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 동명동에 소재한 보광사는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산사의 느낌을 받는 곳이다. 앞으로 20m 정도를 나가면 영랑호와 닿고, 주변으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다. 시내 중심가까지도 걸어서 15분 정도면 나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하면서도, 산사의 분위기를 맞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절은 예전 원효스님이 도를 닦던 자리라고도 전해지며, 골짜기 이름을 불당골이라도 한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면 커다란 바위에 '관음'이라고 각자를 해 놓았으며, 이 관음바위 위에서 '영랑스님'이 동해와 금강산을 바라보고 공부에 전념을 했다고도 한다.



소나무 숲길, 정말 명품이야

보광사 경내를 벗어나면 소나무 숲길이다. 천천히 뒷짐을 지고 숲길로 접어들면 온갖 산의 내음이 코를 간질인다. 길 밖으로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는 소나무 뿌리들을 보아서도 이 숲이 어제오늘 조성된 숲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길도 그리 가파르지 않아 천천히 걸어오르면, 어린 아이들도 따라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고는 한다.

산이라고 해도 그저 작은 소나무 동산 정도이다. 그 위로 오르면 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 바위 옆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어르신들과 눈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한편으로 가면 커다란 바위가 자리한다. 이 바위가 바로 영랑스님이 날마다 공부에 정진하던 '관음바위'라는 것이다. 밑으로 내려가면 바위에 커다랗게 '관음'이라는 글자를 각자해 놓았다.




이렇게 좋은 바위에 마애불 하나 있었다면 정말 제격이었을 것이다. 동해에 뜨는 해를 바라다보는 마애불의 자비스런 모습.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이 바위를 볼 때마다 나는 저 각자가 마애관음이란 생각을 한다. 아마도 마애불을 그리고 싶은 어느 사람이 그럴 수 없어 대신 글자를 새긴 것이나 아닌지.



콧소리가 절로 나오는 소나무 길

바위 한편에는 누군가 일부러 파 놓은 듯한 자국이 보인다. 저 밑에 혹 삼존불이라도 모셔 두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관음바위 위에 오르면 펼쳐지는 동해와 설악산, 그리고 금강산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밑으로는 영랑호의 푸른 물이 소나무 사이로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다.

다시 관음바위를 떠나 봉우리 위의 바위 밑을 통과한다. 흡사 석문과 같은 바위돌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세상사 저리 의지를 하고 믿고 살면 참 좋으련만. 한 20년 전에는 이 바위 아래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꽤나 시끄럽게 징을 두드려대고는 했다.




영랑호가 보이는 길로 접어든다. 몇 사람이 바삐 걸어 지나친다. 무엇이 그리 급한 것일까? 이 명품길이라는 소나무 숲길. 그리고 앞으로 펼쳐지는 자연경관. 이런 것을 어찌 그리 즐길 줄을 모르는 것인지. 그저 마음 바쁜 버릇은 어딜가나 볼 수가 있다. 괜히 나 혼자만 할일 없는 사람인 듯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월을 붙잡을 수 없으면, 세월을 타고가면 될 것을, 무엇을 그리 앞서려고 하는지.



그 길 끝에는 소나무 줄기에 흰 표식을 해놓았다. 숫자를 보니 1부터 10까지가 있다. 짧은 거리를 도는 곳이니, 이렇게 표시를 해놓고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하나씩 옮기는 것인가 보다. 괜히 몇 개를 한 편으로 밀어본다. 바쁠 것도 없고, 굳이 다시 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곳 나무 틈사이로 보이는 동해와 영랑호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긴다. 까지 한 마리 소나무 가지에 앉아 시끄럽게 짖어댄다.               

올레길, 둘레길... 요즈음 각 지자체마다 주변의 산책로에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걷기를 종용하고 있다. 주민들의 건강이나 관광객들의 즐길거리를 하나 더해준다는 기분 좋은 자연적 자원활용이다. 가끔은 이런 길에 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다운 길을 만나기도 한다. 워낙 사진을 찍는 재주하고는 메주인 나로서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없음이 늘 안타깝다.

지난 8일 찾아간 북지장사 가는 길. 대구 팔공산 올레 제1길이다. 소나무 숲길이 1.5km가 이어지는 길을 타박거리며 걷고 있노라니, 세상에 찌든 세상살이의 역겨움이 다 씻어지는 듯하다. 물과 돌, 그리고 소나무들이 정겨운 소나무 숲길. 그 길을 따라가 본다.


아름다운 소나무 길. 언제 걸어도 좋을 듯



길을 걸어 조금 가다보니 올레길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그리고 가을 수확을 하느라 바쁜 일손이 거기 있었다.


소나무가 양편으로 갈라서 사람을 기다린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나무 틈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눈부시다. 그리고 여기저기 널린 돌들. 산돌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앉아 오가는 길손에게 말을 건다.


북지장사. 아마도 대웅전보다 지장전이 더 유명한 절이었는지. 북족에 있는 지장사란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절에 무슨 행사가 있었을까?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커다란 산돌들이 나무 숲 그늘에 쉬고 있다.



산을 감돌아 흐르는 계곡가에 소나무가 돌을 피해 자라고 있다. 자연은 그렇게 딴 사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피해 자란다. 인간들은 왜 저런 진리를 모르는 것일까? 그런 조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겟다는 생각을 한다. 길가 계곡물이 흐르는 옆에 쌓아놓은 돌탑. 예전에 이곳에 서낭당이라도 있었음 즉하다.



안양교란 작은 다리가 놓여있다. 아마 이곳서 부터는 속세의 연을 내려놓으라는 것인지. 물이 흐르는 곳을 바라다본다. 참 깨끗하다. 저 물에 더렵혀진 몸과 마음을 흘려보내란 것인지. 그 위로 아이를 데리고 부부가 한가롭게 걷고 있다. 거리를 보아도 아이를 데리고 걷기 딱 좋은 길이다.


길 우측 소나무 숲속에 누군가 쌍탑을 쌓았다. 그 옆으로 실하게 자란 배추밭이 보인다. 올해는 배추금이 어떠려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제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인심을 보아야 한다니...



길가 허름한 집 담벼락에 누군가 친절하게 거리를 서 놓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조금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가 있다. 좌측으로 소나무 들이 조금 더 커진 듯한 길이다. 그 길 끝에 북지장사가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그저 터벅거리고 걸어도 20여분. 왕복 3km의 소남 숲길이다. 물과 돌이 함께 하는. 아이들과 걷기에도 적당한 거리인 이 소나무 숲길은, 그렇게 오랜 세월 객들을 기다리며 굽어보고 있었다. 
전시를 마친 곤충생태전의 자료를 반납하느라 남원 밤재라는 곳을 갔다. 문화충만이라고 하는 이 집은 저녁이면 리라이브를 하기도 하고, 바베큐를 팔기도 한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뒤로는 '밤재솔바람길'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운 숲길이 있어,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집에서 장수풍뎅이 등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전시된 것들을 제자릴로 돌려보내기 위해 다녀왔다. 그런데 이 문화충만에 가니 작은 고양이 하나가 울고 있다. 이녀석 사람을 보고 좀 놀아달라고 하는 듯하다. 길냥이 새끼인데 이제 태어난지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어미가 버리고 간 길냥이

이 녀석이 이 집에 오게 된 것은 거의 20여일이 지났다고 한다. 숲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았더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더라는 것. 주변을 찾아보아도 어미도 없이 혼자 숲속에서 울고 있었다고, 혹 어미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녀석을 집으로 데리고 와 놓아두었는데도 어미가 며칠을 기다려도 나타나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미에게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닌지.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차가 길 앞으로 다니기 때문에 위험해 우선 이곳에 정을 붙일 때까지 목줄을 해 놓았단느는 것이다. 실내에는 풍뎅이 등을 키우기 때문에 녀석이 해를 입힐 수도 있어, 고민 끝에 밖에 박스로 집을 만들어 주었다고.




개밥그릇에서 놀고 있는 길냥이새끼

그런데 이녀석을 보고 한참이나 웃었다. 녀석이 노는 곳이 바로 개밥그릇 안이기 때문이다. 딴 곳에 옮겨 놓아도 자꾸만 그리 들어간다는 것. 아마 녀석에게는 이 개밥그릇이 퍽이나 좋았나보다. 밥그릇 밖으로 나갔다가도 놀란 듯 밥그릇으로 돌아와 안에서 논다. 

곁으로 다가가니 녀석 같이 놀아달라고 조르는 듯하다. 아마도 혼자 하루 종일 노는 것이 무료했다는 듯. 앞에서 사진을 찍자 발을 내밀고 난리도 아니다. 그래도 밥그릇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며칠 지나 어디로 가지만 않는다면 목줄을 풀어주어야겠다는 사장님. 이 녀석 잘 좀키워주세요. 그래도 당당하게 생겼구만요.      






당산이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신표이다. 당산은 장승, 신목, 돌탑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에 있는 당산은 당산나무와 석장승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0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이 당산은, 운봉읍사무소 근처 숲 앞에 자리하고 있다.

남녀 한 쌍으로 조성된 석장승은 가운데 길을 두고, 양편에 마주보고 서 있는 남녀 한 쌍의 부부장승이다. 주변에는 숲이 있고, 남장승 곁에는 당산나무가 있다. 이 곳 당산나무 앞에는 제단이 있으며, 주변에는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원래는 솟대와 함께 있었다고 하나, 현재 솟대는 사라지고 장승만 남아있다.



허한 곳을 방비한다는 서천리 장승

마을 입구 양편에 서 있는 이 부부장승은, 마을의 허한 곳을 방어하고 서쪽을 진압한다는 의미에서 각각 ‘방어대장군’과 ‘진서대장군’이라고 복판에 새겨져 있다. 남장승의 복판에는 ‘진서대장군’이라 쓰여 있으며, 머리에는 벙거지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왕방울 눈을 하고 있다. 얼굴에는 주먹코와 아래로 쭉 뻗은 송곳니가 표현되어 있다.

처음 대할 때는 우락부락한 것이 무섭게 보이지만, 찬찬히 훑어보면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장승은 ‘방어대장군’이라 복판에 음각을 하고 있으며, 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석장승을 가만히 보면, 그 제작기법이나 시기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어느 시기에 한 기의 장승이 먼저 서고, 후에 나머지 장승이 제작된 것은 아닐까 추정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목이 부려졌다는 석장승

이 석장승을 보면 양편의 석장승이 모두 목 부분에 회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목이 떨어진 것을 붙여 놓은 듯하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두 부부장승이 싸움을 하다가 진서대장군의 목이 부러져 마을 주민들이 붙여 놓았다고 한다.

이 장승의 곁에 있는 당산나무에서는 정월 초하룻날 주민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당산제를 지내고 있으며, 당산나무에 제가 끝나면 장승 앞에도 간단한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이 마을의 주신은 당산목이 된다. 하지만 이 석장승의 경우 주신은 아니라고 햊도 목장승과 같이 썩어서 부러지거나 넘어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중요한 문화재이다.




일몰에 찾아간 장승, 해학적인 모습이 정겨워

마을 사람들은 이 석장승을 ‘벅수’라고도 부른다. 7월 24일 오후 6시가 넘어 찾아간 장승이다. 늘 운봉지역을 다니면서도 꽤나 늦게 찾아갔다. 자세히 살펴보면 가슴에 희미하게 표현이 된 창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눈은 왕방을 눈으로 이 지역 장승의 형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복판에 뚜렷한 ‘방어대장군’이나 ‘진서대장군’이라 쓰인 글씨는, 이 장승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직능을 갖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은 정월 초하루에 당산나무에 당산제를 지내고 난 후, 장승에 조촐하게 제를 지내고 있지만, 어느 시기에는 이 장승이 주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장승은 한 때 도난을 당했다가 다시 찾았다고 하는데, 도난당했을 당시 장승에 올리던 당산제가 신목으로 옮겨 간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마을을 수호한다는 남원 운봉 서천리 석장승. 오랜 세월을 주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두 기의 석장승은, 그 해학적인 얼굴 모습만큼이나 주민들의 마음에 편안함을 주고 있다.

 

문경시에서 59번 도로를 따라 김룡사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문경시 산북면 이곡리라는 마을을 만나게 된다. 고갯길을 넘어서 내려가다가 보니 다리를 건너 삼거리가 나오고, 그 전 좌측에 정자가 서 있다. 주변은 숲이 울창하고 정자의 앞과 옆으로는 내가 흐르고 있다.


지금은 도로가 발달하는 바람에 이 정자의 운치가 감소되었겠지만, 예전에는 나름대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차에서 내려 내를 건너 정자 가까이 다가갔다. 정자 앞면에 붙인 현판에는 <석문정(石門亭)>이라고 적혀있다.



구곡원림에 서 있는 정자

문경의 구곡원림 가운데 하나인 ‘석문구곡’은 아름다운 경치를 지니고 있는 곳을 말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인 제9곡은 도화동을 뜻하며 석문구곡의 옛 지명은 ‘문경 대도촌 아천 상류’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이 아천 상류가 바로 현재 문경시 산북면 이곡리 일원이라는 것이다.


내를 건너 석문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석비 한기가 서 있다. <이곡마을 숲>이라고 적힌 석비 앞으로는 맑은 냇물이 소리를 내고 흐르고 있다. 숲과 암벽이 어우러진 냇가는 일품이다. 정자로 올라가니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진 정자는 규모는 크지 않으나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정자는 비탈진 경사면에 지어 앞쪽으로는 밑기둥을 세워 올려놓았다. 높은 난간을 두르고 두 칸의 방을 마련했다. 방 앞과 옆면에는 누마루를 깔았으며, 팔작지붕으로 멋을 더했다. 정자 안에는 중수기를 비롯해 두어 개의 게판이 걸려있다.


길손 잃은 정자

방은 온돌을 놓을 것을 보니 정자는 사시사철 주인에 의해 이용이 되었을 것이다. 주변 경관으로 보나 정자의 형태로 보나 꽤 세월이 흐른 것 같은데, 아무런 설명을 한 간판이 서 있지 않다. 문경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아도 자료가 나오지를 않는다. 결국은 문화재로 지정을 받지 못해 이렇게 방치를 한 것이려니 생각하니,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시 한수라도 읊었을만한 곳이다. 그런데 주인 잃은 정자 석문정은 찾아드는 길손도 없는 것일까? 정자 한 동을 지으려면 많은 예산이 들어야 하거늘, 이렇게 좋은 풍광에 자리한 정자가 점점 퇴락되어 간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처음 이 정자의 주인은 석문정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을까? 단청도 되지 않은 정자는 그 나름대로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건만, 이제는 시인도 나그네도 찾아들지 않는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은 문화재로 지정이 된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에는 이러한 정자 하나쯤은 반드시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을 받지 못한 많은 정자와 누각들이 망가져 가고 있는 현실이 마음이 아프다. 오늘 석문정은 그렇게 길손마저 끊긴 채 외로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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