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86번지에 소재한, 충청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76호인 팔괘정. 앞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있고, 강 건너편에는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이 팔괘정은 송시열 선생이 율곡선생을 추모하며, 당대의 학자 및 제자들을 강학하였던 장소로 전해진다.

 

스승과 가까이 하고 싶어 지은 팔괘정

 

 

송시열은 스승인 김장생이 강경 황산리 금강가에 임이정을 건립하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운 곳에서 있고 싶어서 정자를 지었다. 임이정과 불과 15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팔괘정은 그 모습도 임이정과 닮았다. 팔괘정은 금강을 바라다보는 서향으로 세워졌으며,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지은 건물이다. 정면은 동일한 간격으로 그중 두 칸은 넓은 대청을 만들고, 한 칸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둥근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에 초익공식과 동일한 구성의 공포를 짜 올린 팔괘정. 창방 위에는 기둥사이마다 다섯 개의 소로 받침을 배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정자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꼽히는 팔괘정은, 한식 가옥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옛 모습을 그려보다.

 

송시열은 선조 40년인 1607년에 태어나, 숙종 15년인 1689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계 김장생이 강경 황산에 임이정을 지은 해는 인조 4년인 1626년이다. 송시열이 팔괘정을 지은 때를 인조시대로 보는 이유도, 김장생이 임이정을 지었을 때와 같은 시기로 보기 때문이다. 임이정과 팔괘정은 크기나 모습이 흡사하다.

 

당시 황산은 김장생과 송시열이라는 두 거목이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리고 두 정자 사이에는 조금 아래서 내려서 죽림서원이 있었으니, 날마다 금강가에 글 읽는 소리가 그치지를 않았을 것이다.

 

 

금강을 내려다보면서 글을 읽으며 세상을 논하고, 시 한수를 지어 어딘가에 적지 않았을까? 팔괘정의 옛 모습을 그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마 당시 이곳에는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들어 그 자리에 끼는 것을 영광으로 알지 않았을까? 무심한 철새들이 무리지어 팔괘정 앞을 날아간다.

 

바위벽에 남긴 흔적

 

팔괘정 옆으로는 커다란 암벽이 있다. 예전 이 팔괘정을 세운 송시열은 이 바위를 바라다보며 나라를 위한 충정의 굳은 의지를 키웠을 것이다. 바위에는 송시열이 썼다는 '청초암(靑草岩)'과 ‘몽괘벽(夢掛壁)’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이곳에서 젊음의 기상을 떨치고, 꿈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마음에 새기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금강을 한가롭게 유영하는 철새들이 날아오른다. 아마 멀리 북녘까지 날아갈 차비라도 하려는가 보다. 저녁 햇볕이 저만큼 강물에 길게 붉은 띠를 두른다. 이런 아름다운 정경을 보면서, 이곳에서 후학들에게 강학을 했을 선생의 마음이 그려진다. 봄날 이는 황사바람 한 점이 스치고 지나간다. 정자 옆 바위는 미동도 없다. 그것이 팔괘정을 지은 선생의 마음일까?

  1. +요롱이+ 2012.12.13 12:32 신고

    적분에 팔괘정 너무 잘 보고 갑니다^^
    남은 하루 평안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2. 코리즌 2012.12.13 12:57 신고

    팔괘정 자세한 글 잘 보고 갑니다.

  3. 날아라뽀 2012.12.13 13:15 신고

    너무 아름답네요^^
    우리 것이 가장 아름다운...

  4. 주리니 2012.12.13 14:02

    정갈하니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세월의 묵은때만큼이나 청아한데요?
    그 바위에 올라 내다보면... 시름조차 잊겠는걸요?

  5. 클라우드 2012.12.13 14:07

    외형적으로 단아함이 느껴지는 팔괘정입니다.
    오후 햇살이 참 좋아요.
    행복하세요.^^

  6. 시원한 하루 2012.12.13 21:01 신고

    잘 보고, 잘 읽고 갑니다.
    하루 마무리는 편안하게 보내세요. ^^

  7. 바닐라로맨스 2012.12.14 06:16 신고

    뭔가 쓸쓸해보이는걸요.?
    겨울이라서 그럴까요?

  8. 아유위 2012.12.14 09:07 신고

    비가 주적주적 내리네요.
    요새는 주말만 되면 비에 눈에~
    정신 없는것 같습니다.
    좋은하루 되시구요~

‘강경 포구에는 개들도 생선 한 마리씩 물고 다녔다’

 

강경은 예부터 조운이 발달되었던 곳이다. 강경은 현재도 유명한 젓갈시장이 선다. 사람들은 ‘젓갈하면 강경’이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강경은 금강 가의 포구로 유명한 곳이다. 한 때는 강경은 현재의 논산보다 더 큰 상업의 중심지였다. 금강 가의 나루에는 색주가가 즐비했는데, 성황리에는 100여개가 되었다고 전한다.

 

 

김장생이 지은 정자

 

강경에서 금강을 건너 부여와 서천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 이 곳 다리를 건너기 전 우측으로 조금 들어가면 서원이 있고, 서원의 우측 낮은 산 중턱에 정자가 하나 서 있다.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95번지에 소재한 임이정은, 지금은 계단을 정비하고 들어가는 길에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임이정은 김장생의 『임이정기』에 의하면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어름을 밟는 것같이 하라(如臨深淵, 如履薄氷)」는 구절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이 말은 즉 자신의 처지와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하라는 증자의 글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임이정은 ‘황산정’이었다. 임이정은 김장생이 이 정자를 짓고, 후학들에게 강학을 하기 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정자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지어졌으며, 왼쪽 두 칸은 마루방이고 오른쪽 한 칸은 온돌방을 놓았다.

 

 

화려하지 않으나 기품을 유지해

 

정자에 오르니 금강이 아래로 흘러간다. 서향으로 지어진 정자는 정면 세 칸의 기둥사이를 동일하게 조성하였다. 온돌방 앞에는 반 칸을 안으로 들여 위는 누마루로 깔고, 아래는 아궁이를 두었다. 기둥은 둥근 기둥을 사용했으며, 그 위에 기둥머리를 배치하였다. 충남 유형문화재 제67호인 임이정.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은 정자이지만, 그 안에 품은 뜻이 컸을 것이란 생각이다.

 

정자의 앞쪽에는 보호각 안에 세운 임이정기가 있다. 머릿돌을 올린 비석은 고종 12년인 1875년 김상현이 글을 짓고, 김영목이 글을 썼다고 한다. 정자 주변에는 보호철책을 둘러놓았으며, 주변에 큰 석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정자 외에도 가른 건축물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낙향하여 지은 정자 임이정

 

사계 김장생이 임이정을 지은 해는 인조 4년인 1626년이다. 김장생이 인조 9년인 163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임이정을 짓고 난 뒤 6년 뒤 일이다. 김장생은 1625년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다음해 벼슬에서 물러나 행호군의 산직으로 낙향하였다. 낙향 후 황산서원을 세우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양호호소사로 의병을 모아 공주로 온 세자를 호위하기도 하였다.

 

 

그 뒤 1630년에는 가의대부가 되었으나 조정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줄곧 머물면서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사계 김장생이 ‘계축옥사’ 때 동생이 이에 관련됨으로써 연좌되어 심문을 받았다가, 무혐의로 풀려나온 뒤, 곧 관직을 사퇴하고 다시 연산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몰두했다. 이 때 임이정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금강가 높지 않은 곳에 자리를 한 임이정.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운 임이정이 화려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를 살얼음을 밟듯이 세상을 조신하게 살라는 김장생의 뜻이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황사 바람이 드센 날 찾은 임이정. 앞을 흐르는 금강은 언제나 말이 없다.

  1. *저녁노을* 2012.12.12 06:20 신고

    유형문화재로군요.
    조용하니 좋으네요.ㅎㅎ

    잘 보고가요

  2. 주리니 2012.12.12 06:46

    살얼음 밟듯 세상을 조신있게....
    모두가 그런 맘으로 세상살이를 하면 좀더 사악한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텐데...
    소박한 아름다움을 엿보며 갑니다.

  3. 온누리 온누리49 2012.12.12 06:47 신고

    11일 밤에 예약한 글입니다
    아침 일찍 구미 불산누출 사고마을로 들어갑니다
    아직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분들이 마을회관에 머물고 있다고 하네요
    다녀와 소식 전하겠습니다
    좋은 날들 되시고요^^

  4. 광제 2012.12.12 07:07 신고

    구미 불산누출....충격적인 사고였지요..
    많이 위로해드리고 오세요~~!

  5. meryamun 2012.12.12 07:24

    주변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옛 선인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네요..

  6. 참교육 2012.12.12 07:28

    불산 누출... 그후 주민들의 소식이 궁금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7. 2012.12.12 07:31

    비밀댓글입니다

  8. landbank 2012.12.12 08:44 신고

    아 정말 멋진곳이네요
    선인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네요

  9. 예또보 2012.12.12 08:47 신고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멋진 곳이네요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10. +요롱이+ 2012.12.12 09:01 신고

    정말 멋진 문화재로군요^^
    덕분에 너무 잘 보고 갑니다..!!

  11. pennpenn 2012.12.12 09:07 신고

    정저가 매우 반듯합니다
    매서운 한파에 감기 조심하세요~

  12. 모피우스 2012.12.12 09:10 신고

    임의정을 세운 뜻이 참 좋습니다.

    위험 지역에서 들어가시는데 무탈없이 돌아 올 수 있게 기도합니다.

    추운 날씨 감기 조심하세요.

  13. Hansik's Drink 2012.12.12 09:15 신고

    잘 보고 간답니다 ~ ㅎ
    기분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14. 아빠소 2012.12.12 09:25 신고

    강경이라해서 제주 강경인줄 알았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세요~

  15. 행복끼니 2012.12.12 09:27

    강경 임이정 정자~
    잘보고갑니다~
    몸조심~ 건강조심하세요~^^

  16. 코리즌 2012.12.12 10:08 신고

    살얼음을 밟듯 조신하게 살라는 깊은 뜻을 오늘날 우리도 본 받아야겠습니다.
    역사 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얼과 넋이 숨어 있네요.
    추운 날 조심히 다녀 오세요.

  17. 가을사나이 2012.12.12 10:12 신고

    아주 멋진 장소네요.
    우리나라에 숨은 곳이 많군요

  18. 솔향기 2012.12.12 10:44

    옛 선인들이 풍류를 즐길만큼 아름다운 곳이네요
    우리문화재에 대해 여기서 많이 공부하게 됩니다
    행복한 수요일 되세요~~

  19. 클라우드 2012.12.12 11:35

    임이정에 관한 귀한 자료에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김장생의 그 깊은 마음을 헤아려 보면서요...
    이 하루도 가시는 걸음마다 행운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0. 최정호 2014.02.16 12:47

    김장생은 인조~선조 때 활동했던 인물이고 당시 은진읍의 강경이란 곳은-큰 배가 드나드는 포구가 아니고-작은 나룻가에 불과했습니다.
    대신 물 건너 전라도 여산읍의 황산포(현재 강경읍 황산리)는 한때 제물포, 부산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어시장’으로 불리웠고 또 여산의 우시장은 개성, 남원과 더불어 ‘3대 우시장’으로 꼽혔는데, 따라서 개들도 생선을 물고 다녔다는 곳은 강경이 아니고 황산포라야 적확한 표현이 됩니다.
    또한 김장생이 활동했던 곳은 죽림서원(황산서원), 임리정, 팔괘정이 소재한 여산이었기에 ‘연산’을 여산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여산읍의 나암창(현재 익산시 망성면)은 조선후기 학자 이태수가 조선 8도의 군량을 공급할 창고를 세우자고 주장한 곳이고, 실학자 박제가는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평안도의 선천, 황해도의 장연과 더불어 여산과 은진 사이에 시장을 조성하고 활성화시키자고 제안했습니다.
    강경은 일본으로의 쌀 수탈이 본격화되면서-철도가 놓여진 이후 급성장했는데 1920년대에 강경이 평양, 대구와 더불어 ‘조선의 3대시장’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한때 11개 속읍(여산,익산,고산,진산,금산,용담,함열,용안,임피,옥구,군산)을 거느렸던 여산부(礪山府)가 배후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물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

4대강, 물론 그 외에도 많은 강이 있다. 하지만 한강과 금강, 섬진강과 낙동강은 그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강들이다. 이 강을 찾는 것이 아니고, 그 강이 시작되는 발원지를 찾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아이들이 방학을 하게 된다. 올 겨울방학을 아이들과 함께, 뜻 깊은 4대강 발원지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지.

이 중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과,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하루에 돌아볼 수 있는 거리이다. 뜬봉샘은 전북 장수에, 데미샘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는 같은 태백에 자리하고 있다. 두 번에 나누어 돌아볼 수 있는 4대강 발원지로의 여행, 주말여행으로 추천한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기슭에는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가 자리하고 있다. 검룡소 일대의 계곡은 아름다운 계곡과 지형 등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희귀한 동식물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다. 검룡소는 석회암반을 뚫고 솟아오르는 냉천이, 하루 2천 톤 가량이나 용출된다. 사계절 9℃ 정도의 수온을 유지하고 있는 검룡소의 물은, 20m 이상 계단처럼 된 자연암반을 따라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검룡소에는 재미난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용이 되려는 이무기 한 마리가 검룡소에 살았다. 이 이무기는 서해바다에 살던 이무기 이었는데,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거슬러 이곳까지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 이무기는 검룡소가 강 상류의 가장 위쪽 연못임을 확인하고, 연못에 들어가 용이 되기 위한 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검룡소 앞 바위에는 할퀸 모양의 자국이 나있는데, 이 자국은 이무기가 연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생긴 자국이라 한다.



검룡소는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검룡소를 찾아간 것은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이었다. 눈길에 미끄러지며 찾아간 검룡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솟아오르는 물이 계곡을 따라 힘차게 흐른다. 검룡소 주변으로는 산짐승들이 물을 먹으로 온양, 발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다. 생명의 근원인 물은 그렇게 인간만이 아니고,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원신암 마을을 지나서 북쪽 오계치를 향해 오르다가 보면, 오른쪽 계곡으로 들어서는 길이 나온다. 이정표가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1.19km 앞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해발 1,151m의 팔공산 북쪽 기슭을 흐르는 상추막이골에 자리한 데미샘. ‘데미’란 이 고을 말로 봉우리를 뜻하는 ‘더미’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데미샘 동쪽에 솟은 작은 봉우리를 동네 주민들은 천상데미(해발 1,080m)라 부르는데, 이는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원신암 마을을 지나서 북쪽 오계치를 향해 오르다가 보면, 오른쪽 계곡으로 들어서는 길이 나온다. 이정표가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1.19km 앞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해발 1,151m의 팔공산 북쪽 기슭을 흐르는 상추막이골에 자리한 데미샘. ‘데미’란 이 고을 말로 봉우리를 뜻하는 ‘더미’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데미샘 동쪽에 솟은 작은 봉우리를 동네 주민들은 천상데미(해발 1,080m)라 부르는데, 이는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

장수군 장수읍 수분 마을 뒷산인 신무산의 계곡을 따라 2.5km 올라가면,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이 있다. 뜬봉샘은 봉황이 날아올랐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뜬봉샘에는 조선의 개국조인 이성계와 얽힌 설화가 전한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 전국 명산의 산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으려고, 신무산에 올라 중턱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백 일째 되는 날 새벽에 이성계가 기도를 하고 있는 단을 조금 벗어난 골짜기에서,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르더니 그 무지개를 타고 봉황새가 하늘로 비상을 하는 것이었다. 봉황이 날아간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새 나라를 열라는 천지신명의 계시였다는 것이다.



이성계는 정신을 가다듬고 봉황이 날아간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풀숲에 덮인 옹달샘이 있었다. 이 옹달샘에서 봉황이 떴다고 하여 샘 이름을 ‘뜬봉샘’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뜬봉샘이 바로 금강의 발원지이다. 수분마을에서 뜬봉샘까지 천천히 걸어올라 가는 길.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금강의 발원지도 볼 수 있는 뜬봉샘. 한 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다.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

태백시 황지3동 시가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 둘레가 100m인 상지와 50m인 중지, 그리고 30m인 하지로 된 3개의 못으로 나뉘며 상지의 남쪽에는 깊이를 잴 수 없는 수굴이 있어 수원이 된다고 한다. 황지에서 분출되는 물의 량은 가뭄에도 변함없이, 하루에 약 5000톤 정도가 용출되며 수온 또한 상온 15도를 유지하고 있다.

황지는 고지도를 비롯한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 옛 문헌에 의하면. 1,300리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의 근원으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심 한 복판에 발원지가 있다는 것도 색다르지만, 이 황지의 주변은 공원을 조성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 황지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황지는 원래 황부자가 살고 있던 집터로, 주인 황씨는 많은 재산을 지닌 부자였으나 인색하기 짝이 없는 자린고비였다. 어느 봄날 황부자는 외양간에서 쇠똥을 쳐내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노승이 시주를 청했다. 황부자는 시주하기를 거절했으나, 노승은 물러나지 않고 거듭 염불을 외며 시주를 청했다.

화가 치민 황부자는 쇠똥을 한가래 퍼서 시주바랑에 넣어주며 "이거나 받아가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승은 노하기는커녕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마침 방아를 찧던 며느리가 이런 모습을 보고 시아버지 몰래 쌀 한바가지를 퍼내어 노승에게 시주를 했다.

"이 집은 이미 운이 다 했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소승의 뒤를 따라오시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라고 이야기를 한 노승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며느리는 곧 노승의 뒤를 따랐다. 송이재를 넘어 구사리 산마루에 이르렀을 때, 뇌성벽력과 함께 땅이 갈라지는 소리에 놀란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버리고 황부자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지금의 황지는 원래 황부자 집터였다고 하며, 상지는 집터, 중지는 방앗간, 하지는 측간자리라고 한다. 물론 전설이긴 하지만, 그런 내용을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여, 세상 살아가는 도리를 알려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주말여행. 4대강의 발원지가 어떨까?

  1. 온누리 온누리49 2011.11.30 14:38 신고

    오늘 인터넷이 개통된다네요
    내일부터는 아침에 문안드릴 수 있을 듯^^
    비가 오네요. 바람도 불고 건강하세요^^

  2. 노지 2011.11.30 15:02 신고

    문화적으로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히 권할 만한 여행지이죠!

  3. 올매거진 2011.11.30 15:36 신고

    뜬봉샘은 꼭 한 번 가 보고 싶습니다.^^

  4. 행복한다니엘 2011.11.30 18:07 신고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5. 비바리 2011.11.30 21:34 신고

    뜬봉샘.기억합니다.

    덕분에 강의 발원지들 공부하는군요

  6. 킥스 2011.12.01 05:54 신고

    와~ 이런 색다른 테마 여행도 정말 좋을듯 합니다.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추천 꾹~ ^^

  7. 펨께 2011.12.01 07:11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아이들에게
    4대강 모습 보여준다는 것 무척 의미있는 일이라
    앞으로 이곳으로 찾아갈 부모님과 아이들 많이 계실 것 같아요.
    저도 한 번 이곳 방문하고 싶어지네요.

대전 유성에서 1번 국도로 따라 조치원을 향하다가 보면, 금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작은 정자가 보인다. 연기군 남면 나성리 101번지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충남 문화재자료 제264호인 ‘독락정(獨樂亭)’이 자리한다. 독락정이란 말 그대로 혼자 낙낙하는 정자란 뜻이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이 정자는 고려 말의 무신인 전서 벼슬을 지낸 임난수 장군을 위한 정자이다. 임난수 장군은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정벌을 했던 무장이다. 장군은 고려가 망하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여 벼슬을 버리고, 금강 월봉 아래서 16년간을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끝까지 섬기던 임금에 대한 충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금강가에 외롭게 서 있는 독락정

장군의 아들 임목이 지은 독락정

독락정은 조선조 세종 19년인 1437년 임난수 장군의 아들인 임목이 부친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그 후 여러 번 고쳐지었으며, 주변에는 낙락장송이 우거져 있다.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굽어보고 서 있는 독락정. 지금은 길 위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 이 정자는, 임난수 장군의 마음을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이다.

정자는 크지가 않다.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지어졌는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서 있는 소나무에서 그 역사를 짐작할 수가 있다. 낮은 담으로 둘러친 정자는 금강 쪽은 담을 낮게 해 마루 위에서 강을 바라다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정자의 특징은 주춧돌이다. 팔각의 장주추를 써서 기둥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형태의 건축물이라 그런지 작아도 무게가 있어 보인다.



정자는 낮은 담으로 둘러쌓다(위) 주추는 팔각의 장주추를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가운데)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금강(아래)

정면 3칸, 측면 2칸인 독락정은 마루 중앙 뒤편으로 방을 놓았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방을 드릴 때는 온돌을 놓지만, 독락정은 그대로 마루로 연결하고 사방을 문으로 마감을 하였다. 아마도 이곳에서 흐르는 금강을 내려다보면서 취흥에 젖고는 했을 것이다. 정자로 오르니 벽에는 편액이 걸려있다. 독락정기와 독락정시의 두 편의 편액이 벼슬을 떠난 임난수 장군의 쓸쓸함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담장 밖에서 사진을 찍다가 성이 차지 않아 월담이라도 해야 하나를 고민한다. 정자 뒤에 난 일각문을 보니 잠을 통이 그냥 걸려있다.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정자에 올라 금강을 내려다본다. 저만큼 무슨 공사라도 하는 것인지, 물이 탁하게 흐른다. 예전 정자를 짓기 전에 이곳에 올랐을 장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자에는 독락정기와 독락정시의 두 편의 편액이 걸려있다

아마 망해버린 고려에 대한 아쉬움이 남달랐을 것이다.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면서 스스로 벼슬을 마다하고 이곳에 와서 여생을 끝낸 임난수 장군. 그 자손들에게도 나라를 위한 충심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선친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독락정은 가을의 햇볕만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정자에 오를까? 난 늘 그 정자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정자를 세운 뜻을 조금이라도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백사람이 모두 생각이 다르다고 하니, 어찌 그 뜻을 감당할 것인가? 오늘 독락정에 올라 장군의 마음을 헤아려보지만, 무심히 흐르는 저 금강처럼 나도 무심히 떠나는가보다.


가운데 뒤편으로 마루방을 들이고(위) 주변에는 고목이 된 소나무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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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최정 2010.10.13 09:50

    참. 이런곳에서 사색을 즐겼던 옛선비들은 무슨생각을 했을까요??
    좋은것 같습니다.
    세상의 짐을 한번쯤 내려보고 싶을때 찾아가겠습니다.

  3. 무릉도원 2010.10.13 10:11 신고

    독락정...이름에서 왠지 쓸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오늘도 즐겁고 행복하세요...*^*

  4. 카타리나 2010.10.13 10:17

    언제나 예쁜곳 소개에 감사한 마음이..

    독락정이라...왠지 혼자 가야할듯..

  5. 김루코 2010.10.13 10:28 신고

    잘 보고 갑니다. ^^
    경치중에 아스팔트 도로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곳도 있네요 ㅜㅜ

  6. 판타시티 2010.10.13 10:43 신고

    안녕하세요?
    부천시 공식블로그 판타시티입니다. ^^

    독락정 같이 좋은 곳도 처음 알았고,
    임난수 장군도 처음 들었네요.

    뜻 있는 이야기와 사진 고맙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저희 블로그에도 놀러와주세요 ^^

  7. 혜진 2010.10.13 10:48

    매번 좋은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마곡사 잘 다녀오시고.. 건강 유의 하세요~!^^

  8. 박씨아저씨 2010.10.13 11:27

    조금은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도도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멀리 조심해서 잘 다녀오십시요~~~

  9. 루비™ 2010.10.13 12:40 신고

    양동엔 독락당이 있는데 여긴 독락정이군요.
    혼자 낙낙하고픈 사람이 많나 봅니다.
    먼길 잘 다녀오세요~~

  10. 2010.10.13 13:53

    비밀댓글입니다

  11. 새라새 2010.10.13 14:46 신고

    마곡사의 풍경도 기대해봅니다.^^
    조심해서 잘 단녀 오세요..

  12. Shain 2010.10.13 14:47 신고

    예전에 지나다 들린 기억이 나네요..
    그런 전설들 하나하나가 옛 물건들을 더욱 의미있게 해주는 거겠죠 ^^
    금강 주변엔 아름다운 풍경들이 참 많아요..
    훑어보면 옛 선인들이 사랑했을 법한 장면들이 보입니다..
    먼 여행 잘 다녀오세요 ^^

  13. 2010.10.13 15:38

    비밀댓글입니다

  14. ,,., 2010.10.13 15:39 신고

    잘 다녀오세요 마곡사의 풍경 기대하겠습니다^^

  15. 꽁보리밥 2010.10.13 15:56 신고

    오늘도 가보지 못한 곳의 독락정을 소개하시는군요.
    마곡사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16. 온누리 온누리49 2010.10.13 22:43 신고

    금강가에 선 독락정
    그 좋은 경치에 서 있는 독락정도 이젠 굉음소리에 시달리게 되었네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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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성이었던 공주 공산성 안에 보면 성안의 딴 건물들과는 다른 누각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왕들의 연희장소였던 임류각(臨流閣)이다. 임류각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22년 조에 의하면 궁궐의 임류각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 높이가 5장(약 15m 정도)이나 되는 건물이었다고 한다.

임류각은 서기 500년인 동성왕 22년에 지은 건물로,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산성을 정비하던 1980년에 임류각 터를 발견하고 1993년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2층 누각을 지었다. 건물의 단청 문양은 무령왕릉에서 나온 장신구 및 현실의 벽돌에 있는 무늬를 많이 활용하였다.


동성왕은 왜 이렇게 화려한 누각을 지었을까?

복원을 한 임류각은 상당히 호화롭다. 물론 단청이나 문양 등이 그 당시에 어떠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무령왕릉의 밝혀진 문양과 채색을 사용하였다면,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많은 기둥을 놓고 그 위에 마루를 올렸으며, 양편에 계단을 만들어 누각 위로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임류각은 정면 6칸에 측면 2칸 정도로 지어졌다. 누각 위에 오르면 금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백제의 왕은 이곳에서 어떤 연희를 베풀었을까? 누각 위에도 양편에 기둥이 서 있어 이 누각은 색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견고하게 지어진 누각이다. 많은 신하를 거느린 백제의 왕들은 이곳의 주인으로 당당한 세력을 과시했을 것이다.



백제의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는 임류각. 누각 위의 기둥과 누각을 받치고 있는 기둥(중) 그리고 지붕

임류각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문제는 이 자리가 과연 예전에 임류각이 서 있었던 자리일까 하는 점이다. 백제본기에 보면 임류각은 궁궐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성 안에 궁궐이 있던 자리는 쌍수정을 오르는 길목 앞이다. 궁궐터에서 보면 이 임류각이 있는 자리가 동편에 해당한다. 그러나 혹자는 임류각이 중국 산동성에 있었고, 임류각을 지은 동성왕도 산동성에 또 다른 궁궐과 호화로운 임류각을 지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류각은 정자에 해당하는 누각이다. 그리고 궁궐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백제본기에 기록하고 있듯 임류각은 궁궐의 동편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기에 현재의 임류각의 자리는 서기 500년 당시 동성왕이 지었던 임류각이 맞을 것이란 생각이다.



임류각의 현판과 단청(중) 그리고 무렬왕릉의 문양을 본뜬 천정의 문양

『삼국사기』에 의하면 동성왕은 동성왕 3년인 491년에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공한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을, 신라 및 가야와 연합하여 격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동성왕 6년인 484년에 중국 남조의 유송에게 사신을 보내는 등 외교적 수완도 뛰어났던 왕으로 가록이 되고 있다.

동성왕은 왜 이렇게 호화로운 임류각을 지은 것일까? 아마 고구려와 말갈 등의 침공 등을 막아내고, 백제의 위상을 한결 높였다. 그리고 함께 동맹을 한 신라와 가야 등에게도 백제의 강성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신하들에게 자신의 큰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임류각을 짓게 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누각에 올라 금강을 내려다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누각에서 연희를 베푼 동성왕. 이 임류각을 짓고 난 다음 해인 501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호화로운 임류각을 남겨 놓은 채. 그런 사실을 알고 나면 세상은 더욱 무상한 것이 아닌지.

  1. 워크뷰 2010.08.13 14:30 신고

    저는 지금 부산동래읍성지를 돌아보고 있는데,이 포스팅을 보고 나니 백제의 누각은 정말 예술입니다.

  2. pennpenn 2010.08.13 15:36 신고

    정자의 현판과 단청이 멋있군요~
    주말 잘 보내세요~

  3. *저녁노을* 2010.08.13 16:54 신고

    금강을 바라보며 앉아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보고 가요

  4. 김천령 2010.08.13 17:36 신고

    ㅎㅎ, 역시...
    웬 종일 바빠 이제야 들립니다.
    오늘은 뭘 드시는지요?

  5. 비바리 2010.08.13 18:26 신고

    누각들은 모두 명당자리에 위치한듯 합니다.

    마미님캉..수목원 얼른 돌아보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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