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기온이 30도를 육박하는 날이다. 가만히 있어도 무덥다. 비온 뒤에 날씨는 습한 것이 온 몸을 끈끈하게 만든다. 12일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집 앞에 사람들이 왁자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았더니,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아이티(IT) 골목 조성에 열심을 내고 있다.

 

지동 271번지 일대 벽에 마련하는 IT 벽화 길은 원시인들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전화기 등은 최첨단이다. 이런 벽화가 내리막길 한 면을 온통 차지한다. 차들이 다니는 차도 변에는 흑백그림들이, 그리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칼라로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한다. 지동 벽화 길에 또 하나의 명물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워도 열심을 내야

 

거의 60여명 가까운 인원이 벽에 붙어서 그림을 그린다. 손에는 벽화 그림을 지도하는 화가들이 그려준 원시인들의 그림이 들려있다. 네모, 세모, 오각형... 등 조각조각 난 부분에 걸 맞는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 30도 가까이 오른 날씨에 오후 시간은, 그야말로 햇볕에서 오래도록 작업을 한다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들 그린다. 이곳에 와서 IT 벽화 길을 조성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연구원들은, 팀별로 돌아가면서 이곳을 맡아 그린다고 한다. 그동안 계속된 비와 바쁜 5월의 일정관계로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벽화 길 조성이 탄력을 받았다. 골목 길 이름도 ‘IT 벽화길이라고 한다.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연구원은

정말 너무 더워요. 하지만 오늘 맡은 책임은 다 해야죠. 아마 이 벽화가 골목 안까지 다 그려지고 나면, 지동 벽화 길의 명품 길이 될 것 같아요라면서 손을 쉬지 않는다. 한편에선 잘 그리라고 동료들이 응원을 한다.

 

새로운 벽화 길을 열다

 

지동의 벽화 길 조성은 올해로 3년 차이다. 5년간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는 2015년에는 지동 전체가 커다란 하나의 테마 벽화길이 조성이 된다. 1년 차에 그려진 그림들과 지난 해 2년 차에 그려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골목. 그리고 올해는 IT 벽화 길과 시인의 벽화길, 그리고 동화의 벽화 길이 조성될 예정이다.

 

 

각 테마별 벽화를 그릴 공간도 이미 다 정해졌다. 먼저 벽을 깨끗이 정리를 하고 난 뒤, 시인들이 직접 와서 글씨를 쓰고, 그곳에 그림들을 그린다고 한다. 더구나 올 해 지동의 화성 성벽 밑에 있는 167필지의 오래된 집들이 정리가 되고, 그곳이 시원하게 전망 좋은 곳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 작업을 다 마치면, 전국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벽화길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지동 벽화 길에는 딴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 있다. 나무로 만든 벽이 내려 놓으면 쉴 공간이 된다. 그런 곳이 여기저기 조성이 된다고 한다. 더욱, 잔디와 함께 깔아놓은 아름다운 보도블록도 있다. 골목 곳곳에는 나무화단이 조성되어,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요즈음은 전국에서 저희 벽화 길을 찾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습니다. 아마 생태교통 수원2013이 열리는 9월이 되면, 벽화 길을 찾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올 것만 같습니다. 그 전에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안내도우미를 양성할 계획입니다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총괄팀장은 이제는 지동 벽화 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가 된 듯하다며,

 

지동 제일교회 앞에 토사가 흘러내리는 면을 축대를 쌓아 말끔히 정리하였습니다. 그곳은 제일교회 주차장으로 사용이 되는데, 6월에는 그곳을 이용하여 음악회를 열려고 합니다. 가을에는 다시 옥상으로 가서 음악회를 하고요

 

날마다 변화가 되어가고 있는 지동의 모습. 5월 말의 열기처럼 벽화 길의 조성 열기가 뜨겁다. 올 한해가 지나고 달라졌을 지동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님이 한 분 계시다. 가끔 답답할 때 전화라도 드리면, 곧잘 우스갯소리를 해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시고는 한다. 나잇살깨나 먹어 세상을 살다가보니 사는 것이 점점 버거워진다. 아마 물질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심적인 부담이 더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며칠 째 감기몸살로 인해 사람이 늘어져서인가? 괜한 우울증이 걸린 듯하다.

전화를 드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맑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린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일까? 스님께서야 세상 놓는 공부를 하신 분이시니, 머 세상에 좋고 나쁘고도 없으실 것만 같다. 문안인사를 드리고 다짜고짜 질문을 퍼부었다,

“스님, 세상살이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스님 잠잠하시다. 딴 때 같으면 바로 한 마디 하시는 분이시다. 농담 삼아 한 마디씩 주고 받는 대화 속에 은연 중 세상살이 공부를 알려주시고는 하시는 분이라,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을 한다.

“하감독님(스님들은 예전 프로덕션에 있을 때 호칭을 지금도 쓰신다) 요즘 많이 힘든가보네요. 그러니까 곡차 좀 조금씩 하라니까요”
“곡차는 머 좋은 사람하고 만나면 한잔씩 하지만, 요즈음은 거의 안마시고 지냅니다.”
“그럼 곡차 부족인가? 하하... 아마 길 위로 나가면 곧 나아질 병인 것을. 요즘 바쁘다고 답사를 오래 안가서 그런 것 같네요.”
"그렇지가 않아요. 영 죽겠다니까요“
“그럼 죽어야지. 사람이 죽을 때를 잘 가려야 세상을 잘 살다가는 것이라는데”

늘 이런 식이다. 답답할 때 전화를 드려도 시원한 해법은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농 비슷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보면 어느새 속이 조금은 풀려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세상살이 한 번 이야기 해 볼까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전화를 주셨을까?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이렇게 심각하게 말씀을 시작하면 열띤 법문을 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말을 피하고는 하는 나이다.

“세상살이를요?”
“예, 이 세상에는 딱 세 종류의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어요”
“세 종류라뇨?”
“첫 번째는 부모님을 잘 만나 살아생전에 돈 걱정 안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우리가 흔히 재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은 절대 굶지는 않을 테니, 자신들의 생은 살아갈 수가 있겠죠.”
“예,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럼 두 번째는 무슨 사람들입니까?”
“두 번째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잡스 같은 사람들이죠. 실력이 남보다 출중해 자기 스스로가 이룰 수 있는 사람들도 살아남을 수 있죠. 우리나라 같은데도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고 하네요. 아이티산업 쪽에는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 개발을 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공감이 갑니다. 세 번째가 정말 궁금하네요. 세 번째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세 번째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특별한 공부를 했다거나 기술도 없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이 사람들이 사실은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고, 세상을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라고 보아야죠.”

이쯤 되면 이 세 번째 부류라는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스님은 세 번째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으로 구분을 지은 것일까? 대답을 듣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니 재촉을 할 수밖에.

“세 번째는 바로 쓰리기통에 거꾸로 처박아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은 실패를 해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가 있으니까요. 아마 이런 세 부류의 사람들만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보이네요. 특히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더 더욱 그렇죠.”

우리는 어느 부류에 속해있을까?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잠시 생각을 놓고 있는데, 말씀이 이어지신다.

“요즈음 젊은 부모님들 정말 큰일예요”
“왜요? 요즘 젊은 부모님들 아이들 잘 키우잖아요?”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바보로 만들고들 있어요. 그 부모님들 재산이 무척 많아요? 아님 아이들을 남보다 출중하게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하나요? 그것이 아니라면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받자만 하고 키우고 있으니, 그 아이들이 자랄 때 쯤엔 세상이 정말 험해질 텐데, 아이들이 어떻게 헤쳐 나갈 수가 있겠어요? 그 때까지 그 부모님들이 명을 버틸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무조건 받자를 하면, 아이들이 어려서 부터 부모님께 의지하는 마늠만 키우는 것이예요. 아주 어릴 적에는 사랑으로, 그리고 조금 지나면 스스로 일을 처리하도록 가르쳐야죠. 아이들 그렇게 키우면 부모님들이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긴 통화가 끝났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혹 나도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부류는 아니었을까? 오늘은 정말 이 말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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