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종군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제막식

 

예전 우리는 숨도 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자그마치 그 기간이 46년이란 세월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과 협상을 하면서 우리를 또 한 번 죽였습니다. 이제 그 딸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자니까 우리의 아픔을 잘 알 것입니다. 이제는 그 딸이 우리 종군위안부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결을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우리의 명예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3일 오후 3시 수원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 한편에 작은 소녀상이 하나 조성됐다. 그 앞에서 김복동(, 89) 할머니의 함성없는 절규이다. 그 뒤편에 의자에 앉은 소녀상은 바로 수원 평화비인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은 종군위안부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한복을 입은 이 소녀상은 13~15세의 어린나이로 일본군에 끌려갔을 당시의 종군위안부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종군위안부의 아픔 달래줄 수원평화비

 

수원평화비(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201434일 단체설립을 했다. 수원에는 위안부 할머니 4명이 있었다. 평생을 위안부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오던 이분들 중에서 이미 3명은 고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안점순 할머니 한 분만이 이날 행사에 참석을 하셨다. 그 외에 김복동, 길원옥 두 분이 함께 했다.

 

이날 행사는 제막식에 모인 200여명의 건립추진위원 및 성금기탁자, 그리고 수원시민이 함께 참여를 했다. 행사는 오후 3시부터 시작해 수원평화비 제막식, 7000명의 성금을 낸 시민들의 명단을 적은 타임캡슐 봉안, 경과보고, 기념사, 작품설명 및 헌시낭독, 수원청소년 평화나비 발대식 순으로 이어졌다.

 

 

3개월 만에 빛을 본 평화의 소녀상

 

수원평화비인 평화의 소녀상 제작은 지난 219일 건립추진위 발기인 대회를 시작으로, 31일 시민결의대회와 창립총회, 34일 단체등록, 312일 행궁광장 등 모급함 설치, 325일 수원평화비 건립 장소 선정, 330일 광주 나눔의 집 방문, 45일 평화콘서트 기금전달식 개최, 417일 수원평화비 건립기념 자선바자회(갤러리아 백화점), 430일 수원평화비 설치공사를 거쳐 3일에 제막식을 갖게 되었다.

 

수원평화비인 평화의 소녀상은 김운성과 김서경 부부의 직품이다. 부부는 중앙대 예술대학 조소과를 같은 해에 졸업한 작가들로, 이번 평화의 소녀상 조성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소녀상은 머리카락이 단발이 아니라 뜯겨진 머리카락입니다.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어린 소녀들은 모두 댕기머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조각상을 살펴보면 머리카락이 거칠게 뜯겨진 듯 잘려진 모습입니다. 아픔을 상징하는 것이죠. 두 손은 꼭 쥐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였고, 오히려 한국정부를 압박하여 방해를 지속적으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항변이자 남은 우리들의 다짐이자 약속입니다

 

평화비 제막식에 참석을 한 시민 한 사람은

이렇게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해 그 제막식을 갖게 된 것은 이제부터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우리 정부가 이분들을 위해 제대로 할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자 항변이다. 수원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이렇게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어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다. 몇 분 남지 않은 저 분들이 살아생전에 꼭 명예를 되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라고 한다.

 

 

이날 제막식에는 수원청소년 평화나비 발대식도 함께했다. 수원 율천고. 권선고, 화홍고, 수원공고, 흥덕고 등의 학생들로 구성된 청소년들의 모임인 평화나비 대원들은 제막식이 끝난 후 단체로 수원시청 앞뜰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머리를 숙였다.

 

‘생태교통 수원2013’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살인적인 더위라고 하는데도, 현장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무리 공사로 열기가 더하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도 생태교통 수원2013을 위해 애를 쓰는, 수많은 현장의 일군들에게 먼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가 이 더위에 그렇게 열심을 낼 것인가?

 

정말 힘든 작업이라고 한다. 40일 가까이 내린 비로 공기를 제대로 맞추기나 할 것인가를 걱정했다는데, 이젠 연신 33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로 또 고통을 당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태교통 수원2013에 찾아 올 외국인 및 내국인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생태교통은 수원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딱 부러질만한 이유도 없이 반대를 하기도 한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일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의 여유를 가져보자. 멀지 않은 시기에 내 아이들이 닥칠 일이다. ‘지금의 나’를 생각하기에 앞서, ‘앞으로의 내 아이’를 생각한다면, 생태교통을 반대할 명분이 서질 않는다.

 

이다음에 우리 아이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평가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선 생태교통의 홍보에 열을 올려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이 닥칠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가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생태교통은 이제 수원만의 일이 아니다. 다만 수원이 그것을 먼저 보여주고자 하는 것뿐이다. 이다음에 화석연료가 고갈 되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 방법을 미리 알려주고자 함이다. 이런 소중한 국제적 프로젝트를 수원이 앞장서서 한 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손 안에 든 한 장의 지도, 생태교통의 모든 것이 있어

생태교통 수원2013’이 열리는 9월 한 달 동안 행궁동 시범지역 안에서는 많은 행사들이 펼쳐진다. 또한 여기저기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과 볼 것 등이 상당하다. 이 모든 것들을 모르고 찾아 헤맨다고 하면, 하루를 돌아다녀도 제대로 생태교통에 관한 것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이런 점을 감안해 생태교통의 현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도가 발간이 되었다. 손 안에 들어갈 만한 작은 지도 한 장에는 생태교통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야말로 ‘생태교통,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고 큰 소리를 칠만 하다.

 

“이 지도 한 장만 있으면 생태교통의 모든 것을 제대로 즐길 수가 있습니다. 작지만 펴면 생태교통의 행사장 전역서부터 어디로 가야 무엇을 구경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손 안에 든 생태교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생태교통 추진단의 관계자의 자랑이다. 9월 1일부터 생태교통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배포할 이 지도에는, 생태교통의 뜻과 생태교통이 펼쳐지는 행궁동 일원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지도에는 골목길 투어, 미래생태교통 마을탐험-청소년 학교, 수원화성 따라 자전거 유람, 윙윙 왕발통 타고 수원화성 투어, 생태교통 마을에서 1박 2일 등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다.

 

뒷면에는 생태교통의 모든 일정과 장소, 행사종류 등이 한 눈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마련하였다. 이 페이지에는 생태교통 이동수단 전시관과 체험장, 2013 생태교통 수원총회, 학술행사, 수원시 연계행사 등 다양한 정보를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한 마디로 전시, 공연, 학술대회, 탈것, 즐길 곳 등 모든 것이 내 손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공해 없이 모든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생태교통 수원2013’. 이 한 장의 지도를 들고 생태교통의 모든 것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자신이 갈 곳을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던 그런 곳과는 달리, 생태교통은 관람객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로 질 좋은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왜 윤달에는 결혼을 하면 안될까?

2012년 4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가 윤달이다. 윤달을 흔히 송장을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탈이 없다’ 라고 표현을 한다. 윤달에는 그만큼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윤달에 서둘러 수의(壽衣)를 마련한다. 윤달에 수의를 마련하면 좋다는 것이다.

또한 윤달에는 조상들의 묘를 옮기는 집들이 많다. 묘는 잘 못 건드리면 동티가 나는 법인데, 윤달에는 괜찮다는 것이다. 이렇게 윤달에 묘를 이장을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즉 윤달은 ‘귀신도 모르는 달’이라고 하여서, 귀신이 모르기 때문에 탈이 없다는 속설이 전한다.


윤달에 결혼을 하면 안된다

결혼 관련 업체들이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윤달은 귀신도 모르기 때문에, 경사스런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전해지는 말 때문이다. 하기에 이 윤달을 앞두고 웨딩업체, 가구업체 등이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다고 한다. 올해 윤달이 하필이면 우리나라의 결혼 성수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윤달을 피하기 위해 혼삿날을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윤달에 결혼을 하면 나쁜 것일까? 윤달은 태음력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달이다. 태음력은 일 년이 365일이 아닌 354일이다. 그래서 1년마다 11일이 부족한 것을 3년에 한번 씩, 19년에 7번의 윤달을 채워나가야 한다. 이 윤달을 우리는 흔히 ‘남는 달’ 혹은 ‘여벌 달’이라고 부른다.

이 여벌 달에 경사스러운 혼사를 하면 안된다는 이유를 한 번 알아보자. '윤달은 귀신도 모르는 달’ 이라고 하여 귀신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기에 경사스러운 날에 돌아가신 조상들이 음덕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참 이해하기 힘든 속설이다.


‘손 없는 날’은 되고, 윤달은 안된다

우리는 흔히 집을 이사를 하거나, 집안에 공사 등을 할 때는 음력으로 9일과 10일에 한다. 한 달에 5일인 음력 9일과 10일, 19일과 20일, 29일은 손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 이사를 하거나 집안에 작은 공사 등을 하게 된다. 여기서 ‘손’이란 ‘민간에서 속설에서 날수를 따라 네 방위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고 믿는 귀신’ 을 말한다.

또한 이 손은 ‘마마’의 신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마마를 앓는 일이 많았으므로, 이 손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 ‘손이 없는 날’이 있어, 이 날짜에 일을 하면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방위신인 ‘손’이 찾아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윤달에 묘를 이장을 하고 어르신들의 수의 등을 마련하는 것도, 모두 이 손으로 인해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주술적 사고이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 손 없는 날은 되고 윤달에는 안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윤달에 결혼을 하면 이 ‘손’이 방해를 할 수 없어 더 좋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옛날 습속을 무시하면서도, 이런 것에는 남다르게 민감하다.


현실적인 윤달을 피하는 이유

사실 윤달에 결혼을 하거나, 윤달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4년에 한 번씩 밖에 생일이나 기념일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윤달에 태어나면 양력으로 생일을 치루기도 한다. 생각을 조금만 깊게 하면 윤달에 결혼을 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매달아도 탈이 나지 않는다.” 라고 했다. 이 말은 윤달에 결혼을 하면 큰 탈 없이 잘 살수 있다는 말도 동일하다. 그런데도 윤달에 결혼을 하면 안 좋다고 하는 불편한 진실. 매년 돌아와야 할 결혼기념일이, 4년에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는 이유가 더 타당할 것이다. 그것이야 양력으로 날을 잡으면 그만인 것을. 참 그 사고들이 많이 불편하다.

남원 솔바람 길에 자리하고 있는 문화공간인 문화충만. 이곳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라이브 음악감상도 할 수 있다. 라이브도 그냥 라이브가 아니라, 운 좋으면 판소리 한 바탕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 집에는 길냥이 한 마리가 40여 일 전에 들어왔다. 녀석은 어미를 잃고 혼자 발견이 되어 이 집에서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녀석 그동안 달라져도 보통 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만 보면 장난을 놀자고 한다. 환경에 완전히 적응을 한 것인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장난을 치기 일쑤다. 아무나 사람들을 보면 장난을 걸기도 한다. 손이라도 내밀면 발라당 들어눕는다. 그래서 별명이 '발라당'이다. 메뚜기도 잡고 잠자리도 잡는다. 뒤에 숲이 있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논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냥이일 것이다.


공장난으로 하루를 소일하고

이 녀석 의자에 묶인 곳을 갖고 하루 종일 놀고 있다. 누워서 공을 잡고 흔들고 쫓아가고, 이렇게 혼자 잘 노는 녀석이 처음보았다. 자연에서 뛰어놀기 때문에 야생 길냥이의 습성을 갖고 았으면서도, 사람들만 보면 재롱을 피운다. 이 집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녀석이기도 하다. 사람을 보면 피하기도 하련만 일을 하는데 곧잘 방해를 놀기도 한다. 이제 3개월 정도가 된 길냥이 출신 '벌라당'.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란다.


공을 갖고 혼자 노는 길냥이 출신 고양이 끼끼. 재롱을 부려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메뚜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메뚜기를 잡으러 다니는 끼끼. 녀석아 숨어도 다 보인다,

 

사람의 손만 닿으면 땅바닥에 누워버린다. 그리고 놀자고 발을 흔들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붙입성이 많아 누구나 귀여워한다. 인기 최고이다.

하루 종일 혼자서 공을 갖고 노는 끼끼. 공놀이가 싫증이 나면
산으로 뛰어다니면서 자연과 벗삼아 놀고 있다.
 
아이폰으로 찍었더니 화질은 안 좋지만 참고 보시길...  
 


남원시 도통동 392-1 선원사 약사전에 모셔진 철조여래좌상은, 보물 제422호로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철조여래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촘촘히 돋아 나있고, 이마 위쪽에는 고려시대 불상에서 유행하던 반달 모양을 표현하였다.

선원사(禪院寺)는 남원 시내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절이다. 신라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로 1,135년이나 지난 고찰이다. 원래 객산인 교룡산의 지기를 누르고, 주산인 백공산의 기운을 돋우어야 남원이 발전한다고 하여 지어진 절이다. 선원사는 만복사에 버금가는 큰 절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이 되었다. 그 뒤 영조 30년인 1754년에 남원부사 김세평이 복원을 하였다.

보물 제422호 선원사 철조여래좌상

뛰어난 주조기법이 돋보이는 철불

선원사는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남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람이 펼쳐 있으며, 앞으로는 주공 1, 2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도로변에 접하고 있는 선원사는 도심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것은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는 약사전과 문화재자료인 대웅전 때문인가 보다.

약사전 안에 모셔진 철조여래좌상은 전통적인 고려 철불의 형태로 주조 되었다. 삼각형의 얼굴은 일반적인 불상에서 보이는 인자함이나 유연함은 보이지 않는다. 날카로운 코와 꽉 다문 입, 조금은 앞으로 내민 턱 등에서 보이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법의는 양 어깨에 걸쳐 얇게 표현이 되었는데, 넓은 옷깃을 오른쪽으로 여민 것은 마치 한복을 입은 것처럼 표현되어 매우 독특하다.



철조여래좌상을 모신 선원사 약사전(좌측)과 대웅전(우측) 맨 위사진 

팔과 다리에 나타난 옷 주름은 V자 모양으로 간략하게 처리를 하였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반듯해 당당한 느낌을 주며, 잘록한 허리에는 두 팔이 붙어 있다. 현재 철조여래좌상의 손은 최근에 다시 만들어 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팔의 형태로 보아 원래는 오른손을 무릎에 올리고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놓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 가지만 서원을 빌어야 해요”

남원을 답사한 이유도 바로 이 선원사 철조여래좌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주변의 절을 다니시는 많은 불자들이 선원사의 철조여래좌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딱히 무슨 효험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과다하게 소문을 내고는 하지만, 이상하게 선원사 철조여래좌상에 대해서는 웃음으로 말을 피하고는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것이 더 궁금해서 찾아간 선원사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지 않는 절집이다. 그러나 약사전 안으로 들어가니, 철조여래좌상의 표정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고려시대의 불상이라면 이미 천년 세월을 훌쩍 넘었다. 그 많은 세월동안 철불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원을 했을까? 아마 그 기운만으로도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있을 듯하다.




“세 번만 찾아와 엎드리면 알음이 있다”
“한 가지 서원을 빌어보세요. 딱 세 번만 와서요. 그러면 정말로 그 서원이 이루어져요”

멀리서 일부러 신원사 약사전을 찾았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다. 정말일까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약사전에 좌정하고 계시니,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데 영험함이 있는 것일까? 그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지성으로 빌어본다면, 그도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근엄한 부처님의 얼굴에서 무엇인가 기운이 뻗쳐 나오는 것만 같다.


천년세월을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 속에서 지켜 낸 신원사 철조여래좌상. 고려 시대에 주조가 된 철조여래좌상, 그 소중함이야 어디다가 비길 것인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마음속으로 빌어보는 것은, 이 땅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인가 보다. 세 번만 찾아가면 정말로 마음 아픈 사람들의 그 아픔이 가셔질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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