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상차림이냐고요? 아닙니다.”
어제 늦게까지 마신 술로 인해 아침에 갈증이 난다. 새벽녘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창을 열어보니 친구 녀석 하나가 문 밖에 서 있다. 외국에 나가 사는 녀석인데 뻔질나게 들어온다. 말이야 사업차라지만, 이 새벽에 서울도 아니고 예까지 웬일인가 싶다. 들어오자마자 이 녀석 밥 타령이다.
“배고프다 밥 좀 다오”
“해장국이라도 사먹지 그랬냐.”
“난 조미료 친 음식은 못 먹는 것 알잖아.”
“그래도 그렇지 여기가 무슨 식당이냐.”
정말 말이야 육두문자를 섞어가면서 했지만, 적을 글이야 그럴 수 없으니 말이다. 암튼 이 친구 녀석은 한국만 나오면 우리 집에 와서 밥을 차려달란다. 딴 곳에서 한 그릇 먹던지, 아님 제 동생들도 서울에 살고 있는데 새벽이고 밤이고 우리 집으로 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동생네 집보다 우리 집이 밥 달라고 하기가 편하다고 너스레를 떠는 데야 어쩔 수 없지만.
어찌하랴 얼른 차려 먹어야지
참 이 정도면 이 녀석 친구가 아니고 상전이다. 어쩌다가 이 나이에 상전 한 분 모셔야 하는지 어이가 없다. 아마 매일 이렇게 찾아온다고 하면 벌써 어디론가 잠적을 했을 것만 같다. 이 친구 녀석은 참 당당도 하다. 밥을 달라고 하는 주제에 주문은 어지간히 해 댄다.
“야 된장국 좀 시원하게 끓여봐라. 너희 집 된장 맛있잖아.”
“됐다. 넌 여기가 무슨 식당인줄 아냐. 아니면 돈을 내던지”
“돈이야 달라면 주지, 그럼 8,000원짜리 밥상으로 차려라”
냉이된장국. 조미료를 친 음식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녀석때문에 된장으로만 끓인다. 물론 청영고추, 마늘, 파 등등은 다 들어갔지만.
이 정도면 이 녀석하고는 더 이상 말을 섞으면 나만 손해다. 어떻게 예전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녀석인데 이렇게 뻔뻔해졌는지. 요즈음은 말하는 투가 여간이 아니다.
마침 냉장고에 사다 놓은 냉이가 있어, 냉이국을 끓여주었다. 반찬이야 나 혼자 먹을 땐 3~4가지면 족하지만 그래도 친구 녀석을 먹여야 하니, 이것저것 한상 차려주었다. 현미밥에 냉이된장국. 거기다가 푸짐한 반찬. 이 정도면 식당에서 먹어도 8,000원짜리는 될 것만 같다.
밥 먹기가 무섭게 떠나버린 친구 녀석
참 블로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친구 녀석 밥상을 차리면서도 그것을 찍고 있다니. 왜 블로그를 하면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 것인지.
“야 네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밥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냐. 이제 그 블로그인지 말라비틀어진 수수깡인지 그만 좀 해라. 밥을 하면서도 사진을 찍어대니 참 못말릴 병이다. 넌 아주 중병에 걸린 거야.”
그 녀석 참 밥을 얻어먹는 주제에 탈도 많다. 하긴 그렇다. 이 블로그란 것이 참 묘하기는 하다. 밥이나 차려 먹이면 될 것을 일일이 사진을 찍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배고프다고 졸라대는 친구 녀석을 위해 상을 차려놓고, 잠시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참 어이가 없다.
녀석은 외국에 살면서도 참 시골스럽다. 된장에 넣었던 깻잎, 고추, 민들레 뿌리 김치, 오징어채 무침 이런것들을 유난히 좋아한다. 친구이긴 하지만 식성까지 나와 흡사하다.
한 30분 정도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집에 들어오니 친구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산책이라도 나갔나보다고 밥상을 치우고 앉아있는데 전화가 온다.
“야! 친구야 나 서울 가고 있다. 내일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이젠 가을에나 나올란다. 나오면 또 들릴게. 밥 잘 먹고 간다.”
참 어이가 없다. 밥 한 그릇을 먹자고 그 새벽에 서울에서 내려오다니. 하기야 꼭 밥을 먹으러만 왔을 리는 없다. 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사는 녀석이라,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려고 온 것이지를 다 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늘 고맙다. 그냥 한국에 나왔다가 모르는 체 들어가도 되는데 말이다. 나이가 먹어 가면 친구가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나저나 오늘도 밥 값 또 뜯겼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