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이 나 된 집이 있다면, 먼저 어떻게 아직도 그런 집이 보존이 되어 있을까하고 궁금해 할 것이다. 물론 그 동안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집이 신라 때는 절터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또한 집안에 잇는 석물들도 신라 때의 것이 아직도 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경주시 탑동 633번지에 소재하는 중요민속자료 제34호인 ‘김호장군 고택’은 장군이 태어났다는 집이다. 이 집은 개인의 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김호장군은 임진왜란 때 부산첨사로 큰 공을 세운 분이다.


생각 밖으로 조촐한 가옥

중요민속자료라고 하면 우선은 그 규모가 상당하리란 생각을 한다. 그러나 김호장군의 고택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앞으로 안채가 있고, 그 우측으로는 뒤편에 사당이 자리한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초가로 마련한 아래채가 서 있을 뿐이다. 그저 평범한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공간구성으로 마련한 가옥이다.

안채도 그리 크지가 않다. 임진왜란 당시의 첨사면 이보다는 더 큰 집에 살 것이란 생각을 하고 들어간 것이 내 한계였다. 집을 들어보는 순간 ‘참으로 조촐한 집이로구나’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큰 집일 것이란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먼저 느낀다. 장군의 단아한 심성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솟을대문과 안채의 부엌(가운데) 그리고 초가로 된 아래채(아래)

5칸의 안채는 마루조차 없어

안채는 솟을대문과 마주하고 있는 - 자형의 구조이다. 모두 5칸으로 구성이 된 안채는 측면도 한 칸으로 지어졌다. 서쪽부터 부엌과 방, 대청과 방으로 꾸며진 단출한 집이다. 건물은 옛 남부지방 가옥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으며, 대청에도 문을 달았다. 현재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조금은 안으로 손을 본 듯하다.

장군의 집을 찾아들어 갔을 때는, 마침 무슨 모임이라도 있는 날인가 보다. 집을 좀 촬영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사람들이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안채가 이렇게 단순한데 그 외에 건물이라고 특별한 것이 있을까 싶다. 부엌을 뺀 안채는 모두 4칸으로 툇간조차 달지 않았다.



안채 동편과 안방, 장독대

솟을대문은 후에 다시 복원을 하였는지, 양 옆으로는 한 칸씩을 달아냈다. 한편은 곳간으로 사용하고 한 편은 방을 드렸다. 아래채는 정면 3칸, 측면 한 칸으로 초가집이다. 두 개의 방을 드리고, 안채 쪽에 한 칸의 부엌을 달아냈다. 뒤편으로 돌아가니 음식을 준비하는 듯 분주하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은 돌아다니기가 미안스럽다.


우물과 사당(아래)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물

이 집안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바로 우물이다. 아주 오래된 것 인양 고풍스럽다. 돌로 주변을 놓고, 가운데를 좁게 오므려 놓은 특이한 우물이다. 안에는 맑은 물이 있는데, 이 우물은 이 집에서 원래 있던 자리라는 것이다. 이 집이 신라 때의 절터였다고 하면, 저 우물의 역사는 도대체 얼마나 된 것일까?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데도, 마치 비어있는 집인 듯 조용하다. 집안에 모인 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다과를 들고 있는 듯하다. 집을 한 바퀴 돌아보니 담장이 특이하다. 돌로 만든 담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고택답사를 하면서 참으로 조촐하고, 운치 있는 집을 보았다는 생각이다. 집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는데, 장군의 절제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운치가 있는 돌담


삼성궁은 지리산 청학동에 소재한다. 삼성궁에는 배달민족의 국조인 환웅, 환인, 단군을 모셨다.(삼성궁에서는 환웅과 환인과 한웅과 한인이라고 한다)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는 청학동은 신라의 최치원이나 도선국사를 비롯한 역대의 선사들이, 최고 명당 중에 명당이라고 알려준 곳이다.

이 삼성궁은 한풀선사가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면서 오랜 시간 준비를 해 온 곳이다. 이곳에 배달민족의 혼을 일으키고, 민족적 구심점을 형성하기 위해 돌탑(솟대)을 쌓고 삼성궁을 건립하였다. 매년 10월 4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삼성궁의 천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고대 조선 문화로의 회귀에 동참을 한다.


비가 오는 날 오른 삼성궁

10월 24일(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청학동을 지나 삼성궁으로 올랐다. 전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아침이 되어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다. 삼성궁 앞 주차장에는 이미 만차가 되어있다. 날이 좋으면 묵계까지 차가 늘어선다고 한다. 문을 지나 오르다가 보니 작은 폭포가 보인다. 주변에는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해, 폭포 주변이 아름답다. 이곳을 ‘청학폭포’라고 부른다고 한다.

양편으로 돌로 담을 쌓은 길을 따라 걷는다. 굴도 지나고, 연못을 건너 올라가는 곳. 마지막으로 석문을 들어서니 삼성궁이 시야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모여들었다. 시간이 늦어 마고성에서 하는 행사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 풍물을 앞세운 사람들이 삼성궁으로 모여든다.


삼성궁 입구에 있는 청학폭포와(위) 삼성궁 전경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하고 앉았다. 주악에 맞추어 차를 올리고 천부신경 등을 구송한다. 밖에서도 합장을 하고 사람들이 제에 동참을 한다. 안에서는 한참 의식이 베풀어지고 있는데, 시끄럽게 사진을 찍는다고 떠드는 사람들. 어디를 가나 이런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망쳐진다.


특이한 돌담과(위) 태극모양의 연못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지리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 삼성궁.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기도 만만치가 않을 듯하다. 비는 계속 오는데도 삼성궁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단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삼성궁의 근본이 되는 배달민족의 혼을 찾기 위해서일까?


천제를 지내는 사람들

제를 마치고 삼성궁을 떠나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왜 이곳을 찾았느냐고. 사람들은 그저 단풍도 볼겸, 이곳이 아름답다고 해서 들렸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이렇게 신성한 곳임에도 여자 친구를 무릎에 앉혀놓은 사람도 있다. 요즈음 신세대의 애정행각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가보다. 그런 것을 무엇이라고 탓하는 것이 아니지만, 장소와 때는 조금 가릴 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붉게 물이 들기 시작하는 지리산,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산허리에 걸린 비구름, 삼성궁은 또 다른 이상의 세계로 사람을 인도한다. 질퍽이는 길을 따라 오르기가 버겁기도 했지만, 모처럼 좋은 의식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문화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 오랜 시간을 이렇게 쌓아놓은 돌탑과 돌담을 따라 내려오면서, 내년에는 미리 이곳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한 삼성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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