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입구, 혹은 사찰 입구에 보면 부릅뜬 눈에 왕방을 코, 그리고 삐져나온 날카로운 이빨. 어째 썩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있다. 흔히 장승이라 부르는 이 신표는 지역에 따라 그 이름도 다르다. 장승, 장성, 장신, 벅수, 벅시, 돌하루방. 수살이, 수살목, 수살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이다. 대개는 마을 입구에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지만, 사찰이나 지역 간의 경계표시나 이정표의 구실도 한다. 장승은 대개 길 양편에 나누어 세우고 있으며, 남녀 1쌍을 세우거나 4방위나  5방위, 또는 경계 표시마다 11곳이나 12곳에도 세우기도 한다. 마을 입구에 선 장승은 동제의 주신으로 섬기는 대상이 된다.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장승. 깎을때마다 세워놓아 집단의 장승군으로 변했다. 솟대와 함께 서있다. 2010, 3, 20 답사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장승의 모습

장승은 나무나 돌로 만들어 세운다. 나무를 깎아 세우면 ‘목장승’이라 하고, 돌을 다듬어 세우면 ‘석장승’이라 한다. 장승만 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솟대, 돌무더기, 서낭당, 신목, 선돌등과 함께 동제의 복합적인 형태로 표현이 되기도 한다.

장승의 기원에 대한 정설은 아직 정확하지가 않다. 대개는 고대의 ‘남근숭배설(男根崇拜說)’과 사찰이나 토지의 ‘경계표지’ 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일설에는 솟대나 선돌, 서낭당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도 전해진다.

좌측은 충남 공주시 상신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목장승(2007, 1, 25 답사) 우측은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무갑리 목장승(2008, 12, 5 답사)

좌측은 전북 남원 실상사 입구에 서 있는 석장승(2010, 11, 27 답사) 우측은 전남 여수 영등동 벅수(2007, 12, 6 답사)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에 기록이 보여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보물 제157호인 장흥 보림사의 <보조선사탑비>에, 장승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 탑비의 내용에는 759년에 ‘장생표주(長生標柱)’가 처음으로 세워졌다고 했다. 그 외에 <용재총화>나 <해동가요> 등에도 장승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이로 보아 통일신라나 고려 때는 이미 장승이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경계표시로 삼았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장승은 성문, 병영, 해창(海倉), 관로 등에 세운 공공장승이나, 마을입구에 세운 수호장승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하면서 민속신앙의 대상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현재까지도 마을에서는 장승을 신표의 대상물로 삼고 있는 곳이 상당수가 있으며, 옛 지명 중에 ‘장승백이’ 등은 모두 장승이 서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경기도 광주 엄미리 장승은 마을의 입구에 서서 수호장승의 역할을 하지만, 밑 부분에는 거리를 알리는 로표장승의 역할도 한다. 2011, 1, 3 답사 

함양 벽송사 목장승. 목장승이 오래되어 훼손이 되었다. 보호각을 지어 보호를 하고 있다. 2010, 12, 11 답사 

장승은 설화나 속담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럴 정도로 우리와는 친숙하다는 것이다. 장승을 잡아다가 치죄를 하여 도둑을 잡았다거나. 판소리 변강쇠타령 등에 보이는 장승에 대한 이야기는, 장승이 민초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척 장승같다’거나 ‘벅수같이 서 있다’ 등은 모두 장승의 형태를 빗대어 하는 속담 등이다.

해학적인 생김새는 민초들의 삶의 모습

마을 입구의 양편에 서서 마을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서 있는 장승. 처음 장승이 대하는 사람들은 ‘무섭다’고도 표현을 하고, ‘흉측하다’고도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 장승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서 있으면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장승은 점점 마을 사람들을 닮아간다.

선암사 입구에 세워진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경계표시 장승. 2011, 3, 5 답사

사람들은 목장승을 1년에 한 번, 혹은 3년에 한번 씩 깎아 마을입구에 세우면서, 자신들의 심성과 닮은 모습을 만든다. 석장승 또한 돌을 다듬는 장인의 마음을 닮는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장승이 무섭기도 하지만, 해학적인 요소를 많이 띠고 있는 것은 민초들의 삶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권력이나 물질을 가진 자들에게 보여주는 험상궂은 얼굴 뒤에, 같은 민초들에게는 한 없이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이란 생각이다.

오랫동안 민간신앙의 대상물로 남아있는 장승. 아마도 사람들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은, 언제나 우리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함께 해 왔듯이.

벽송사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59번지에 소재한 고찰이다. 벽송사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절이다. 벽송사가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달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벽송사를 오르는 길은 그리 평탄치가 않다. 마침 이 해들어 가장 춥다는 날에 길을 잡았으니.

전날 저녁 남원으로 내려가 12월 11일(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요즈음은 일찍 길을 나서지 않으면,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고 해도 몇군데 못 들리기 때문이다. 한때는 빨찌산의 야전병원으로도 이용이 되었다는, 벽송사를 들어가는 입구는 계곡이 아름답다. 내년 여름에는 꼭 한번 들려보고 싶은 곳이다. 가파른 길을 헉헉대고 올라 벽송사에 당도했다.


지금은 옛 영화는 볼 수 없어

벽송사는 조선조 중종 때인 1520년, 벽송 지엄 선사에 의해 창건이 되었다고 전한다. 벽송사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공부를 한 절로도 유명하다.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는 벽송사에서는, 109분의 대 종장을 배출했다고 한다. 벽송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전하고 있는데, 신라 때의 양식을 계승한 보물 제474호인 3층 석탑과, 경남 유형문화재인 벽송선사진영. 경암집 책판. 묘법연화경 책판과, 경남 민속자료 제2호인 목장승 등이 있다.

벽송사가 어느 정도로 많은 선사들이 이곳에서 도를 이루었는지, ‘벽송사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는 것이다. 벽송사는 조선조 숙종 30년인 1704년에는 환성 지안대사가 벽송사에 주석하며 도량을 크게 중수하였는데, 이 때에 불당, 법당, 선당, 강당, 요사 등 30여동의 전각이 즐비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상주하는 스님이 300여명에 이르렀고, 부속 암자는 10여개가 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의 벽송사는 참으로 한적하다. 그러나 오랜 동안 전해진 전통은 그리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벽송사 경내를 들어가면서 느낀 것은 알 수 없는 기운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옛날 법이 높은 선승들의 기운인가 보다.

삼층석탑과 두 그루의 소나무

벽송사라는 절의 명칭은 벽송스님에 의헤 창건이 되었기 때무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벽송사를 답사하고 난 뒤 느낀 점은, 이곳의 소나무를 보고난 뒤 지엄스님이 호를 벽송이라고 지은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만큼 벽송사 주변에는 노송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현 벽송사의 맨 위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 보물 제474호인 이 삼층석탑은 신라 때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조성시기는 벽송사가 창건한, 조선조 초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으로 보면 이 삼층석탑은 당시에 조성된 석탑으로서는 단연 백미라고 볼 수 있다.

2단으로 구성된 기단은 아래층 가운데돌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얕게 조각하였다. 몸돌에는 층마다 우주와 탱주를 새겼으며, 지붕돌은 날렵하게 위로 솟아, 금방이라도 청왕봉의 정상을 행해 줄달음을 칠 듯하다. 지리산의 천왕봉이 지척에 보이는 곳에 벽송사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탑의 맨 위에는 머리장식으로 조성한 노반(머리장식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있다. 석탑의 일부분이 조금 훼손되기는 하였지만, 그런대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탑이다.

미인송과 도인송

탑을 돌아보다가 보면, 근처에 년륜이 들어보이는 소나무들이 있다. 그 중 미인송과 도인송이 있다는 것이다. 미인송은 나무가 굽어 받침대로 받쳐놓았고, 도인송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뻗어 있다. 그냥 보아도 범상치가 않다. 그 중 도인송은 밑 둘레가 2m가 넘을 듯하며, 줄기의 길이가 20m는 족히 될만하다. 줄기에는 가지 하나없이 곧바로 위로 올라간 나무 끝에, 마치 버섯처럼 잎이 달려있다.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미인송에 기원을 하면 그 사람은 미인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 말이 맞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벽송사 경내를 한 바퀴 돈 후에는 그 말도 믿고싶다. 그만큼 벽송사는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