕되리라

처자동기 화목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신다

문중자랑 더욱하면 부모감동 하시리라

 

 

왕대리에 서 있는 효자비와 비각. 오늘도 그 앞에는 어린 아이들이 와서 돌아보고는 한다. 교육의 지표가 되어야 할 곳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길효자를 따라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오늘도 숱한 인생의 오류를 범하고만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비각 하나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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