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에 다양한 문양과 아름다움을 조형해내는 가죽공예. 값비싼 공예품이기에 일반인은 소유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견해일 뿐이다. 알고 보면 남들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으며,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이제 가죽을 손에 잡은 지 12, 김혜영(, 46) 작가는 가죽에 붙어 하루를 보낸다.

 

가죽을 만진 지는 한 12년 정도 되었나 봐요. 하지만 이렇게 제가 직접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한 지는 한 7~8년 정도 되었어요.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을 했는데 이제는 본업이 되어버린 것이죠.”

 

14일 오후에 만난 가죽공예 김혜영 작가의 공방에는 가죽으로 만든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저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김혜영 작가는 가죽공예를 하기 전에 많은 작업을 해왔다. 비즈공예, 점핑클레이, 폴리머클레이, 리본자수, 퀼트와 펠트, 석회공예 등이다. 이 모든 공예에 대한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수강료가 비싼 가죽공예

 

처음에는 그저 취미생활로 시작한 가죽공예예요. 그런데 가죽공예는 수강료가 상당히 비싼 편이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제대로 배우려면 4달에 280만원이나 들어요. 소품위주로 배운다고 해도 3달에 180만원이니 한 달에 60만원 꼴이죠. 아마도 가죽공예를 하려면 소 한 마리를 사야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죽공예를 하기 위해서는 가죽을 평당 얼마라고 가격을 매기고 있지만, 손 한 마리를 사야한다고 한다. 소 한 마리의 가죽을 다 사야한다는 것이다. 소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잘라진다는 것.

 

가죽공예를 하기 위해서는 도구만 해도 상당하다. 가죽에 염색을 하고, 각종 조각을 하기도 한다. 거기다가 일일이 필요에 따라 바늘구멍을 내야하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야 한다. 공정작업이 어렵다보니 시간도 상당히 걸린다고 한다. 작은 작품 하나를 만들어도 일주일, 대작 같으면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죽공예는 100% 수공예로 제작을 하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병점 풀잎문화센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배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저 제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은 보장이 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을 강의를 하고 있어요.”

 

아직은 더 공부를 하고 싶어

 

가죽공예는 두 가지로 구분이 된다고 한다. 소가죽에 다양한 문양과 염색 등을 하는 카빈이 있고, 일반적으로 무늬 등이 포함되어 나오는 가죽을 그대로 사용하는 공예로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김혜영 작가는 카빈은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기공가죽은 수료를 했다고 한다. 종류가 다른 공예는 자격증조차 따로 따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손님들이 찾아와 가격을 묻고는 하지만 아직 팔지는 않았어요. 제가 손지갑 같은 작품을 가격을 부르니 그것의 세 배는 받아야 된다고 주변에서 말씀들을 하세요. 아무래도 가죽공예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도 높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작품을 판매를 하기보다는 강습을 통해 직접 작품을 만들기를 권유하고 있어요.”

 

공을 들여 만든 작품으로 전시회를 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멀었다라고 하면서 더 배운 다음에 생각을 해보겠다고 한다. 비록 사람들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남들이 모두 인정을 할 때에 하겠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가죽에 매달려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김혜영 작가. 언젠가는 전시회를 그 날을 기대를 하며 기다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고민이 많죠. 저희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입니다. 도자기를 하다가보니 이렇게 한 곳에서 서로 힘을 합해 작업을 하게 되었네요. 이곳 영동시장 아트포라에 함께 들어와 공동작업을 하는데,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아요.”

 

수원시 화성 팔달문 앞에 자리한 영동시장 2층 아트포라에 입주한 작가 중 아마 나이가 제일 어린 듯하다. 작가 허영남(남, 31세)와 작가 안소원(남, 30세)는 순천전자고등학교 선, 후배 사이라고 한다. 나이로 보아 당연히 허영남 작가가 선배가 된다. 현재 아트포라 우측 맨 앞쪽에서 ‘흙마음 도예공방’이라는 공방을 운영하는 도예작가들이다.

 

 

선후배가 한 자리에서 작업을

 

순천전자고등학교 기능반에서 도예를 익히면서 만난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대학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허영남 작가는 도립남도대학 도자기과를 졸업한 후, 군산대학교 예술대학 세라믹디자인 전공을 편입 후 졸업을 했다. 그리고 경기대학교 미술디자인 대힉원에서 도예전공을 하였다.

 

“저는 고등학교 때 도예작업을 하다가 도자기에 푹 빠졌어요. 일 년이면 설날과 추석 등 명절을 뺀 나머지 날은, 도자기를 만드는데 모든 시간을 다 썼다고 보아야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도자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아요.”

 

2011년에 제1회 개인전을 열기도 한 허영남 작가는, 2000~2008년 동안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금상 2회, 은상 1회를 수상했다. 또한 2010년까지 무등미술대회에서 5회 수상을 하는 등, 2000~2011년도까지 전국단위 공모전 밀 실기대회에서 20여 차례나 수상을 하기도. 그 외에도 순천미술대전 특별상, 제43회 전국 기능경기대회 도자기직종 금메달, 경향미술대전, 월드아트페스타 등에서 수상을 했다. 2012년에는 동양도자전을 4회나 열기도 했다.

 

 

1년 후배인 안소원 작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아직 개인전은 갖지 못했다는 안소원 작가는

 

“한 2년 정도 더 실력을 쌓은 후 개인전을 열 생각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흙을 갖고 하는 것은 다 좋아했기 때문에, 이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제 천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말 누구나 다 인정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한다.

 

안소원 작가도 그동안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전국 기능경기대회 도자가 직종에서 수상을 한 것을 비롯하여, 관광기념품 공모전, 온고을 전통공예대전 특선, 강진청자공모전, 순천미술대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백제문화제 전국 백제토기 물레경연대회에서는 대상 2회 금상 1회를 수상하기도.

 

아직은 젊다, 하지만 그래도 힘들어

 

이 두 사람의 선후배는 아트포라 공방에 입주를 한 후,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7월 20일(토) 오후에 찾아간 작업실 겸 공방은, 여기저기 작품들을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보인다. 작업을 해 놓은 작품들이 말라 갈라질까봐 온통 비닐을 씌어 놓았기 때문이다. 물레에 앉아 작업에 열중하던 허영남 작가는

 

“저희들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들어와서 작업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들어와 보니 이것저것 모든 것을 저희들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죠. 심지어는 전기 가마를 구입하는 것도 그렇지만, 한 달에 전기세가 25~30만원씩 나가게 되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죠.”

 

 

아트포라는 일부 전기세와 수도세 등은 작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있고 있다. 그러나 도자기라는 작업의 특성상 가마에 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들어가는 전기세 등이 만만치 않으니, 마음 놓고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기세만 좀 감해주어도 매일 가마를 땔 수가 있어요. 더 좋은 작품을 만들이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드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전기세 하나만 갖고도 힘이 들어요. 아직 소문도 나지 않은데다가 타지라 우리들을 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작업을 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마음대로 작업을 할 수 없으니 그런 것이 힘들죠.”

 

두 사람 다 도자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타지에 와서 작업을 하고, 그런 것이 소문이 나 적절한 수입이 생기기까지는 길이 너무 먼 듯하다. 이들이 마음 놓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도자기는 꼭 가마에서 구워내야 한다. 그것도 초벌에서 세벌구이까지. 가마에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다보는 안소원 작가는

 

“그저 마음 놓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아했는데, 선배의 강사료 등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어요. 어서 빨리 작업에만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란다.

 

젊고 유능한 두 사람의 작가가 마음 놓고 작업에만 열중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열정에 찬 젊은 작가들이, 더 이상 작품을 포기하는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수원시 팔달구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 자리한 전통시장인 ‘영동시장’. 수원 화성의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장시를 연 곳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동시장은 여러 장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장으로, 200여 년 전부터 개장된 장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은 2~30리 밖에서도 이용하는 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5일장으로 열리던 시장은,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영동시장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영동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상가와 상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300개 정도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형장이다.

 

 

영동시장 이층 문화공간 아트포라

 

영동시장은 그동안 시장을 살리고, 주변 대형매점들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영동시장 이층에 빈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을 한 것이다. 이곳은 ‘문화예술 종합공간 아트포라’라고 명칭을 붙여, 10여 개의 공방이, 이층으로 올라가면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아트포라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오직 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임대료나 전기세, 수도세 등도 모두 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트포라의 작가들의 공방 맞은편인 좌측에는, 커피숍과 미장원 등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전시공간과 뒤편에 대강당이 자리한다. 워낙 넓은 공간을 이용하다가 보니 전시 공간 앞이 휑하니 비어있어서, 조금은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6월 6일 현충일. 오후에 영동시장 아트포라를 찾았다. 그런데 2층에 비어있던 공간이 무엇인가 가득 채워져 있다. 워낙 넓은 공간이라 다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30%의 공간에 전시를 해 놓은 것들이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쉴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몇 분이 한 공방에 모여 있다. 평소 안면이 있어 더위도 피할 겸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에 전시가 되어있네요. 그동안 휑한 것이 보기가 좋지 않았는데, 저렇게 전시를 해놓으니 보기가 좋습니다.”

“그래요. 그 전시물들이 모두 손님들이 쉴 수 있는 의자랍니다. 그저 아무나 이곳에 오셔서 대화도 나누고, 편히 쉬어갈 수가 있는 곳이죠.”

“그러고 보니 2013화성국제연극제가 열리던 행궁 광장에서 본 것들도 있네요.”

“예, 원래는 이곳 아트포라에 손님들이 찾아오시면 마땅히 쉴 공간이 없어서 마련한 것인데, 국제연극제에 먼저 선을 보인 것이죠. 그곳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도 꽤 있고요. 앞으로 이 빈 공간을 다 채우려고요”

 

 

학생들과 함께 작품제작에 직접 참여를 한 김춘홍 작가의 대답이다. 그러고 보니 행궁 광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스피커 두 개를 연결해 차이가 나게 만든 의자며, 여행용 가방에 여러 가지 무늬를 넣어 만든 의자. 그리고 그저 여기저기 놓인 것들이 다 앉을 수 있도록 재창조가 된 것이다.

 

“어디 아까워서 사람들이 앉을 수나 있겠어요?”

“앞에다가 앉을 수 있는 의자라고 적어 놓아야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분들이 이곳을 좋아할 것 같아요”

 

작가들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다양한 형태의 의자. 한 곳에 앉아본다. 작품 위에 앉았다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아름다운 의자라면 어느 누가 마다할까? 아트포라가 입주를 한 뒤, 달라지고 있는 영동시장이다. 더 많은 작가들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겠다는 영동시장 상인회 이정관 회장의 말마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변화를 해야 할 때인 듯하다.

絹五百 紙千年(견오백 지천년)’, 비단은 오백년을 가지만, 한지는 천년을 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한지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이다. 한지의 우수성은 조선 시대에 한지로 만든 지갑(紙甲)’이라고 하는 갑옷이 있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지갑은 임진왜란 등 전쟁에서도 병사들이 착용하고 나갔다고 한다.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에도 지갑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런 우리 전통한지를 갖고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통칭 한지공예라 한다. 한지공예는 오색 색지공예또는 지함이라고 하며, 현재 박물관에 조선중기 이후의 유물들이 현존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까지 가장 성행했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공예의 하나이다.

 

 

15년 동안 오직 한지에만 매달린 정성

 

이혜순(, 54. 인계동거주)씨는 한지공예가이다. 200115()한지공예문화교육원에서 한지공예지도사범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도사범이란 남들을 가르치는 사범을 양성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지도자를 말한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업을 하는 공방에는 땀이 맺힌 많은 작품들이 가지런히 전시가 되어있다.

 

한지공예는 두꺼운 종이나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한지를 여러 번 바르고 오색 색지를 발라서 완성 하게 됩니다. 또 그 위에 갖가지 전통문양을 오려 붙여 모양을 내고, 전체적으로 풀칠을 한 다음 마감 처리를 하여 여러 생활 용품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공정은 상당히 까다롭기도 하지만, 많은 노력을 요하고 있다고 한다. 이혜순 작가가 한지에 매료되어 공예를 시작한 것은 올해로 15년째라고 한다. 그동안 강산이 한 번 반이 바뀌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수원에 정착한 후, 우연히 만나게 된 한지공예가 지금은 삶의 전체가 되어버린 듯하다.

 

사실 결혼을 하고나서 한지공예를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올 줄은 저도 몰랐죠. 저는 90이 가까우신 시부모님들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런 공예품을 만드는 작가활동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동안은 작품을 만들기보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에 더욱 많은 사간을 할애했죠.”

 

 

한지의 매력에 빠져버린 이혜순 작가

 

한지공예는 한지를 재료로 제작되기 때문에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과 함께, 오랫동안 지녀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정감을 줍니다. 한지를 주재료로 하여 제작되는 한지공예는 다른 공예품에 비하여 작품 자체가 매우 가볍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여러 가지 문양의 활용과 더불어 현대 감각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로의 재구성을 통해, 전통 문화의 창조와 계승,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지에 대한 자랑은 끝이 없다. 그만큼 이혜순 작가에게 한지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창작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작품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한지공예는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몰입을 하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한다.

 

그렇게 고통을 받으면서도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몰입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죠. 아마 지금의 내가 바로 그런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이혜순 작가는, 서예를 하다가 한지를 접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종이는 약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여러 겹으로 배접하면 화살도 뚫기 어려운 질기고 견고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반해 시작을 한 것이다.

 

작품을 돈으로만 계산하는 사람들 아쉬워

 

한지공예는 작품 제작을 위한 재료의 구입이 용이하며, 기법 또한 어렵지 않아서 누구든지 조금만 배우면 손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실내장식을 위한 조형미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으로서의 실용성을 함께 갖추고 있어 누구나 배울 수가 있죠.”

 

한지를 만질 때마다 그 질감이나 신축성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혜순 작가. 마침 공방에 외국인들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작품들을 돌아보다가 전등갓에 마음이 끌리는지 얼마인가를 물어본다. 우리 돈으로 12만원이라고 대답하자, 그냥 가버린다, 아마도 그들에게 비싼 가격이었던 것 같다.

 

 

저분들은 외국인들이라 우리 것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여기저기 싼 것들도 많거든요. 저들에게는 작품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더 슬픈 것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죠. 한지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한지의 우수성을 깨달아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부아가 치민다. 1m 50cm 정도의 삼단 농을 하나 만드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한 달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가격을 이야기를 하면 한 마디로 비싸다라고 말을 한다는 것. 작품을 갖고 가격을 논하는 것도 아쉬운데, 정작 사람들은 작품으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보고 가격을 논한다는 것이다.

 

한지공예는 주로 여성들이 많이 한다. 섬세함을 요구하는 것도 있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한지공예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르죠. 우선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요. 시간과 많은 노력을 요구하고 있죠. 그리고 한지공예는 작품을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요하고 있어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강인해야죠.”

 

 

아름다움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한지공예는 그런 아름다움을 보이기 위해, 작가의 땀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 한지공예가 이혜순 작가는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제9회 대한민국 한지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그리고 각종 기예능 경진대회의 심사를 맡아보았다. 아직 개인전을 갖지 못했다는 이혜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릴 날을 기대하는 것도, 누구보다 한지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벽화골목은 2년 째 조성 중에 있다. 첫해에는 창룡문을 나오면 주차장을 지나 게이트 볼 장에서 시작하는 1번 골목이다. 1번 골목의 벽화 길은 350m에 이른다. 그리고 지난해는 제일교회 아래쪽에 680m에 그림을 그렸다. 1번 골목 중간에는 빈집 하나가 볼썽사납게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동 마을만들기를 전담하다시피 한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총괄팀장이 이 집을 주인에게 무상 임대를 하여 구조변경을 하였다. 이 집의 용도는 되살림 발전소라 명명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집을 수리하기 시작해, 이제 그 개관일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315일 오후 이곳을 찾아보았다.

 

말끔히 단장을 한 되살림 발전소의 외부

 

말 그대로 되살림일세.

 

되살림 발전소앞에는 일꾼 몇 사람이 무엇인가 열심히 페이퍼로 갈아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마침 실내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던, 지동벽화길 조성 총 감독인 유순혜 작가가 대답을 한다.

 

마을에서 못쓴다고 내다가 버린 것을, 잘 갈아내고 색을 입혀 리폼을 하려고요. 그래서 되살림 발전소 가구로 사용할 겁니다.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 되살림의 의미도 있고요.”

 

그리고 보니 되살림 발전소라는 것은, 모든 것을 되살린다는 말이다. 주민들의 생활을 되살리고, 이웃 간의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살린다. 또한 여러 가지 주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 때문에, 땅에 떨어진 지동의 과거의 정체성도 되살린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감이 있고 그래도 이웃 간에 사랑이 넘치던 지난날의 생활로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지난 해 낡고 흉물이던 집을 늘리고 고치기 시작했던 때 

 

공방으로 꾸며 주민들의 소득에 보탤 것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팀장은 이 되살림 발전소에 공예품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이곳은 공예품을 만드는 공방으로 꾸밀 것입니다. 지전공예나 가죽공예, 섬유공예 등을 주민들에게 가르쳐, 그들이 직접 제작을 해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하려고요. 마을 어른신들 중에서 한 종목에 5명 정도를 선정해 교육을 시키고,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예품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판매를 해서, 그 수익금으로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실내 페인트 작업

 

판매소도 이 되살림 발전소를 비롯하여, 제일교회 일층에 들어 설 북카페와 판매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판매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원은 축제가 많습니다. 그런 곳에 공예품을 진열해 소득을 올리려고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제대로 마을만들기 사업만이 아니고, 정말 되살림 발전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순혜 작가는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이 되살림 발전소가 개관을 하게 되면, 바로 교육에 들어가려고요. 이곳에 와서 주민들에게 공예를 가르칠 선생님들도 다 선정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드는 공예품은 우리만의 고유한 모델을 만들어 브랜드화 시킬 것입니다 라고 한다.

 

버려진 가구를 가져다가 페이퍼로 갈아내고 있다. 리폼을 해서 사용하겠다고 

 

앞으로 되살림 발전소는 주민들의 사랑방 겸 공방으로 거듭 나, 화성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이야기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지동 되살림 발전소가 개관을 하는 날은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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