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영 시장 전통시장에서 시민과 만나다

 

22일 오후 4시부터 시작한 지동교의 문화공연과 아트포라 체험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무대에서는 한창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 도중에 갑자기 사회자가 염태영 시장님께서 이곳에 오셨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한다. 잠시 후 염태영 시장이 무대에 올랐다.

 

여러분이 선택해 준 염태영입니다. 저는 4년간 여러분을 위해 또 맛있는 밥상을 준비하겠습니다. 전통시장은 우리 경제의 근간입니다. 전통시장에 활성화 되어야 우리 수원의 경제가 튼튼해집니다. 저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전통시장을 찾아 올 것입니다. 시장에서 만날 때마다 우리 수원을 위해서 좋은 의견들을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인사를 마친 후 구경꾼들과 체험장을 돌면서 일일이 이곳을 찾은 시민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오늘 시장님께서 이렇게 깜짝 방문을 해주시다니 놀랐습니다. 4년 동안 또 우리 수원을 위해 어떤 많은 일을 해주실지 기대가 큽니다. 민선 6기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 수원이 전국 최고의 도시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라고 한 시민은 기대다 크다고 이야기를 한다.

 

 

구천공 공구상가의 날

 

그동안 세월호로 인해 미쳐 펼쳐지지 않았던 전통시장 문화공연 한마당이 모처럼 토요일과 일요일 연이어서 지동교 무대에 올랐다. 특히 22일의 무대는 지난해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문화공연 무대에 동참하지 못했던 구천동 공구상가시장이, 무대를 준비해 의미를 더한 날이었다.

 

이날 공연은 청소년 문화센터의 외발 자전거 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이날 무대 앞에서 갖은 묘기를 보여 준 가온누리 외발자전거 팀은 73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에 참가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고 하며 많은 박수를 받기도. 나이가 어린 학생들인데도 불구하고 외발자전거를 타면서 줄넘기를 하는 등 범상치 않은 재주를 선보였다.

 

 

축제는 흥이다

 

축제는 역시 흥이다. 흥겹지 않으면 축제가 될 수가 없다. 매주 이곳 무대에 선을 보이고 있는 비보이 그룹 몬스터는 자신들만이 독특한 캐릭터를 이용해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날은 특히 소리와 춤으로 전국을 돌면서 많은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는 소종예술단이 무대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특히 화성 남수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설장고의 멋들어진 모습은 관람객들의 박수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관람객 한 사람은 전통시장이 달라졌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동교의 문화공연은 날마다 그 모습을 달라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수준 높은 공연을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이제 지동교에서 매주 열리는 이 문화공연으로 인해 앞으로 전통시장이 어떻게 변화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롤모델이 될 것입니다.”

 

 

전통시장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

 

한참 구경을 하고 있는데 행사 관계자 한 사람이 볼멘소리를 한다. 이유를 듣고 보니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수원시장의 인사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에 역행하는 발언을 해당 구청직원이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저희는 세월호로 인해 침체되어있던 전통시장에 활력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지난주부터 이 체험행사와 문화공연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토요일만 하기도 되어 있었지만 힘들어도 일요일까지 연이어서 행사를 추진하면서 사람들이 점차 전통시장으로 찾아들고 있는데, 이달 말 부터는 격주에 한번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날짜를 일일이 기억을 했다가 이곳을 찾아오겠어요. 전통시장을 죽이자는 것인지 살리자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네요.”

 

우산에 그림을 그리는 체험을 하러 왔다는 한 어린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뒤늦게 왔다가 재료가 떨어지는 바람에 다음 주에 꼭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약속을 받고 돌아섰다. 그렇게 체험의 경우 사전 약속을 하고 그 다음에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격주로 한다면 누가 공연과 체험행사가 열리는 토요일을 기억하겠냐는 것. 날 더운데 고생을 하는 관계자들을 격려는 하지 못할망정, 찬물이나 끼얹고 다니는 관계자,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지 궁금하다.

어제 늦게까지 마신 술로 인해 아침에 갈증이 난다. 새벽녘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창을 열어보니 친구 녀석 하나가 문 밖에 서 있다. 외국에 나가 사는 녀석인데 뻔질나게 들어온다. 말이야 사업차라지만, 이 새벽에 서울도 아니고 예까지 웬일인가 싶다. 들어오자마자 이 녀석 밥 타령이다.

 

배고프다 밥 좀 다오

해장국이라도 사먹지 그랬냐.”

난 조미료 친 음식은 못 먹는 것 알잖아.”

그래도 그렇지 여기가 무슨 식당이냐.”

 

친구녀석이 딱 8,000원짜리 밥상이라고 우긴 상차림이다. 밥은 현미밥이다.

 

정말 말이야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했지만, 적을 글이야 그럴 수 없으니 말이다. 암튼 이 친구 녀석은 한국만 나오면 우리 집에 와서 밥을 차려달란다. 딴 곳에서 한 그릇 먹던지, 아님 제 동생들도 서울에 살고 있는데 새벽이고 밤이고 우리 집으로 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동생네 집보다 우리 집이 밥 달라고 하기가 편하다고 너스레를 떠는 데야 어쩔 수 없지만.

 

어찌하랴 얼른 차려 먹어야지

 

참 이 정도면 이 녀석 친구가 아니고 상전이다. 어쩌다가 이 나이에 상전 한 분 모셔야 하는지 어이가 없다. 아마 매일 이렇게 찾아온다고 하면 벌써 어디론가 잠적을 했을 것만 같다. 이 친구 녀석은 참 당당도 하다. 밥을 달라고 하는 주제에 주문은 어지간히 해 댄다.

 

야 된장국 좀 시원하게 끓여봐라. 너희 집 된장 맛있잖아.”

됐다. 넌 여기가 무슨 식당인줄 아냐. 아니면 돈을 내던지

돈이야 달라면 주지, 그럼 8,000원짜리 밥상으로 차려라

 

냉이된장국. 조미료를 친 음식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녀석때문에 된장으로만 끓인다. 물론 청영고추, 마늘, 파 등등은 다 들어갔지만. 

 

이 정도면 이 녀석하고는 더 이상 말을 섞으면 나만 손해다. 어떻게 예전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녀석인데 이렇게 뻔뻔해졌는지. 요즈음은 말하는 투가 여간이 아니다.

 

마침 냉장고에 사다 놓은 냉이가 있어, 냉이국을 끓여주었다. 반찬이야 나 혼자 먹을 땐 3~4가지면 족하지만 그래도 친구 녀석을 먹여야 하니, 이것저것 한상 차려주었다. 현미밥에 냉이된장국. 거기다가 푸짐한 반찬. 이 정도면 식당에서 먹어도 8,000원짜리는 될 것만 같다.

 

밥 먹기가 무섭게 떠나버린 친구 녀석

 

참 블로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친구 녀석 밥상을 차리면서도 그것을 찍고 있다니. 왜 블로그를 하면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 것인지.

 

야 네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밥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냐. 이제 그 블로그인지 말라비틀어진 수수깡인지 그만 좀 해라. 밥을 하면서도 사진을 찍어대니 참 못말릴 병이다. 넌 아주 중병에 걸린 거야.”

 

그 녀석 참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탈도 많다. 하긴 그렇다. 이 블로그란 것이 참 묘하기는 하다. 밥이나 차려 먹이면 될 것을 일일이 사진을 찍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배고프다고 졸라대는 친구 녀석을 위해 상을 차려놓고, 잠시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참 어이가 없다.

 

녀석은 외국에 살면서도 참 시골스럽다. 된장에 넣었던 깻잎, 고추, 민들레 뿌리 김치, 오징어채 무침 이런것들을 유난히 좋아한다. 친구이긴 하지만 식성까지 나와 흡사하다.

 

30분 정도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집에 들어오니 친구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산책이라도 나갔나보다고 밥상을 치우고 앉아있는데 전화가 온다.

 

! 친구야 나 서울 가고 있다. 내일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이젠 가을에나 나올란다. 나오면 또 들릴게. 밥 잘 먹고 간다.”

 

참 어이가 없다. 밥 한 그릇을 먹자고 그 새벽에 서울에서 내려오다니. 하기야 꼭 밥을 먹으러만 왔을 리는 없다. 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사는 녀석이라,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려고 온 것이지를 다 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늘 고맙다. 그냥 한국에 나왔다가 모르는 체 들어가도 되는데 말이다. 나이가 먹어 가면 친구가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나저나 오늘도 밥 값 또 뜯겼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물론 사람이 살면서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걱정을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인사는 늘 그렇다. ‘밥은 먹고 사냐?’ 라는 질문이다. 물론 밥을 굶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질문 속에는 혼자 생활을 하면서 혹 귀찮다고 제 때 끼니를 때우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날마다 취재한다고 밖으로 싸돌아다니고, 저녁이 되면 거의 술자리에 있는 나를 보고 걱정스러워 하는 말일 것이다. 혹은 저것이 밤에 술을 먹고 아침에 귀찮다고 혹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질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리 정말 듣기 좋은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항상 “왜 그러고 혼자 사냐?” 라는 속내가 있기 때문이다.

 

12월 23일(일) 아침 상

 

걱정마라 아침은 세상없어도 해 먹는다

 

여기저기 기사를 쓰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보면, 아침 이외에는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인가 아침은 세상없어도 꼭 챙겨먹는 버릇이 생겼다. 천성이 그래서인가는 모르지만, 밥을 먹을 때 반찬을 통째로 내 먹기가 죽기보다 싫다. 그런 것 하나가 내가 괜히 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 TV 등에서 방영을 하는 것을 보면,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찬을 그릇째 먹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화면을 볼 때마다, ‘나는 저렇게는 살지 말자.’고 늘 생각을 한다. 물론 아직은 남들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찾아오지는 못하고 멀리서 걱정만 수 없이 하는 지인들. 그들에게 나 잘 살고 있으니 걱정을 하지 말라고 전해고 싶은 마음이다.

 

나, 이렇게 먹고 산다.

 

예전에는 밥을 먹을 때 부친께서 국이 없으면 꼭 물이라도 한 그릇 곁에 두어야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도 나이가 먹어가면서 ‘국’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나도 늙어 가는가 보다. 성격이 까다로워서인지 찬은 꼭 용기에 덜어서 차려 먹는다.

 

지난 일요일부터 왜 아침 밥상을 찍고 싶었을까? 아마도 지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전날 아무리 술에 떡이 돼서 들어와도, 아침은 일찍 일어나 꼭 챙겨먹는다. ‘밥심‘이라는 말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나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25일)까지 3일간 내가 챙겨먹은 아침밥상은 이렇다.

 

 

일요일 아침밥상(12월 23일)

 

밥이야 아침마다 해 먹는 것이니 늘 따듯한 밥을 먹는다. 항상 하는 말이 얼마나 더 먹겠다고 식은 밥을 먹느냐고 반문을 하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에 국은 미역국을 끓이고 찬은 항상 4~5가지 정도를 차린다. 이날 찬은 김, 오징어 채 무침, 된장에 넣었던 깻잎, 그리고 파김치였다.

 

 

월요일 아침밥상(12월 24일)

 

전날 과하게 마셨더니 입이 칼칼하다. 이런 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묵은지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다. 이상하게 묵은지 찌개를 먹으면 속이 확 풀리는 듯하다. 참 식성마저 남다른 것인지. 월요일 아침에 반찬은 김(워낙 좋아하는 고로)과 연근뿌리, 장조림, 그리고 꼴뚜기젖으로 아침을.

 

 

화요일 아침밥상(12월 25일)

 

밤이 새도록 책 교정을 보느라 새벽 4시가 넘어서 눈을 부쳤다. 6시 정도에 눈을 떴으나 머리가 조금 무겁다. 몸살 기운도 있는 것 같아, 북어국을 끓였다. 먹을 때 고춧가루를 치면 몸살기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찬은 고추장아치와 조개젖, 김치와 계란부침이다. 가급적 반찬은 매일 다르게 먹는 편이다.

 

그래도 이렇게 냉장고 한 가득 반찬은 많은 이유는 주변의 덕이다. 살다가 보니 아직 인심은 크게 잃지 않았는지, 여기저기서 걱정들을 하고 찬이라도 한 통씩 갖다가 주신다. 아마도 주변에 그런 좋은 이웃이 있어 꽤나 버티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에게 밥은 먹고 사냐?는 질문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보다 잘 먹고 살고 있으니. 그러고보니 우리 집 냉장고에 반찬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난 아무래도 맛집 블로거는 못할 듯싶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카메라부터 들이밀고, 다음에 먹으면서도 연신 찍어대야 하는데 우린 죽어도 그 짓은 못한다. 내가 일부러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들과 밥상머리에 앉아 카메라를 들이민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길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그 중 한 분이 점심대접을 하겠다고 해서 찾아간 곳. 화성시 향남읍 하길리 569-5번지에 소재한 ‘뽕나무 골’이란 식당이다. 식당 주차장에는 이미 만차가 되어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좁지 않은 식당 안에 무슨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아마도 인근 뿐 아니라 먼 곳에서도 찾아온 듯하다.


아이폰에 역광까지. 사진은 엉망입니다.

누에
박물관이 있는 '뽕나무 골' 식당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벽에 곤충들이 가득하다. 옆으로 보니 이상한 것들이 즐비하게 전시가 되어있다. 자세히 보니 ‘누에박물관’이란다. 예전 베틀이며 여러 가지 누에를 치는 기구들이 전시가 되어있다. 이왕 왔으니 이런 것도 찍어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카메라가 없다. 단 분 차를 이용했으니 당연히 카메라는 차에 두고 올 수 밖에.

이래서 난 파워블로거가 못 되는 것인가 보다. 블로그의 필수품이 카메라라고 하는데, 점심 한 그릇에 정신을 빼앗겨, 카메라를 두고 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이폰이 있으니 우선은 그것으로 대처를 하는 수밖에.




점심에 받은 뽕정식. 황제가 따로 없네.

뽕정식이라고 하는 상차림을 시켰다. 소갈비찜이 나오면 1인분에 2만 5천원이고, 돼지갈비찜이면 2만원이란다. 싼 가격은 아니다.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오는 반찬들을 보니 26가지나 된다.

이럴 때는 정말 나 스스로를 책한다. 바보처럼 카메라를 두고 오다니. 이것만 해도 글 두 개는 쓸수 있는데 말이다. 밥상과 박물관을 찍었으면, 하루 글 쓸 소재는 충분한데 말이다. 그래도 한 두 어장 찍으려는데, 식당 안에 밥을 먹으로 온 사람들이 연신 쳐다본다. 잠시 고민을 해댄다. 그래도 막 찍어버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배짱이 없다.





더구나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시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나저나 이 먼 곳을 다시 오기도 그렇고, 참으로 난감하다. 할 수 없이 아이폰을 꺼내 몇 장만 찍는다. 찍으면서도 연신 부담스럽다. 거 참, 내가 맛집 블로거도 아닌데, 왜 꼭 이래야 하는 것이지.

어쨌든지 밥상을 받고 보니 황제도 부럽지 않다. 화학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만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대접을 받는 자리이니 그 맛을 음미를 해가면서 천천히 먹을 수도 없는 일. 그저 앞에 놓인 반찬만 뒤척이고 있었다니.



먼저 자리를 일어나 박물관으로 가 일일이 찍어댄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이람. 아이폰에 밧데리가 10%가 남았다고 한다. 더 이상 찍었다가는 통화도 못할 지경이다. 이쯤해서 사진찍기를 그만해야 하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밥상도 그렇고 박물관도 그렇고. 다음에 이 방면으로 지나갈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들려보아야겠다. 황제 노릇 한번 하려고.

주소 : 화성시 향남읍 하길리 569-5
전화 : (031) 353-6220(예약) / 353-6223

짚은 우리민족의 삶속에서 땔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예전에는 행랑채에 묵는 행랑아범이나 하인들이 밤에 등불을 밝히고, 손을 마주 비벼가면서 새끼를 꼬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새끼를 꼬는 도구를 이용하게 되었고, 1960년대에는 새끼를 꼬는 두발기계까지 나와 농촌의 일손을 거들어 주고는 했다.

이런 짚을 이용한 공예는 이 시대에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짚공예’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를 ‘짚두레마을’ 마을이라고 부른다. ‘두레’란 공동작업으로 하는 품앗이를 말하는 것으로, 짚공예를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는 뜻이다.

가마니짜기를 할 때는 틀 앞에 앉은 분이 왼손에 짚을 들고 있다

흥부제에서 만난 짚두레마을 어르신들

10월 8일과 9일 양일간 남원에서는 흥부제가 열렸다. 이 흥부제에 산동면 부절리의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짚공예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짚을 이용해 가마를 짜는 시연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신기한 듯 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가마니 짜기도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다.

어르신들이 가마니를 짤 때는 한 분은 한 손에 짚을 들고, 가로대를 연신 남은 한 손으로 아래로 쳐서 단단하게 만든다. 또 한 분은 대나무 끝이 갈고리처럼 생긴 것을 줄 사이로 집어넣어 가마를 짜는 분의 손에 있는 짚을 걸어 당긴다. 두 사람이 일심동체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제대로 짜이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에 앉은 분은 대나무 끝이 휘어진 것을 이용해 가마니 틀의 줄 사이로 밀어넣어 상대편의 손에 있는 짚을 잡아당긴다.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해야만 하는 가마니 짜기. 그것을 보면서 세상 모든 일은 그렇게 상부상조해야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얻는다.


다양한 제품과 화려한 수상내역이 돋보여

짚두레마을에서 생산하는 짚공예품은 50여 가지가 훨씬 웃돈다. 짐승을 형상화한 꿩, 소, 악어, 돼지로부터 동구미, 모자, 소신, 또아리, 벽서리, 두지, 꽃병, 짚신, 야경막, 짚방석, 홀치기망태, 소멍, 맷방석, 삼태기 등 다양한 제품들을 짚으로 만든다. 그런가 하면 한지로 만든 꽃병과 핸드백, 먹통구리, 사모와 짚으로 만든 밥상, 심지어는 솥까지 있다.

그동안 수상내역을 보면 짚두레마을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름을 떨쳤는지 알 수가 있다. 대상 2회, 전국 1위 한차례와 최우수상 8회, 금, 은, 동상 각 4회, 우수상 12회 등 70회에 가까운 수상내역을 자랑한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작업을 도맡아하는 산동면 부절리. 마을에서는 이런 어르신들의 솜씨를 이어간다고 하니, 다음 세대에도 이 아름다운 공예는 맥을 이을 수 잇을 것이다.






짚두레마을에서 만든 다양한 모습의 짚공예품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