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블로그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동반한다. 물론 그 동반함이라는 것이 수익과 관련이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의 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나 역시 티스토리를 운영하면서 믹샵이나 기타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가 티스토리에 글을 적고 다음 뷰에 송고를 한다고 해서, 나에게 얼마나 큰 득이 될지는 알 수 가 없다.

믹샵이 베타로 전환을 하면서 새로워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100명의 블로그를 선정했다고 한다. ‘베타테스트’란 말 그대로 베타로 전향을 한 후 이런저런 것을 테스트 하기 위한 블로거들을 말하는 것인가 보다. 그리고 믹샵의 위젯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달고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수익금을 지불한단다.

믹샵에서 보이는 많은 블로거들은 뷰에서 매일 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것에 혹해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속 보이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믹샵을 통해 더 많은 블로거들을 접할 수가 있었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뷰를 통해 글을 읽는 사람들과 믹샵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른 것은 아니다. 뷰를 통해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믹샵을 누르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믹샵이 나름대로 또 하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임은 틀림이 없다. 믹샵을 통해서 사람들이 블로그에 접속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직히 난 글을 쓰고 그것을 송고하는 것으로, 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요즈음은 블로그를 통해서 수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내용들이 보이지만, 그렇게 머리를 쓰면서 운영을 할 수 있는 실력이 모자란다.

열심히 활동을 하다가 보면 두 개의 글이 믹샵 베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가끔은 ‘이 나이에 나 정도만 해도 되지 멀 그래’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 젊은 블로거들을 따라갈 수 없음을 스스로 자탄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알아보려고 애를 쓰는 시간이면, 글 하나를 더 써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버릇없는 말 같지만 ‘조금 불리하면 ’나이 탓‘으로 돌려버린다. 그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믹샵은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이다. 가끔은 믹스업 베스트에 두 개의 글이 노출되기도 한다. 아마 믹샵에서 보아주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을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말하기나 듣기나 일단은 무조건 누르고 본다. 어차피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러다가 보면 차츰 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시작을 하였으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힘들게 활동을 하는 블로거들을 돕는 길이기도 할 테니까.

“왜 답사가 어렵다고 생각을 하세요?"
“어렵죠, 날도 안 좋은데. 가만히 앉아서도 글은 쓸 수 있잖아요?”
“저는 앉아서 쓰는 그런 글을 쓸 줄 몰라요”
“아니 한 때는 방송국에서 일도 하셨다면서요?”
“예, 그러기는 했죠. 그래서 더욱 더 방송에 대한 글은 쓸 수가 없어요.”

아는 분이 전화를 하셨다. 늘 블로그를 보고 있다는 분이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분은 나를 보고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남들처럼 약지 못하다고 퉁명스레 이야기를 한다. 남들처럼 약은 짓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홍성군 홍주성 안에 소재한 여하정

난 내 길을 가렵니다. 그냥 놓아두세요.

언젠가도 그랬다. 죽어라하고 발품을 팔고 적지 않은 경비를 들여서 글을 쓰면, 이건 만날 저 꽁다리에서 허우적거리기가 일쑤다. 하루 종일 방문객이라고 해보았자. 고작 100명 안팎이다. 슬그머니 열도 뻗치고 성질 급한 내가 참기도 어려워, 가끔은 불쾌한 이야기를 내뱉기도 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지 않은가?

배운 것이 무엇이라고, 내가 할 일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판단은 그것을 운영하는 분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한 사람이 들어와도 좋단 생각이다. 그저 꼼꼼히 글을 읽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조금만 이해를 더 해줄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여기저기 광고를 붙이는 것도, 다 부질없음을 알고 있다. 어차피 방문객도 저조한 블로그에 무슨 딱 부러진 수입이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원주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석장승. 눈이 쌓여도 답사는 계속된다.

푸념은 늘 즐겁답니다.

난 가끔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마 그것마저 하지 말라고 한다면, 열이 뻗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우리들은 우리의 문화재나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참으로 남의 것을 들여다보듯 한다. 그런데 비해 드라마나 연예인의 이야기에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가 보니 그런 기사를 메인에 띠우고. 그것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영업이다. 영업은 당사자들의 고유권한이다. 이러쿵저러쿵 침범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연예기사는 TV만 보고도 쓸 수 있잖아요?”
“아뇨. 그것도 무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머리도 아프고요”
“그래도 그런 것을 쓰셔야 득이 될 텐데요.?”
“그 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데요?”
“....”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눈길에서 죽을 뻔한 일도 수 십차례이다.

물론 그 득이란 수입을 말하는 것인 줄도 안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재를 답사하고, 그것을 잘 다듬어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책을 쓴 것이 20여권이 넘는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쓴 것은 단 한 권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우리 것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문화재란 우리의 정신적인 지주이기 때문에, 오늘도 그 줄을 놓지 않으려는 혼자만의 아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이 나이길 바란다.

이번 답사에도 비가 오네요!

답사를 하는 날이 다 좋을 수많은 없다. 어떤 날은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강행군을 해야만 한다. 때로는 태풍이 오는 날 답사를 나갔다가 길까지 잃은 적도 있다. 눈이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차 있어도 들어가야 한다. 때로는 길이 사라진 곳도 있다. 그래도 들어간다, 그것이 답사의 어려움이자 묘미이기도 하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로 들어가는 길. 한 겨울이라고 답사를 멈추면 무슨 글을 써야할까?

이번 답사에도 비를 만났다. 이 계절이면 늘 만나는 비다. 이젠 그 비도 반갑다. 함께 동행을 할 수가 있으니. 차라리 비가 내리는 날이 더운 날 몸에서 쉰내가 나는 것보다는 좋지 않을까? 그렇게 답사를 하고 정리를 해서 글을 쓴다는 즐거움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그런 행복이 있어 남들이 들려주질 않아도 답사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항상 갓 찌어낸 찐빵처럼 따끈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

송강 정철이 속미인곡을 집필했다는 담양 송강정

2년 전인가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락거리던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떠났다. 그리고 1년 6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재를 알리려면, 다음 뷰에 글을 송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티스토리 초대장을 받은 것이 올 4월인가 보다. 티스토리는 개설을 해놓고도 글도 쓰지 않고 송고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당시 책을 쓰는데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술 마시기에 급급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한 달이면 10여 차례나 현장답사를 하면서, 쌓여만 가는 문화재답사 자료들을 보면서 한숨만 내쉴 수는 없는 일. 친분이 있는 블로거 한 분의 종용이 가장 컸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라는.

한달 동안 60편의 글을 썼다. 매일 두편씩 쓴 것이다. 그리고 1,200개가 넘는 댓글을 달았다.
 
한 달간 송고한 포스팅이 60편

2010년 8월 2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쌓인 글이 60편. 하루에 두 편 씩을 송고를 한 셈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글을 쓰느냐고 한다. 현장 답사를 다니면서 쓰는 글은 앉아서 감상문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시간과 경비가 만만치 않게 깨진다. 하지만 문화재를 내 눈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느낌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힘이 들어도 현장을 나가 돌아다녀야 한다.

낮에는 근무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시간이 밤 밖에 나질 않는다. 점심시간을 잠시 이용해 전날 써 놓았던, 두 번째의 글을 올려놓고 부리나케 나가야 한다. 아니면 미리 예약송고를 해놓던지. 보통 두 편의 사진을 고르고 글을 쓰려면 두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놓고 이웃 블로거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하다가 보면 시간은 두 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렇게 보낸 한 달이다.

어느새 이렇게 순위가 매개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노력을 따라 온다.

먼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식 잘난 체는..’이란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바로 글을 그만 읽으셔야만 한다. 계속 그런 쪽으로 흘러 갈 수도 있으니. 처음 글을 송고하고 난 뒤 우연히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니 순위라는 것이 있다. 굳이 순위를 매겨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전체 9287위>란다. 두 편의 글을 송고하고 난 뒤니, 적어도 그 앞에 글을 쓰시는 분들이 그만큼은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싶다.

순위 매김에 마음을 쓰는 인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한 번씩 드려다는 본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400 등으로 올라 있다. 아마 현장을 다니면서 쓴 글이고 전통문화를 쓰는 분들이 많지 않아서, 다음 측에서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을 블로그에 매달려 살았다.

순수문화의 글을 쓰는 분들이 많지가 않아 오히려 득이 되었다.

난 한 달 동안 이렇게 치열한 싸움을 했다.

처음 글을 송고하면서 15편의 글을 쓸 때 까지만 해도 베스트에 걸리지가 않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15번 째 글이 열린 편집 베스트에 걸리더니, 그 뒤로 하루에 두 편의 글이 모두 베스트에 걸리기도 했다. 순수문화를 쓰는 블로거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글을 자주 쓰는 나로서는 그것이 득이 되었던 것만 같다. 하지만 추천이나 구독은 아주 미미한 정도이다. 하루에 고작 100 ~ 200명이 들려가는 곳일 뿐이다. 추천은 많아봐야 40 ~ 60 정도이니, 내가 찾아간 분들의 절반 정도뿐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찾아가는 노력을 한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나름 무수한 블로그를 방문을 했다. 그들이 오건, 오지 않건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물론 티스토리를 떠날 때 황금펜을 갖고 있었으니, 그도 다시 돌아와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찾아보지 않아도 그들이 찾아올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일 뿐이다. 지금도 난 아침이면 거의 100명에 가까운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추천을 하고 댓글을 단다. 그러면 내 글에도 추천이 100개는 기본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다녀도 고작 30% 정도만이 답방을 오는 정도이다.

티스토리와의 기나 긴 싸움이다. 아니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전쟁이라고 해야 옳다. 난 요즈음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컴퓨터의 기능조차 모른다. 그저 사진을 작업하고 그것을 글을 써 올리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물어물어 하면 된다. 우리 문화재를 한 사람이라도 더 볼 수가 있다면, 난 그것으로 다시 시작한 티스토리의 덕이라는 생각이다.

현장을 찾아다니는 답사글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도전해볼 만 하다. 다음측의 배려도 고맙다.

이렇게까지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에 재미를 붙였던 것도, 알고보면 매일 거르지 않고 들려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알음부터 지금 새롭게 알아가는 모든 분들의 힘이 되는 그런 글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의 공은 모든 그분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야 말로 문화재에 대한 글은 쓰지 않아도 나와 함께 우리 문화를 답사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진정한 전도사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처음으로 블로그를 접한 것은 2005년인가 보다. 그 전에는 플래닛이라는 것을 참으로 열심히 하였다. 그러다가 블로그를 하게 되고, 그 재미에 한참이나 빠져 있었다. 아마 블로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접하게 되고, 더 많은 지식을 얻기 때문이었나 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 아픈 일도 많았다. 그러나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를 답사하고 그것을 다음뷰에 송고를 하면서(그 때는 다음 뉴스였었던 것 같다) 쌓여가는 자료들을 보고, 그나마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2006년 3월에 19번 째로 황금펜촉을 달았다. 

블로그를 접고 난 후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에서는 황금펜촉이라는 것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지금도 베스트 블로거라는 황금펜촉이 있지만 당시의 황금펜촉은 남달랐다. 그만큼 황금펜촉 달기가 어려웠다는 생각이다. 2005년 12월부터 베스트 블로거인 황금펜촉을 단 블로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내가 2006년 3월 마지막 주에 달았으니 당시 베스트 블로거인
황금펜촉을 단 블로거로서는 19번째로 황금펜촉을 단 셈이다.

지금 보니 428명의 베스트 블로거들이 있으니, 내 뒤로 꼭 400명이 더 황금펜촉을 단 셈이다. 당시에는 베스트 블로거들의 글도 많이 올라왔지만. 오프라인에서의 블로거들도 상당히 친근하게 지내고는 했다. 물론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 무슨 일이 있으면 블로거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흔쾌히 함께 해주고는 했던 것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쨌든 그렇게 열심이던 블로그를 하루아침에 삭제를 해야 하는 사건이 생겼다. 주위에서는 삭제는 말고 중단만 하라고 권유를 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완전 삭제’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당시에도 다음블로그와 티스토리에서 모두 100대 블로거 중에 포함도 되었고, 블로거상 후보에 까지 오르기도 했으니, 삭제를 하면서도 그 아픈 마음을 누가 알고나 있었을까?

이제 두 번째 황금펜촉에 도전한다.

2008년 초에 블로그를 삭제를 하였으니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그때만 해도 50대라고 박박 우기고 살았는데, 이제는 환갑을 넘어버렸다. 만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블로그를 시작한다. 물론 블로그는 삭제를 시켰지만 아이디를 버린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도 엄연한 황금펜촉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그 황금펜촉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블로거들은 왜 그 아이디를 안 쓰느냐고 성화다.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시작하려고 한다. 늘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모처럼 돌아 온 블로그의 세계가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다양하던 다음뷰의 많은 글들이 한편으로 치우쳐버린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써오던, 그리고 앞으로 써가야 할 문화재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몇 사람이 읽어준다고 해도 좋다.

아직도 블로그를 운영하던 아이디는 황금펜촉을 달고 있다.

환갑이 지나서 다시 시작하는 블로그. 그리고 두 번째 도전하는 황금펜촉. 나에게는 이 두 가지만 있어도 즐겁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황금펜촉을 다는 날은, 코가 삐뚤어지게 막걸리를 마시겠다고 미리 작정도 해본다. 늘 도전하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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