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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었다. 비라도 한 줄기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공산성을 한 바퀴 돌면서 내려다보는 금강이 온통 벌겋다. 예전에는 그리도 맑던 물이었는데. 여기저기 오탁방지막을 쳐 놓은 것이 꽤나 눈에 거슬린다. 가파른 길을 내려 공산성 안에 있는 영은사로 향했다. 영은사 앞마당에 여기저기 현수막이 걸려있고 천막이 있다. 금강선원이다.

선원의 앞 커다란 나무 밑에는 한 사람이 앉아있다. 릴레이 단식투쟁 중이라고 한다. 대전 충남, 충북의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단식투쟁. 하루 종일 이 무더위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저리 앉아 말없는 함성을 지르고 있다.

금강선원 이 더위에 천막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맑던 금강이었는데...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몇 사람의 관광객이 혀를 찬다. 맑았던 금강이 이렇게 벌건 흙탕물이 되었다는 것에 우려를 나타낸다. 그래도 나중에는 괜찮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지만 딱히 올바른 해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해우소 앞에 걸려있는 문구가 크게 보인다. ‘청계천으로 됐다. 4대강 사업 중단하라’

무엇을 위한 공사인지 정확한 것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있고, 그 반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 무더위에 나무 그늘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먹지도 않고 하루 종일 있다가는 탈진이라도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생명 금강에 사는 생명들을 표현했다.
삽질 삽질을 멈추고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외침이...


‘문수스님도 이 절에서 정진을 하셨는데’

더위에 오르막길을 올라서인가 땀이 주체를 하지 못하겠다. 잠시 인법당 마루에서 쉬겠다고 하니 뒤편에 시원한 지하수 물이 있다고 좀 씻으라고 하신다. 단식 중인 분을 보면서 그도 미안한 생각이 들어 선뜻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를 못한다. 마루에 앉아 계시던 스님이 냉커피 한 잔을 타오라고 하신다. 더위에 물을 목으로 넘기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 무더위에 저렇게 하루 종일 버티고 있는데.


기와 한 장 분향소를 알리는 기와와 찜통이 된 분향소 안


기와 한 장에 글이 쓰여 있다. 문수스님 분향소라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이내 땀이 배어나온다. 조촐한 분향소 옆에 자리한 문수스님의 사진. 처음 군위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부터 많이도 보아왔던 사진이다. 그런데 벌써 잊혀 가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들인가 보다.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돌아선다. 마루에 앉으니 스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92년인가 문수스님이 이곳 영은사에도 한 6개월 정도 정진을 하셨는데”.  이곳에 금강선원이 자리를 한 것도, 문수스님의 분향소가 아직도 그대로 있는 것도 그래서인가.

단식 릴레이 단식투쟁 중인 사람들.


저렇게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르는 것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다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런데 왜 이래야만 할까? 아직도 그치지 않은 소리 없는 함성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갑자기 마른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저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속이라도 덜 답답하게.


문수스님의 소신공양(燒身供養) 소식을 접한 것은 5월 31일 오후 4시께였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밤 10시 쯤 전주를 출발해 군위 삼성병원에 도착한 것은 6월 1일 새벽 한 시께. 스님 몇 분과 신도 몇 사람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스님을 처음 뵌 것은 아마 한 15년 전인가 보다. 항상 말씀이 없으시고 과묵하신 스님은, 언제나 뵐 때마다 웃음으로 인사를 하고는 하셨다. 그렇게 강직하던 분이셨는데, 이렇게 빈청에 마련된 영정을 보면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지금이라도 '세상은 그저 강직하게 살아야만 해요. 세상에 나왔으면 할 일은 하고 가야지'라고 말씀을 하실 것만 같다.

 

문수 스님, 지난해부터 많은 고민 해와

 

"스님께서는 지난해부터 말이 없어지셨어요. 원래 과묵하신 분이신데 전혀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깊은 생각만 하고 계셨습니다. 3년 전부터는 공양도 하루에 한 끼 밖에는 들지 않으시고요. 배불리 먹는다는 것이 죄스럽다고 하시면서. 어제까지도 저와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소신공양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문수 스님과 지보사에서 함께 생활을 해 오셨다는 스님의 이야기다. 부여에서 먼 길을 달려오신 한 도반스님은,        

 

"문수 스님은 말씀이 없으신 분이죠. 그래도 가끔은 농담조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스님이 되어서 법랍 30년이면 살기가 편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날이 갈수록 어렵다고 하셨죠. 예전에는 모르고 지나치던 것이 이제는 발걸음 하나도 마음대로 뗄 수가 없다고요. 발 밑에 개미라도 한 마리 있으면 어쩌느냐는 것이죠. 그리고 지난해 부터는 4대강 개발을 두고 많이 고민을 하셨습니다. 스님이 되어서 세상 사람들처럼 싸울 수도 없고, 차라리 한 몸을 불살라 소신공양이라도 하고 싶다고요."

 

▲ 유서 문수스님이 자필로 쓴 유서. 4대강 개발 중지와 부정부패 척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아마 스님께서는 이미 작정을 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강직한 성격 탓에 불의와는 타협을 할 줄 모르는 스님이셨다. 언제나 말을 앞세우는 것을 싫어하시던 그 마음이 소신공양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셨나보다.

 

서민들의 고통을 멈출 수만 있다면

 

"스님의 또 한 가지 고민은 바로 서민들의 고통이었습니다. 국가가 정책을 잘 펴서 없는 사람들이 편해야 하는데, 어떻게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느냐고 늘 노엽게 생각하셨죠. 소신공양 이야기 하실 때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신다'고 했는데도, 결국 이렇게 소신공양으로 세상을 떠나셨네요. 스님의 소신공양은 순교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자필로 쓴 유서에는 4대강 개발 중지와 부정부패의 척결 그리고 서민생활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친필로 쓴 유서는 수첩에다가 쓴 것이다. 그리고 스님이 평소 입으시던 삼베 법복에도 유서와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늘 강직하시던 문수 스님. 오늘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군위 삼성병원 문수 스님의 빈소에서 말을 잃었다. 그저 하릴없이 스님의 영정만 바라보고 있는데 한 남자분이 이야기를 한다.

 

▲ 법복에 쓴 유서 명주로 지은 법복에 쓴 유서.

 

"문수스님의 법구를 보고 놀랐습니다. 스님의 법력이 대단하시다고 느꼈죠. 사람이나 짐승이나 불에 타면 신체가 오그라드는데, 스님께서는 일자로 꼿꼿이 숨지셨습니다. 가슴께로 두 손을 모으신 채로요. 몸이 타는데도 정신을 잃지 않으셨다는 것이죠."

 

이야기를 들으면서 억장이 미어지는 듯하다. 4대강은 인간들만을 위한 것이지만, 그 많은 생명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시던 문수 스님. 소신공양으로 인해 스님의 그 큰 뜻이 이루어질 수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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