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에 소재한 중요민속문화재 제142호인 김선조 가옥. 아마도 이 집을 돌아보면 옛 선인들의 집을 짓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전형적인 양반가의 구조를 갖춘 이 가옥은, 안채는 17세기에 안사랑채는 그보다 조금 늦은 17세기 말쯤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곳간채와 대문채는 20세기에 들어서 지었다고 한다.

김선조 가옥은 전국을 다니면서 만날 수 있는 고택 중 하나이다. 그저 평범한 집 같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뛰어난 건축기법이 보인다. 물론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이 될 때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이겠지만, 그냥 돌아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을 배경을 한 안채

김선조 가옥은 ‘배산(背山)’의 특징을 갖는다. 집 뒤에 있는 낮은 구릉은 여름철이면 녹음으로 뒤덮히고, 겨울이 되면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자연을 이용해 집을 지은 건축의 교과서 같은 집이다. 집 뒤편으로는 고목들이 서 있는 구릉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흡사 산속에 지은 집을 연상케 한다.

예전에는 안채 앞에 사랑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랑채가 없어지고 기단만 남아있다. 대문채에서 안채까지 휑하게 빈 공간은, 사랑채가 없어 외부공간이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허전함을 안채 뒤에 있는 녹음이 진 구릉이 막아주고 있다.



김선조 가옥의 안채는 ㄷ자형의 구성으로 건조되었다. 부엌, 안방, 대청, 윗방 등이 일렬로 배열이 되어있다. 안채의 앞쪽에만 마루를 놓은 것이 아니고, 뒤편에도 툇마루를 길게 늘였다. 이 뒷마루는 사람이 편히 앉아 구릉의 녹음을 바라다보기도 좋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된다. 멀리 돌지 않고 가까이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안사랑채가 되돌아 앉은 사연

김선조 가옥을 돌아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건물이 한 동 있다. 바로 안사랑채이다. 안사랑채는 부엌, 안방, 윗방, 대청을 일렬로 배열한 전형적인 별당 형식이다. 안채 앞에 있던 사랑채는 없어졌다는데, 이 안사랑채는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있다. 그런데 안사랑채의 전면이 아니고 돌아 앉아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안사랑채는 여자들의 공간이다. 사대부가의 집들은 사랑채에서 바깥주인이 기거를 하면서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로 이용을 한다. 그리고 안채는 대개 사랑채에서 담을 쌓고 그 안에 일각문을 두어 바깥주인이 출입을 한다. 그리고 그 안채 후원에 별당채가 두어, 집안의 과년한 딸들이 기거를 한다.


그런데 김선조 가옥에는 별당채가 없는 대신, 안사랑채를 대문 안에 마련을 했다. 그러다보면 외부인들이 집안을 들어섰을 때, 안사랑채를 사용하는 여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을 돌려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기거를 하는 방이면 괜히 눈길을 주게 된다. 그러한 외부인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방법인 듯하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집의 구조다.

문은 있는데 벽은 왜 없지?

이 안사랑채를 돌아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대문을 들어서 보이는 안사랑채의 끝에는 불을 떼는 아궁이가 있다. 그런데 이 아궁이는 부엌의 용도는 아니고, 불을 지피고 물을 데우게 되어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 아궁이가 있는 불을 떼는 곳에 안채의 방향으로는 담도 없는데, 마당 쪽으로는 문을 내달았다.



불을 때는 곳인데 구태여 문을 해 달아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벽도 없이 노출이 되어있는 곳인데 문을 단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집 주인의 세심한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바로 안사랑채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부녀자라는 점이다. 집의 안식구뿐만 아니라, 집에서 일을 하는 여자들까지도 가려주는 마음. 이 아궁이가 그런 것을 알려준다. 집안을 드나드는 외부의 남정네들이, 부녀자들을 함부로 볼 수 없도록 마음을 쓴 것이다. 김선조 가옥에는 숨어있는 비밀이 많아,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진다.

측간도 곳간채 한편에 숨어있어

안사랑채의 뒤편 건너편에는 곳간채가 있다. 곳간채는 ㅡ 자형으로 지어졌는데 모두 5칸으로 나뉘어졌다. 좌측 두 칸은 곡물을 쌓아두는 창고로 사용하고, 중간은 뒤주로 사용을 했다. 그런데 맨 우측의 한 칸은 문이 없다. 문이 어디로 갔을까? 창고를 돌아 뒤로 가보니. 세상에 여기 측간이 숨어 있다.



'처갓집과 측간은 멀수록 좋다'고 했던가. 그런데 멀리 둘 수가 없는 집안의 구조 때문에 측간을 광의 뒤편에 두었다. 집안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용변을 보는 사람들도 편했을 것이다. 측간은 안쪽으로 들어가게 내었다.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서 구성을 하였다. 고택에서 찾아보는 숨은 멋. 김선조 가옥은 그런 재미가 쏠쏠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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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은 음식을 만드는 곳이고, 부엌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은 집안의 주부가 된다. 부엌에는 ‘조왕신’이 좌정을 하고 있다는 곳이다. 조왕신은 ‘불의 신’이다. 이는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할 때, 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집안의 난방을 위해서도 불을 땐다. 그런 점으로 조왕신을 불의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먼저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방으로 간다. 이는 밖에서 혹시 나쁜 것이라도 따라왔으며, 모두 태운 후에 집안에 들어간다는 속설 때문이다. 이렇듯 조왕은 집안에 드는 모든 액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기에 부엌 안에서는 나름대로 조심하는 행동들이 있기도 하다.


부뚜막에 앉으면 경친다.

어릴 적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꽤나 좋아했다. 부엌에 들어가면 우선은 따듯한 점도 있겠으나, 딴 형제들보다 먹을 것을 먼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엌에 들어가면 부뚜막이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얼른 부뚜막에 올라가 앉는다. 그러다가 바로 경을 치기 일쑤다. “부뚜막에 올라앉으면 조왕할머니한테 경친다.”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 부엌에는 조왕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계시다는 것이다.

아마도 할아버지이기 보다는 할머니가 맞을 것 같다. 부엌에서 주로 생활을 하는 것이 집안의 여성들이고 보면, 할머니라야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조왕신이 좌정을 하고 있는 곳이, 부엌의 선반 위나 부뚜막이 되는 것이다. 하기에 부뚜막에 올라앉으면, 조왕신의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 민 것이나 경을 칠 수밖에.

부엌에 있는 조왕단지. 안에는 쌀을 넣어 놓는다.

다양한 형태의 조왕신의 신표

부엌에 모시는 조왕신의 신표는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대개는 조왕단지리고 해서 항아리를 부엌 한편에 두고, 그 안에 쌀을 넣어놓기도 한다. 이는 부엌은 집안에 음식을 장만하는 곳이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의 재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즉 먹을 것이 항상 넘치게 해 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또한 집안사람 중에 먼 길을 떠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밥그릇에 밥을 담아 부뚜막에 올려놓는다, 이는 항상 따듯하고 굶지 말라는 뜻이다. 부엌의 부뚜막은 따듯한 기운이 있기 때문에, 춥지 않게 해달라는 뜻이 담겨있다. 또한 밥그릇에 밥을 떠서 부뚜막에 놓는 이유도, 식은 밥을 먹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중부지방에서는 대개 그릇에 정화수를 한 그릇 떠서 부뚜막에 올려놓는다. 이 정화수는 매일 아침 주부가 제일먼저 갈아 놓는다. 이렇게 물을 놓는 이유는 정성이기도 하지만, 불을 이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화재를 막는다는 뜻도 포함이 되어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대나무 가지를 꺾어 병에 꽂아놓기도 한다. 대나무 잎은 늘 푸른 것이기 때문에, 항상 집안이 그렇게 변함없이 먹을 것이 넘쳐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듯 조왕은 우리네 실생활에서 불의 신이면서도 재액을 막아주고, 집안을 배부르게 하는 직능을 갖고 있다.

조왕신에게 치성을 드리기 위한 고사상
 
집안에서 가장 소탈한 조왕신

사실 집안에 있다는 많은 가신(家神) 중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조왕신이다. 물론 그 신을 섬기는 주제가 집안의 주부이기는 하지만, 가장 많이 드나들게 되는 곳이 바로 부엌이다. 비록 주부만이 아니고 집안 식구 역시 부엌만큼 자주 드나드는 곳은 많지가 않다. 물을 한 그릇 먹으려고 해도 부엌 안에 있는 물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아파트로 보더라도 물과 같은 것은 주방에 있는 냉장고를 이용한다. 그 주방이라는 곳이 바로 예전 우리 가옥의 부엌에 해당하는 곳이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조왕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소중한 곳이기도 하지만, 가장 출입이 빈번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조왕신은 그렇게 표시가 나게 섬기지를 않는다. 그저 정화수 한 그릇에도 만족해하기 때문이다. 섣달그믐에 그릇에 쌀을 담고, 그 앞에서 주부기 비손을 한다. 집안에 모든 식솔의 허기를 채워주고, 집안에 드는 나쁜 액을 막아달라고. 그렇기에 조왕신은 아무리 사는 곳의 형태가 달라졌다고 해도, 언제나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신격으로 남아있다.

요즈음 들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이는 고택만이 아니고, 각종 문화재나 먹거리, 심지어는 우리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는 길과 동, 식물 등 다양한 방면에서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이렇게 무궁한 소재를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아무래도 문화재라는 것은 약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산재해 있는 고택. 그것이 사적이던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던 간에, 그저 찾아가 보는 것보다는 이모저모를 따져보는 것이 한결 재미있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이냐를 먼저 생각하고 그 집의 특징을 살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집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한다.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소재한 경남유형문화재 제407호 오담 고택을 돌아보면서, 우리 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살펴본다.



함양 오담고택은 사랑채와 안채가 깉은 형태로 구성이 되어있다. 건축물을 볼 때 그 형태를 보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리고 주변의 대지(아래)를 살펴보면 과거 그 집의 가세를 판단 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종가에서 분가한 양반저택인 오담 고택

오담 정환필(1798~1859) 선생은 일두 정여창 선생의 12대손이다. 선생은 종가에서 분가해 와 정여창 선생의 고택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종두리에 기록된 상량문을 보면 사랑채는 1838년에, 안채는 1840년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었으며, 자연석을 3~4단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오담 고택은 종가에서 분리해 온 영남 양반집의 전형적인 주택으로, 조선 후기 주거건축의 양식과 가구기법을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담 고택은 최근 복원과 보수를 한 듯한데, 이런 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 고택이 좀 더 자세히 보인다.

1) 먼저 집의 전체적인 구조를 알아보자




집의 전체적은 구조란 와가인지 초가인지를 본다. 이런 형태야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와가에도 팔작지붕, 맞배지붕, 합각지붕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위 오담 고택은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을 벽에 달아낸 형태로 자칫 팔작지붕으로 볼 수도 있다. 초가의 경우에도 그 이엉을 얶어 용마름을 앉는 방법이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는 그 집의 툇마루나 대청, 방의 꾸밈과 기단, 기둥 등을 자세히 살펴본다. 기단은 장대석을 사용했는지, 아니면 일반 부정형의 돌을 사용했는지를 본다. 기둥은 배흘림기둥인지, 팔각이나 사각,혹은 원형기둥인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집의 구성고 알아보아야 한다. 대개 고택에는 수 많은 집이 있다. 사랑채를 비롯해 안채, 행랑채, 대문채, 아래채, 광채, 별당채 등 그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2) 집의 뒤편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고택에는 많은 문들이 있다. 대문을 비롯해 중문, 협문, 쪽문 등 큰 집의 경우에는 집 안에 문에 10여 개가 되는 수도 있다. 하기에 그 문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느 용도로 사용이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중문의 경우에는 바깥 중문과 안 중문이 있고, 때로는 담에 쪽문을 내어 사용하기도 한다. 하기에 그 문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 쓰임새를 알아보아야 한다.


오담 고택에는 문이 그리 많지는 않다. 최근에 보수를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랑에서 안채로 통하는 협문은 나무로 꾸몄다. 대문의 경우에는 소슬대문 옆에 쪽문을 달아낸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은 대개 대문을 열지 않고, 집안의 식솔들이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 고택은 문 하나라도 그냥 내는 것이 아니다. 문을 낼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거기에 따른 내적 사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집 뒤편을 돌아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개는 정면을 많이 보는데, 집 뒤편에는 굴뚝을 비롯해 벽의 형태, 배수로 등 볼 것이 많다. 또한 굴뚝은 어떤 형태로 만들어 졌는지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3) 볼품 없는 작은 것 하나도 글이 된다.





고택을 둘러보면 가재도구가 있다. 실생활에 사용했을 이런 것들은 고택을 둘러보면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툇돌은 어떻게 놓았는지, 마르 밑의 공간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보아야 한다. 부엌은 창문을 어떻게 내었으며, 환기를 돕는 까치구멍은 어떤 형태인지도 살펴보자. 그리고 시렁은 어디에 놓았는지, 시렁 위에는 무엇을 올려 놓았는지도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널려있는 많은 가구들과 문짝의 형태, 또는 난간은 어떻게 꾸며졌는지도 보아야 하다. 그런 것을 하나하나 찾아보다가 보면, 집집마다 나름대로 특징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4) 제대로 꾸민 집인지를 알아보자



오담 고택을 돌아보면서도 그렇지만 복원을 하면서 정확하게 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복원이란 말 그대로 예전에 형태를 원형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복원이 되었다는 집을 찾아가 보면, 황당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오담 고택의 경우에 사랑채와 안채 중간 한편에 장독대를 마련하였다. 시멘트로 바른 것은 그렇다치고 장독대에 담장을 둘러 놓았다. 보기가 좋은 수도 있지만, 문화재란 항상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담장을 둘러 놓은 것도 보기가 껄끄러운데, 사랑채 뒷방을 보면 앞쪽 방보다 방바닥이 낮게 되어있다. 그리고 방의 층 간격이 넓어 오르내리기도 버겁게 보인다. 원래 이런 형태였는가를 알아보니, 복원을 하면서 형태가 달라졌다고 한다. 고택 답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렇게 원형이 변형이 되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돌아보면서, 그 소중함을 먼저 깨우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이런 문화재 답사는 단지 사진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고를 알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쉽지 만은 않은 문화재 답사. 앞으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답사를 하시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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