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란 나에게는 참 묘한 곳이다. 남들은 그저 정자를 보면 ‘참 아름답다’거나 ‘주변 경관이 훌륭하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왜 난 정자들을 볼 때마다 하나하나 곰꼼이 따져보아야만 하는지. 그저 나도 남들처럼 정자려니 하고 지나치면 가슴 아픈 일도 없을 것을. 일일이 따져보다가 괜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산리, 죽산 입구 북쪽 냇가 산기슭에 정자가 서 있다. 작은 내를 건너 찾아간 곳은 내를 끼고 들어가는 곳이다. 정자 앞에는 상추를 심은 밭이 있는, 무주를 거쳐 남원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만취정이다.

 

 아름다운 돌담과 좁디좁은 일각문, 그리고 뒤로 보이는 정자의 활주가 발길을 붙잡는다


길도 막혀버린 정자 만취정

 

만취정을 오르려는데 마땅한 길을 찾지 못해, 비탈진 곳을 찾아 기어오르듯 정자로 향했다. 담장을 두른 정자 정면에 작은 문을 두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정자가 그대로 방치되어 퇴락해져 가고 있다. 목조 누각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만취정은 6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이 정자는 1929년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자에 걸린 게판에는 남평 문석린의 만취정 상량문을 비롯해, 숭록대부 예조판서 원임, 규장각 제한 안동 김종한 등이 쓴 만취정기가 보인다.

 

 

 

그리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만취정 팔경이다. 성산귀운(聖山歸雲), 기령숙무(箕岺宿霧), 죽림청풍(竹林淸風), 국포추월(菊圃秋月), 반계어가(磻溪漁歌), 사평목적(社坪牧笛), 취봉낙조(鷲峰落照), 용림모우(龍林暮雨) 등을 들었다. 이 만취정 팔경만 보아도 이 정자가 얼마나 운치가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퇴락해져 가고 있는 것일까?

 

퇴락해가는 정자, 주인은 어델가고

 

정자 안으로 들어가니 꽤나 단아하다. 이 정자의 주인은 멋을 아는 사람이다. 한 눈에 보아도 정자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죽림청풍이라 했던가? 정자의 뒤로는 대나무가 서 있다. 바람이 부니 와사삭하는 대잎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소리를 만취정 팔경 중에 넣어 멋을 일궈냈다.

 

 

 

정자 옆 암벽에도 만취정이라 음각을 한 글이 보인다. 그것이 만취정의 멋을 더한다. 창호 하나에도 정성을 쏟았다. 이런 정자가 주인을 잃어 사그라진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만취정 앞으로 내가 흐른다. 맑디맑은 물이 흐른다. 그리도 만취정 좌측 조금 떨어진 곳에 빨래터가 있다. 바로 이런 멋을 알기 때문에 만취정의 주인은 이곳에 정자를 지었을 것이다.

 

앞을 흐르는 냇물과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그 빨래터에서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정자에서 대바람 소리를 들으며, 술 한 잔과 시 한 수가 있었다면 이보다 더한 풍취가 어디 있을까? 만취정은 그런 자리에 몸을 낮추고 앉아있다.

 

왜 퇴락한 정자만 보면 눈물이 나는지

 

이 아름다운 만취정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이 아프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왜일까? 이런 아름다운 정자가, 어쩌다가 이리 손을 보지 못해 망가지고 있을까? 정자 뒤로 돌아가니 아궁이가 보인다. 뒤를 제외한 삼면에 마루를 내고, 그 가운데 방을 드렸다. 이곳에서 사시사철 주변을 돌아보며 세월을 낚았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하면 앞을 흐르는 내에서 작은 물고기라도 잡는 천렵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저 정자에 올라만 있어도 흐뭇하다. 모든 것을 상상만 해도 즐거운 정자. 그것이 바로 만취정이다.

 

만취정을 돌아보고 떠나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행여 저 만취정은 어느 날 다 사그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다. 몇 번이고 눈 안에 담아두고 떠나는 길에, 갈 까마귀 한 마리 저리도 서럽게 운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소재한 보물 제413호 독락당. 그 독락당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바로 계곡 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정자 계정이다. ‘계정(溪亭)’이란 이름이 딱 알맞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정자가 독락당 옆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계정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다. 아니, 자연과 스스로 동화가 되어 자연의 일부분인 양 서 있다. 널찍한 암반을 발아래 두고, 그 암반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른다. 물은 맑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정도로 푸르다. 계곡을 볼 수 있는 정자의 앞면은 축대 밖으로 돌출이 되어 있다. 기둥으로 떠받쳐 놓은 마루가 이 정자의 또 다른 멋을 연출한다.

 

 

500년 세월, 계곡과 함께 지내 온 정자

 

계정은 자손들이 독락당을 중건하면서 당시에 이미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처음 이언적이 독락당을 건축할 때 같이 조성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500년 가까운 세월을 이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이젠 스스로가 계곡이 되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전국의 수많은 정자를 답사하면서, 늘 마음속에 정자 하나를 그리워하는가 보다.

 

독락당 안으로 들어가 양편에 황토와 돌로 쌓은 담을 따라 들어가면 계곡으로 나가는 출구가 있다. 이곳은 건물을 모두 담장으로 둘러쌓았으면서도, 담장마다 계곡으로 출입을 하거나 계곡 바람이 통하게 문을 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 한편에 높은 축대 위에 걸터앉은 계정이 자리하고 있다.

 

 

 

 

호화롭지 않은 정자, 선비의 마음을 닮아

 

계정의 뒤편으로도 건물을 달아내어, 땅을 밟지 않고도 계정으로 옮겨 다닐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띤다. 그저 호화롭지는 않지만,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했다는 점이 계정의 매력이다. 밑에서 계정을 올려다보면 마치 계곡 위에 떠 있는 선계의 누각과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이언적 선생의 마음이 그대로 이 정자에 배어 있는 것은 아닐까? 화려함을 멀리하고 올곧은 생활을 하고자 하는 계정의 주인이 심성이 그대로 배어 있는 듯하다. 계곡에서 정자를 바라보면 마루 좌측 벽에 '계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자연은 정자 내에도 자리해

 

오른쪽에는 방을 두었고, 방 앞에는 '인지헌(仁智軒)'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이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어질고 지혜롭기를 바라는 이언적의 마음인가 보다. 바로 주인의 마음이 그대로 정자에 소롯히 담겨져 있다. 인지헌의 밑에는 축대 중간에 아궁이가 있다. 그 밑에서 불을 땔 수 있도록 하여,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계정 역시 담에 붙여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안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밖에서 보면 중층 누각처럼 보인다.

 

 

독락당의 모습도, 계정의 모습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자연이 되어 있다. 계곡을 닮아 있는 정자, 계정의 아름다운 까닭이다. 이 계절, 날이 더워질 때가되면 더 없이 계정이 그리운 까닭이기도 하다.

정자를 지을 때 옛 선인들은 무엇을 먼저 생각했을까? 우선은 물과 숲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에는 송림이 우거졌다면, 그것이 정자를 세우는데 최적의 조건이었을 것만 같다. 전국을 다니면서 보면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정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 모두가 빼어난 절경에 자리를 하고 있다.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기암절벽 위에 정자가 서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노송 몇 그루가 정자를 가린다. 한편은 대숲이 있어, 바람이 불때마다 대숲이 화답을 한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정자 하나가 서 있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자연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까? 그렇게 아름다운 정자 송석정(松石亭)은, 전남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 762번지에 소재한다.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송석정

당쟁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을 한 양인용이 처음으로 지었다고 전하는 송석정. 양인용은 제주인으로 자는 ‘여함(汝涵)’이요, 호는 송석정(松石亭)이다. 조선조 명종 10년인 1555년 을묘 12월에,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양산립의 장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직한 송석정은 소시에 등과하여, 종사품인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당시의 조정은 당쟁으로 인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광해군이 등극해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유폐시키자, 공은 이를 반대하는 충간을 광해군에게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공은 이곳으로 낙향하여 정자를 짓고 자호를 붙여 ‘송석정’이라 당호를 지었다.



글 속에 남아있는 송석정의 마음

대장부 어지러운 때를 만나
거룩한 진리안고 숲속에 있네.
궁약은 경서 속에 달래보고
공명은 물거품으로 생각하도다.
소나무 어루만져 달아실(=月谷) 바라보며
돌덩이 헤아리며 용두암을 거닐어보네
이 깊은 애정(哀情)을 뉘와 더불어 논할까
좋은 벗들 찾아와 머물었건만

송석정의 원운(原韻)에 보면 나라를 향한 걱정을 하면서 단장의 애한을 달래고 있다. 이곳에서 여생을 보낸 공은 많은 시인묵객들과 교류를 하면서 지냈다. 정자 안에 빼곡하게 걸린 수많은 시판들이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절경’이란 말이 어울리는 정자 송석정

송석정이 차음으로 지어진 것은 400여 년 전이다. 8월 21일 전라남도 답사를 하면서 찾아간 송석정. 많은 사람들이 정자에 올라있다. 무슨 일인가해서 다가갔더니, 공의 후손들이 모임이 있는 날이라고 한다. 바쁜 답사 일정만 아니라면, 나도 그 안에 끼어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고 돌아서려니, 공이 한마디 할 것만 같다. ‘술 한 잔 마시지 못하고 돌아서는 주변머리 없는 인간’이라고.

송석정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집이다. 덤벙주초를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웠다. 중앙에 한 칸 온돌을 놓아, 주변경치를 사시사찰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방은 사방을 모두 열어 위로 걸게 하였으며, 한편 마루를 높여 그 아래 아궁이를 두었다.



주변으로는 암반이 솟아있고, 노송들이 가지를 뻗고 있다. 그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앞으로는 들판이 펼쳐진다. 정자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자리에 서 있는 송석정, 그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기란 쉽지가 않을 듯하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찾아가는 길에는, 그 곳에서 공의 마음을 읽기 위해 술 한 잔 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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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불산(四佛山) 대승사. 경상북도 문경시 신북면 전두리에 소재한 고찰이다.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9년인 587년, 비단보자기에 쌓여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공덕봉 꼭대기에 내려앉자, 임금이 바위 곁에 절을 세운 것이 창건 기원이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병풍처럼 둘러친 사불산의 자락 안에 자리한다.

『삼국유사』 권3 <사불산조>에 기록에 의하면 임금이 이 사면바위에 와서 절을 하고, ‘대승사’라 사액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대승사라는 사명으로 전래한 것이, 벌써 1430년 정도나 된 고찰이다. 진평왕은 망명비구에게 사면석불에 공양을 올리게 하였는데, 망명비구가 입적을 한 후 무덤에서 한 쌍의 연꽃이 피어났다고 전한다.

자장으로 점심공양을 마치고 선방으로 돌아가시는 스님들

묵언수행’을 하는 대승사

7월 22일 금요일. 아침 일찍 대승사로 향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대승사. 몇 번이고 주변까지 찾아가 보았지만, 정작 대승사 일주문을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작은 일주문 앞에는 ‘사불산 대승사’라고 적혀있고, 안쪽에는 ‘불이문(不貳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불이문을 지나니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대승사의 살림을 맡아하는 원주스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공양간 한편에서는 아궁이에 커다란 솥을 걸고 불을 끓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아궁이다. 장작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른다. 이 복중에 아궁이에 불을 때 공양을 지어야 한다니. 그래도 옛 정취가 있어 좋다는 생각이다.



대승사 일주문인 불이문과 주차장 위에 놓인 장독대

대승사에는 보물 제991호인 금동보살좌상과 보물 제575호인 목각탱부관계문서, 경북 유형문화재 제239호인 마애여래좌상과 유형문화재 제300호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이 중 금동보살좌상은 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며, 대웅전에 모셔진 후불탱화인 목각탱화는 전국에 있는 목각탱화 중 가장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목각후불탱화는 나무를 깎아 돋을새김을 하고, 중앙에는 광배와 연꽃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별도의 나무로 깎은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라다만 보아도 대단한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대승사 대웅전과 보물 목각탱화, 그리고 대웅전의 꽃창상과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향나무

이 목각탱화는 길이 3.6m, 폭 2.7m이다. 원래는 영주 부석사에 있던 것을 옮겨왓다고 한다. 아미타불을 중앙에 배치한 이 목각탱화는 좌우로 5단에 걸쳐 협시상을 배치하고 있는데, 좌우에 3구씩 4열에 맞추어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였다. 시간이 없어 사면바위와 마애불을 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음번에 대승사를 방문했을 때는 그곳부터 들려보아야겠다.




대승사 꽃밭에서 만나 나비와 응진전, 그리고 응진전에 모셔진 나한상과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공간

짜장 한 그릇에 만족하는 스님들

공양간 앞에 놓인 동판을 친다. 나무망치로 치는 동판은 둔탁한 소리를 낸다. 여기저기서 스님들이 공양간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발우에 면과 짜장을 받아 섞는다. 한 그릇을 다 드시고 조금 부족하신 듯하다. 면을 더 넣어 드신 후 선원으로 돌아가는 스님들. 그 뒷모습이 참으로 한가해 보인다.



한 여름에 아궁이에 불을 때서 면을 삶아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수행이란 생각입니다

“잘 먹었습니다. 역시 스님이 만드신 것이라 그런가, 맛이 더 있는 것 같네요”

선원에 계신 스님들은 묵언 수행중이라 ‘맛있다’라는 말씀도 못하신다. 일을 보시는 스님이 오셔서 대신 말씀을 전하신다. 아마도 묵언 중이 아니시라면 꽤 많은 칭찬을 받았을 것을. 그렇게 공양을 하기 위해 찾아간 문경 대승사. 언젠가는 스님들의 생활을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 수가 있을까? 점점 멀어져 가는 스님들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공양을 준비하는데 곁에서 떠나지를 않는 대승사 견보살 백구. 스님들의 공양시간을 알릴 때 치는 동판. 그리고 스님들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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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많은 동물들을 만날 수가 있다. 기본적으로 절에 가면 키우는 개 한 마리 정도는 다 있기 마련이다. 거기다가 아무래도 음식이 있고, 나누어주는 손길이 있어서인가 보다. 그렇다고 절에서 본래의 답사목적을 잃어버리고 동물을 촬영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늘 바라다만 보다가 뒤돌아서는 것이 아쉬웠는데, 황토 찜질방이라는 곳을 들리니 강아지들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한 곳에 모여서 놀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어미는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짖어대고 있다. 왜 그곳에 있는가하고 가보았더니,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옆 부뚜막이 따듯해서이다. 날이 찬에 이 녀석들 아마 이곳에서 찜질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닮은 꼴 세 녀석이 반기다. 

이 녀석들 아무래도 낯선 사람이 마음에 걸리는가보다. 세 녀석 모두 내려와 신발에 냄새라도 맡으려는지, 앞에 와서 킁킁거린다.



“아찌, 신발 좋네. 그거 발 안 시려?”
“니가 그런 건 알아서 무엇하려고?”
“그 신발 좀 벗어봐. 나도 한번 신어보게”
“그런 소리 말고 얼굴이나 들어봐. 사진 한 장 찍게”


“아찌, 초상권 있는 것은 알지?”
“얌마, 니가 무슨 초상권야. 어린 녀석이”
“그럼 난 견상권이란 소리여 이거”
“그럼 임마 그건 맞는 말이잖아”
“말끝마다 욕은 하지 말고. 듣는 강아지 기분 나쁘니까”




세 녀석이 머리를 맞대고 토의를 하는가보다. 아무래도 기분 나쁜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인지 그런데 그 중 한 녀석이 자신은 그런데 관심 없다며, 다시 찜질을 하러 올라간다.



“삼돌아! 저 인간 괜찮지 않을까?”
“요즈음은 겉으로는 알 수가 없어. 잘 지켜봐. 혹 우리 밥이라도 걷어가려고 온 것이 아닌지”

이번에는 다른 녀석이 얼굴을 올려다본다. 무엇인가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나도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두 녀석이 또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최후통첩을 한다. 그리고 한 녀석이 다가와 하는 말이 우습다.

"아씨, 내가 이 팀 주장이거든. 좋게 말로 할 때 돌아가“
“아니 못가겠다. 사진이나 찍어야지”
“찍고 안 찢는 것은 마음대로지만, 나는 좀 잘 찍어 줘봐.”
“알았어.”


내가 눈웃음 한번 쳐줄게 돌아가”
“아니 싫어. 절대로 못가”
“이유가 무엇이야?”
"멀 그런것까지 알아야 해 너희들이. 왜 가라고 하는데?"

“그냥 돌아가 이유는 없어. 우리도 찜질해야 하니까. 얼른 돌아가”

그렇게 말을 마친 강아지들은 다시 부뚜막으로 올랐다. 아마 올 겨울 내 그곳에서 찜질이라도 하려는가 보다. 그저 녀석들이 잘 자라기만을 고대한다. 답사를 다니다가 만난 인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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