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3호인 수원화성은 그 축성을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을 지침서로 하였다.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조선조 정조 18년인 1794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9월에 완공하였다.

 

화성은 정조 이산이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축성되었다. 또한 아버지인 장헌세자를 향한 효심과,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축성 이전부터 몰려든 상권

 

성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화성은 축성을 할 이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축성이 시작되자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필품은 물론, 물자조달을 위한 장거리가 형성이 되었다. 팔달문 앞에 있는 상권은 이미 정조 이산이 화성을 축성하기 이전부터, 이곳을 기점으로 난전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조대왕이 직접 내탕금 6만 냥이라는 밑천을 대주어 이룩한 시장. 남문인 팔달문 앞에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시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러한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정조는 이 시장으로 인해 경제를 살리고 더욱 강한 왕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 것이다.

 

 

<동국문헌비고>에 나타난 장시

 

영조 46년인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는 전국의 장시는 평안도 134, 함경도 28, 황해도 82, 강원도 88, 경기도 101, 충청도 157, 전라도 216, 경상도 278개소로 모두 1,064개소에 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순조 8년인 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 재용편 5 향시조에 보면 향리 밖에서 장을 여는 것은 한 달에 여섯 장인데, 1일과 6, 2일과 7, 3일과 8, 4일과 9, 5일과 10일을 이용한다. 송도는 방식이 서울과 같고, 경기도 102, 충청도 157, 강원도 68, 황해도 82, 전라도 214, 경상도 276, 평안도 134, 함경도 28곳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전국의 장시는 8327개 군, 현에 1,061개의 장시가 있다고 하였다.

 

그 후 순조 30년인 1830년에 편찬한 임원경제지에는 전국의 장시가 1,052개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장시는 꼭 5일장으로 서는 것은 아니었다. 만기요람에는 길주 북쪽 삼갑의 각 고을에는 본래 장시가 없고, 민간인들 사이에는 평상일에 매매한다.’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장시는 지역의 환경에 맞게 장이 개설된 것을 알 수 있다.

 

 

전국의 선비상들이 몰려든 수원

 

수원의 유상, 일반적인 장사치들이 아니다. 유상이란 수원 팔달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선비들이었다. 물론 이 유상이란 말은 버드나무를 심은 수원을 유경이라 부른데서 비롯한 용어이다. 이들을 새롭게 조명해서 부르는 용어가 바로 유상이며, 전국 각처에서 모인 선비들로 이루어진 장사치들을 뜻한다. 그래서 이 유상들은 정조의 효심과 정조의 강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뜻에 동참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유상들 중에는 윤선도 가문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참여를 하였다. 정조는 이들에게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주었다.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갖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수원 팔달문 시장의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유상의 근거지인 수원의 팔달문 시장. 지금도 이곳은 팔달문시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7~8개의 시장이 모여 있는 상권의 중심지이다. 수원시는 이곳을 지난 2011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사업비 12억원(도비 포함)을 투자해, 유상박물관과 팔달문시장 문화센터, 조형물 설치, IT 콘텐츠 제작 등 1차 사업을 완료했다.

 

 

유상박물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동교를 건너 팔달문 방향으로 우측에 보면 1층에 <유상박물관>이라고 쓰여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유상박물관. 이곳에는 왕(정조)이 만든 시장이라는 팔달문 앞의 시장들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과거 사용하던 동전과 지폐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곳 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아들을 복서로 키운 어머니와 아들의 복싱글러브, 대장장이와 공구, 50년간 한복을 지은 수원주단 김갑선씨 등의 사진과 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에는 원으로 된 진열대에 상인들의 미니어처와 설명이 전시되어 있다.

 

정조대왕이 내탕금을 내주어 마련한 장시. 수원 팔달시장과 영동시장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유상박물관. 정조대왕이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를 지향해 직접내탕금을 내주어 마련한 왕이만든 시장. 그 시장에는 지금 어떤 사람들이 살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면 유상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그것에서 정조대왕이 꿈꾸던 세계시장의 중심을 느낄 수가 있다.


여주군에는 현재 5일장이 서는 곳이 세 곳이 있다. 여주읍의 하리 5일장과 가남면의 태평리 5일장이다. 또 한 곳은 대신면의 5일장인데, 대신면의 경우에는 5일장이라고 해도, 그 규모가 작아 전국 5일장에는 끼지를 못한다. 현재 가남면 농협 앞쪽으로 서는 5일장을 '태평리장', 혹은 '선비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선비장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지명 때문이다. 여주군 가서곡면에 속했던 마을인 섬비를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명동, 방아다리, 섬배, 신대동, 구장터를 병합하여, 큰 들이라는 뜻으로 태평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태평1리는 마구실, 방아다리라 부르고, 태평2, 4리는 섬배 또는 선비, 태평3리는 새터라고 불렀다. 이 태평2, 4리에 서는 장이라고 하여 '선비장', 혹은 태평리에 선다고 하여 '태평리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통칭 '가남장'이라고 부른다.

 

1일과 6일에 서는 가남장

 

▲ 가남장 그래도 한번도 장을 쉴 수는 없다. 가남장의 장꾼들은 대목 밑이라고 해도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5일장을 연다고 한다.

 

가남장은 매달 1일과 6일에 선다. 한 달에 6번을 서는 5일장은 1일과 6일, 11일과 16일, 그리고 21일과 26일이 장날이다. 평소 같으면 50명이 넘는 장꾼들이 모여서 길게 장을 이룬다. 하지만 2월 16일 찾아간 가남장은 썰렁하다. 대목 밑에 선 5일장이라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를 않았다. 여기저기 10여개 남짓한 난장이 섰을 뿐이다.

 

가남장에 모이는 장꾼들은 주로 경기도 일대에서 물건을 싣고 와,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 남양주, 양평, 이천, 성남 등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장을 이루고 있는데, 멀리 충북과 강원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5일장이라는 특수성이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모여서 장을 이루기 때문에, 전국 어디서나 모여들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5일장은 장꾼들이 모이지를 않아, 몇 개의 난전이 자리를 펴고 있을 뿐이다.

 

'가남장을 찾는 사람들은 다 선비 같아요'

 

▲ 김광열 가남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모임인 상우회 김광열회장은 부부가 함께 30년 넘게 가남장에서 화장품을 팔고 있다

 

가남장에선 지역의 특산품인 쌀이나 고구마, 땅콩 등보다 더 유명한 것이 바로 건어물전이다. 아무래도 멀리 가서 구해야하는 건어물이다 보니, 이렇게 찾아드는 5일장의 사람들이 고마울 수도 있겠다. 그래도 5일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 갖추고 있다. 장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이곳에서 가장 오래 장사를 하는 분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곳은 '상우회'라고 하여, 난전을 하는 상인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마침 대목 밑 장인데도 불구하고 상우회 김광열(남, 57세)회장이 화장품 난전을 펴고 있다. 남양주 금곡동에 거주하는 김광열 회장은 안성, 충주, 마석, 문산, 가남장을 돌면서 장사를 한단다. 이곳 가남장에서 장사를 한지가 벌써 3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김광열 회장은 5일장을 돌면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한 달 내내 쉬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분이 어떻게 화장품을 파느냐고 물으니, 곁에 서 있는 여자 분이 부인이라는 것이다. 부인 최명숙(52세)씨와 함께 5일장을 다니면서 장사를 한다는 것.

 

"힘들지는 않으세요?"

"힘들죠. 하지만 산다는 것이 어디 편할 것이 있나요. 그래도 이렇게 같이 장사를 하러다니니 저희들은 나은 편이죠"

"전에 비해 장사는 잘 되나요?"

"점점 힘들어요. 대형 할인점이 들어오면서 그쪽으로 손님들을 많이 빼앗기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부인 최명숙씨가 선비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선비 같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냐고 물으니, 5일장을 다녀보아도 이곳처럼 점잖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곳 장을 찾는 분들은 물건 값을 깎으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러니 시비가 붙지를 않죠. 딴 곳에 가면 덤을 달라고 아우성인데, 이곳 분들은 주는 대로 받아가요. 그래서 장사를 하는 분들이 항상 더 올려주고는 하죠. 그래서 선비장인가 봐요."

 

찾는 사람도 없이 썰렁한 장을 하루 종일 지킨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는 부부.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런 마음 때문에 5일장을 돌면서도 피곤을 이겨내는 것인지.   

        

봉사를 하는 5일장 사람들

 

▲ 기구 5일장에는 별별 것들이 다 있다. 그래서 5일장은 재미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전국에서 모이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난전상들이다. 어떻게 '상우회'라는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일까?

 

"저희가 이곳에 와서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는 것도, 다 물건을 사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번 장에 장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과 의논을 해서,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해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회원 50명이 넘는 상우회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단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모임이 아니고, 봉사를 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한다.

 

"일 년에 두 번씩 봉사를 하죠. 6월 30일과 12월 30일, 두 차례 쌀을 여섯 가마쯤 어려운 분들에게 전해드리죠. 주로 가남면 지역에 사시는 어려운 분들에게요."

 

그래서인가 이 5일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가 가족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물건 값을 흥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훈훈한 정이 있는 곳. 가남 5일장에는 마주만보아도 절로 웃음이 나는 부부가 있어 즐겁다. 5일장의 이야기가 즐거운 것도 이렇게 정이 넘치기 때문이다.(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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